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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운의 곤충記] 더위 피해 알 속에서 여름잠 자는 붉은점모시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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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20일 17:55 프린트하기

기린 목처럼 길게 고개를 내민 눈부시게 샛노란 별꽃 모양의 기린초에 하얀 날개, 붉은 빛 무늬가 화려한 붉은점모시나비가 짝짓기를 하며 열심히 꿀을 빨고 있다. 아무리 잘 그린 그림도 이보다 더 예쁠 수는 없다. 뜨거워지는 여름 길목. 

 

짝짓기 중인 붉은점모시나비와 기린초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짝짓기 중인 붉은점모시나비와 기린초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높은 산에서 사는 까닭에 Alpine butterfly 라고 불리며 빙하기 때부터 추위를 대비해온, 곤충 가운데 보존 등급이 가장 높은 멸종위기종Ⅰ급인 붉은점모시나비는 뜨거운 여름이 곤혹스럽다. 생존을 위해서는 먹이를 찾고, 포식자를 피하고, 번식도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온에 적응한 놈들이라 태생적으로 더위를 견딜 수 없다. 먹이가 풍부한 여름이라 포기하긴 아깝지만 차라리 보이지 않는 알 속에서 애벌레로 숨어 지내는 방법을 택했다.

 

알 속 애벌레(좌),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우)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알 속 애벌레(좌),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우)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숨 막히는 여름 한낮의 열기도 시원한 나무 그늘을 빌리면 우리들은 지낼 만하다. 그러나 붉은점모시나비는 알을 그늘 삼아 그 속에서 애벌레 상태로 아예 여름잠(Aestivation)을 잔다. 올록볼록한 엠보싱 형태의 두꺼운 알껍데기(Chorion) 덕분으로 45도까지는 거의 완벽하게 버틸 수 있다.

붉은점모시나비 알(좌),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촬영한 알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붉은점모시나비 알(좌),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촬영한 알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촬영한 붉은점모시나비 알껍데기
붉은점모시나비 알껍데기(좌),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촬영한 알껍데기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알 속 애벌레와 알에서 꺼낸 애벌레의 생존율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알 속 애벌레와 알에서 꺼낸 애벌레의 생존율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2012년 겨울, 영하 28도 혹한에 활동하는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를 관찰하였고 얼지 않는 가장 낮은 온도(Supercooling) 실험을 하여 영하 48도까지 견딜 수 있는 초능력을 확인했다. 불리한 환경인 겨울에 발육을 할 수 있는 생리적 이유는 알았지만, 먹이도 부족하고 질도 떨어지는데 굳이 엄동설한을 선택한 것이 혹시 더위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해 보았다. 

단계별 결빙점 차이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단계별 결빙점 차이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정체모를 것들에 대해 상상하는 재미도 좋지만 하나하나 분석하고 검증하는 과학적 즐거움은 더 크다. 알을 하나하나 까보고 내한성 실험(Anti freezing)에 이어 열 반응 실험(Heat shock stress)을 했다. 더위를 참지 못했다. 

 

Development and Effects on Heat Shock Stress of Phrate 1st instar larvae of  Parnassius bremeri Bremer(Lepidoptera: Papilionidae) in Korean Peninsula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Development and Effects on Heat Shock Stress of Phrate 1st instar larvae of Parnassius bremeri Bremer(Lepidoptera: Papilionidae) in Korean Peninsula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붉은점모시나비는 여름이 시작되는 6월 중순 경에 알을 낳고 약 16일 동안 모든 신체부위 발생을 마치고 알 속에서 애벌레가 된다. 약 190일을 알속 1령 애벌레(Pharate 1st instar, Pharate는 그리스어로 '숨겨진'이란 뜻이다) 상태로 있다가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말에서 12월 초 부화한다. 기온이 오르고 먹을 것 많아지는 봄에 다른 곤충과 마찬가지로 알에서 부화하여 애벌레가 나온다는 통설(Wikipedia, ARKive)을 완전히 뒤엎는 생활사(Life Cycle)다. 

 

붉은점모시나비 알 발육단계(1-16일차)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붉은점모시나비 알 발육단계(1-16일차)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신진대사율을 낮추고 불리한 생물적, 비생물적 환경에 대한 저항성을 증대시키는 것이 휴면(Dormancy)이다. 먹이가 부족하다거나 먹이 질이 떨어지는 경우에 주로 동면(Hibernation)을, 온도 변화를 맞추지 못하는 대부분의 종들은 하면을 하게 된다. 보통 하면은 여름에 시작해서 선선해지는 가을에 끝나 발육과 활동이 재개된다. 그러나 붉은점모시나비는 알 속 애벌레 상태로 하면을 시작해 겨울에 끝내는 아주 특별한 생활사를 갖고 있다.  

 

오랜 기간 축적되어 온 진화의 결과가 응축돼 이처럼 복잡하고 안정적인 체계를 만들어냈겠지만, 때에 맞춰 몸을 만들고 알을 뚫고 나오면 될 것을 약190일을 알 속에서 웅크리고 기다리는 까닭이 무엇일까? 겨울이면 아무래도 발육할 에너지가 부족할 것이고, 건조하고 더운 기후 조건에서 부화능력을 잃어버릴 수 있으므로 미리 애벌레로 발육을 끝내고 버텨온 것 아닐까? 지구가 더워지기 전 빙하기 때는 어떤 생존 방법이었을까? 언제부터 이러한 메카니즘을 발전시켰는지 가능성에 대한 의문은 점점 커져만 간다. 

 

붉은점모시나비 알에서 우화하는 알벌류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붉은점모시나비 알에서 우화하는 알벌류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진화하는 포식자를 피하고 열기를 버틸 수 있게 아무도 볼 수 없는 알 속에 숨어 지내지만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 기생하는 벌이라는 놈들은 또 얼마나 진화한 놈들인지? 알 수 없다. 

 

 

 

참고문헌

-2017. Y, Park., Y, Kim., G. W. Park., J. O. Lee., and K. W. Lee., Supercooling capacity along with up-regulation of glycerol content in an overwintering butterfly, Parnassius bremeri. Journal of Asia-Pacific Entomology. 20(3):949-954.

-2017. Saulich, A. K., & Musolin, D. L. Summer Diapause as a Special Seasonal Adaptation in Insects: Diversity of Forms, Control Mechanisms, and Ecological Importance. Entomological Review. 97(9):1183-1212.

-2016. K. W, Lee., and J. R, Lee. Development and Effects on Heat Shock Stress of Phrate 1st instar larvae of Parnassius bremeri Bremer (Lepidoptera: Papilionidae) in Korean Peninsula. Korean Society of Applied Entomology. p.37.

-2016. K. W, Lee., and J. R, Lee. Microstructure and viability of chorion of Parnassius bremeri Bremer (Lepidoptera: Papilionidae) in Korean Peninsula. Korean Society of Applied Entomology. p.93.

-2015. K. W. Lee., and J. R, Lee. Egg Viability of Red-spotted Apollo Butterfly, Parnassius bremeri (Lepidoptera: Papilionidae) in Korean Peninsula. Korean Society of Applied Entomology. p.154. 

-2014. K. W. Lee., and J. R, Lee. Biology and temperature effects on development on Parnassius bremeri Bremer (Lepidoptera: Papilionidae) cocoon. The 4th international conference of Urban Biodiversity and Design. p.247.

-2008. Yang, P., Tanaka, H., Kuwano, E., and Suzuki, K. A novel cytochrome P450 gene (CYP4G25) of the silkmoth Antheraea yamamai : Cloning and expression pattern in pharate first instar larvae in relation to diapause. Journal of insect physiology. 54(3):636-643.

-1990. Suzuki, K. et al. Control mechanism of diapause of the pharate first-instar larvae of the silkmoth Antheraea yamamai. Journal of Insect Physiology. 36(11):855-860.

 

 

※ 필자소개
이강운 곤충학자 (holoce@hecri.re.kr)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국립인천대학교 매개곤충 융 복합 센터 학술연구 교수. 과학 동아 Knowledge 칼럼 ‘애벌레의 비밀’을 연재했다. 2015년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Ⅰ 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 Ⅰ’(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2016년 캐터필러 Ι, 2017년 캐터필러Ⅱ(도서출판홀로세)를 지었다.

 

※편집자주. 곤충은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지구에 왔고, 지금도 우리보다 더 많은 수가 지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라진 후에도 곤충은 여전히 지구를 지키겠지요. 하지만 도시의 삶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과 마음에서 곤충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곤충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신비에서도 멀어졌지요.  그래서 우리 곁 곤충들의 한살이와 생태를 담은 글과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해 주는 작은 알림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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