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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신원확인으로 6.25 전사자 가족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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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22일 03:00 프린트하기

-사진 제공 남윤중 AZA스튜디오/과학동아
발굴된 정강이뼈의 모습. 오랜 세월에 썩어버린 살이 흙과 함께 달라붙어 검은색을 띤다.
 -사진 제공 남윤중 AZA스튜디오/과학동아

5월 10일 오전 9시 10분경, 강원 횡성군 덕갈고개 해발 550m 고지. 땅속에 묻혀 있던 만년필이 모습을 드러냈다. 만년필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유해도 함께 발견됐다. 만년필 자루엔 이름을 각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사자의 신원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조심스레 흙을 턴 사람들은 아쉬움이 가득 찬 탄식을 내뱉었다. 이름이 없었다. 이제 ‘과학의 힘’을 빌려 신원을 확인할 차례였다.

 

이곳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의 6·25 전사자 유해 발굴 현장. 전사자 유해 발굴은 이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언급됐을 만큼 6·25전쟁 참가국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사안이다. 국내에서는 국유단을 중심으로 발굴과 감식을 하고 있다. '6.25전사자 유해발굴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본격적인 신원 감식이 이뤄진 지 올해로 꼭 10년째를 맞았다.

 

덕갈고개는 1951년 2월 5일 ‘횡성전투’가 벌어진 장소다. 국군과 북한군, 유엔군이 뒤얽혀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이때 아군 7500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다. 이주현 국유단 발굴팀장은 “미군과 중국군의 보급품이 뒤섞여 출토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곳에서 근접전투가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남윤중 AZA 스튜디오/과학동아
 현장에서 발굴된 만년필. -사진 제공 남윤중 AZA 스튜디오/과학동아

 

 

정강이뼈 주변 3m 지역에 수사 현장을 연상케 하는 노란색 띠가 둘러졌다. 당시 평균 신장과 인체 뼈 206개가 이루는 해부학적 요소 등을 고려해 최초 식별 지역 주변으로 발굴 지역을 좁힌 것이다. 만년필도 정강이뼈 있던 자리에서 북쪽으로 50㎝가량 떨어진 위치에서 발견됐다.

 

발굴된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위치한 국유단 중앙감식소로 이동하고, 이곳에서 신원 확인을 위한 감식이 진행된다. 국군의 신원이 확인되면 현충원에 안장되지만, 확인되지 않는 경우 중앙감식소에 보관된다. 약 12만3000여 위의 호국용사들이 아직 수습되지 않은 채 땅속에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총 1만1206구의 유해를 발굴했지만,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127위에 그친다. 발굴 유해의 1%에 불과한 수준만 신원이 확인됐다는 뜻이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유해의 신원 파악에는 법과학 분야의 첨단기술이 총동원된다. 우선 세척한 뼈의 길이나 두께 등을 측정한 값을 토대로 인종을 통계적으로 확인한다. 뼈의 손상이 심각하다면 3차원(D) 프린팅 기술로 상실 부분을 복원한다. 생전 사진과 복원된 뼈의 모습을 비교해 가며 신원을 확인하기도 한다. 

 

가장 결정적인 단서는 DNA다. 유해가 화재나 방부제 등 특정 환경에 노출되지 않는다면 DNA는 오랜 시간 보존된다. 유해에서 DNA를 추출한 뒤 미리 확보한 6·25 전사자 유족의 DNA와 비교하면 가족 여부를 알 수 있다.

 

문제는 세대가 거듭될수록 유전자를 통한 신원 확인 가능성이 4분의 1씩 줄어든다는 것이다. 장유량 국방부 중앙감식소장은 “현재 기술은 1, 2촌 내 가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향후 DNA 분석 기술이 더 발전하리라 보고 8촌 이내 가족의 DNA 시료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유단은 현재까지 유족 약 4만 명의 DNA 시료를 확보했다.

 

-사진 제공 남윤중 AZA 스튜디오/과학동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정강이뼈와 종아리뼈의 해부학적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발굴 이후에는 전통주 한 잔과 명태를 올려 약식 제례를 지내고 이후 신원 확인을 위해 감식소로 보낸다.
 -사진 제공 남윤중 AZA 스튜디오/과학동아

 

DNA 검사에도 한계는 있다. DNA로는 국군과 북한군, 중국군을 구별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지난해 10월 국유단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과 공동연구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6·25 전사자의 고향을 찾아줄 새 단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새 단서는 바로 동위원소다. 동위원소는 양성자 수(원자번호)는 같지만 질량이 다른 ‘쌍둥이 원소’를 말한다. 지구상의 공기, 바위, 물, 식물, 동물은 모두 스트론튬(Sr) 동위원소를 갖고 있다. 음식을 섭취할 때 스트론튬의 4가지 동위원소가 치아나 뼈에 저장된다. 이 중 스트론튬-87(Sr-87)과 스트론튬-86(Sr-86)의 비율을 계산하면 생전 섭취했던 음식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정창식 KBSI 지구환경연구부 책임연구원은 “동위원소 비율은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며 “6·25 당시에는 산지에서 나는 음식을 주로 섭취했기 때문에 유해 속 동위원소 비를 통해 고향을 역추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남한 지역 곳곳의 지하수, 머리카락 등을 확보하고, 분석을 토대로 동위원소 지도를 작성했다. 현재는 더 정확하고 세분화된 지도를 작성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전쟁 실종자를 발굴하기 위한 미국 측 기관인 ‘DPAA’도 KBSI에 방문해 동위원소 분석 시설과 기술을 견학했을 정도로 연구진의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동위원소로 고인의 생전 이동을 추적하는 연구 자체가 국내에선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표준 분석 방법이 마련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KBSI는 강원 속초 지역 해안가에서 발굴된 ‘동해 망상전투’ 전사자의 유해로 시범적인 연구에 돌입했다. 시범 연구를 통해 최적 분석법이 확립되면, 신원 확인에 본격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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