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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운의 곤충記] 직접 알을 품는 물장군의 부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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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11일 15:16 프린트하기

검푸른 숲, 물속도 빼곡하게 풀이 찼다. 고온과 다습으로 원시적 생명력이 꿈틀거리고 한창 열매를 맺는 여름. 뜨거운 여름 한 가운데서 물장군이 번식을 시작했다. 

 

짝짓기 중인 물장군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짝짓기 중인 물장군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수컷이 짝짓기 신호로 물속 잔물결을 일으키고 러브콜을 받아들인 암컷과 짝을 이뤄 산란을 시작한다. 산란목(産卵木)에 암·수가 자리를 잡은 후 무려 2시간 40분에 걸친 긴 산란. 윗부분이 움푹 들어간 좁쌀 모양의 70여개 알은 무늬가 없는 에메랄드빛을 띠다가 노랑쐐기나방의 고치처럼 연한 노란색 바탕에 갈색 세로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랑쐐기나방고치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노랑쐐기나방고치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인간을 포함한 거의 모든 동물에서 부모의 자식에 대한 투자는 대체로 암컷 몫이다. 5000 종 이상의 포유류 중에서 부성애를 보이는 종은 겨우 10%에 불과하고 지구 생물의 70%를 차지하는 곤충의 경우도 부성애는 매우 드물다. 곤충 중에서도 물속 곤충의 경우는 대단히 희귀하다. 그러나 물장군은 감동적인 부성애로 알을 성공적으로 부화시켜, 생존율을 높이는 특이한 곤충이다. 

 

물장군 포란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물장군 포란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공룡과 포유류가 함께 산 1억 5000만 년의 긴 시간 동안 공룡은 대기 농도에 맞춰 몸집이 커지고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면서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다. 커지면서 강력해졌으므로 대부분 생물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공룡처럼 빅 사이즈를 원했다. 

 

물속 생물의 최상위 포식자인 물장군도 큰 몸집으로 늘리기 위해 육지로 올라왔다. 곤충이 크다고 하면 도대체 얼마만한 크기를 말할까? 커 봐야 10mm 내외인 곤충이 대부분인 나방이나, 1~5mm가 거의 전부인 딱정벌레 종류나 물에서 같이 사는 송장헤엄치게, 줄물방개, 소금쟁이와 비교하면 70mm에 달하는 물장군의 크기는 공룡처럼 압도적이다. 

 

왼쪽부터 송장헤엄치게, 줄물방개, 소금쟁이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왼쪽부터 송장헤엄치게, 줄물방개, 소금쟁이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절지동물은 발육 단계를 늘리거나 더 큰 알에서 부화하여 성장을 시작하는 2가지 방법으로 몸 크기를 더 키울 수 있다. 물장군은 네 번 탈피하여 어른이 되는 생활사를 10~12 단계로 횟수를 늘려 발육하는 것보다는 아예 처음부터 더 큰 알에서 부화하여 몸집을 키우는 전략을 택했다. 

 

물장군 생활사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물장군 생활사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수온이 높아 용존산소량이 적은 고인 물에 사는 물장군이 알을 크게 키우기 위해서는 산소 공급이 원활한 물 바깥이 훨씬 좋은 조건이다. 물속 식물을 이용하면 왔다 갔다 하며 수분 공급을 원활하게 할 수 있고 산소도 한껏 호흡할 수 있어, 물풀이 산란하기엔 적당한 곳이다. 게다가 알을 감싼 상태로 몸을 기대고, 높은 곳에서 천적을 관찰하고 제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산소 때문에 물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바깥은 원래 살던 곳이 아니므로 더 위험하다. 물에 녹아있는 산소의 단순 확산만으로는 필요한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뭍으로 나와 물풀에 알을 낳았지만, 물속에서는 마주하지 못했던 과도한 양의 자외선을 견뎌야 하고 치명적인 온도 변화와 혹독한 건조 환경에 직면한다.

 

물장군은 암컷이 물 밖에 있는 물풀에 알을 낳으면, 수컷이 알을 품는 (포란하는) 독특한 행동을 보인다. 모성애라는 자연스런 행동 패턴을 포기하고 수컷이 암컷의 역할을  대신함으로써, 암컷은 추가적인 영양 공급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알을 낳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적응한 것으로 보인다. 

 

물장군 발톱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물장군 발톱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물장군의 학명은 Lethocerus deyrollei이다. '죽음의 발톱'을 의미하는 학명 'Lethocerus'처럼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한다. 포식자들은 보통 알을 적게 낳고 생존율을 높이는 K-전략을 채택하는데, 특이하게 물장군은 이를 마다한다. 개체수가 많으면 관리하기 힘들어 방치하기 일쑤고(r-전략) 제대로 키우려면 자손의 수를 제한하는 방식이 일반적인데, 물장군은 r-전략과 K-전략의 장점만을 취하려는 욕심을 부리는 것처럼 보였다. 지극한 부성애를 지닌 물장군은 알을 품기 좋게 알 덩어리(Cluster)로 모아 낳으면서, 많이 낳고 모두 지키는 성공적 번식을 하고 있다.  

 

부성애(Paternal care)는 수컷이 자식에게 양육 투자를 하는 것이다. 물장군 수컷은 쉴 새 없이 물속과 알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최대한 많은 물기를 머금고 올라와 알에 물을 적셔 준다. 이렇게 습도를 유지해 줄뿐만 아니라, 수컷의 발목마디 끝에 갈고리처럼 생긴 발톱을 알 사이에 집어넣어 넓혀줌으로써 얇은 큐티클을 통해서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도록 한다.

 

SEM으로 촬영한 물장군수컷 발톱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SEM으로 촬영한 물장군수컷 발톱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먹이를 낚아채는 용도보다는 알을 다치지 않게 벌려 주는데 쓰기 위해 암컷보다 훨씬 무딘 발톱으로 전환하는 진화가 일어났다. 산소가 공급되면서 알은 점점 커진다. 

 

물장군 암(좌), 수(우) 발톱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물장군 암컷 발톱(좌), 수컷 발톱(우)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지극히 미미하다고 여기는 벌레가 지극한 경지를 지니고 있다. 이들에게서 희생의 진정한 의미를 엿볼 수 있다. 

 

※ 참고문헌

-2017. Steiger, S. Pheromones involved in insect parental care and family life. Current opinion in insect science, 24:89–95

-2012. Dong Jae Lee, et al. The Impacts of Male Incubating Behaviour on Hatching rate of Giant Water bug, Lethocerus deyrollei Vuillefroy (Hemiptera: Belostomatidae). Korean Society of Applied Entomology. p.166. 

-2010. Requena, G. S., et al. First cases of exclusive paternal care in stink bugs (Hemiptera: Pentatomidae), Zoologia (Curitiba), 27(6):1018-1021.

-2001. Tallamy, D. W. Evolution of exclusive paternal care in arthropods. Annual review of entomology, 46(1):139-165.

 

 

※ 필자소개
이강운 곤충학자 (holoce@hecri.re.kr)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국립인천대학교 매개곤충 융 복합 센터 학술연구 교수. 과학 동아 Knowledge 칼럼 ‘애벌레의 비밀’을 연재했다. 2015년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Ⅰ 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 Ⅰ’(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2016년 캐터필러 Ι, 2017년 캐터필러Ⅱ(도서출판홀로세)를 지었다.

 

 

 

※편집자주. 곤충은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지구에 왔고, 지금도 우리보다 더 많은 수가 지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라진 후에도 곤충은 여전히 지구를 지키겠지요. 하지만 도시의 삶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과 마음에서 곤충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곤충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신비에서도 멀어졌지요.  그래서 우리 곁 곤충들의 한살이와 생태를 담은 글과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해 주는 작은 알림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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