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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당신의 마음은 독재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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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15일 13:00 프린트하기

우리는 흔히 ‘내 안의 목소리’라는 말로 자신의 진솔하고 의미있는 본심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조금은 이상한 표현입니다. 내 마음은 원래부터 ‘내’ 마음인데, 도대체 누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일까요? 그냥 단순한 문학적 은유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매일매일 경험합니다. 자신의 행동과 생각, 그리고 감정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또다른 자신이 있습니다. 

 

GIB 제공
GIB 제공

 

 

마음이 분열한다면?

 

대표적인 정신장애로 꼽히는 조현병. 과거에는 정신분열병이라고 했습니다. 원래 이름인 스키조프레니에(schizophrenie)는 나뉜다는 의미의 스키조(schizo)와 마음이라는 의미의 프레니(phrenie)를 합친 말입니다. 식물학에서 여러 개의 씨앗을 가진 열매가 익으면서 하나의 씨앗을 가진 여러 조각으로 분리되는 경우를 분리과, 즉 스키조칼프(schizocarp)라고 하죠. 프레니(phrenie)는 횡경막(diaphragm)을 뜻하기도 하는데, 과거에는 영혼이 횡경막 부분에 위치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긴 단어가 아닙니다. 1908년 독일 정신의학회에서,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였던 유겐 브로일러가 처음 사용했습니다. 기존에 잠시 쓰이던 조발성 치매라는 말을 대치했고, 이후 일본에서 이를 직역하여 정신분열병으로 옮겼습니다. 우리도 수십년 동안 동일한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분열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편견을 강화시킨다는 우려가 비등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2005년 통합실조증으로, 그리고 한국은 2010년 조현병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아직 다른 한자문화권 국가에서는 정신분열병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사실 브로일러 박사가 이 명칭을 제안한 것은 기존의 용어였던 조발성 치매(dementia praecox)와 경쟁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정신과 의사 에밀 클레펠린은 조현병이 ‘치매가 일찍 와서 생기는 병’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면에 브로일러는 정신적 과정의 내적 연결이 끊어지는 것이 원인이라고 주장했죠. 물론 이제는 둘 다 온전한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조현병은 정신이 분열하는 것도 치매도 아닙니다만, 영어로는 여전히 ‘정신분열병’입니다. 너무 널리 쓰여서 바꾸기 어렵게 된 것이죠. 영어권 문화에서도 스키조프레니아가 ‘이상하게 행동하며, 우물쭈물하며, 망상에 빠진 사람’이라는 경멸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브로일러씨 병’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1908년 유겐 브로일러는 정신분열병(schizophrenia)라는 용어를 처음 제시했다. 이는 당시 의학 수준으로는 상당히 혁신적인 것이었지만, 이후 수많은 편견과 오해를 낳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 위키미디어 제공
1908년 유겐 브로일러는 정신분열병(schizophrenie)라는 용어를 처음 제시했다. 이는 당시 의학 수준으로는 상당히 혁신적인 것이었지만, 이후 수많은 편견과 오해를 낳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 위키미디어 제공

 

 

내 안의 목소리는 환청? 

 

진단 기준에 의하면 환각은 조현병의 주 증상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거나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것이죠. 그래서 1938년 쿠르트 슈나이더 박사는 환청과 관련된 몇몇 증상을 조현병의 일급 증상이라고 명명했습니다. 환청은 이후 조현병을 진단하는 가장 명백한 증상으로 굳어졌습니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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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환청은 누구나 경험하고 듣습니다. 환청은 조현병 환자들만 경험하는 기괴한 증상이 아니라, 사실 모든 사람이 항상 경험하는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그럴 리 없다고요? 아마 자신은 절대 환청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간단한 실험을 해보겠습니다. 아이들이 보는 동화책을 가져와서 묵독해 볼까요? 마음의 움직임을 잘 더듬어 보면, 등장인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주가 하는 말은 우아한 여성의 목소리로, 왕자가 하는 말은 근엄한 젊은 남자의 목소리로 들립니다. 거친 야수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해설자의 목소리는 보다 중립적으로 들립니다. 


이건 환청이 아니라 본인이 의도하여 마음 속으로 지어낸 소리라고 항변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한번 공주의 목소리와 왕자의 목소리를 바꾸어서 책을 읽어보십시오. 아마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면의 목소리는 마치 독립적인 억양이나 성격을 가진 것 같아서 뜻대로 바꾸는 것이 어렵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심리학자 찰스 퍼니휴는 ‘내 머리속에 누군가 있다(원제: the voices within)’ 제하의 저서에서, 환청은 어느 순간 병리적인 현상으로 전락해버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환청이 가진 다양한 장점, 즉 창조성이나 내적 반성, 심적 표상의 연습 등 다양한 기능도 약화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조현병 환자의 환청과 일반인의 내적 목소리는 상당히 다릅니다. 조현병 환자는 종종 환청을 이질적인 것, 즉 정말 외부의 소리처럼 인지하곤 합니다. 그러나 일반인은 내면의 목소리가 자신의 것이면서, 동시에 그렇지 않은 이중적 성격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깊이 생각할 것이 있어 사색에 빠진다고 합시다. 사색의 과정에는 보통 몇 사람이 등장합니다. 조금은 보수적인 성격을 가진 목소리, 보다 밝고 반항적인 개방적 목소리, 이를 중재하는 목소리…… 내적 대화에 익숙한 사람의 마음에는 훨씬 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돌아가진 아버지도 있고, 오래 전에 사사한 스승님도 있습니다. 다양한 인격을 가진 여러 자아가 서로의 목소리로 토론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내적 대화가 기괴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대화에 깊이 빠졌다가는 혹 조현병이 걸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한 가지인데, 내면에 존재하는 여러 목소리는 우유부단함의 증거일 뿐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죠. 이들은 마치 자신의 영혼에 언론통제를 가하듯, 다른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내면의 여러 여론은 묵살되고, 생명력을 잃은 여러 자아는 점점 야위어 갑니다. 단 하나의 목소리만을 허용하는 영혼은 점점 완고해집니다.  

 

심리학자 찰스 퍼니휴는 자신의 책에서 ‘내 안의 목소리’는 창조성과 유연성, 내적 성찰을 위한 고도의 심적 기전이며 인간성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 aladin 제공
심리학자 찰스 퍼니휴는 자신의 책에서 ‘내 안의 목소리’는 창조성과 유연성, 내적 성찰을 위한 고도의 심적 기전이며 인간성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 aladin 제공

 

 

내면에서 시작되는 다양성

 

타협을 모르는 사람이 서로 모이면 갈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오로지 굴복하느냐 굴복시키느냐의 문제가 되어 버립니다. 누구는 이런 사회적 갈등이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서 변증법적으로 진보하는 역사적 과정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소위 변증법적 발전의 역사적 과정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는지 생각하면 정말 비인간적인 주장입니다. 


인류는 오래 전부터 사회적 관계를 맺어왔고,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진화했습니다. 이러한 능력은 앞서 말한 각자의 목소리를 가진, 내 안의 자아로 구현됩니다. 내적 대화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직접적인 갈등의 상당 부분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내 안의 여러 자아는 결국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타협하기도 쉽습니다. 어차피 승자는 결국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죠. 


우리 내면 속에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노인도 있고, 철부지 아이도 있습니다. 이들은 마치 만화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주인공처럼, 전체 자기를 위해서 끊임없이 토론하고 설득하고 가끔은 싸우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벌이는 치열한 토론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내적 대화는 ‘무의식’ 수준에서 은밀하게 일어나기도 합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한 장면- 네이버영화 제공
영화 '인사이드 아웃' 한 장면- 네이버영화 제공

다양성은 바로 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시작합니다. 유연한 사고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끊이지 않는 사회적 갈등과 첨예한 의견 대립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과도한 혐오와 비난, 도덕적 선을 넘은 공격과 모독, 외부인에 대한 악마화와 상대편에 대한 마녀사냥이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갈등의 시작은 바로 개인의 내면에서 비롯합니다. 혹시 여러분의 마음은 단 하나의 의견만이 허용되는 독재 치하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당신은 당신의 마음 안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고 있나요? 아니면 오로지 독재 정권의 언론 통제처럼, ‘내 마음의 국영방송’만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그렇게 모두가 자신의 마음에 대한 독재자가 되어 간다면, 결과는 뻔합니다. 독재자와 독재자가 만나면, 결과는 전쟁뿐입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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