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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수능개편안 연속기고] 언어학자가 말하는 쉬운 수학의 진정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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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23일 15:57 프린트하기

※ 편집자 주. 정부는 현재 중3 학생이 치를 2022년 수능에서 수학과 과학 과목 비중을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수학 시험은 문이과를 통합해 치르고, 과학은 사회와 합쳐 2과목만 골라 응시하는 방식입니다. 과학기술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큽니다. 쉬운 공부에 매달리다 정작 미래를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년대계 수학·과학 교육에 대한 과학기술인의 목소리를 소개합니다.

 

나는 영어영문학과 교수이며 전공은 언어학이다. 문과 학생들에게 인공지능을 가르치며 수학의 중요성을 매일같이 강조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수학은 모든 학문의 기본이 된다고 해왔지만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엔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기술 중심의 시대로 접어든 시점에 수학의 역할은 당연히 그 중심에 있어야 하지만, 인권의 증대와 더불어 수학의 무거운 부담을 덜어 주어야 한다는 요구에 쉬워져야 한다는 주장이 여느 때보다 강하다. 하지만 그 '쉽다'는 것의 개념은 수학자, 수학 교육자, 수학 교육 정책 입안자에게조차 명확하지 않다. 

 

남호성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남호성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쉽게 가르친다는 것은 기본을 무시한다던가 가르쳐야 할 것을 줄이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는 수학을 쉽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안 가르침으로써 시험을 쉽게 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차원에서 “수학은 어려워야 한다”, “어려울 수 밖에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쉬운 수학을 표방한다며 수학을 너무 가볍게 해버린 여러 시도들을 목격해 왔기때문이다. 수학 대중화를 표방하며 흥미 위주의 이야깃거리로 채워진 책들의 범람이 그러하고, 고교 교과과정에서 행렬, 기하, 미적분, 확률 같은 수학의 핵심 주제를 썩은 무 자르듯 베어 버리는 탁상행정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진정한 쉽게 함이란 무엇인가?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을 이해하게 하고, 무관하기만 했던 여러 개념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볼 수 없었던 깊이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쉬움은 무조건 장려되어야 할 방향이다. 예를 들어 보자. 행렬을 가르치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그 중 가장 시각적이고 직관적인 방법은, 행렬을 그 열벡터들을 통한 공간 변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역행렬은 그 변형된 공간을 원 공간으로 되돌리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만약 어떤 3차원 행렬이 차원을 줄여 2차원 혹은 1차원으로 변형한다면 원공간으로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고 이 때 이 행렬의 역행렬은 없다라고 한다. 이렇듯 행렬을 벡터의 공간 속에서 기하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쉽게 이해할 수 있을뿐 아니라 깊이 또한 더해져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저절로 얻을 수 있게 된다. '나의 수학 선생님도 이렇게 가르쳐 주시지'라고 뒤늦게 나마 생각해 본다.

 

 

누구의 책임인가?


그렇다면 수학은 왜 이렇게 모두가 피하고 싶은 대상이 되었나? 많은 이유 중,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의 방향과 눈높이의 차이가 제일 크다고 생각한다. 수학은 학문 그 자체의 가치만으로도 오롯이 중요하지만, 그것은 수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할 뿐 대부분의 학생들은 왜 이것을 배워야 하는지 그 가치가 더 중요하다. 즉 동기 부여의 관점에서 수학 교육은 철저히 학생들에게 불친절했고 갑의 입장에서 '수학은 원래 어려운 것이야'라며 고매함을 홀로 주장해 왔다고 생각한다.

 

GIB 제공
GIB 제공

학교 수학을 아무리 뒤져봐도 행렬이 로봇을 구동하고 인공지능을 작동하게 하는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음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데이터의 홍수 시대에 이미지, 음성, 텍스트와 같은 일상의 데이터는 단순한 숫자 열인 벡터로 표현 가능하다. 이때 벡터로 표현된 데이터들은 벡터의 기하 공간에서 서로 인접한 정도로 서로의 유사성을 측정한다. 인지능은 이러한 벡터들의 입출력간 관계를 학습하는 것이다. 고양이 이미지를 보고 고양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그 예이며, 고양이 이미지는 입력 벡터가 되고 고양이라는 텍스트는 출력 벡터가 된다. 이때 입출력 벡터의 관계는 행렬로 정의 되며 인공지능의 학습은 입출력 관계의 빅 데이터 속에서 패턴, 즉 행렬을 학습하는 것이다. 이 인공지능의 학습에 이용되는 대표적인 방법이 미분의 개념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듣게 되는 인공지능이 이러한 수학 개념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적지 않은 학생들은 여태껏 배웠던 수학에 대한 배신감과 앞으로 배우고자 하는 수학에 대한 동기부여의 감정을 동시에 갖게 된다. 평가만을 위해 개발된 수학 문제 풀이는 집어치우고 수학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그래서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 개발에 모든 것을 투자해야 할 때이다. 언제까지 수학 올림픽에서 문제 풀이 왕을 배출하는 것이 수학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 믿을 것인가? 우리나라가 인공지능 분야에서 절대 선진국일 수 없는 근본적 이유를 이러한 수학교육의 방법에서 찾아봐야 하지는 않을까?

 

사진 GIB 제공
사진 GIB 제공

 

고교 계열화의 함정


실은 행정 편의주의적 수학교육 정책의 최대 실수는 고교 계열화다. 고교 계열화는 인문계 학생들에게 수학 면죄부를 줌으로써 수학의 아름다움을 모든 사람들이 향유할 기회와 권리를 박탈하는 것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불과 20년만에 컴맹이란 말이 계급을 구분 짓는 용어가 되었듯, 수맹, 즉 수포자는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 계층이 되어가고 있다. 이렇듯 고교 계열 구분은 수십년 동안 인구의 반을 수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집단으로 갈라 치고 있다.

 

수학 공부할 의무를 면제받았다고 생각하는 고등학교 인문계 학생들은 사실 수학을 공부할 권리를 박탈당한 것이다. 이것은 문과형 인간이라는 프레임으로 인구의 반을 평생 동안 그러한 사고 속에 가두게 하는 제도로서, 국가와 개개인의 미래 잠재성을 상당 부분 거세하는 죄악과 같은 정책이다. 정보가 부족한 어린 학생과 부모에게 이러한 결정을 하도록 자유 의지를 넘기는 이러한 제도는 당장 없어져야 한다. 기술 중심의 현실에서 계열 구분은 남녀의 결과적 차이와 잠재적 차별에 대한 이유도 될 수 있다. 현재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높은 공과 계열 학과는 남초, 취업률이 낮은 어문계열 학과는 여초임을 보더라도 그렇다.

 

나와 함께 선형대수, 미적분, 확률론을 공부하며 최첨단 인공지능을 구현하고 있는 학생이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내가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수학이 이렇게 아름다운 학문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수학이라고 배웠던 것은 수학과 멀어지게 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지금까지 문제풀이왕 만들기에 휘둘렸는데 지금이라도 수학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게 되어 다행이다. 문과생으로 원래 수학에 적성이 없었다라고 믿고 살게 될 많은 이들에게 깨우침을 주고 싶다.”

 

학생은 수학을 제대로 배울 권리를 찾으려 노력해야 하고, 교육자는 그 의무를 다하도록 성찰해야 할 때이다. 난 인공지능 전문가다. 하지만 수능 문제 한 문제도 제대로 못 풀겠다. 수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해서인가 보다. 

 

☞ 과기단체 <2020 수능 바로세우기> 공동서명은 30일까지 온라인(https://moaform.com/q/113kjg)을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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