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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정신장애는 실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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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22일 13:00 프린트하기

정신장애는 단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신화라는 오랜 주장이 있습니다. 정신장애는 흔히 평소에 보인 이상한 말이나 행동과 같은 병력, 그리고 정신과 의사의 면담을 통해서 진단합니다. 그런데 평소에 보인 ‘이상한’ 언행이라는 말이 좀 ‘이상’하다는 주장이요. 그 ‘이상한’이라는 기준은 어차피 세상이 만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게다가 정신과 의사는 신이 아니니, 그동안 살아온 환경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단지 ‘정신과 의사’라는 권위를 통해서, 어떤 사람의 언행을 사회적으로 ‘이상한’ 것으로 공인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GIB 제공
GIB 제공

 

 

라벨 붙이기

 

50년대 무렵부터 많은 학자들이 이른바 ‘라벨 붙이기(labeling) 이론’을 주장했습니다. 즉 정신장애는 ‘다른’ 행동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설명이며, 집단적인 통제 장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식에 반바지를 입고 갔다고 합시다. 하객이라면 백 번 양보해서 봐줄 수 있겠지만, 신랑이나 신부가 그런 행동을 한다면 누가 봐도 ‘이상한’ 일입니다. 게다가 ‘영원히 사랑하겠는가?’라는 서약의 질문에, ‘글쎄요. 확답은 어렵겠는데요’라고 답한다면 아마 하객들은 ‘저 사람이 단단히 미쳤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회적 규범과 질서는 특수한 역사적 배경과 생태학적 환경, 인간의 본성이 어우러져 결정된 독특한 문화적 산물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규범과 질서를 어기면 집단의 제재를 받게 됩니다. 한국의 자동차는 오른쪽으로 가고, 일본의 자동차는 왼쪽으로 갑니다. 어떤 것을 정상이거나 이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 차선으로 가면 제재를 받습니다. 


1972년 데이비드 로젠한은 가짜 환자를 정신 병원에 보냈습니다. 환청이 들린다며 거짓말을 했는데, 8명의 가짜 환자 중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현병’을 앓는다고 진단되었습니다. 심리학자 로젠한은 이 유명한 실험을 통해서, ‘정신의학의 라벨은 하나의 생명을 가진 존재’라고 했습니다. 의사가 일단 그런 진단을 내리고 나면, 가족과 친구들은 조현병의 ‘전형적인’ 증상을 보려고 기대한다는 것이죠. 심지어 본인도 그런 행동을 은연 중에 보이면서, 착한 환자 역할을 하려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신장애는 라벨에 불과하다는 가설은 한 때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라벨만 보고 상품을 사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라벨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행동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 pixabay 제공
정신장애는 라벨에 불과하다는 가설은 한 때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라벨만 보고 상품을 사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라벨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행동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 pixabay 제공

 

 

라벨 붙이기라는 또다른 라벨 

 

하지만 데이비드 로젠한의 실험은 이후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가짜로 증상을 호소해도, 증상에 맞는 진단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당장 가까운 병원에 찾아가 오른쪽 아래의 배가 아프다고 이야기해볼까요? 의사가 배를 살짝 누르다가 뗄 때, ‘아앗’이라고 신음을 내보십시오. 아마 의사는 충수돌기염의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충수돌기염이라는 사회적 라벨을 붙인 것일까요? 


많은 정신의학자나 인류학자들은 라벨 붙이기 이론에 그다지 공감하지 않습니다. 비록 특정한 말이나 행동이 집단 내에서 ‘이상’한 것으로 취급될 수는 있지만, 라벨 자체가 살아있는 실체라는 주장은 과도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류학자 로버트 에저튼은 라벨, 행위, 행위 이전의 인지 등 여러 과정이 모두 사회적 산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라벨이 없어도 정신장애는 존재할 수 있고, 행위가 없어도 라벨은 있을 수 있으며, 인지하지 못해도 정신장애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옳은 말입니다. 정신과 의사가 터무니없는 라벨을 붙이면, 가족이나 환자가 그 라벨에 순순하게 받아들일 리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신장애는 단순한 ‘신화’도 아니고, 단순한 ‘사회문제’도 아니다. 사고, 감정 및 행동에 대한 의료적 개입이 필요한 진정한 장애는 존재한다. 정신의학적 진단은 증상과 징후를 과학적으로 분류하는 성실한 경험적 노력이다…”
- 데이비드 애저튼, 1969년. <정신장애의 ‘인정’에 대하여>

 

 

사실 다양한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정신장애의 양상을 연구하는 민족정신의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에 동의합니다. 정신장애를 판별하는 데 사용되는 증상적 단서는, 서아프리카나 알래스카에 사는 원주민 사회에서 사용되는 단서와 아주 유사합니다. 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해당 사회에서 인정되는 일상적인 행동 양식에서 벗어나는 기이한 언행, 부적절한 행태, 자타에게 위험한 행동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문화는 없다. 


둘째 정신장애에 해당한다고 간주되는 특정한 언어나 행동은, 비록 그 표현이나 중요성이 다르더라도, 여러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정신장애의 핵심 원인이 따로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정신장애가 오로지 특정한 핵심 원인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의 다양함은 마치 결핵을 앓는 환자의 증상이 모두 다른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폐결핵과 골결핵과 뇌결핵의 증상은 아주 다르지만, 원인균은 동일합니다. 따라서 사회적 환경이나 문화는 정신장애의 증상에 약간 영향을 미칠 뿐, 핵심 원인과는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지금까지 정신장애의 진정한 원인을 찾으려는 다양한 시도는 모두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정신장애가 왜 생기는지 잘 모릅니다. 미리 예측도 못하고, 예방은 더더욱 못합니다. 정신장애에 대한 백신은 없으며, 완치라는 개념도 없습니다.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병하고, 다양한 치료법을 시도해야 하며, 다양한 경과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정말 맥 빠지는 말입니다. 


기존의 의학적 접근법은 이상하게도 정신장애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술도 해보고, 전기 치료도 해보고, 약물치료도 하고, 정신치료도 합니다. 심지어 연극도 하고, 음악도 들려주고, 춤도 춥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효과가 제한적이거나 혹은 증상 경감에 그칩니다. 정신장애를 100% 고칠 수 있다며 장담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는 100% 사기꾼입니다. 

 

 

침대 길이에 맞춰 사람을 죽이던 프로크루스테스는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서 똑 같은 방법으로 처벌을 받는다. 프로크루스테스 본인 조차도, 자신의 침대 길이에 맞출 수 없었다. - 위키미디어 제공
침대 길이에 맞춰 사람을 죽이던 프로크루스테스는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서 똑 같은 방법으로 처벌을 받는다. 프로크루스테스 본인 조차도, 자신의 침대 길이에 맞출 수 없었다. - 위키미디어 제공

 

 

키 큰 사람과 키 작은 사람

 

프로크루스테스라는 도적이 있었습니다. 길을 가는 나그네에게 음식을 주고, 잠잘 곳도 주었습니다. 그러다 손님이 침대에 누우면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침대보다 키가 큰 손님이 있으면, 밖으로 나온 다리를 잘라버렸습니다. 침대보다 키가 작은 손님이 있으면 다리를 죽 당겨서 늘렸죠. 손님은 모두 죽었습니다. 


분명 키가 큰 사람과 키가 작은 사람은 여러 가지로 불편하게 살아갑니다. 문 턱을 넘을 때마다 머리를 찧기도 하고, 차 지붕에 머리가 부딪히기도 합니다. 높은 곳에 있는 것을 집을 수도 없고, 버스 손잡이도 못 잡죠.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신장은 유전적 본성과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다양하게 받습니다. 단일한 핵심 원인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키가 크거나 작은 현상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은데, 단지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분명한 물리적 현실입니다. 호르몬 이상으로 인해 발생한 경우에는 약물이나 수술을 통해 치료할 수 있습니다(의학적 개입). 각자의 키에 맞는 넉넉한 침대를 마련할 수도 있습니다(사회적 개입).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흔히 정신장애가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의지를 통해서 키를 늘리거나 줄일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도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니 비난받을 일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사회에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도 없습니다. 물론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사회라면, 키가 작은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건과 영양이 양호한 사회에도 키가 남다른 사람은 여전히 있습니다. 


남다른 특징을 가진 사람은 이미 남들보다 힘겨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몸에 맞지 않는 침대에서 불편하게 잠을 청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들을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너무 크거나 작은 자신의 키도, 침대도 아닙니다. 그것은 견딜 수 있습니다. 혹시 자신의 키와 침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아채지 않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에필로그

 

정신장애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주장 혹은 남다른 언행은 모두 ‘질병’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은 모두 옳지 못합니다. 분명히 존재하는 생물학적 상태입니다. 그러나 천형도 아니고, 죄악은 더더욱 아닙니다. 인간이 가진 다양성의 한 모습입니다. 치료도 필요하고, 복지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차별과 편견입니다. 사회라는 가면을 쓴 프로크루스테스가 나타나서, 자신의 다리를 자르거나 혹은 죽 늘려버리는 것은 아닌지 정신장애인들은 걱정합니다. 

 

영웅 테세우스는 프로크루스테스를 붙잡아서 침대에 눕힙니다. 그런데 정작 프로크루스테스 본인도 침대에 맞지 않았죠. 테세우스는 똑 같은 방법으로 그의 머리와 다리를 잘라버립니다. 인간은 모두 타인에 대한 프로크루스테스적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기준에 따라 남을 이리저리 재단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기준에 사람들을 맞추려고 하면, 결국 그들은 죽게 됩니다. 물론 본인도 결국 자신이 만든 기준에 의해 희생당하게 됩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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