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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 ‘제돌이’ 방류 5년 모습 포착, 어디서 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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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21일 10:00 프린트하기

제주 대정 앞바다에서 해녀들 곁을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지나가고 있다. -사진 제공 윤신영
제주 대정 앞바다에서 해녀들 곁을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지나가고 있다. -사진 제공 윤신영

“배알로! 배알로!”

 

18일 오전 11시 25분, 제주 서남부 대정 앞바다에서 물질을 하며 멍게와 해삼 등을 따던 해녀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배알로는 ‘(내) 배 아래로 지나가라’는 뜻의 제주 방언. 조금 뒤 해녀들로부터 불과 수십 m 떨어진 곳에 20~30마리의 돌고래 무리가 지나갔다. 한반도에 거주하는 대표적인 돌고래인 남방큰돌고래였다.

 

해안가에서 기자와 함께 이 모습을 지켜본 장수진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연구원은 “해녀들은 돌고래를 똑똑한 동물이라 생각하면서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몸길이가 2.7m에 달하다 보니 바다에서 보면 위압적인 마음도 든다는 것이다. 멀리 뭍에서 바라보는 사람에게야 재간둥이에 귀염둥이지만, ‘물 만난 돌고래’는 행동도 재빠르고 힘도 넘친다. 해녀들은 “배알로”를 외치면 똑똑한 돌고래가 알아듣고 자신들을 곱게 피해 갈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이날로 서울대공원에서 공연하던 남방큰돌고래인 ‘제돌이’가 바다로 돌아간 지 꼬박 5년이 됐다. 제돌이는 2007년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현 고래연구센터)가 처음 발견한 돌고래다. 당시에는 제돌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 고래연구소가 붙인 이름은 일련번호 ‘JBD009’. ‘제주도 근처에서 발견한 9번째 남방큰돌고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JBD009는 2009년 바다에서 사라졌고, 한참 뒤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부 그물에 잡힌 뒤 제주 서귀포시에 있는 퍼시픽랜드의 수족관을 거쳐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졌기 때문이었다. ‘제주도 돌고래’ 제돌이라는 이름도 이때 서울대공원에서 붙었다.


 ‘고래자원의 보존 및 관리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우연히 그물에 잡히거나 표류한 고래는 해양경비안전서장(당시는 해양경찰서장)에게 신고해야 하며 판매될 수 없다. 하지만 제돌이는 수족관에 팔려갔고, 다시 수도권으로 이송됐다. 낮이면 관객들 앞에서 공연하고, 밤이면 공연장 뒤에 마련된 길이 12m, 폭 6m, 깊이 3m의 실내 수조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하정주 이화여대 에코크리에이티브협동과정 연구원이 돌고래를 퐐영 중이다. -사진 제공 윤신영
하정주 이화여대 에코크리에이티브협동과정 연구원이 돌고래를 촬영 중이다. -사진 제공 윤신영

2012년, 변화가 찾아왔다. 돌고래를 좁은 수조에 가둬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됐다. 하루 100km도 헤엄쳐 이동하는 돌고래를 가두는 게 비인도적이라는 지적이었다. 결국 방류가 결정됐다. 서울대공원도 적극적이었다. 제돌이는 2013년 5월 서울대공원에서 제주도 가두리양식장으로 옮겨졌고, 바다 적응 훈련을 약 두 달간 거친 뒤 7월 18일 완전히 방류됐다. 제돌이가 자연에 돌아간 이날은 한국 동물 복지 역사에 한 획이 그어진 날로 꼽힌다. 돌고래 연구자들은 이날을 ‘제돌절’이라 부르며 기리고 있다. 올해 18일은 다섯 번째 제돌절이었다.

 

돌고래가 멀어지기 전, 하정주 이화여대 에코크리에이티브협동과정 연구원이 성인 남자 허벅지만 한 망원렌즈를 단 사진기를 들고 돌고래 무리의 사진을 빠르게 찍었다. 사람은 얼굴로 개인을 구별하지만, 돌고래는 주로 등지느러미에 난 상처를 통해 개체를 구분한다. 헤엄치다 여기저기 부딪히고 긁히며 난 세월의 이력이, 돌고래 얼굴이 되고 돌고래 지문이 된다. 
 “‘시월’이랑 ‘백도’가 보여요. 잘하면 제돌이도 있겠어요.”

 

시월이와 백도는 연구원들이 자체적으로 이름 붙인 돌고래들이다. 시월과 백도가 어울리는 무리에 제돌이도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제주 대정을 연구지로 택해 5월부터 머무르며 돌고래의 행동과 대화를 연구 중인 김미연 교토대 연구원은 “바로 며칠 전에도 제돌이를 봤다”고 말했다.

 

제돌이는 방류한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무리와 잘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 연구자들에게 목격됐다. 방류 당시 일각에서 제기하던 “4년간 수족관에 갇혔던 돌고래를 방류하면 적응에 실패해 죽을 확률이 높다”는 우려가 일축되는 셈이다. 뿐만 아니다. 같은 날 함께 방류된 춘삼이와 적응 훈련지에서 먼저 이탈해 바다에 돌아간 삼팔이(D-38) 역시 무리와 합류해 잘 지내는 모습이 목격됐다. 장 연구원은 “춘삼이와 삼팔이는 새끼까지 낳았다”며 “자연에 완벽히 적응했다”고 말했다.

 

김미연 교토대 연구원이 드론으로 남방큰돌고래의 행동을 관측하고 있다. -사진 제공 윤신영
김미연 교토대 연구원이 드론으로 남방큰돌고래의 행동을 관측하고 있다. -사진 제공 윤신영

하 연구원이 사진을 찍을 때마다 기자도 준비해 간 망원렌즈와 사진기로 사진을 찍었다. 제돌이는 기자처럼 돌고래를 등지느러미로 구분하지 못하는 비전문가도 알아볼 수 있다. 5년 전, 제돌이와 춘삼이를 바다에 방류할 때 연구자들은 야생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을지 사후 모니터링하기 위해 두 돌고래의 등지느러미에 ‘1’과 ‘2’라는 숫자를 새겼다. 일종의 문신이었다.

 

비전문가인 기자의 눈에, 돌고래 무리의 헤엄 모습은 다 똑같아 보였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몇 마리가 바다에 있는지, 어떤 행동 중인지 귀신처럼 집어냈다. “약 20마리. 테일슬랩(tail slap·꼬리를 들어 수면을 치며 노는 행동).” “2번 부이(buoy·측정기기를 넣고 바다에 띄운 기기) 부근에서 밥 먹고 있어요.” 돌고래들은 먹고, 이동하고, 사회적 교류를 하고, 쉬었다. 이 네 가지 행동을 연구원들은 위치, 방향과 함께 부지런히 기록했다. 김미연 연구원은 드론을 띄워 바다 상공에서 돌고래들을 내려다보며 행동과 개체수를 보다 정확히 판별해 냈다.

 

오후가 되자 해가 서쪽으로 기울며 점점 눈이 부셔왔다. 반짝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돌고래가 넘실넘실 헤엄치는 모습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지만, 연구자들은 역광이라 돌고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오후 5시 반, 이날의 현장 연구를 끝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사진 찍던 김 연구원이 사진을 보다 빙그레 웃었다. “춘삼이는 있었네요.” 사진 속 등지느러미에 숫자 ‘2’가 선명했다.

 

방류 5주년이던 18일, 제주 대정 앞바다에서 발견된 춘삼이. 오른쪽 두 번째 돌고래가 춘삼이다. 바로 옆에 새끼가 보인다. -사진 제공 하정주
방류 5주년이던 18일, 제주 대정 앞바다에서 발견된 춘삼이. 오른쪽 두 번째 돌고래가 춘삼이다. 바로 옆에 새끼가 보인다. -사진 제공 하정주

 제돌이 일행이 방류된 2013년 이후 한국은 동물 복지 측면에서 큰 진전이 있었다는 평가다. 2년 뒤인 2015년 방류 당시 15세 전후였던 제돌이 일행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고(방류 당시 나이 약 20세) 몸이 약했던 태산이와 복순이가 방류돼 자연으로 돌아갔다. 네 번째 제돌절이던 지난해 7월 18일에는 26세로 나이가 더 많은 금등이와 대포가 방류됐다. 이들은 각각 1999년과 2002년 포획돼 10여 년씩 수조에 갇혔던 돌고래다. 금등이와 대포 등지느러미에는 각각 6번과 7번 표지가 새겨졌다.

 

7마리 가운데 5마리는 성공적으로 자연에 돌아갔다. 하지만 방류된 지 꼭 1년이 된 금등이와 대포는 아직까지 사후 모니터링에서 발견된 적이 없어 연구원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이들이 발견됐다는 제보를 받고 눈물까지 훔치며 달려갔지만, 오인으로 밝혀져 실망한 적도 있었다.

 

과학계에 따르면 공연장에서 큰 남방큰돌고래는 스트레스 등으로 수명이 20년 남짓으로 짧다. 자연 수명의 절반도 안 된다. 10여 년에 걸친 오랜 수족관 생활로 이미 노쇠하고 지친 금등이와 대포에게, 때늦은 귀향은 힘에 부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날 밤, 연구원들은 숙소로 돌아가 찍은 사진들을 다시 검토했다. 춘삼이가 발견됐으니 제돌이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밤 11시. 장 연구원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제돌이는 물론 태산이와 복순이까지 방류 돌고래 다섯 마리 모두 사진에 있었어요.” 제돌절에 다시 확인한 다섯 방류 돌고래의 안부였다. 안타깝게도 금등이와 대포의 표지는 이번에도 없었다.

 

5주년 제돌절이던 18일에 발견된 제돌이. 맨 왼쪽 등지느러미에 희미하게 1자가 보인다. - 사진 제공 하정주
5주년 '제돌절'이던 18일에 발견된 제돌이. 맨 왼쪽 등지느러미에 희미하게 1자가 보인다. - 사진 제공 하정주

기자가 제주 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의 우아한 몸짓에 감탄하던 시각, 서울에서는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가 연 기자회견이 한창이었다. 바다위원회는 “제주, 서울, 울산 등 전국 다섯 개 기관에 아직 39마리의 돌고래와 흰고래(벨루가)가 수족관과 공연장에 갇혀 있다”며 “이들 역시 자연에 방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과학적 방법을 따르더라도, 모든 방류 돌고래가 생존하지는 못한다. 너무 나이가 들었거나, 수족관 생활이 길었던 개체는 야생에서 생존 확률이 낮으니 방류하지 않는 게 낫다는 전문가도 많다. 39마리의 돌고래와 흰고래도 방류에 앞서 비슷한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석양에 빛나던 대정의 잔잔한 바다와 그 위를 뛰놀던 돌고래 무리의 실루엣을 떠올린다. 금등이와 대포는, 적어도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고향의 그 석양을 볼 수는 있었을 것이다. 가치 없는 일이었을까. 유일하게 그 답을 알고 있을 금등이와 대포는 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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