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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운의 곤충記] 물장군 수컷의 희생, 알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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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25일 15:19 프린트하기

바람 한 점 없다. 구름도 없다. 작열하는 태양에, 비가 내리지 않아 웅덩이 물도 바짝 마르고 풀과 나무들도 데인 듯 축 늘어져 후줄근하다. 여름은 뜨겁다.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는, 탈 것 같은 열기를 아랑곳하지 않고 아비 물장군은 그 상태로 굳은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알을 꼭 끌어안고 미동도 없다. 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쏟아지는 햇빛과 자외선을 몸으로 막고, 품고 있는 알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운다. 검은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레이저가 나올 듯 살기가 느껴지고 눈앞에 무엇이라도 얼씬거리면 앞발을 과격하게 휘두르며 맹렬히 쫓아낸다.

 

알 보호하는 수컷 물장군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알 보호하는 수컷 물장군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열흘 내내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물방울 뚝뚝 떨어지는 흠뻑 젖은 몸으로 알을 적셔주고, 발톱으로 알 간격을 벌려 크게 키웠다. 물장군 아비의 헌신적 노력으로 알을 까고 애벌레들이 나올 준비를 하느라 꿈틀거린다. 평소에 강했던 알껍데기는 깨고 나오기 쉽도록 신축성 있는  구조로 변화해 극도로 약해진다.

 

물장군 애벌레 부화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물장군 애벌레 부화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알 윗부분 뚜껑을 동그랗게 열고 연두 빛 물장군 애벌레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머리부터 배 끝까지 쓰윽 빠져나온 뒤 물구나무서듯 몸을 뒤로 완전히 젖혀 남은 다리와 몸을 끄집어낸다. 무사히 알에서 빠져나온 새끼들은 거의 동시에 본능적으로 물속으로 풍덩! 물속에서 눈이 먼저 까맣게 되고 다리와 몸은 갈색으로 변한다.

 

▼ 물장군 애벌레 부화 동영상

 

아비 물장군의 부성애가 없이는 무사히 부화하기란 불가능하다. 60mm 크기인 물장군 수컷은 모든 새끼를 받아들일 수 있는(알 덩어리: 30mm) 넓고 깊은 품을 벌려 알을 완벽히 보호하고 발육을 돕는다.

알과 물장군 길이 비교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알과 물장군 길이 비교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포란이 부화에 미치는 영향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포란이 부화에 미치는 영향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물장군 수컷의 포란율이 높아질수록 부화율은 60%에서 80%까지 높아지지만, 아비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알은 찌그러져 전멸한다. 자신의 삶을 바치는 아비 물장군에게 폭 싸여 보호를 받는 알 덩어리는 안정적인 물리적 환경인 둥지나 고치와 같으므로 자손의 생존율은 명확하게 올라갈 수밖에 없다. 

 

포란 여부에 따른 알 비교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포란 여부에 따른 알 비교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기초 체력을 비축한 덕에 죽지는 않지만 알이 깨어날 때까지 열흘 내내 먹지 못한 수컷의 배는 눈에 띄게 홀쭉해져 포란 전보다 몸무게가 거의 8%나 빠졌다. 물장군의 부성애는 암컷이 자기 알을 맡길 상대를 고르는 성 선택(Sexual selection)의 결정적 이유라 추정할 수 있다. 

 

포란 전 후 몸무게 비교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포란 전 후 몸무게 비교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수 천 세대 같은 시도를 되풀이하며 자연스럽게 반복해 온 진화의 산물, 부성애! 궁극적으로 더 많은 유전자를 남기는 번식에 성공하려는 이러한 행동 특징을 생물학적으로는 이해를 하지만, 자식 키우다가 먹지 못해 굶어 죽을 수도 있고 천적에게 쉽게 노출이 돼 죽을 수 있는 생존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물장군 수컷의 부성애는 너무 힘겨워 보인다. 

 

물자라 등에 붙여진 알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물자라 등에 붙여진 알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같은 물장군과의 수서곤충인 물자라는 암컷이 수컷 등에 낳은 알을 아기를 등에 업듯이 데리고 다니는 부성애를 갖고 있다. 익사를 막고 원활한 산소 공급을 위해 주로 수면에서 지내며 뒷다리로 물을 세게 흔들어 알 표면에 신선한 물을 공급한다. 그러나 품이 아닌 등에 알을 데리고 다니므로 몸이 자유로워 천적으로부터 쉽게 도망갈 수 있고 먹이를 마음대로 잡아먹을 수도 있다. 최종 목표인 새끼 생존을 위해 몸에 매달고 환경이 더 좋은 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같은 부성애이지만 물장군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커먼마모셋 (Callithrix jacchus) - primatecarewelfare.wordpress.com
커먼마모셋 (Callithrix jacchus) - primatecarewelfare.wordpress.com

이 세상 대부분의 생물은 인간처럼 자식을 돌보지 않는다. 돌보더라도 대부분 암컷이 투자한다. 수컷이 신경 쓰는 경우는 새들처럼 친자(자기 씨)를 구분해야하는 상황이 고작이다. 암컷이 유도하는 프로락틴(Prolactin)이라는 호르몬으로 부성애를 이끌어내는 커먼마모셋 영장류나 곤충의 검정송장벌레처럼 페로몬 분비로 유도되는 암·수컷 부모애(Biparental care) 혹은 장님거미의 부성애 연구 결과가 있지만 사실 물장군 경우처럼 극단적 예는 보기 드물다.  

 

검정수염송장벌레의 부모애 유도 매커니즘. 애벌레가 어미 암컷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애벌레 페로몬을 전달하면 암컷은 다시 수컷에게 신호를 보내 결과적으로 더 이상 산란하지 않고 협동하여 애벌레를 돌본다 - Current Opinion in Insect Science 제공 
검정수염송장벌레의 부모애 유도 매커니즘. 애벌레가 어미 암컷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애벌레 페로몬을 전달하면 암컷은 다시 수컷에게 신호를 보내 결과적으로 더 이상 산란하지 않고 협동하여 애벌레를 돌본다. - Current Opinion in Insect Science 제공 

이렇게 엄청난 비용을 들이며 투자하는 부성애가 앞으로 만 년 후에도 성공을 거둘까? 고개를 갸우뚱거리지만 많은 시도와 실패를 겪으며 진화한 번식 전략이므로 또 그렇게 갈 것이다. 

 

 

※ 참고문헌

-2017. Steiger, S. Pheromones involved in insect parental care and family life. Current opinion in insect science, 24:89–95.

-2012. Requena, G. S., et al. Paternal care decreases foraging activity and body condition, but does not impose survival costs to caring males in a Neotropical arachnid. PloS one, 7(10):e46701.

-2012. Dong Jae Lee, et al. The Impacts of Male Incubating Behaviour on Hatching rate of Giant Water bug, Lethocerus deyrollei Vuillefroy (Hemiptera: Belostomatidae). Korean Society of Applied Entomology, p.166. 

-2010. Requena, G. S., et al. First cases of exclusive paternal care in stink bugs (Hemiptera: Pentatomidae). Zoologia (Curitiba), 27(6):1018-1021.

-2003. Schradin, C., et al. Prolactin and paternal care: comparison of three species of monogamous new world monkeys (Callicebus cupreus, Callithrix jacchus, and Callimico goeldii). Journal of Comparative Psychology, 117(2):166.

-2001. Tallamy, D. W. Evolution of exclusive paternal care in arthropods. Annual review of entomology, 46(1):139-165.

-2000. Møller, A. P., and Cuervo, J. J. The evolution of paternity and paternal care in birds. Behavioral Ecology, 11(5):472-485.

https://primatecarewelfare.wordpress.com/2014/05/21/gaziing-deep-into-the-eyes-of-a-common-marmoset/

 

 

※ 필자소개
이강운 곤충학자 (holoce@hecri.re.kr)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국립인천대학교 매개곤충 융 복합 센터 학술연구 교수. 과학 동아 Knowledge 칼럼 ‘애벌레의 비밀’을 연재했다. 2015년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Ⅰ 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 Ⅰ’(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2016년 캐터필러 Ι, 2017년 캐터필러Ⅱ(도서출판홀로세)를 지었다.

 

 

 

※편집자주. 곤충은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지구에 왔고, 지금도 우리보다 더 많은 수가 지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라진 후에도 곤충은 여전히 지구를 지키겠지요. 하지만 도시의 삶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과 마음에서 곤충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곤충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신비에서도 멀어졌지요.  그래서 우리 곁 곤충들의 한살이와 생태를 담은 글과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해 주는 작은 알림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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