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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기자의 영화 속 로봇]자아를 전송할 수 있을까… ‘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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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28일 13:00 프린트하기

영화 채피의 주인공 로봇은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영화 채피의 주인공 로봇은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완벽한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등장한다면,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그 로봇은 인간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하게 될까, 아니면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과 육체적 능력을 무기로 인간을 지배하려는 마음을 갖게 될까.

 

하지만 (적어도 기자가 알기에) 딱 한 가지 영화는, 로봇이 자신이 삶이 끝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채피’의 주인공 로봇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곤 한다.

 

사실 영화 채피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사건의 개연성도 자연스럽지 않고, SF영화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으면서도 온갖 비과학적인 설정이 난무해 과학기자 입장에서 보기엔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꼭 한 가지, 자아를 갖춘 로봇을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인간과 동일시 하고 스토리를 짜나갔다는 점, 그 한 가지 만큼은 기존 영화에서 찾기 어려운 독특한 시각으로 보였다. 물론, 그 ‘동일시’ 했다는 시각 하나 때문에 수많은 문제점 역시 생겨난 괴작이기도 하다.

 

● 살기 위해 노력한 로봇

채피는 상용화 돼 있는 경찰로봇 중 한 대에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심어서 만들었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채피는 상용화 돼 있는 경찰로봇 중 한 대에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심어서 만들었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로봇이 완전한 인공지능을 갖게 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그린 영화나 만화, 소설 등의 작품은 수없이 많다. 그 스토리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뉘게 되는데, 첫째는 인간에게 반항하거나 한발 더 나아가 지배하려 드는 경우다. 반면 인간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에 회의를 느끼며 갈등하기도 한다. 이 경우 등장인물과 로봇 사이의 복잡한 감정교류를 그려내야 하니 스토리는 상대적으로 난해하고 더 추상적이 된다.

 

사실 이 과정에서 로봇이 스스로 ‘살아남고 싶다, 죽기 싫다’는 1차적 본능에 충실한 영화는 지금까지 찾기 어려웠다. 사실 삶에 대한 욕구는 생명체만이 가진 특징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이 점이 채피와 다른 로봇영화의 큰 차별점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은연중 이런 점을 고려한 (영화, 만화,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로봇이란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거는 존재, (자신이 주인이라고 인식한 인간)에게 사랑받기 위해 큰 시련도 견뎌내는 한결같은 존재로 그려낸다. 그러니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T-800 모델(아놀드 슈워제네거 분)이 주인공 ‘존 코너’를 지키기 위해 총알받이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꼭 전투형 로봇이 아니더라도 이런 행동은 큰 변화가 없다. 영화 AI에서 주인에게 버림받은 로봇이 자신의 ‘주인(엄마)’를 찾아 험난한 여행도 마다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 채피는 경찰로봇 ‘스카우트’ 중 한 대(22호)가 사람처럼 생각하는 능력을 얻게 되면서 생기는 여러 사건들을 담고 있다. 이 로봇은 개발자인 디온(데브 파텔)이 머리에 심어준 프로그램 덕분에 자기 스스로를 인지하는 ‘완전한 인공지능’을 갖게 되고, 우연찮은 사고로 가슴 속에 들어 있는 배터리 회로가 타 버리게 된다. 새 배터리를 공급받지 못하니 며칠이면 정지해 버릴 수 밖에 없는 시한부 인생을 산다. 채피는 22호의 별명이다.

 

처음엔 어린아이처럼 굴다가 말을 배우고, 모든 사물에 호기심을 갖고,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춘다. 두려움을 알고, 화를 낼 줄도 안다. 악당들에게 속아서 범죄에 가담하기도 하지만 순박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선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자신과 같은 형태의 다른 로봇을 보고 “왜 저기에 내 정신(?)을 이식해 넣어 살려주지 않느냐”고 도리어 자신의 창조주와 같은 디온을 다그치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디온은 이런 채피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고 그의 의사를 존중하는 모습도 보여주는 등 여러 면에서 ‘로봇과 인간의 인격’ 문제를 고심한 흔적도 보인다.

 

● 억지스런 개연성, 비과학적인 설정

채피는 경찰로봇이지만 지능을 갖게 되면서 도리어 악당들을 도와 범죄에 가담한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채피는 경찰로봇이지만 지능을 갖게 되면서 도리어 악당들을 도와 범죄에 가담한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영화에서 채피는 인공지능의 특징을 살려, 맹렬한 속도로 지식을 익히고, 마침내 자신의 전자두뇌에 들어 있는 지식과 자아를 다른 로봇에게 옮겨 넣는 방법을 스스로 개발해 내기에 이른다. 이 장면은 영화의 백미이기도 하지만, 과학적으로는 가장 말이 안되는 설정이기도 했다.

 

인공지능 로봇이 인터넷 등을 보며 스스로 학습한다는 설정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로봇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자아를 뽑아내는 방법을 개발하고, 심지어 그 방법을 그대로 인간에게 적용해 사람의 의식을 뽑아내 로봇 속에 옮겨 넣는 장면은 과학적으로 개연성이 너무나 떨어져 당혹스럽게 느껴졌다.

 

영화 속에서 등장한, 두 발로 걷는 로봇 경찰은 일부 인정할 만했다. 로봇의 움직임도 기계적이면서 자연스러웠고, 기계적인 디자인도 ‘그럴 법’ 해 보였다. 사실 이미 사람처럼 두 발로 걷는 로봇은 세상에 나와 있다. 향수 십 수년 내에 채피에 버금가는 운동성능을 갖춘 로봇이 등장한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채피가 자아를 어떤 방식으로 갖게 됐는지 영화에선 일체의 설명이 없다는 점이 한층 더 불편했다. 영화에는 채피의 개발자 디온이 완전한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 퇴근 후 밤마다 개인용 컴퓨터 시스템으로 조금씩 코딩을 반복하는 장면이 나온다. 즉, 자아를 갖춘 완전한 인공지능을 한 사람의 개발자가 혼자 취미로 만드는 수준으로 묘사하고 있을 뿐, 그 원리나 과학적 설명에 대해선 관객을 일절 배려하고 있지 않다.

 

더구나 이 자아는 2진수, 즉 컴퓨터 코드로 저장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컴퓨터 장비를 이용해 자아를 전달하는 과정도 그렇고, 심지어 USB 메모리 스틱에 담아두는 장면까지 나온다.

 

물론 로봇인 채피의 머릿속에서 이런 정보를 끄집어내 다른 곳에 저장하는 것까지는 억지로 수긍할 만 했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채피는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자아 전송방법을 개발하고, 그 방법으로 시중에서 판매 중인 것으로 보이는 묘한 헤드셋 같은 장치로 머릿속에서 자아를 뽑아낸다.

 

자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이 장치는 아무리 보아도 로봇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이렇게 머리 위에 쓰는 측정장치는 현대 기술에서 보기엔 보통 뇌파를 읽을 때 쓰는 EEG 장치나 뇌 혈류를 읽는 근적외선 장치 등이다. 혹은 기능성자기공명영상장치(fMRI) 등을 소형화했을 수도 있고, 뇌의 미세자기를 측정하는 뇌자도 장비일 수도 있다.

 

뇌파, 뇌의 혈류, 뇌의 미세 자기장 등, 이런 수많은 장치들은 어떻게든 인간의 머릿속 사고의 편린이라도 엿보기 위한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머릿속의 자아를 완전하게 백업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읽어낸다는 건 이론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런 신호는 두뇌활동 결과 생겨나는 생리적 결과물일 뿐, 두뇌활동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람이 아닌 로봇의 머릿속을 이런 장비로 읽어내고, 심지어 강제로 그 신호를 설치해 다른 개체의 로봇이 자이를 밀어 넣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로봇인 채피는 차라리 머리 한쪽에 데이터 전송 케이블을 꼽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심지어 이 장치는 로봇과 사람 사이에 자아를 옮겨 넣는 ‘만능성’을 갖췄다. 채피는 이 장치로 죽어가는 디온의 머릿속에서 자아를 끄집어내고, 다시 그의 자아를 또 다른 로봇에게 전송해 넣기까지 했다. 이 장면을 보다 보니 ‘과학적인 개연성을 완전히 포기하고 나서야 해낼 수 있는 상상이 아닐까’ 여겨지기까지 했다.

 

채피를 연출한 건 복잡하고 황당한 스토리를 통해 영화에 나름의 철학을 담는 것으로 유명한 ‘닐 블룸캠프’ 감독이다. 개인적 추측일 뿐이지만, 감독은 영화 채피를 통해 ‘자아 그 자체가 중요할 뿐, 로봇이냐 인간이냐를 구분하는 건 의미없는 세상이 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듯 하다.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를 빌렸다면, 관객을 설득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는 갖췄야 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앤트맨’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가 비과학인 설정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대중의 인기를 얻는 건, 최소한 영화 속에선 ‘이런 일들이 있기에 이런 점이 가능했다’는 최소한의 설득력을 보여 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채피의 2편이 개봉될지 현재로서 알 수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부디 작가와 감독이 조금만 더 과학적 개연성을 고려해 더 볼만한 영화가 되길 기대해 본다. 로봇의 인격권에 대한 문제는 이미 많은 영화와 만화 속에서 흔한 주제가 됐지만, 채피만큼 독특한 시각에서 접근한 작품은 찾기 어려우니 말이다.

 

영화 채피의 메인 포스터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영화 채피의 메인 포스터.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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