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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운의 곤충記]살려면 먹어야 한다… ‘물장군’의 동종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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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08일 17:35 프린트하기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먹이를 얼마나 자주 먹는지, 먹이를 어떻게 찾고 어디서 기다리는지,  경쟁자들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이런 요소들이 모두 합쳐져 동물들의 섭식 방법이 결정된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는 먹이의 풍부함과 질 그리고 경쟁 동물의 수에 따라 정해질 수 있다. 

 

노린재목에 속하는 물장군(Lethocerus deyrollei, Vuillefroy)은 앞다리 갈고리로 먹이를 꽉 움켜잡잡아 크고 뾰족한 주둥이로 구멍을 뚫어 내장을 녹인 후, 세 시간 이상 꼼짝도 하지 않고 남김없이 쪽쪽 빨아먹는다. 자신보다 몸집이 큰 커다란 개구리나 버들치 같은 놈들까지. 먹고 난 시체는 너덜너덜 빈 껍질만 남는다. 

 

물장군의 개구리 포식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물장군의 개구리 포식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사냥 실력이 형편없는 물장군은 늘 배고프다. 숨관을 공기 중으로 노출시키고 자기보다 훨씬 빠른 물고기를 잡으려드니 거의 매번 사냥을 실패한다. 갈고리가 달린 강력한 앞다리를 치켜들고 공격 자세를 취하지만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굼뜬 먹이는 찾긴 어렵다. 그럼에도 물장군은 끊임없이 먹어야 한다. 알에서 부화한 1령 애벌레가 5번 탈피하여 어른이 되려면, 60여 일 동안 자기 체중의 약 1000배 이상을, 올챙이부터 붕어까지 물 속 생물들을 무차별적으로 먹어야 한다. 어른이 되어서 짝짓기를 할 때는 훨씬 더 많은 영양분과 활력이 필요하므로 위험하지만 자기 몸집보다 큰 사냥감까지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

 

먹이량 테이블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먹이량 테이블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그럼에도 물과 뭍을 오가는 반수서 곤충인 물장군이 태생적으로 물 속 생물인 빠른 물고기를 잡아먹기란 어렵다.  동작은 굼뜨고 많은 먹이는 필요하니 결국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속도가 느리고 가능하면 양이 많은 먹이를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엄청난 식사량을 채우며 생존할 수 있는 안전판(lifeboat)으로 '동종포식(Cannibalism, 同種捕食)'을 택했다. 같은 종 내에서 한 개체가 다른 개체의 일부나 전부를 먹이로 먹는 행동인 동종포식은 엽기적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생명시스템 과정 속에서 찾아낸 한 종의 최대 ‘번식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만일 16%에 달하는 동종포식이 없었으면 과연 몇 개체나 어른 물장군이 되어 대를 이어 생존했을까? 

 

물고기와 황소개구리올챙이 선호도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물고기와 황소개구리올챙이 선호도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물장군 동종포식률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물장군 동종포식률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막상막하의 식성으로 육지와 물속을 주름 잡는 사마귀와 물장군. 닮은꼴인 이 두 종족은 눈에 보이는 모든 생물을 잡아먹는 왕성하고 엄청난 식욕을 자랑한다. 물장군과 사마귀는 두 종 모두 암컷이 짝짓기 중이나 후에 수컷을 먹어 치우는 짝짓기동종포식(Sexual cannibalism)을 한다. 사마귀의 경우는 짝짓기에 필요한 에너지를 보충하고 짝짓기에 집중하도록 하려고 수컷 사마귀를 잡아먹는 것이다. 그러나 물장군 암컷은 짝짓기동종포식뿐만 아니라 자매동종포식(Sibling cannibalism)도 서슴치 않는다. 단지 속도가 빠른 물고기보다는 사냥하기 수월하다는 이유로. 

 

왕사마귀 말벌 포식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왕사마귀 말벌 포식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일반적으로 암수 모두가 생식세포를 만드는 데 영양과 에너지, 시간을 투자한다. 그렇지만 투자량은 늘 암컷이 수컷보다 많아 번식에 실패할 경우 암컷이 훨씬 더 타격을 받는다. 물장군의 경우 3차례에 걸쳐 최대 약 300여 개의 알을 낳기 위해 집중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한다. 필요한 영양분을 얻기 위해 알을 품고, 부화할 때까지 돌보는 일을 수컷에게 시켜(부성애) 힘을 아끼고, 수컷을 먹음으로써 에너지를 비축한다. 동종포식은 물장군 암컷으로서는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물장군 1령 애벌레 동종포식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물장군 1령 애벌레 동종포식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동종포식은 동물의 세계에서 흔한 생태적 상호작용으로, 1500종 이상 기록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대부분 동종포식은 주로 같은 종 내에서 밀도가 너무 높아 일어난다. 먹이가 부족해져 숫자를 줄이려 하거나, 병이나 상처 입은 취약한 개체들을 자체 내에서 통제하여 전체 개체군을 유지한다. 그러나 최근엔 이러한 자연 현상이 아닌 지구온난화로 동종포식이 일어나고 있다. 

 

물장군 동종포식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물장군 동종포식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온도(Sea Surface Temperature)가 올라가면서, 북극곰(Ursus maritimus), 수리 갈매기(Larus glaucescens)가 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 동종포식하는 개체군으로 연구, 보고되고 있다. 해수면온도 상승으로 얼음이 녹아버려 먹이를 구하지 못한 북극곰, 바닷물 순환을 약화시켜 먹이인 멸치와 대구가 없어지면서 자신의 알을 까먹는 수리 갈매기(Larus glaucescens)의 동종 포식이 안타깝다. 

 

얼음이 녹아서 먹이가 부족한 북극곰
얼음이 녹아서 먹이가 부족한 북극곰
(위) 수리갈매기 알 동종포식 / (아래) 해수면온도 상승에 따른 수리갈매기 동종포식률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위) 수리갈매기 알 동종포식 / (아래) 해수면온도 상승에 따른 수리갈매기 동종포식률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이런 동종포식은 자기네끼리 치고받다가 자멸의 길로 빠져 멸종의 길로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지만, 진화는 결국 번식이 좌우한다. 번식을 위해 물장군은 아무런 고민 없이 지금도 동종포식을 하며 진화하고 있다.

 

※ 참고문헌

-Hayward, J. L., Weldon, L. M., Henson, S. M., Megna, L. C., Payne, B. G., & Moncrieff, A. E. (2014). Egg cannibalism in a gull colony increases with sea surface temperature. The Condor, 116(1), 62-73.
-Lee Dong Jae, Dangol Rajara & Lee K W (2013). Control of Invasive Alien Species(IAS) by Endangered species Lethocerus deyrollei Vuillefroy (Hemiptera: Belostomatidae). Korean Society of Applied Entomology, p191
-Richardson, M. L., Mitchell, R. F., Reagel, P. F., & Hanks, L. M. (2010). Causes and consequences of cannibalism in noncarnivorous insects. Annual review of entomology, 55, 39-53.
-OHBA, S. Y., Hidaka, K., & Sasaki, M. (2006). Notes on paternal care and sibling cannibalism in the giant water bug, Lethocerus deyrolli (Heteroptera: Belostomatidae). Entomological Science, 9(1), 1-5.
-Amstrup, S. C., Stirling, I., Smith, T. S., Perham, C., & Thiemann, G. W. (2006). Recent observations of intraspecific predation and cannibalism among polar bears in the southern Beaufort Sea. Polar Biology, 29(11), 997.
-Burgio, G., Santi, F., & Maini, S. (2002). On intra-guild predation and cannibalism in Harmonia axyridis (Pallas) and Adalia bipunctata L.(Coleoptera: Coccinellidae). Biological Control, 24(2), 110-116.

 

 

 

※ 필자소개
이강운 곤충학자 (holoce@hecri.re.kr)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국립인천대학교 매개곤충 융복합센터 학술연구 교수. 과학동아 Knowledge 칼럼 ‘애벌레의 비밀’을 연재했다. 2015년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Ⅰ 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 Ⅰ’(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2016년 캐터필러 Ι, 2017년 캐터필러Ⅱ(도서출판홀로세)를 지었다.

 

 

 

※편집자주. 곤충은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지구에 왔고, 지금도 우리보다 더 많은 수가 지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라진 후에도 곤충은 여전히 지구를 지키겠지요. 하지만 도시의 삶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과 마음에서 곤충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곤충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신비에서도 멀어졌지요.  그래서 우리 곁 곤충들의 한살이와 생태를 담은 글과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해 주는 작은 알림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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