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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아싸'라 괴로워요...회피적 성격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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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12일 13:00 프린트하기

아무 계획도 없는 주말. 여자는 심심하고 무료합니다. 하지만 약속을 잡는 것은 영 부담스럽습니다. 친구가 놀러 온다고 했지만, 다른 일이 있다고 둘러 댔습니다. 페이스북을 들어가 봅니다. 페친은 몇 되지 않지만, 하나하나 들어가 일상을 확인합니다. ‘좋아요’를 누를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냥 포기하고 맙니다. 여러 개의 단톡방이 끊임없이 울려 대지만, 직접 톡을 올려본 일은 거의 없습니다. 


주말이 지긋지긋하게 깁니다. 그때 전화가 옵니다. 지난 주에 소개팅한 멋진 그 남자. 같이 밥이나 먹자고 하네요. 여자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대답합니다. 


“죄송해요. 오늘 좀 바빠서요”.

 

 

친밀감과 애착

 

진화적인 의미에서 애착은 대단히 중요한 형질입니다. 애착 행동은 새끼를 안아 키우는 젖먹이 동물, 포유류 전반에서 관찰되는 현상이지만 인간에서 유독 강하게 나타납니다. 어린 아기가 어머니에게 애착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마 곧 죽을 지도 모릅니다. 애착 행동은 어머니의 양육 본능을 유발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애착이 적은 아이에게는 어머니도 사랑을 덜 느낀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인간에게 특별히 애착이 진화한 이유는, 긴 의존성 영유아기 때문입니다. 아기는 수년 이상 필요한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애착은 반드시 필요한 형질입니다. 엄마가 눈 앞에서 사라지면 곧 불안해하고, 울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어머니를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글거리고 웃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나이가 들어도 지속됩니다. 사적인 친구 관계와 연인 관계는 사실상 모자 애착 관계의 확장이나 다름없습니다. 아무런 경제적 이익이 없어도 진한 우정이 지속되고, 성적인 관계가 배제된 플라토닉 러브가 가능한 것도 바로 애착 덕분입니다. 인간은 모두 다른 사람 옆에 있으려 하고, 손을 잡으려 하고, 포옹하려고 합니다. 본성입니다. 
 

회피성은 모든 사람이 가진 본성이다.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그리고 망신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스러운 마음의 한 가운데에 불안으로 가득한 회피성이 피어난다. - FLICKR 제공
회피성은 모든 사람이 가진 본성이다.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그리고 망신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스러운 마음의 한 가운데에 불안으로 가득한 회피성이 피어난다. - FLICKR 제공

 

거절의 두려움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만나기 싫은 것이 아니라, 거절당할 것이 걱정되어 만남을 피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좋아한다는 확신이 없으면 만나지 못합니다. 자연스럽게 인간 관계는 단짝 친구 몇 명으로 줄어듭니다. 


앞에 나가서 발표하는 것도 힘들어합니다.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을까 두려워서 아예 결석을 해버리는 부류입니다. 늘 자신감이 없고, 소극적이기 때문에 본인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합니다. 며칠 동안 준비한 프리젠테이션. 그러나 막상 앞에 나가서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합니다. 주변에서도 그렇지만, 본인 스스로도 자신이 못났다고 여길 수 밖에 없습니다. 


한번도 데이트 신청을 해보지 못했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마음에 둔 연인에게 사랑 고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있을 수 있는 일이죠. 그런데 맨날 보는 친구에게도 ‘오늘 점심이나 같이 먹자’라는 말도 하지 못합니다. ‘오늘은 바쁜데’라는 말로 거절당할까 두렵기 때문이죠. 심해지면 ‘볼펜 좀 빌려줄래’라는 말도 못합니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친구의 필통에 가득한 볼펜을 보면서, 30분을 걸어 문방구점에 다녀옵니다. 다녀오면서 혼밥도 하고 옵니다. 


그렇다고 사람을 싫어하는 인간 혐오증에 빠진 것은 아닙니다. 이들의 마음에는 친밀한 관계에 대한 강한 소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실수나 거절에도 크게 상처받기 때문에, 차라리 혼자 있는 편을 택하는 것이죠. 운 좋게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소위 ‘포텐’이 터집니다. 마음이 통하는 단 한 사람에게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부류가 바로 이런 사람들이죠. 

 

GIB 제공
GIB 제공


 

 

회피성의 진화

 

도무지 성공적일 것 같지 않은 전략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기본적으로 회피성 성격은 소극적인 전략입니다. 더 큰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손해를 최소화시키는 전략이죠. 조금만 걱정이 되어도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 중심적인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도 보고, 조심조심하며 몸을 사립니다. 마음 속에는 깊은 관계를 맺고 싶은 소망이 있지만, 혹시 너무 다가섰다가 관계를 아예 망칠까 싶어서 그러지 못하는 것이죠. 


이들은 주변 환경도 능동적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대개는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어 갑니다. 아무도 초대한 적 없는 집이지만, 제법 잘 꾸며놓고 삽니다. 누구 보여주려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만, 혹시 누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죠. 


이런 전략은 어린 시절부터 알던 사람과 평생 만남을 지속하는 환경에서 아주 잘 작동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두렵지만, 일단 잘 아는 사람과는 편안합니다. 만약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어린 시절부터 알던 친척 혹은 마을 친구라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성격이므로, 따뜻하고 친절한 태도를 보입니다. 생태적 환경, 즉 삶의 조건도 열심히 개선해 나갑니다. 


하지만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현대 사회는 이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입니다. 금방 마음을 열지 못하기 때문에, 종종 내성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뭔가 불만을 숨기고 있다는 식으로 억울한 취급을 받기도 하죠. 새로운 상황에 눈치 빠르게 적응하고, 과감하게 도전해야 좋은 평가를 받는 요즘의 사회는 이들에게 아주 불리한 조건입니다. 

 

조지 6세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힘들어했다. 하지만 왕위에 오른 뒤에는 책임있는 안정적인 모습을 통해 영국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았고, 2차 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영화 킹스 스피치는 조지 6세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조지 6세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힘들어했다. 하지만 왕위에 오른 뒤에는 책임있는 안정적인 모습을 통해 영국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았고, 2차 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영화 킹스 스피치는 조지 6세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회피성과 안정적 조율자

 

이들은 외톨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변에 관심도 많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잘 이해합니다. 잘 다가서지 못할 뿐이죠.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거절당하거나 상처받지 않을까 늘 걱정하기 때문에, 본인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경솔한 언행을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래서 본인은 사람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힘든 일을 겪는 사람들은 이들을 찾습니다. 


회피성 성격은 위험을 피하면서도 능동적인 생태적 적응을 추구하는 경향이므로, 집단에 문제가 생기면 안정적이면서 보수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줍니다. 그리고 타인 지향적인 태도를 취하므로, 그러한 해결책은 집단의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현명한 전략인 경우가 많습니다. 절대 무리수를 두지 않고, 그 누구도 희생양으로 삼지 않습니다. 


주변에 피해를 주는 일은 없습니다. 주어진 일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편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합니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와는 잘 지내기 때문에 좋은 파트너를 만나면 아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GIB 제공
GIB 제공

종종 회피성을 보이는 사람은 자신의 성격을 바꾸고 싶어합니다. 특히 젊은 남성의 경우에는 자신이 뭔가 문제가 있는 ‘아싸’라고 여기며 괴로워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요즘의 학교 수업은 발표와 토론 능력을 점점 더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합니다. 직장에서도 항상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하고, 적극적으로 자기 선전을 해야하므로 불리합니다. 열등감에 빠지기도 하고, 자기 주장 훈련 프로그램을 찾아다니고, 자신감을 북돋아 준다는 자조서를 사서 읽습니다. 심지어는 해병대 체험 같은 극기 훈련으로 성격을 고치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모든 사람이 연설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백 수천의 사람과 분주히 만나는 삶이 유일한 정답도 아닙니다. 회피성이 강한 사람이 자동차 세일즈맨이 되거나 스탠딩 코미디언이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본인에게 맞는 적당한 일을 찾고, 깊은 관계를 나눌 진솔한 파트너를 찾으면 됩니다. 백 명의 사람에게는 백 가지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회피성 성격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타고난 본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회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꼭 필요한 대인관계나 자기 주장은 의식적인 연습을 통해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회피성 성격에 그리 높은 점수를 주지 않지만, 그렇다고 본인 스스로 자신에게 낮은 점수를 줄 이유는 없습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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