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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뇽뇽의 사회심리학] 여성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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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18일 13:00 프린트하기

피해자들에게 ‘피해자답지 못하다’는 질책을 던지는 경우를 흔히 본다. ‘진짜’ 피해자라면 감정적으로 흐트러진 연약한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또 진짜 피해자라면 사건 당시의 기억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완벽해야 한다. ‘진짜’ 피해자라면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고 가해자와 자신을 분리해야 하지만, 또 바로 차분하고 빈틈없이 대처 했다면 그건 이성이 남아 있다는 반증이니 피해가 크지 않았던 것이거나 계획적인 것이 아니었냐는 의심을 받는 등 뭘 어떻게 해도 ‘피해자답지 않다’는 답만이 남는 중세의 이단 심문이 떠오르는 광경이다. 


안타깝게도 특히 여성의 경우, 일반적으로 남성에 비해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일례로 똑같이 화를 내도 남성이 화를 내면 사람들은 ‘뭔가 화를 낼 만한 일이 있었겠지’ 라며 남성이 화를 낼 만한 이유에 주목하는 반면, 여성이 화를 내면 ‘역시 여자는 감정적이야. 성격이 예민하네’ 등 외적 요인보다 여성 개인의 특성에서 원인을 찾는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가 있었다(Barrett & Bliss-Moreau, 2009). 또한 남성의 경우 분노를 내비치면 자신감이 있다거나 카리스마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반면 여성이 분노를 보이면 거꾸로 자신감이 없어서 저러나보다고 받아들여지는 현상도 나타난다고 한다(Brescoll & Uhlmann, 2008). 


그 결과 같은 의견, 같은 문제를 제기해도 남성이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한 번 들어나보자고 귀를 열지만 여성이 이야기하면 무시되기 쉽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똑같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목소리를 내도 철수가 주장하면 ‘아 그런가?’ 하는 반면 영희가 화를 내면 ‘뭐야 쟤’한다는 것. 

 

G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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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정의 집행과 관련된 판단에서는 좀 달랐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법과 인간 행동(Law and Human Behavior) 저널에 실린 한 연구에 의하면 여기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Salerno & Peter-Hagene, 2015). 


연구자들은 모의 법정에서 사람들에게 실제 사건과 관련된 구체적인 증거자료들과 증언들을 보여주고 여럿이 토론해서 배심원으로서 일치된 평결을 내릴 것을 주문했다. 토론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다수의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며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을 한 명 투입했고, 이 사람의 성별을 여성 또는 남성으로 달리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연구자들은 실제 참가자들이 유무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하도록 했고 자신의 판단에 얼마나 자신이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또한 혼자 반대되는 의견을 낸 사람(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참가자의 의견과 같은 의견을 내는 상황이었다)에 대한 신뢰도와 이 사람의 의견이 얼마나 들을 가치가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 결과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분노를 표현했을 때, 이 사람이 남성인 경우는 그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났지만, 여성인 경우는 ‘감정적인 반응’이라며 신뢰도가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남성이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며 분노를 표현했을 때에는 자신의 의견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여성이 분노를 표현했을 때에는 되려 더 높은 자신감을 갖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성이 감정을 절제하고 냉철한 모습을 보이면 어떨까? 안타깝게도 여성은 자신감 넘치고 차분한 모습을 보여도 호감을 얻지 못하고, 특히 남성 구성원들의 거부감을 사서 영향력을 잃기 쉽다고 한다. 여성이 자신의 똑똑함을 숨기고 ‘자상함’, ‘따듯함’을 어필할 때에야 비로소 거부감이 사라지는 경향이 나타났다고(Carli, 2001).

 

GIB 제공
GIB 제공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일반인들에 비해 특히 ‘성범죄자’들이 여성을 향한 불신이 강하고, 여성은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존재라거나 알 수 없는 존재라는 등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강하게 내비친다는 점이다(Marshall & Moulden, 2001; Polaschek & Gannon, 2004). 


여성들이 자신의 인생을 망쳐가면서까지 없는 범죄 사실을 만들어서 무고한 남성의 삶을 망치려고 한다는 등의 근본없는 불신이 파다한 현실은 그만큼 이 사회에 여성을 향한 왜곡된 사고방식과 강간문화가 널리 퍼져있음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피해 여성이 똑부러져도, 또는 감정적이어도 이러나저러나 저 여자를 믿을 수 없다고 한다면 먼저 자기 안의 편견과 왜곡된 사고방식을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Barrett, L. F., & Bliss-Moreau, E. (2009). She’s emotional. He’s having a bad day: Attributional explanations for emotion stereotypes. Emotion, 9, 649?658.
Brescoll, V. L., & Uhlmann, E. L. (2008). Can an angry woman get ahead? Status conferral, gender, and expression of emotion in the workplace. Psychological Science, 19, 268?275.
Carli, L. L. (2001). Gender and social influence. Journal of Social Issues, 57, 725?741.
Marshall, W. L., & Moulden, H. (2001). Hostility toward women and victim empathy in rapists.?Sexual Abuse: A Journal of Research and Treatment,?13, 249-255.
Polaschek, D. L., & Gannon, T. A. (2004). The implicit theories of rapists: What convicted offenders tell us.?Sexual Abuse,?16, 299-314.
Salerno, J. M., & Peter-Hagene, L. C. (2015). One angry woman: Anger expression increases influence for men, but decreases influence for women, during group deliberation.?Law and human Behavior,?39, 581-592.

 

 

 

※ 필자소개
지뇽뇽.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등,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현재는 노스캐롤라이나대학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self-compassion과 겸손humility, 마음 챙김mindfulness 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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