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내 마음은 왜 이럴까?] 내 고민을 대신 해결해줘…의존성의 진화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8년 08월 26일 15:00 프린트하기

요즘 여자는 너무 힘듭니다. 남자 친구가 떠나버렸기 때문이죠. 영영 헤어진 것일까요? 아닙니다. 고작 2주 간 미국 출장을 다녀올 뿐인데, 여자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불안하고 불편합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여자는 망설이다 미국으로 전화합니다. 


“미안한데 얼른 돌아오면 안될까? 나 너무 힘들어.”


“어? 무슨 일 있어? 지금 새벽 4시야. 왜 그러는데?”


“아. 정말 미안해…… 오후에 친구와 영화를 보려는데, 뭘 봐야 할지 모르겠길래. 미안해.”


남자는 무슨 영화를 보라고 조언해줍니다. 여자는 그제야 안심합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영화를 고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GIB 제공
GIB 제공

착한 사람?

 

의존성은 어떤 면에서 보면,  ‘착함’입니다. 의존적인 사람은 자신의 주장을 먼저 내세우는 법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주장을 따르고 순종합니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인생사까지 주변 사람에게 묻고 그 결정에 따르려고 합니다. 무엇을 먹을 지, 어떤 머리 모양을 할 지, 어떤 옷을 입을 지 결정을 위임합니다. 심지어 대학에 진학하거나 전공과를 선택할 때도 주변 사람이 대신 결정해주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아주 착한 사람입니다. 타인의 주장에 고분고분 따르는 모습을 보면 말이죠.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고, 결혼을 하면 배우자의 말을 따르며, 나이가 들면 자식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입니다. 종종 직장에서도 위에서 시키는 대로 무조건 복종합니다. 하지만 정말 착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의존적인 것입니다. 보살핌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자신의 모든 것을 타인에게 의지하려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의 주장을 배려하는 것도 아니고, 타인의 의견을 유심히 경청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모든 것을 남에게 내맡기는 것입니다. 

 

조류나 포유류는 긴 의존성의 시기를 겪는다. 하지만 독립할 시기가 되어도, 여전히 주변에 기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유아기의 보살핌을 계속 받고 싶은 마음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조류나 포유류는 긴 의존성의 시기를 겪는다. 하지만 독립할 시기가 되어도, 여전히 주변에 기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유아기의 보살핌을 계속 받고 싶은 마음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나를 보살펴 줘.

 

의존성은 사실 다른 사람의 돌봄을 받으려는 의도에서 시작합니다. 다만 겉으로 복종하는 척 꾸미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나는 스스로 할 수 없어’라고 믿는다는 것이 특징이죠. 


어떤 옷을 입을 지 대신 골라달라는 여자. 사실 예쁜 옷을 골라 입혀 달라는 말입니다. 누구를 만나는 것이 좋은지, 어떤 공부를 하는 것이 좋은지, 쉬는 날에는 뭘 하며 여가를 보낼지를 알려달라고 합니다. 주로 부모가 어린 아이에게 해주는 것입니다. 영원히 보호받는 어린이로 머물러 있고 싶어합니다. 


종종 보살핌에 대한 강력한 희망은, 착취적인 대상에게 이끌리는 원인이 됩니다. 시키는 대로 다 따르기 때문에 사기꾼이 이용해먹기 딱 좋은 사람입니다. 심지어 자신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순순히 하라는 대로 따릅니다. 불쾌하고 불합리한 일이라고 해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따른다는 타입이죠. 


하지만 충성심이나 순애보와는 아주 다릅니다. 의존성 성격을 가진 사람은 종종 대상에게 더 이상 의존할 수 없다면, 두말없이 획 돌아섭니다. 그리고 의존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곧 찾아냅니다. 상대를 존경 혹은 연모하여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을 보살피고 일상의 결정을 대신 내려줄 사람을 원하는 것입니다. 의존성 성격을 가진 사람이 유일하게 적극적인 순간이 있다면, 바로 의존할 대상을 열심히 찾아다닐 때입니다. 

 

 

의존성의 진화

 

흔히 의존성은 여성에게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남녀의 비율이 비슷합니다. 사회적인 성 역할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진화적인 행동 전략 중 하나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의존성은 기본적으로 적극적 생존 전략입니다. 의존성이 적극적인 것이라면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 의존성을 가진 사람을 위험을 회피하거나 안전한 삶을 희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종 아주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터무니없이 무모한 결정을 내립니다. 다만 그 판단을 타인에게 맡긴다는 것이 다릅니다. 적극적으로 쾌락을 추구하지만 그 결정은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전략입니다. 


타인 지향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진화적 관점에서 K- 선택에 따른 파생 전략입니다. 일상의 행동은 모두 타인을 초점으로 맞추어 진행합니다. 무리한 일이나 불편한 행동도 자처합니다. 타인의 의견에 반대하는 일도 드뭅니다. 자신의 의견이라는 것 자체가 없거나 혹은 있더라도 확신을 하지 못합니다. 누군가의 ‘승인’을 받아야만 안심합니다. 


생태적 환경을 능동적으로 유연하게 바꾸는 스타일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스타일입니다. 어떨 때는 아주 완고해 보이는데, 그러다가 갑자기 의견을 바꾸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변의 조언자가 그렇게 지시했기 때문이죠. 환경을 바꾸기 보다는 자신을 바꾸려고 하기 때문에, 종종 자기 희생적인 사람처럼 보입니다. 심해지면 학대를 감수하는 식으로 진행합니다. 나를 버리지만 않는다면 어떤 수모라도 달게 받아들이겠다는 부류죠. 

 

2 독립은 인디펜던스, 즉 의존성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타고난 의존성을 전부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할 수 있다면 오히려 뜻밖의 잠재력이 터질 수도 있다. - 픽서브 제공
2 독립은 인디펜던스, 즉 의존성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타고난 의존성을 전부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할 수 있다면 오히려 뜻밖의 잠재력이 터질 수도 있다. - 픽서브 제공

 

의존의 보편성

 

사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의존적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환경과 거친 경쟁 속에서, 모든 결정을 자기 주도적으로 내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수많은 결정을 외부에 위임합니다. 학계의 권위자를 찾고, 외국의 모범 사례를 찾고, 대중의 여론에 따릅니다. 명망가 편향과 유행 순응 전략은 잠재적인 위험을 줄이고 확실한 보상을 약속해주는 추단적 경험칙입니다. 


자유의지로 살아간다며 호언장담하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얼마나 의존적인지 모릅니다.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점괘에 따라 운수를 점치며 운명을 걸기도 했습니다.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을 고르고, 유명 연예인이 입은 옷을 고릅니다. 인간의 의사 결정은 상당부분 그런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물론 정보를 얻는 행동과 의존할 대상을 찾는 행동은 다릅니다. 원시 시대에는 아마 강력한 권위자를 찾아 그에게 모든 결정을 위임하고 보살핌을 청하는 것이 상당히 유익한 전략이었을 것입니다. 지식은 오로지 경험을 통해 얻던 시대였죠. 시행착오를 직접 감수하는 전략보다, 이미 경험을 축적한 이를 무조건 따르는 것이 유리했습니다. 

 

 

건강한 의존

 

매일매일 노심초사 고민하며 자신의 일을 대신 결정해 줄 사람을 찾고 있나요? 의존적인 마음을 정 버릴 수 없다면, 차라리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조언자를 찾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 조언자가 누굴까요? 배우자? 친구? 아닙니다. 바로 그 대상은 바로 자신의 지난 경험입니다. 의사 결정을 내리는 몇 가지 경험적 원칙을 세우고, 그러한 결정을 내린 과거의 자신에게 의존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결정이 나 자신의 결정보다 옳을 이유가 없습니다. 근거없는 자신감이 넘치는 것도 곤란하지만, 매양 두려움에 떨며 나 대신 살아줄 사람을 찾는 것도 이상합니다. 어렵더라도 스스로 결정을 내려보고, 한번 결정을 내린 후에는 그 결정에 대해서 마치 다른 사람의 의견처럼 순종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태도는 이미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 뜻밖의 잠재력이 터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가진 의존성이 쉽사리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대소사를 주도적으로 처리하는 성격이 되긴 어렵습니다. 하진 사실 의존적인 성향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적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식의 역공을 당하는 일은 더더욱 없습니다. 


늘 순종적이고 착한 당신. 그러면서도 중요한 결정은 단호하게 스스로 결정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요즘 시대에는 정확하고 권위있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읽고 쓸 수 있고, 좋은 책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인터넷은 아주 훌륭한 조언자입니다.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다 보면, 곧 많은 사람이 당신의 결정에 ‘의존’하려 한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8년 08월 26일 15:00 프린트하기

 

혼자보기 아까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해 보세요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6 + 2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