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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트리거 워닝…경고 메세지가 오히려 트라우마를 촉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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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트리거 워닝…경고 메세지가 오히려 트라우마를 촉발한다

2018.08.25 15:00

살면서 간혹 신기한 일을 겪는 데  그중 하나가 믿는대로 이루어지는 때다. 약을 먹지 않았지만 ‘약을 먹었다’고 철썩같이 믿음으로써 실제로 치료 효과가 나타나는 ‘플라시보(위약) 효과'나 역효과가 날 수 있는 치료임에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믿음으로써 실제 효과를 덜 보는 '노시보 효과'가 한 예다. 


생각하는 대로 되는 현상은 감정에서도 나타난다. 예컨데 똑같이 심장이 뛰는 상황에서 주변에 매력적인 사람이 있다면 한 눈에 반하는 경험을 하는 반면, 불쾌한 사람이 존재한다면 화를 경험하는 현상이 존재한다. 보통 감정은 좋거나 나쁜 일이 발생한 후 그에 따른 반응으로 발생한다고 여기곤 하지만,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는 애매한 상황이 생각보다 많고 이 때 우리 머리속의 해석이 최종적인 감정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것 또한 삶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 능력 수준이 비슷해도 어째선지 자신은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노력을 덜 하거나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Bandura, 1993). 


성격에 있어서도 혈액형 성격론을 철썩같이 믿어서 자신은 A형이고 따라서 소심하다고 믿는 사람은 점점 더 소심하게 행동하고 그 결과 정말 소심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도 있었다. 이렇게 믿는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따라서 결과적으로 정말 믿는대로의 사람이 되는 현상을 자기예언적 효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근 하버드대 연구진은 트라우마 역시 믿는대로 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연구자들은 ‘트리거 워닝’ 즉, 해당 컨텐츠의 내용이 정신적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경고가 되려 트라우마를 촉발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특정 자극을 받아 정신적인 충격을 받을 확률이 지나치게 높게 평가되고, 그 결과 실제로 더 쉽게 큰 충격을 받는 자기예언적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경고 즉 트리거 워닝이 되려 트라우마를 촉발할 수 있다 - GIB 제공
정신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경고 즉 '트리거 워닝'이 되려 트라우마를 촉발할 수 있다 - GIB 제공

 

연구자들은 실험에 참여한 참여자들에게 일반적인 내용이 담겨있는 글과 살인 등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글을 읽게 했다. 충격적인 글을 읽기 전 한 조건의 사람들에게는 ‘해당 컨텐츠는 정신적으로 충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트리거 워닝)를 다른 조건의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경고 메시지를 주지 않았다. 


그 결과 트리거 워닝을 본 사람들이 정신적인 충격을 받게 되면 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일상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고 트라우마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이전보다 더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 경험뿐 아니라 간접 노출로도 트라우마를 겪는다고 믿는 참가자들에게서 트리거 워닝을 본 후 정서적 충격이 심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평소 자신은 정신적 충격에 약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경우, 트리거 워닝을 보고나면 실제로 더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나이, 성별, 정신병력과 상관 없이 나타났다. 


전쟁, 자연재해, 범죄 피해 등의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자신을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충격에서 잘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주는 연구들도 있었다(Berntsen & Rubin, 2007). 

 

자신의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으로 규정하는 경우에 충격에서 잘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 GIB 제공
자신의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으로 규정하는 경우에 충격에서 잘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 GIB 제공

한 번 충격을 받고 나면 다시는 이전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한 번 망가진 사람은 영원히 망가진채로 남는다는 사고 방식이 가뜩이나 어려운 회복을 더디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트라우마를 자신의 ‘일부’로 여겨야 하며 ‘전부’로 규정하면 안된다고 조언한다. ‘피해자’보다 ‘생존자’라는 라벨을 권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살다보면 충격을 받을 수 있다. 힘든 순간이 오겠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 더디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가 살아가게 만들어주는 힘의 원천일지 모르겠다. 
 

 

*참고: 

Bandura, A. (1993). Perceived self-efficacy in cognitive development and functioning. Educational Psychologist28, 117-148.

Bellet, B. W., Jones, P. J., & McNally, R. J. (2018). Trigger warning: Empirical evidence ahead. Journal of Behavior Therapy and Experimental Psychiatry, 61, 134-141.

Berntsen, D., & Rubin, D. C. (2007). When a trauma becomes a key to identity: Enhanced integration of trauma memories predicts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symptoms. Applied Cognitive Psychology, 21, 417–431.

 

※ 필자소개
지뇽뇽.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등,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현재는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 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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