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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조금 이상해도 괜찮아, 괴짜성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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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02일 13:00 프린트하기

방 안에 가득한 책과 퀴퀴한 냄새. 버섯 같이 헝클어진 머리를 한 남자는 초조한 표정으로 책상에 앉아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습니다. 연구에 매진하는 학자의 모습 같습니다. 하지만 공책에 적힌 제목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인류 생존 프로젝트.’


그러고보니 책장에 꽂힌 책도 대부분 이상한 제목입니다. 무 대륙의 비밀, 안드로메다 성운과 인류의 조상, 초자연적 지각 능력 훈련 백과, 제 51구역의 사건들…… 남자는 무한동력 기술을 통해서 임박한 인류의 멸망을 막을 방법을 연구 중입니다. 물론 프리메이슨이 알면 자신을 죽이려 할 테니, 아직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은 비밀 계획이죠. 

 

GIB 제공
GIB 제공

 

별난 사람들

 

세상에는 조금 별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초자연적 현상이나 마술, 예언 등을 좋아합니다. 초고대문명이나 외계인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종종 지구가 멸망한다는 예측을 하기도 합니다. 이상하고 엉뚱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사용하는 용어도 비범합니다. 없는 말을 만들어 내기도 하죠. 


생각만이 아니라, 행동도 괴상합니다. 마치 60년대 히피족 같은 옷을 입기도 하고, 어울리지 않는 전통 복장을 고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은색 철모를 쓰고 다니는 한 여자는 그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외계인이 쏘는 텔레파시에 의해 세뇌당하는 것을 막아야 해요.” 


이들은 일부러 생각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기도 하고, 동시에 두 가지 생각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독심술을 쓰는 적을 혼란시키려는 의도된 작전이죠. 그런 면에서 괴상한 행동은, ‘최소한 그들 자신에게는’ 합리적 행동입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개는 혼자서 지냅니다. 기이한 언어와 행동 때문에 사람들이 피하는 데다가, 본인 스스로도 친구를 그리 원하지 않습니다. 의심도 많은 편입니다. 타고난 성격도 좀 조심스러운 편이고, 대인관계가 적다 보니 이차적으로 불안이 심해지기도 하죠. 뭐. 괴이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주변에서 흰 눈을 하고 볼 테니, 대인 간의 신뢰를 쉽게 쌓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UFO에 대한 믿음은, 한편으로는 괴상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다. 우리 마음 속 UFO는 인류를 멸망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인류를 구원하기도 한다. - MAXPIXEL 제공
UFO에 대한 믿음은, 한편으로는 괴상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다. 우리 마음 속 UFO는 인류를 멸망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인류를 구원하기도 한다. - MAXPIXEL 제공

 

 

괴짜의 보편성 

 

괴짜성의 역설이 있습니다. 별난 생각과 행동이지만, 알고 보면 그리 별난 것이 아니라는 역설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사실 괴짜성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성향입니다.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믿음은 횡문화적인 보편성이 있어서, 원시 사회 뿐 아니라 문명 사회에서도 흔하게 관찰됩니다. 심지어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면서 주류 문화에 편입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드라마 ‘엑스 파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시종일관 외계인과 초자연적 능력, 예지력, 독심술 등 있을 법 하지 않은 소재를 다루었지만,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사실 비슷한 소재의 대중 문화는 늘 성황 중입니다. 미국의 ‘환상특급(원제: Twilight Zone)’이나 일본의 ‘기묘한 이야기(奇妙な出来事)’뿐 아니라, 한국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도 이와 비슷한 부류입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법은 다르지만, 모두 ‘도무지 있을 법 하지 않은 괴상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괴짜성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사실 모두가 아주 좋아하는 성향입니다. 어린 시절에 주로 읽던 동화 속 이야기뿐 아니라, 어른도 좋아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상당수는 바로 이러한 괴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학교와 직장에서는 모두 ‘경제성’과 ‘실용성’을 따지는 합리적 인간이지만, 마음 속 한 구석에는 ‘비합리적인 괴짜성’에 대한 욕망이 꿈틀대고 있습니다. 


 

의존성의 진화

 

정신의학적으로는 괴짜 같은 성격을 보통 ‘조현형 인격’이라고 표현합니다. 조현병에서 가져온 용어인데, 과거에는 분열형 인격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관계망상이나 기이한 믿음, 마술적 사고, 신체적 착각, 기이한 사고와 언어, 의심, 부적절한 정동, 특이한 행동과 외모, 사회적 고립 등을 주 증상으로 하죠.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중심적인 전략을 취합니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r-선택에 따른 전략이죠. 행동의 주체는 자기 자신의 느낌과 생각입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관계없이 자신의 길을 갑니다. 아무리 ‘이상’하다는 평을 받아도 무시합니다. 또한 환경에 대해서 능동적 전략을 취합니다. 자꾸 새로운 이론을 만들고, 새로운 도구도 창안합니다. 물론 대개는 무한 동력과 같은 터무니 없는 이론이거나 개인용 우주선같이 비현실적인 도구죠. 하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들이 추구하는 전략은 적극적인 쾌락 추구가 아닙니다. 소극적으로 고통을 회피하려는 전략이죠. 개인용 우주선의 개발은 과학 탐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핵전쟁이 나면 외계로 도망치려는 것입니다. 무한 동력의 연구는 에너지가 넘치는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화석 에너지 고갈을 대비하려는 것이죠. 이들이 가진 괴이한 믿음에 인류 멸망이나 멸종, 외계인 침공, 핵 전쟁 등의 주제가 흔한 이유입니다. 

 

노아의 방주. 노아는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고, 일생 동안 거대한 배를 산 위에 짓는다. 멸망에 대한 묵시, 즉 아포칼립스 및 이를 막기 위한 기발한 대비책에 대한 이야기는 모든 문화권에서 흔히 발견되는 보편적 믿음이다. 일부 진화심리학자는 이러한 공유된 믿음이 플라이스토세의 인류 조상에게 큰 이익을 주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 위키피디아 제공
노아의 방주. 노아는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고, 일생 동안 거대한 배를 산 위에 짓는다. 멸망에 대한 묵시, 즉 아포칼립스 및 이를 막기 위한 기발한 대비책에 대한 이야기는 모든 문화권에서 흔히 발견되는 보편적 믿음이다. 일부 진화심리학자는 이러한 공유된 믿음이 플라이스토세의 인류 조상에게 큰 이익을 주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 위키피디아 제공

 

 

조금 괴상해도 괜찮아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당장 안테나가 달린 은색 철모를 쓰고, 삐릭삐릭 소리를 내면서 외출을 해보십시오. 아마 소위 ‘이상한 사람’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행인들은 연신 눈을 힐끔거리고, 슬슬 당신을 피할 것입니다. 멀리서는 킥킥대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도 보입니다. 오직 어린이들이 신기해하며 말을 걸고, 다가올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 진화정신의학자는 이러한 괴짜성이 인류 진화의 원동력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인류 멸망에 대한 믿음을 흔히 아포칼립스라고 합니다. 세상이 멸망한다는 묵시론적 믿음이죠. 그런데 이러한 믿음은 어떤 집단을 분열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새로운 관습과 새로운 믿음과 새로운 미래에 대한 괴짜스러운 집착은 오히려 새로운 땅을 향한 강력한 동기를 유발해줄 수 있다는 것이죠. 이를 어려운 말로 집단 분리 가설(group splitting hypothesis)이라고 합니다. 


인류가 정주 생활을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때에는, 사냥감과 채집감이 떨어지면 새로운 곳으로 이동해야만 했습니다. 구석기 시대에는 흔한 일이었죠. ‘지금 사는 땅은 곧 자원이 부족하여 망할 것이다’이라는 세계 멸망에 대한 종말론적 믿음, 그리고 지금껏 가보지 못한 새로운 땅으로의 탈출에 대한 소망은 집단 전체에 큰 이익을 가져다 주었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러한 집단 분리 가설을 입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논란도 많습니다. 아직은 문학적 상상력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이토록 많은 ‘괴짜’들이 존재하고, 이들의 ‘괴상한 이야기’가 늘 사랑받는 것을 보면, 아마도 세상에는 어느 정도의 괴짜가 늘 필요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예상 밖의 결과를 얻는 사람은, 예상할 수 없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가끔은 그런 예상 밖의 결과가 ‘대박’이 되기도 합니다. 네. 조금은 괴상해도 괜찮습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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