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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왜 남이 하는 건 항상 쉬워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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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01일 13:00 프린트하기

슥슥 붓을 가져다 대기만 하면 아무 것도 없던 지면에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숲이 우거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밥 로스(Bob Ross)씨의 영상을 보고있자면 “참 쉽죠?”라는 말에 왠지 끄덕이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나도 (안 해서 그렇지) 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 같았다. 가볍게 터치만 해주면 짠 하고 나무가 나타난다는 말에 힘입어 새로 산 스케치북에 새로 산 물감을 터치해보았지만, 결과는 나무도 잔디밭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밥 로스 - flickr
밥 로스 - flickr

 최근에는 새로운 수영(접영)을 배워보겠다고 구글링을 해보았고 유튜브에 관련 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기초 자세부터 실전까지 영상들을 몇 번 반복해서 시청한 결과 생각보다 쉬운 듯 하고 나도 잘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장렬하게 도전했고 이틑날부터 오른쪽 팔을 한정된 각도 이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경험을 했다. 갑작스런 어깨 사용에 근육들이 놀랐는지 일주일 동안 밥을 먹을 때나 씻을 때, 특히 옷을 갈아입을 때 무서운 통증을 경험했다. 영상 속에서는 다들 하하호호 웃으며 참 쉽죠? 라고 하는 느낌이었는데 조금 속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미 높은 숙련도를 가지고 있어 어떤 동작이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사람과  나 사이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다. 그 사람이 편안하게 할 수 있다고 해서 그 일 자체가 쉬운 일인 것도 아니고, 곧 나도 편안하게 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아인슈타인에게 물리학이 쉽다고 해서 물리학이 쉬운 것은 아니며 나도 물리학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그럼에도 누군가가 쉽게 잘 해내는 모습을 보고 그 일 자체가 쉽다거나, 나도 잘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느끼는 이유는 뭘까?


최근 심리 과학지(Psychological Science)에 실린 한 연구에 의하면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현상을 경험한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에게 ‘그릇을 움직이지 않고 식탁보 빼기’를 손쉽게 해내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식탁보를 빼는 요령에 대해 읽어보게 했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혼자 생각해볼 시간을 주었다. 그 결과 식탁보를 빼는 ‘영상’을 본 사람들이 설명을 읽거나 혼자 생각해본 사람들에 비해 식탁보 빼기가 쉬울 거 같고 자신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반응을 많이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다트 던지기, 문워크 댄스, 컴퓨터 게임에서도 나타났다. 전문가 수준인 사람들의 영상을 보고서, 특히 영상을 자세히 오래 보았을수록 나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커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제로 그런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영상을 오래 자세히 보았다고 해서 자신하는 만큼 실력이 좋아지지도, 영상을 자세히 보지 않은 경우에 비해 더 잘 하게 되지도 않았다. 


뛰어난 저 사람과 나 사이에는 목표, 노력, 절실함, 경험치 등 성과와 관련된 대부분의 영역에서 아무런 공통점이 없지만 다른 사람이 잘 하는 것은 왠지 쉬워 보인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어떤 성과를 볼 때 그 성과가 있기까지 존재했을 노력, 인내, 좌절을 함께 떠올리기보다 그냥 성과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남’이 한 것이라면 더더욱. 내가 잘 한 일은 나의 노력과 재능 덕분(내적 귀인)이지만 타인이 잘 한 일은 단지 ‘운이 좋아서’(외적 귀인)라고 생각하는 경향은 실제로 매우 광범위하게 나타나서 ‘근본적 귀인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불리기도 한다. 


놀란 어깨로 인해 고통받던 중 수영 경기 영상을 보았다. 단 몇 분 안에 0.01초 차이로 갈리는 결과들을 보면서, 선수들은 이 짧은 시간을 위해 얼만큼의 삶을 투자해왔을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정말 작은 부분일뿐. 쉬워 ‘보이는’ 것은 있어도 정말로 쉬운 것은 없을 것이다. 


남이 하는 것도 그렇지만 내가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내 삶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을 꼽아본다면 그 중 ‘초등학교 입학’이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해내는 일이지만 나에게는 큰 변화였고 두려운 시간들이었다. 타인에게 네가 하는 것이 참 쉬워 보인다고 얘기하는 것이 실례인 것처럼 나에게도 이렇게 쉬운 걸 못하냐고 질타하는 것 역시 실례일 것이다. 뭐 하나 쉬운 게 하나 없다는 작은 진리가 때로 서로에게 해방감을 가져다 주는 이유다. 


Kardas, M., & O’Brien, E. (2018). Easier seen than done: Merely watching others perform can foster an illusion of skill acquisition. Psychological Science, 29, 52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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