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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학기술 시네마]4관. 음악의 표준이 통치의 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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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21일 07:00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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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의 남자′ 스틸컷
영화 '왕의 남자' 스틸컷

2005년 개봉한 영화 ‘왕의 남자’는 한국 사극 영화사에 중요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사극 사상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여장을 한 배우 이준기가 주목을 받으면서 ‘예쁜 남자’ 신드롬까지 일었다.영화는 조선 연산군 시대를 배경으로 유랑극단인 남사당패의 두 광대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광대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은 한양에 진출해 승승장구하던 중 왕을 풍자하는 내용을 담은 가면극에 덜미를 잡혀 매를 맞게 된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장생은 대뜸 “왕을 웃겨 보겠소. 왕이 보고 웃으면 희롱이 아니잖소”라고 제안하고, 실제로 연산군을 웃기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왕의 환심을 얻은 이들은 생각지 못했던 정치적 갈등에 휘말리면서 연산군의 폐위라는 역사적인 사건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이 영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요소는 음악이다. 영화 내내 이어지는 광대들의 공연에서는 다양한 악기 연주가 이어진다. 태평소와 대금, 장구, 꽹과리, 징, 북 등이 어우러진 풍물놀이가 펼쳐지고 궁중 음악인 아악도 감상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조선시대의 음악은 단순히 즐길 거리를 뛰어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도량형을 정비하는 데 악기와 음악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황종척’으로 음률 정비한 세종


중국의 진시황제가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뒤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한 정책 중 하나가 도량형을 통일하는 것이었다. 도량형을 통일하지 않고서는 중원을 효율적으로 지배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전근대도 그런 정책을 추진했다. 조선은 초기부터 도량형 통일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세종 시대에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세종은 박연 등에게 새롭게 ‘황종척(黃鍾尺)’을 만들어 음악의 음률(音律)을 정비하게 했다.

 

 

음률 정비와 도량형 통일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황종척은 자의 일종으로, 아악의 음계인 12율을 내는 12율관을 만들 때 쓰였다. 악기를 제작하고 조율하는 데 쓰인 12율관은 황종척으로 길이를 재서 표준 음관인 황종관을 만든 뒤, 여기서 길이를 더하거나 빼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자의 일종인 황종척을 새롭게 만들라는 뜻은 길이의 단위를 새롭게 정비하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였다. 음률 정비의 토대가 도량형 재정립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때문에 세종이 황종척을 만든 것은 음악의 음률 정비와 함께 길이의 단위인 ‘척(尺)’도 정비하겠다는 의도였다. 조선의 도량형은 세종 시대에 정비됐으며, 영화의 배경인 연산군 시대에는 7근을 잴 수 있는 저울(칭자·秤子)을 만들어 가져오라는 것 외에는 특별한 기록이 없다.

 

 

황종관이 부피와 무게의 표준 역할

 

고대 중국에서는 정확한 음악의 음률이 유지되고 있을 때는 정치와 민심도 바르고, 음률이 맞지 않을 때는 나라와 백성의 마음도 혼란스러워진다고 믿었다. 이처럼 중시하는 음률을 조정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길이의 단위인 척을 활용해 왔다.


음률의 수는 12인데, 6가지 양의 율(律), 즉 황종(黃鐘), 태주(太簇), 고선(姑洗), 유빈(蕤賓), 이칙(夷則), 무역(無射)과 6가지 음의 여(呂), 즉 대려(大呂), 협종(夾鐘), 중려(仲呂), 임종(林鐘), 남려(南呂), 응종(應鐘)으로 이뤄진다. 황종척에서 말하는 황종은 6가지 양의 율 중 하나다.


12율려의 음을 내는 관을 12율관이라고 하는데, 황종관의 길이는 9촌이고, 둘레는 9분이다. 표준이 되는 황종관의 길이에서 3분의 1을 줄이거나 더하는 방식으로 다른 율관을 만드는데, 이를 ‘삼분손익법(三分損益法)’이라고 한다. 황종이 음률의 표준으로 사용된 셈이다.


조선시대 척의 기준인 황종척은 황종관을 기준으로 만들었다. 황종관은 해주산 검은 기장을 이용해 만들었는데, 한 알을 1분으로 하고 열 알을 1촌으로 해 9촌을 황종관의 길이로 정했다. 이를 기준으로 다시 1촌을 더해 황종척을 만들었다.


세종 시대 음률의 교정을 위해 새로 만들어진 길이의 표준인 황종척은 주척, 포백척, 조례기척, 영조척 등 용도에 따라 달리 사용하던 여러 종류의 척을 교정하는 데 쓰였다. 또 되(升)나 말(斗) 등 부피를 측정하는 기구인 양기(量器)와 무게를 측정하는 저울인 형기(衡器) 등을 제작, 교정하는 데까지 폭넓게 활용됐다.

 

국립민속박물관 자료
국립민속박물관 자료

가령 목공과 건축 분야에 쓰였던 영조척은 세종 28년 홉(合), 되(升·10홉), 말(斗·10되), 섬(石·15말) 등 부피를 측정하는 표준인 양기(量器)의 크기를 이전 고려시대와 다르게 새로 정비할 때 사용됐다. 


황종척을 만들 때 사용한 황종관은 저울의 교정에 이용됐다. 황종관에 담긴 물의 무게인 88분(35.307g)을 이용해 저울의 단위인 전(錢·10분), 량(兩·10전), 근(斤·16량) 등이 정해졌다.

 

 

도량형 위조 막기 위해 중앙 정부가 집중 관리


도량형기는 국가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특히 도량형기는 조세 수취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선은 현물로 조세를 거둬들였다. 예를 들어 토지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수취할 때는 부피를 재는 도구인 양기를 이용했는데, 양기의 대소에 따라 수취하는 양이 다를 수 있다. 또 백성이 납부하는 삼베도 길이를 재는 도구인 포백척의 길이에 따라 납입하는 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는 조세를 제대로 걷기 위해서라도 도량형기 제작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도량형기의 제작은 중앙 관청의 경우 6조의 하나인 공조(工曹)에서 담당했다. 지방 고을은 공조가 모두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관찰사가 허가를 받아서 만들게 했다. 개인이 만든 것은 수도인 한양의 경우 도량형을 담당하던 평시서에서, 지방의 경우 수군이 주둔하는 진(鎭)에서 검인을 받고 쓰도록 했다. 이는 부정한 도량형기 제작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도량형 감독 역할을 맡았던 수령과 아전들은 불법을 자행하며 규정에 맞지 않는 도량형기를 만들기도 했다. 척의 경우 기준 척의 길이를 짧게 만들거나 길게 만들어 사용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척의 길이에 문제가 발생하자 철척(鐵尺), 즉 쇠로 자를 만들어서 보급하고 이를 기준으로 삼자는 제안도 나왔다.


양기는 목재를 가지고 승(되), 두(말) 등을 만들었는데, 수령과 향리들은 직접 되와 말을 깎아 파내는 방식으로 깊고 크게 만들거나, 장인에게 지시해 화인(火印)을 위조해 고의로 말을 크게 만드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양기를 크게 만드는 경우가 보편적이지만 적게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이럴 경우 곡물을 빌려줄 때는 적은 양기를 사용하고, 받을 때는 큰 양기를 사용해 중간 차익을 취득했다. 그래서 양기의 변조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검인(檢印)과 함께 테두리에 철을 둘러싸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척과 양기의 불법 제작과 사용이 크게 문제가 됐는데, 이를 시정하기 위해 도량형을 측정하고 검사하는 데 쓸 수 있는 표준 유척(鍮尺)과 표준 양기인 동곡(銅斛)을 만들었다.


유척은 사각의 긴 직육면체로 만들었고, 각 면에 황종척, 영조척, 포백척, 주척, 조례기척 등이 반척(半尺)으로 새겨져 있다. 반척의 사각 유척은 촌(寸)과 분(分)의 단위까지 새겨져 있다. 


다섯 척의 길이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놋쇠에 새겨진 촌과 분의 눈금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주척(20.6cm)은 촌(2.06cm)과 분(0.206cm)을 일정하게 새겨 반척을 만들었는데, 이를 통해 조선시대 과학기술의 정밀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유척은 서울과 지방에 반포하기도 했지만, 암행어사가 지역에 행차할 때 가지고 가서 각 지역에서 사용하고 있는 척을 비교 검정할 때 사용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양기는 동으로 섬과 말을 만들어 지방에 보급했는데, 변형을 할 수 없도록 입구는 좁고, 밑면은 넓은 ‘방추형 양기’를 만들기도 했다.

 


 

*출처 : 과학동아 9월호 ‘조선 과학기술 열전'

*이미지 : CJ ENM, 국립국악원, 국립민속박물관

 

 

※ 필자 소개

이종봉. 부산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부산대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에서 상임연구원을 지냈고, (사)부경역사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부산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중세도량형제연구’ ‘한국도량형사’ ‘서울재해사(공저)’‘21세기에 다시보는 고려시대의 역사(공저)’ 등의 책을 펴냈다. leejb@pusan.ac.kr

 

※편집자주. ‘한가위엔 사극’. 마치 영화계 흥행 공식인 것처럼 매년 추석 시즌에는 사극 영화 대작이 개봉된다. 올해는 풍수지리를 소재로 한 영화 ‘명당’이 관객과 만난다. 안방극장에도 연휴 내내 몇 년 전 개봉한 사극 영화들이 편성표를 채운다. 그래서 올해 추석에는 과학동아가 추석 사극 영화 7편을 엄선했다. 역사 속에 실재했던 과학기술이 녹아있는 ‘과학 충만한’ 영화들로만 구성했다. 평론가로 나선 학자들의 해설을 들어보자.   


이종봉 부산대 사학과 교수

leejb@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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