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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학기술 시네마]5관. 신약 개발로 이어진 전통 약재의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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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21일 07:00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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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2011.01) 스틸컷
영화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2011.01) 스틸컷

“언뜻 보면 새침한 모습이 각시와도 같은데, 머리엔 전장의 용사와 같이 투구를 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각시투구꽃이지요.”

 

2011년 개봉한 영화 ‘조선명탐정’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각시투구꽃의 비밀’에서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한 객주(한지민)가 주인공 김민(김명민)에게 각시투구꽃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관객 480만 명을 동원하면서 조선 사극 탐정 시리즈의 문을 연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은 바로 이 각시투구꽃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유쾌한 코미디 영화다. 각시투구꽃은 독성을 가진 식물로, 영화에서는 살상용 독침을 만드는 재료로 나온다.

 

한의사이기도 한 필자는 전통의약에서 각시투구꽃과 관련된 유독성 약재와 그 과학적인 효능, 그리고 이외에도 신약개발로 이어진 전통의약 사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각시투구꽃 실제 모델은 ‘바꽃’


각시투구꽃. 일단 이름과 모양이 좀 특이하다. 꽃의 모양이 투구와 닮아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각시투구꽃 외에 ‘투구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으로 ‘세뿔투구꽃’이 있는데, 이 꽃은 모양이 삼각형으로 생겨서 붙여진 이름일 뿐 각시투구꽃과는 전혀 다른 식물이다.


영화는 각시투구꽃 농장이 있는 ‘적성’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어떤 지역으로 설정했는지는 불분명한데, 현재 각시투구꽃이 자생하는 곳은 백두산 주변으로 국한된다. 이에 북한에서는 각시투구꽃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북한에서는 각시투구꽃(Aconitum monanthum)과 바꽃(Aconitum flagellare)이 함께 유독식물로 취급된다. 둘은 같은 과에 속하는 식물인데, 사실 조선시대 의서에 이름이 실려 있는 것은 각시투구꽃이 아니라 바꽃이다. 한자의 음과 훈으로 우리말을 표기하던 이두로는 바곳(波串), 우리말로 ‘바곳’으로 적혀 있다.

 

 

보통의 독초는 독성분이 뿌리나 씨앗, 수액(樹液) 등 특정 부위에 한정되기 마련인데, 바꽃 만은 뿌리뿐만 아니라 꽃가루나 꿀에도 유독성분이 있어 이 꽃의 꿀을 옮긴 벌꿀을 먹어도 중독 될 수 있다. 독성의 강도나 분포가 확실히 다른 것이다. 이 바꽃이 바로 한의학에서 말하는 부자(附子·Aconitum carmichaeli Debeaux)다.


사실 전통적으로 약이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일정한 정도의 독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직접적이고 신속한 효과를 봐야하는 응급질환에 쓰이는 약재는 대부분이 그렇다. 부자를 비롯해 대황, 마황, 반하, 감수, 대극, 원화 등이 대표적이다. 설사를 시키거나 토하게 하는 약부터 땀을 크게 내거나 체온을 급히 높여 주는 약재들이다.


특히 부자는 ‘아코니틴’ 성분을 약용으로 사용해온 맹독성 약재로서, 한의학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의학경전으로 취급되는 상한론(傷寒論·한나라 장기(張機)의 저술로 전해짐)에서부터 상당히 널리 활용된 약재다.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짐승을 사냥할 때 화살독으로도 썼다고 하는데, 남미 원주민들이 최근까지 독화살 제조에 사용한 큐라레(Curare·독의 일종)와 같은 용법이다. 이들 독성분은 동물의 심장에 직접 작용해 호흡을 마비시킨다.


물론 전통적으로 이 약을 그대로 쓰는 경우는 사약(賜藥)으로 내릴 때였고, 치료용으로는 반드시 불에 굽거나 물에 삶아 독을 중화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이렇게 가공한 것을 ‘포부자(炮附子)’라고 한다. 


포부자 역시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은 피하고 감초나 생강과 같은 약재와 함께 배합해서 썼다. 독성 있는 약재를 실제로 사용할 때는 이처럼 여러 단계의 중화 내지 약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포부자는 현재 한의원에서도 종종 사용하는 약재다.


조선의 대표적인 의서 ‘동의보감’에는 부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동의보감에는 부자의 약성이 매우 강해 신진대사 기능이 극도로 쇠퇴한 상태를 회복시킨다고 써 있다. 약리학적으로는 심장근육 수축력 증가, 혈압 상승, 면역증강 작용, 부신피질 흥분 작용 등을 유도한다고 번역할 수 있으며, 실제 그런 약효가 실험적으로도 보고돼 있다. 한의학적으로는 몸 안에 나쁜 기운들인 풍(風), 한(寒), 습(濕) 기운을 말리고 발산시켜 치료 작용을 한다고 표현하는데, 쉽게 말하면 신경통과 류머티즘 관절염 같은 질병 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부자는 이름이 여러 가지로 달리 불리는데, 동의보감에는 다섯 가지 이름의 약재가 사실은 모두 부자라고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처럼 이전에 약재로 쓰인 식물의 명칭이 여러 가지인 경우가 있는데, 다양한 종류의 약들이 시대적, 지역적으로 퍼져나가면서 이름이 변형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말라리아 치료제로 노벨 생리 의학상


식물 전체에 독성이 있는 바꽃과 비슷한 예로 옻나무가 있다. 피부에 두드러기를 일으키는 성분이 옻나무에 있는데, 이에 민감한 사람은 나무 옆을 지나기만 해도 옻이 오른다. 옛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옻나무 그림자에 들기만 해도 옻이 오른다’고 표현했는데, 실은 잎의 기공을 통해 화학 분자들이 내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나무 전체가 독 덩어리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데에서 효용이 나온다. 옻나무 수액으로 만든 천연도료인 옻칠을 한 가구는 벌레나 외부 자극에 잘 견뎌 천 년을 간다는 명성이 있다. 약용으로는 고인 피를 잘 돌게 하고 벌레를 죽이며 뱃속에 단단히 뭉친 덩어리를 깨뜨린다.


옻나무의 이런 성질을 이용해 현대적인 치료제로 활용하려는 노력도 있다. 강동경희대병원 연구팀은 한의학자인 최원철 박사(전(前) 강동경희대병원 통합암센터장)가 개발한 옻나무 추출물 치료제를 이용해 말기 전이성 신장암 환자 두 명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경과를 국제학술지 ‘종양학 연보’ 2010년 4월 2일자에 발표했다.


물론 천연물을 이용한 신약이 최종적으로 제품이 되기까지는 임상시험 등 많은 검증 과정을 거쳐야한다. 그런 어려운 과정을 거친 뒤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의 투유유(屠呦呦) 교수의 ‘아르테미시닌’이다. 

 

투유유 중국 전통의학연구원 교수는 제비쑥이라는 식물에서  말라리아 치료 물질을 찾아낸 공로로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기원전 340년에 기록된 전통 의약 지식을 토대로 1971년 제비쑥에서  ‘아르테미시닌’이라는 물질을 추출했다. 그런 뒤 1979년 이 물질이 말라리아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통의약지식에서 찾아낸 말라리아 치료제. 투유유 중국 전통의학연구원 교수는 제비쑥이라는 식물에서 말라리아 치료 물질을 찾아낸 공로로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기원전 340년에 기록된 전통 의약 지식을 토대로 1971년 제비쑥에서 ‘아르테미시닌’이라는 물질을 추출했다. 그런 뒤 1979년 이 물질이 말라리아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투유유 교수는 제비쑥이라고 불리는 청호(靑蒿)에서 말라리아 치료약인 아르테미시닌을 추출한 업적으로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는 동아시아의 전통 의약 지식이 살아서 현대에도 작동한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준 최근의 사례다. 또한 동아시아의 전통 의약 경험이 세계 의약사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성과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약물 성분을 추출하는 방식까지도 전통 지식이 현대 신약 개발에 중요한 힌트를 줬다는 점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말라리아를 퇴치하기 위해 국가 수준의 거대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대대적인 약물 성분 확인 작업을 벌였다. 하지만 당시 일반적인 방법이었던 끓인 물로 달이는 성분 추출 방식은 번번이 실패했다. 


이에 다시 고전 의서의 원문을 꼼꼼히 확인한 결과, 물을 끓여 달이는 것이 아니라 약초의 생즙(生汁)을 그대로 사용하라는 기록을 발견했다. 방법을 달리해 시행한 결과 변형이나 파괴 없이 온전한 활성을 지닌 아르테미시닌을 추출할 수 있었다.

 

제비쑥 -Wikipedia
제비쑥 -Wikipedia

‘위령선’이 골관절염 치료제로 탄생


2000년대 들어 국내에서도 이 같은 천연물 신약 개발 사례가 나왔다. SK제약의 골관절염 치료제 ‘조인스’다. 조인스는 우리말로 ‘으아리’로 불리는 위령선(威靈仙)이라는 약초 추출물을 이용해 만든 약이다. 


위령선이 약재로 사용된 이야기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승려가 당나라에 유학 가 있을 때 그 지역 사람이 치료하지 못하고 있던 족병(足病)을 고향에서 사용하던 의약지식으로 고쳐줬다. 이때 사용한 약초가 바로 위령선이었다. 이 기록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의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1236년)’에 실려 있다.


향약구급방에는 위령선을 우리말로 수레나물(車衣菜)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향약구급방에는 앞서 간행된 중국 본초서의 기록을 인용했다고 기록돼 있다. 즉 신라 승려가 중국 사람의 병을 우연히 고친 일을 계기로 중국에 널리 알려진 약재인데, 중국 의약계에서 그 효능을 인정받은 뒤 고려 시대에 와서 역수입된 것이다.


신라 승려가 최초로 그 사용법을 중국에 알린 위령선은 이후에도 요통, 중풍, 마비증 등의 치료 처방에 들어가며 활용처가 넓어졌고, 현재의 골관절염 치료제로 이어진 것이다. 신라 시대에 알려진 약재가 현대의 기술로 다시 생명력을 얻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앞으로 전통 의약지식과 현대 과학지식이 격렬히 상호작용하는 융합의 용광로에서 새로운 신약이 속속 태어나리라 기대해 본다.

 

 

 

 

*출처 : 과학동아 9월호 ‘조선 과학기술 열전'

*이미지 : 쇼박스 

 

※ 필자 소개

전종욱.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곡서당과 도올서원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다시 한의대를 졸업한 뒤 KAIST 의학과학대학원에서 실험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신약개발 연구를 했고, 현재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로 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들며 전통과학의 융합연구와 함께 ‘임원경제지’ ‘의방유취’ 등의 한국 고전 번역에 열중하고 있다. lovejnj@gmail.com.

 

※편집자주. ‘한가위엔 사극’. 마치 영화계 흥행 공식인 것처럼 매년 추석 시즌에는 사극 영화 대작이 개봉된다. 올해는 풍수지리를 소재로 한 영화 ‘명당’이 관객과 만난다. 안방극장에도 연휴 내내 몇 년 전 개봉한 사극 영화들이 편성표를 채운다. 그래서 올해 추석에는 과학동아가 추석 사극 영화 7편을 엄선했다. 역사 속에 실재했던 과학기술이 녹아있는 ‘과학 충만한’ 영화들로만 구성했다. 평론가로 나선 학자들의 해설을 들어보자.   


전종욱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lovejn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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