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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마 파도’ 만들어 입자 가속...소형 가속기 실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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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07일 05:40 프린트하기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설치된 어웨이크(AWAKE) 실험장비. 금속 기체로 플라스마를 만든 뒤 일종의 파도를 일으켜 전자를 가속시킬 수 있다. 미래의 소형 가속기에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 제공 유럽입자물리연구소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설치된 어웨이크(AWAKE) 실험장비. 금속 기체로 플라스마를 만든 뒤 일종의 파도를 일으켜 전자를 가속시킬 수 있다. 미래의 소형 가속기에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 제공 유럽입자물리연구소

삶은 달걀을 생각해 보자. 노른자가 덜 익은, 황금빛의 먹음직스러운 반숙 상태로 조리하려면 삶는 시간이 중요하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금세 먹기 뻑뻑한 상태로 변해 버린다.

 

우주에 존재하는 입자나 원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입자는 반숙 달걀 같은 존재다. 우주의 입자나 원소는 늘 변한다. 이를 ‘붕괴’라고 한다. 어떤 입자는 반숙 상태를 유지하는 시간이 아주 길어서 우리 눈에는 늘 한결같은 상태로 보이고, 어떤 입자는 반숙 상태가 극히 짧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잠깐 스치는 반숙 상태를 갖는 입자를 꼭 확인하고 싶은 과학자들은 꾀를 냈다. 삶은 달걀을 가능한 한 많이 만들면 우연이라도 반숙 하나쯤은 건질 수 있지 않을까. 2012년, 인류가 만든 가장 정교한 물리학 이론인 ‘표준모형’이 예측한 마지막 우주 기본입자인 ‘신의 입자’ 힉스 보손(boson·주로 에너지를 전달하는 우주 기본입자)을 관측한 과학자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찰나(1000억분의 1초를 다시 100억분의 1로 나눈 시간)만 존재하는 힉스 보손을 인위적인 방법으로 가능한 한 많이 만든 뒤, 그 흔적을 찾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달걀 삶을 ‘냄비’에 해당하는 실험시설이다. 물리학자들에게는 이 시설이 가속기다. 현재는 직선 또는 원형의 긴 금속관 안에서 자기장을 이용해 양성자 등의 입자를 빠르게 가속시킨 뒤 서로 충돌시킨다. 입자가 서로 충돌하면 입자의 양자역학 상태가 순간 변하면서 다양한 새 입자가 탄생한다. 그중에 목표로 하는 입자가 나올 수 있다. 힉스도 그중 하나다.

 

양성자처럼 서로 양성(+)의 전기적 성질을 띠는 입자는 서로 밀어내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그냥은 충돌하지 않는다. 빛의 속도에 버금가게 빠르게 가속시켜 에너지를 높여야, 입자가 서로 밀어내는 힘을 이기고 서로 충돌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렇게 입자를 가속시키는 게 가속기다.

 

현재의 가속기는 단위 길이당 에너지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되도록 길고 커야 한다. 오늘날 존재하는 가장 거대한 가속기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는 길이가 27km에 이른다. 건설을 검토하고 있는 중국(50~100km)이나 일본(31km)의 가속기가 큰 것도 같은 이유다.

 

어웨이크의 원리. 루비듐 기체에 강한 양성자 빔과 레이저를 넣으면 파동이 형성된다. 여기에 전자를 넣으면 마치 파도를 타듯 전자가 실려가며 가속된다. - 사진 제공 CERN
어웨이크의 원리. 루비듐 기체에 강한 양성자 빔과 레이저를 넣으면 파동이 형성된다. 여기에 전자를 넣으면 마치 파도를 타듯 전자가 실려가며 가속된다. - 사진 제공 CERN

최근 발상을 바꿔 규모는 작으면서도 강력한 에너지를 갖는 새로운 가속기가 실험에 성공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국제 공동연구그룹인 어웨이크(AWAKE)는 금속관에 입자를 가두고 자석을 이용해 밀고 당기며 입자를 가속하는 기존 가속기 대신에 물질의 제4 상태인 플라스마로 일종의 빠른 ‘파도’를 일으키는 방법을 구상했다. 마치 바다에 빠른 파도가 치면 그 위에 서퍼들이 파도를 타며 이동하듯 플라스마 파도(이를 ‘웨이크필드’라고 한다) 위에 입자를 얹어 가속시키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플라스마 파도를 만들기 위해 금속 원소인 루비듐을 증기 상태로 만들어 길이 10m의 공간에 넣고, 여기에 CERN의 슈퍼양성자싱크로트론(SPS)을 이용해 만든 높은 에너지의 가속 양성자 빔을 넣었다. 그 뒤 레이저를 추가로 가하자 루비듐이 플라스마가 되고 양성자 빔이 잘게 쪼개지며 ‘파도 타기 좋은’ 파동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전자를 비스듬히 넣자 전자가 마치 서핑을 하듯 플라스마 파도에 타 가속됐다. 연구팀은 전자를 겨우 10m 가속해 에너지를 100배 수준까지 높이는 데 성공했다고 ‘네이처’ 8월 29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건설비만 수조 원에 이르는 길이 수십 km대의 가속기를 1km보다 작은 크기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연구에 비유럽권 연구자로는 유일하게 김성열 UNIST 물리학과 연구원과 정모세 교수가 참여했다. 정 교수는 “LHC 이후의 가속기로 일본에서 거대한 전자 선형가속기를 건설하고자 논의 중인데, 어웨이크를 이용하면 현재의 LHC에 1km짜리 시설만 덧붙여 전자 가속기를 만들 수 있다”며 “차세대 가속기의 유력한 후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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