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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동료 과학기자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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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16일 00:00 프린트하기

당신이 기어이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부음이 처음 발송된 곳에서 200km 남짓 떨어진 곳에 사는 저는, 급히 열차를 잡는 대신 노트북을 폅니다. 그곳에 가서 당신을 만나는 시간을 늦추는 대신, 응당 취해야 하는 그 예의를 갖추기에 앞서, 당신이 계속 쓰고 싶어했던 글이라는 형식을 통해 조금이라도 먼저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이재웅 기자, 굵직한 단독도 곧잘 했고 한국 과학기술계의 중요한 현장에 빠짐없이 참석했던 성실한 목격자였으며, 무엇보다 취재원인 과학자들에게나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나 늘 공평무사하고 온화했던 당신을 그리워하며 몇 백 자 글을 씁니다. 너무 일찍 간 당신을 짧은 글로 추모하는 일은 원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기록해야, 더 길어지기를 바라 마지 않았던 당신과의 추억을 조금이라도 연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11년 전인 2007년 12월, 동아사이언스에 함께 들어왔습니다. 당시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에 성공한 기자는 단 네 명이었죠. 나이도 살아온 배경도 다 제각각이었지만, 과학을 좋아하고 그것을 제대로 알리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만은 모두 같던 시절이었습니다. 다들 과학과 공학을 공부한 만큼, 그것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일의 고됨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착각했습니다.

 

어리숙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평균 나이 서른의 ‘늙은 신입기자’였던 우리는, 고집은 있지만 잘 하는 것은 없던, 매일매일 사고를 안 치는 게 다행인 그런 어리숙한 수습기자였습니다. 부정확한 뉴스로, 관점 없는 글로 선배들에게 힐난을 듣고 난 뒤 축 늘어져 있는 게 일상이었지요. 점심 때 덩그러니 우리만 남은 걸 확인하면 누가 뭐랄 것 없이 함께 나가 선배들 몰래 낮술을 기울이며 울분을 달래곤 했지요. 술 한 방울 하지 않던, 동기들 중 두 번째로 나이가 많던 당신은 싫다 소리도 없이 함께 하며 나이 더 어린 두 동기들의 불만을 들어줬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이미 당신은 기자로서 당신이 지닌 가장 독특하고 뛰어난 자질을 우리에게도 발휘했던 것 같습니다. 선하고, 공평무사하게 모두를, 모든 사안을 대하는 능력 말입니다. 당신은 이런저런 이유로 화를 삭이지 못하는 남은 동기들을 다독이면서도,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그 울분의 대상을 힐난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표정은 늘 온화했습니다. 당시에도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지만, 사실 우리의 울분은 잘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이거나 어리광에 지나지 않았고, 대개의 경우 당신이 옳았지요.

 

발표되는 어떤 사안을 발표되는 내용 온전히 전달하거나, 반대로 숨겨져 있던 어떤 부조리를 일삼아 파헤치는 게 주업인 기자는, 어쩔 수 없이 편벽된 생각이나 말에 이끌리기 쉽습니다. 거기에 저항하는 것이 중요한 자질입니다. 그 때부터 어느 한 쪽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던 당신은 어쩌면 천생 기자였는지 모릅니다.

 

당신은 한국 과학기술계의 중요한 국면 때마다 현장에서 자리를 지켰습니다. 2013년 초, 나로호가 드디어 발사에 성공했을 때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자리를 지켰지요. 2016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대결 때도 최전선에서 기사를 썼습니다. 모두 성실한 눈으로 과학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모습을 보고 전했지요. 굵직한 단독도 곧잘 했습니다. 정부 연구기관의 논문과 특허가 대학보다 뒤진다는 사실을 보도한 2014년 기사, 장기 이식이 가능한 면역결핍 돼지 복제에 국내 연구팀이 처음 성공했다는 기사 등이 당신의 손을 통해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2016년에는 한국 웨어러블 로봇의 현주소를 짚은 기사로 한국과학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과학기자상도 수상했습니다.

 

이런 기사를 좀더 보길 바랐지만, 당신의 기사는 기자상 수상 직후인 2016년 6월 24일을 끝으로 멈췄습니다. 하지만 곧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기에 그 날짜를 눈에 새겨 두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너무 이르게 현장을 떠난 당신을 한 명의 동료로서 크게 그리워합니다. 남은 자리는 선후배 동료들이 지킬 것입니다만, 당신만이 내놓았던 고유의 목소리, 온화하면서도 공평무사했던 현장에서의 얼굴은 다시 볼 길이 없습니다. 한 명의 동료로서 그 사실을 가장 서운해 합니다.

 

긴 시간 고통조차 내색하지 않던 당신, 이제 편안하기를 빕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이름과 떠난 날을 한번 더 기록합니다. 성실히 기록하는 것, 그게 우리의 일이니까요. 2018년 9월 15일 오후 6시. 과학기자 이재웅이 세상을 떠나다. 향년 40세. 한 마디만 사적으로 덧붙입니다. 너무 일렀다고.

 

이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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