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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추석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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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23일 10:00 프린트하기

뉴시스 제공
뉴시스 제공

추석은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존재하는 전통 명절입니다. 농경 사회에서 많이 관찰되지만, 일부 수렵채집사회에서도 비슷한 의례가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 특히 친척들이 한데 모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선물을 나누고, 춤과 노래를 즐기기도 합니다. 나라 전체가 며칠 동안 경제적 생산 활동을 잠시 중단합니다. 모든 사람이 일손을 놓고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물론 집안 일이 늘어난다고 푸념하는 분도 있겠습니다만). 

 

 

넉넉한 씀씀이

 

휴일이나 명절에 일어나는 집중적인 소비 경향을 두고, 소비 의례라고 합니다. 물질적 자원 뿐 아니라, 용역이나 경험의 소비도 포함합니다. 근검절약과 청빈을 높게 여기는 우리 정서상, 소비 의례라고 하면 마치 과소비와 향락처럼 부정적인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비 의례의 인류학적인 의미는 보다 심오합니다.  


사실 일견 ‘과도한’ 수준으로 소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서양에서는 칠면조를 통째로 구워 식탁에 올리는데,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 하루에만 4천만 마리의 칠면조가 소비된다고 합니다. 호박파이와 고구마, 크랜베리 소스, 제철 채소 등으로 정찬을 차립니다. 제대로 차리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고 노동량이 상당합니다. 하루 종일 요리에 매달려야 하죠. 그렇게 돈과 시간, 노력을 기울여서, 도무지 한번에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음식을 가득 차립니다. 


추석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표적으로 송편을 빚어 내는데, 직접 만들려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냥 사먹는 것이 간편하지만, 여전히 직접 빚어 먹는 집이 먹지 않습니다(저희 집입니다). 평소에는 접하기 어려운 토란국을 끓이고, 생선도 굽고, 갈비도 굽고, 고기 산적도 만듭니다. 잡채도 하고 각종 전도 부칩니다. 식혜도 담그고 나물도 무칩니다. 여러 종류의 한과를 만드는 집도 있습니다. 끝으로 제철 과일까지 정성스레 내놓습니다. 얼마나 음식을 많이 하는지, 추석에 먹다 남은 음식을 설날까지 먹은 적도 있습니다. 


네. 명절은 풍요로움을 만끽하며 과시하는 날입니다. 배고픔에 시달리던 조상들도, 추석만큼은 풍요로움을 자축하며 소비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나온 이유입니다. 

 

먹음직하게 빚어진 송편과 잘 구운 칠면조. 소비 의례로서의 추석 및 추수감사절은 여유있는 소비 행위가 특징적이다. 평소에는 맛보기 어려운 음식을 충분히 장만하고, 이를 주변과 같이 나눈다. - 위키피디아, FLICKR 제공
먹음직하게 빚어진 송편과 잘 구운 칠면조. 소비 의례로서의 추석 및 추수감사절은 여유있는 소비 행위가 특징적이다. 평소에는 맛보기 어려운 음식을 충분히 장만하고, 이를 주변과 같이 나눈다. - 위키피디아, FLICKR 제공

 

나누고 베풀기

 

이러한 전통 명절에는 선물 교환도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주로 가까운 친지나 지인 사이에서 선물을 주고 받습니다. 마트에는 추석 선물을 위한 특별 코너가 차려지고, 택배 회사는 명절 특수에 즐거운 비명을 지릅니다. 수많은 현물이 전국 방방곡곡을 종횡무진 누빕니다. 


우리는 주로 고기나 생선, 과일을 선물로 보냅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통조림도 인기 선물 중에 하나죠. 선물 교환의 관습은 서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추수감사절에는 초컬릿이나 와인, 집에서 만든 음식, 꽃, 액세서리 등을 선물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평소에 모르던 사람에게도 선물을 주곤 하는데, 이러한 집단적 증여 행위는 인류학자들의 오랜 연구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조선 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에 의하면, 추석에는 국가 수준의 큰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던 잔치, 즉 외연(外宴)이었습니다. 잔치가 끝나고 나면 은전을 나누어 주기도 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나라 형편이 어려워져서 많이 시행하지 못했다고도 하네요. 


이러한 관습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추석에는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 사회복지시설이나 불우한 국가 유공자 등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위문품을 보냅니다. 명절을 즐기지 못하는 군부대나 소방서 등에 격려품을 보내기도 합니다. 서양에서도 추수감사절에는 다양한 자선 행사를 열고, 지역사회 주도로 어려운 사람과 음식을 나눕니다. 기부금도 많이 모입니다. 


네. 추석은 나누는 날입니다. ‘설에는 옷을 얻어 입고, 한가위에는 음식을 얻어 먹는다’는 속담이 있는 이유죠. 

 

 

따뜻한 정

 

추석에는 수많은 사람이 이동합니다.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도 있고, 집안 어른께 인사를 올리러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묘를 하느라 선산을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덕분에 전국 고속도로는 꽉 막히고, 기차표는 몇 달 전부터 동이 납니다. 평소에 가족을 만나면 한가하고 좋을 텐데, 일이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큰 집에 모여 친지와 재회하고 서로의 관계를 확인합니다. 같이 모여,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즐깁니다. 


사실 소비 의례로서의 추석, 그리고 선물 교환 의례로서의 추석은 모두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시작한다고 합니다. 인류학자 빅터 터너에 의하면, 소비 의례는 가장 가까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는 목적이 있다고 했죠. 가족 친지가 모여 뜨거운 정을 나누고 싶은 강렬한 마음이, 지옥 같은 교통 체증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추석에는 가족의 영역이 일시적으로 확장되는 흥미로운 정서적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숫자가 늘어납니다. 큰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외삼촌 등 여럿의 아버지가 생깁니다. 고모나 이모 등 ‘어머니’의 숫자도 확 늘어나죠. 형제자매의 규모도 갑자기 불어납니다. 형도 많아지고, 누이도 많아집니다. 핵가족이 보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전래의 대가족 집단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몇 안되는 기회입니다. 


네. 추석은 공동체의 정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친족 공동체라는 소중한 경험을 제공하는 아주 귀한 때입니다. 

 

진도의 강강술래, 1891년 촬영. 강강술래는 주로 추석 달밤에 행해지던 남도의 집단 놀이다. 주로 여자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서로의 정을 나누는 춤이다. 2009년에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진도의 강강술래, 1891년 촬영. 강강술래는 주로 추석 달밤에 행해지던 남도의 집단 놀이다. 주로 여자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서로의 정을 나누는 춤이다. 2009년에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추석이 힘들다는 당신에게 

 

매년 명절이면 볼멘 소리가 나옵니다. 주로 명절에 시댁 혹은 처가 중 어디를 먼저 가느냐에 대한 다툼, 음식 준비의 고된 어려움에 대한 불평, 귀향길과 귀성길의 짜증, 선물 비용에 대한 고민, 친척 어른의 잔소리에 대한 불평 등이죠. 그래서 아예 명절은 쇠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사실 먹을 것이 풍부한 시대이니, 추석이라고 색다른 음식을 직접 만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물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평소에 만나지 못하던 어른들의 잔소리를 견뎌야 하고, 여기저기 먼 길을 다니다 보면 귀한 휴일이 모두 날아가 버리죠. 추석이라고 일감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니, 연휴 앞뒤로 밀린 업무를 몰아 해야 하는데, 추석에는 그냥 집에서 혼자 푹 쉬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 깊이 공감합니다. 사실 전통의 명절을 제대로 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직접 수확한 햅쌀을 직접 빻아서 송편을 직접 쪄야죠. 송편 사이에 넣는 솔잎도 직접 따야 합니다. 네. 도저히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현대 사회에 맞게 간소하게 명절을 쇠는 것이 필요합니다. 선물도 가까운 친지, 그리고 어려운 이웃에게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년에 한번 볼까 말까 싶은 조카가 마음 아파할 잔소리도 줄여 주시고, 음식 준비도 분담해서 모두가 여유있고 행복한 명절이 되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간소한 추석을 쇠더라도, 추석의 진짜 의미는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처럼 풍요로운 씀씀이를 즐기고, 가족 친지 이웃과 좀더 넉넉한 인심을 나누며, 소중한 가족과 따뜻한 정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둥글게 밝은 보름달처럼 풍성하고 행복한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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