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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올리버 색스와 신경퇴행성질환 리티코-보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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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18일 14:09 프린트하기

사진 GIB, 제공
사진 GIB, 제공

지리적 격리종-병이 발생하는 섬-연구는 의학에서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여 종종 질병의 구체적 동인, 또는 유전자 돌연변이, 또는 그 질병과 관련 있는 환경적 인자를 알아내는 데 기여한다.
- 올리버 색스, ‘색맹의 섬’ 2부 ‘소철 섬’에서

 

“누가 밝혀내든 관계없네. 난 그저 그때까지 살아있기를 바랄 뿐이야.”
- 레너드 컬렌드

 

‘종의 기원’을 내고 12년이 지난 1871년 62세의 찰스 다윈은 역작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을 출간한다. 그런데 이 책은 구성이 좀 이상하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두 가지 토픽을 묶었는데, 꼭 그래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분량도 900쪽이 넘어 더 그렇다.

 

사실 다윈은 한 권으로 내고 싶었는데, 출판사에서 두 권으로 쪼개 냈다고 한다. 그런데 분량을 기준으로 나누다 보니 분량이 짧은 1부 인간의 유래(1~7장)에 분량이 긴 2부 성선택의 앞부분(8~11장)이 묶여 1권이 됐고 2부의 나머지 부분(12~21장)이 2권이 됐다.

 

한글판이 없던 20여 년 전 이 책을 볼 일이 있어 인터넷서점 아마존에서 샀는데, 다윈이 원한대로 한 권짜리 책이었다. 다만 본문은 1871년 초판본을 그대로 찍은 것이기 때문에 423쪽에서 1권이 끝나고 다음 페이지에 2권 표지와 목차가 나오고 다시 1쪽부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뒤의 찾아보기에서 쪽수 앞에 1권(i.)과 2권(ii.)이 표시돼 있다.

 

다행히 2006년 두 권짜리 한글판이 나왔는데 원서보다 합리적으로 나눴다. 즉 1권은 330쪽으로 분량이 좀 적어도 1부 인간의 유래만 담았고(1~7장), 2권은 580쪽이나 되지만 성선택을 다 담았다(8~21장). 

 

그런데 제목은 좀 아쉽다. 원서 제목이 좀 어색하다 보니 뒤를 자르고 ‘인간의 유래’를 제목으로 한 것 같은데, 성선택을 다룬 2권의 제목이 ‘인간의 유래 2’니 좀 어색하다. 21장 ‘전체 요약과 결론’에서 인간의 유래를 다루기는 하지만, 그냥 원서대로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을 제목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물론 다윈이 애초에 두 권으로 냈으면 이럴 문제도 없었다. 사실 결론을 두 부분으로 정리해 따로 붙이면 된다. 최근 성선택이 자연선택만큼이나 진화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 만일 다윈이 성선택을 다룬 2부를 ‘성선택’이라는 독자적인 제목의 책으로 냈다면, 지금쯤 ‘종의 기원’만큼이나 지명도가 높은 책이 돼 있지 않을까.

 

1871년 찰스 다윈은 900여 쪽 분량의 대작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을 출간했다. 다윈은 한 권으로 내길 바랐으나 당시 출판사는 450쪽짜리 두 권으로 출간했다. 왼쪽은 1981년 프린스턴대출판부에서 낸 한 권짜리 책이다. 2006년 ‘인간의 유래’라는 제목으로 두 권짜리 한글판이 나왔는데 주제에 따라 나눠 ‘성선택’ 부분인 2권이 더 두껍다. 오른쪽은 올리버 색스가 자신의 책 가운데 가장 아꼈다는 ‘색맹의 섬’으로 한글판으로 최근 개정판이 나왔다(사진은 2015년 나온 1판). - 강석기 제공
1871년 찰스 다윈은 900여 쪽 분량의 대작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을 출간했다. 다윈은 한 권으로 내길 바랐으나 당시 출판사는 450쪽짜리 두 권으로 출간했다. 왼쪽은 1981년 프린스턴대출판부에서 낸 한 권짜리 책이다. 2006년 ‘인간의 유래’라는 제목으로 두 권짜리 한글판이 나왔는데 주제에 따라 나눠 ‘성선택’ 부분인 2권이 더 두껍다. 오른쪽은 올리버 색스가 자신의 책 가운데 가장 아꼈다는 ‘색맹의 섬’으로 한글판으로 최근 개정판이 나왔다(사진은 2015년 나온 1판). - 강석기 제공

 

소철 섬 괌의 풍토병

 

얼마 전 신문 책소개란에서 지난 2015년 작고한 올리버 색스의 ‘색맹의 섬’ 개정판이 출간됐다는 단신을 봤다. 그런데 색스가 자서전에서 “‘색맹의 섬’은 여러 면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책이었고 지금까지도 그렇다”고 썼다고 한다. 대표작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비롯해 색스의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색맹의 섬’은 모르고 있던 필자는 얼른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봤다.

 

“이 책은 사실 두 권으로, 두 차례의 미크로네시아 여행을 각각 기록한 별개의 이야기다.”

 

색스는 머리말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책 제목은 1부의 제목이고 2부의 제목은 ‘소철 섬’이다. 문득 다윈의 ‘인간의 유래’가 떠올랐다. 그럼에도 다른 점이 있는데, 먼저 원서 제목 자체가 ‘색맹의 섬(The Island of the Colorblind)’으로 전체를 담지 않았다. 다음으로 160쪽이 조금 넘는 1부만으로는 아무래도 책 한 권을 만들기에 무리다. 즉 분량을 고려하면 두 이야기를 한 권으로 묶은 게 적절한 판단으로 보인다. 아무튼 미크로네시아 여행기로 희귀한 풍토병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은 있으니 말이다.

 

1부 ‘색맹의 섬’은 선천적인 전(全)색맹, 즉 망마가에 색을 감지하는 원뿔세포가 없어 흑백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꽤 사는 산호섬 핀지랩 방문기다. 전체 인구 700명 가운데 57명이 전색맹으로 보통 전색맹 발생률이 3만 분의 1 미만인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비율이다. 색스는 책에서 전색맹인 사람들이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이어서 2부 소철 섬을 읽다가 ‘정말 ’인간의 유래‘랑 비슷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190여 쪽에 이르는 분량으로 책 제목이 된 1부보다 더 많다. 게다가 다루는 주제가 적어도 과학의 측면에서 심오하다. 즉 신경퇴행성질환인 리티코-보딕이라는 풍토병에 대한 내용으로, 오늘날 고령사회가 되면서 신경퇴행성질환의 심각성이 점점 더 부각되는 상황에서 많은 영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무대는 유명 여행지로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찾는 섬인 괌이다(필자는 아직 못 가봤지만). 이곳에서는 약 100년 전부터 이상한 병이 만연했는데, 일명 루게릭병으로 불리는 신경위축성경화증(ALS)과 비슷한 진행성 마비 증상은 ‘리티코(lytico)’로 파킨슨병과 흡사한 경직과 때로 치매 증상을 동반하는 ‘보딕bodig)’이다. 이 병이 기승을 부리던 1950년대와 60년대 많은 서구의 신경학자들은 리티코-보딕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괌을 찾았다. 

 

1993년 당시 60세로 뉴욕대 의대에서 신경과 전문의로 일하던 색스는 존 스틸이라는 의사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12년째 괌에 살고 있면서 이곳의 풍토병인 리티고-보딕에 걸린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는 스틸은 색스에게 괌을 방문해달라고 부탁한다.

 

색스는 1965년 뉴욕 베스아브라함병원에 취직해 특이한 환자들을 보게 된다. 1920년대 유행한 수면병(기면성뇌염)에 걸려 그 후유증으로 수십 년째 몸이 굳은 상태로 입원해 있는 사람들이다. 색스는 이들에게 L-도파라는, 막 나온 파킨슨병 치료제를 투여했고 놀랍게도 이들은 깨어났다. 이 당시 환자일지를 정리한 책이 1973년 출간한 ‘깨어남’으로 읽어보면 충격적인(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내용이 꽤 나온다. 

 

스틸은 ‘깨어남’을 읽고 자기 환자들과 과거 색스가 본 환자들을 비교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흥미를 느낀 색스는 괌으로 날아가 스틸과 함께 환자들을 방문했고 리티고-보딕의 원인을 밝히려고 시도한 많은 과학자들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5년 괌 미군기지에 군의관으로 부임한 해리 짐머만은 이 지역에 특이한 신경위축성경화증 발병 사례를 처음 보고한다. 그 뒤 비슷한 보고가 이어지자 미 국립보건원(NIH0의 유행병학자 레너드 컬랜드는 원인을 밝히기 위해 팀을 꾸려 1953년 괌으로 갔다. 

 

괌의 원주민인 차모로족은 소철 씨를 간 파당을 식재료로 즐겨 먹었다. 특히 기근이 잦았던 20세기 전반 많이 먹었다. 이 지역의 풍토병인 신경퇴행성질환 리티코-보딕은 특히 1950년대와 60년대 만연했다. 당시 리티코-보딕의 원인을 밝히던 과학자 가운데 몇몇이 파당에 주목한 이유다. - 사이언스 제공
괌의 원주민인 차모로족은 소철 씨를 간 파당을 식재료로 즐겨 먹었다. 특히 기근이 잦았던 20세기 전반 많이 먹었다. 이 지역의 풍토병인 신경퇴행성질환 리티코-보딕은 특히 1950년대와 60년대 만연했다. 당시 리티코-보딕의 원인을 밝히던 과학자 가운데 몇몇이 파당에 주목한 이유다. - 사이언스 제공

당시 괌의 토착민인 차모로족의 경우 성인 사망자의 10%가 리티고가 원인이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컬랜드는 리티코 환자 40여 명을 봤고 아울러 현지인들이 보딕이라고 부르는 파킨슨증 환자(일부는 치매도 동반)도 20여 명 만났다. 

 

컬랜드는 두 병이 관련돼 있다고 생각했다. 1960년 신경병리학자 히라노 아사오가 괌에 와 환자들의 뇌를 연구한 결과 병리학적으로 리티코와 보딕이 증상이 다르게 나타난 하나의 병임을 밝혀냈다. 

 

처음에 컬랜드는 이 병이 유전질환이라고 추측했다. 이 병에 특히 저항력이 약한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괌에 와 차모로 부족에 동화돼 살아온 외부인이 발병한 사례가 여러 건 보고되자 환경요인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 결과 차모로 사람들이 즐겨 먹는 ‘파당’이라는 식재료가 원인으로 떠올랐다. 파당은 괌에 많은 소철의 씨를 갈아 만든 가루다. 소철의 씨에는 독이 있기 때문에 물에 잘 씻는 해독과정을 거치는데 파당에 잔류한 독이 신경세포에 작용해 수십 년 뒤 발병한다는 것이다. 평소 파당을 많이 먹는 가정에서 환자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리고 소철 씨에서 신경독을 일으키는 아미노산인 BOAA와 구조가 아주 비슷한 BMAA가 분리됐다. BMAA 역시 신경중독으로 인한 마비를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수차례 동물실험에도 불구하고 리티코-보딕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동물은 한 마리도 없었다. 토착병의 원인이 다시 미궁에 빠진 것이다.

 

그런데 1986년 신경독학자 피터 스펜서가 BMAA로 원숭이에서 리티코와 유사한 증세를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게다가 다량을 투여하면 신경위축성경화증 같은 증상을, 소량을 투여하념 파킨슨증을 일으킨다고 덧붙였다. 각각 리티코와 보딕에 해당하는 증상이다. 

 

그러나 스펜서가 원숭이에게 먹인 BMAA는 파당으로 치면 엄청난 양이라는 게 문제였다. 즉 이 실험을 사람에게 재현할 경우 12주 동안 소철 씨를 1.5톤이나 먹어야 한다. 책에는 이 밖에도 광물질 결핍 또는 과잉섭취, 바이러스, 프리온 등 다양한 가능성을 언급하지만 답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끝난다. 

 

 

박쥐 먹는 식습관이 원인?

 

다만 1945년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괌에 기근이 잦아 소철의 씨를 갈아 먹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세대에서 리티고-보딕 발병률이 특히 높았고 미군 점령 이후 서구식단으로 바뀌고 파당이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사실상 더 이상 먹지 않게 된 1960년대 이후 태어난 사람에게선 리티고-보딕 환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언급이 있다.

 

원서는 1996년 나온 거라 혹시 그사이 원인이 밝혀졌나 궁금해진 필자는 검색을 좀 해봤는데 2006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이와 관련한 장문의 기사가 실렸다는 걸 알게 돼 찾아 읽어봤다.

 

2002년 민속식물학자 폴 콕스는 신경학자이자 유명 작가인 올리버 색스와 함께 소철 씨를 먹어 몸에 독성 아미노산 BMAA가 축적된 과일박쥐를 즐겨 먹은 사람들이 리티코-보딕에 걸렸다는 박쥐 가설을 제안했다. 그 뒤 소철 뿌리에 공생하는 시아노박테리아(위)가 BMAA를 만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사이언스 제공
2002년 민속식물학자 폴 콕스는 신경학자이자 유명 작가인 올리버 색스와 함께 소철 씨를 먹어 몸에 독성 아미노산 BMAA가 축적된 과일박쥐를 즐겨 먹은 사람들이 리티코-보딕에 걸렸다는 박쥐 가설을 제안했다. 그 뒤 소철 뿌리에 공생하는 시아노박테리아(위)가 BMAA를 만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사이언스 제공

하와이 미 국립열대식물정원의 민속식물학자 폴 콕스는 괌의 리티코-보딕과 소철 씨의 연관성, 스펜서의 원숭이 실험, 용량의 비현실성에 대한 비판에 대한 얘기를 듣고 원주민들의 식생활을 면밀히 조사해보기로 했다. 그 결과 괌 사람들이 과일박쥐를 즐겨 먹었고 이 박쥐가 소철 씨를 즐겨 먹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흥미롭게도 이 박쥐는 사람 등쌀에 1980년대 멸종했다. 

 

콕스는 ‘색맹의 섬’(물론 2부 소철 섬)을 읽고 색스에게 연락해 몸에 BMAA가 축적된 박쥐를 즐겨 먹은 사람들이 훗날 리티고-보딕에 걸렸을 거라는 가정을 제시했다. 즉 스펜서의 원숭이 실험에 쓰인 용량만큼 먹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색스는 그럴듯하다고 생각했고 두 사람은 2002년 학술지 ‘신경학’에 박쥐 가설을 발표했다. 박쥐 개체수가 줄어든 것과 리코티-보딕 발병건수가 줄어든 게 비례한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 뒤 콕스는 이 가정을 입증하기 위해 1950년대 괌에서 채집한 박쥐 견본 세 점에서 피부 시료를 얻어 BMAA를 분석했고 농도가 소철 씨의 수백 배에 이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콕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철 씨의 BMAA도 사실은 뿌리에 공생하는 시아노박테리아가 만드는 것임을 밝혔다.

 

그리고 리티코-보딕으로 죽은 환자 6명의 뇌조직에서 BMAA를 검출했고 알츠하이머병으로 죽은 캐나다인 두 명의 뇌에서도 비슷한 농도의 BMAA를 확인했다. 즉 소철 씨를 먹은 과일박쥐를 먹은 사람만 신경퇴행성질환에 걸리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2005년 콕스는 시아노박테리아 30종 가운데 29종이 BMAA를 만들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만일 시아노박테리아가 만드는 BMAA가 신경퇴행성질환을 일으키는 게 맞다면 이는 괌의 문제만이 아니다. 기사는 이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엇갈리고 있음을 보여주며(과대망상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 마무리됐다. 그 사이 12년이 지났으므로 어떻게 됐나 싶어 위키피디아에서 BMAA를 검색했다.

 


섬유 형성하는 변이 단백질 만들어

 

놀랍게도 파당과 과일박쥐로 섭취한 BMAA가 리티코-보딕의 원인이라는 게 기정사실화돼 있다. 또 신경경화성위축증,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헌팅턴병 등 여러 신경퇴행성질환 환자의 뇌에서 BMAA가 검출됐다는 연구결과들이 소개돼 있다. 

 

많은 신경퇴행성질환이 결국은 변이 단백질이 엉킨 덩어리가 뉴런에 침착한 결과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어느 부위의 뉴런이 죽었느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증상이 나타난다.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프리온질환,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신경경화성위축증(루게릭병), 헌팅턴병, 루이체치매, 전두측두엽치매. - JCI 제공
많은 신경퇴행성질환이 결국은 변이 단백질이 엉킨 덩어리가 뉴런에 침착한 결과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어느 부위의 뉴런이 죽었느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증상이 나타난다.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프리온질환,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신경경화성위축증(루게릭병), 헌팅턴병, 루이체치매, 전두측두엽치매. - JCI 제공

작용 메커니즘도 밝혀졌다. BMAA는 운동뉴런의 수용체에 작용해 과잉흥분을 일으키고 그 결과 뉴런에서 항산화물질인 글루타치온이 고갈돼 산화스트레스로 세포가 기능을 못하고 결국 죽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메커니즘은 BMAA가 리보솜에서 단백질(폴리펩티드)가 만들어질 때 아미노산 세린을 대신해 들어가면서 변이 단백질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즉 운반RNA가 BMAA를 구조가 비슷한 세린으로 착각해 가져온 결과다. 이렇게 중간중간 엉뚱한 아미노산(BMAA)이 들어있는 변이 단백질은 잘못 접히면서 서로 결합해 섬유를 만들고 이게 엉켜 신경세포에 침착하고 뉴런이 하나둘 죽으면서 수십 년 뒤 증세가 나타나는 것이다.

 

책에는 색스가 스틸의 안내로 괌메모리얼병원의 실험실에서 리티코-보딕 환자의 뇌 슬라이드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장면이 나온다. 색스는 “배율을 높였더니 엄청난 수의 엉킨 신경섬유가 보였는데 파괴된 신경세포 속에서 복잡하게 뒤엉킨 얼룩덜룩한 덩어리가 눈에 거슬리게 두드려져 보였다”고 쓰고 있다.  

 

이어서 뇌염후파킨승증과 진행성핵상신경마비 환자의 뇌 슬라이드를 보여준 스틸은 “이것들 알츠하이머병에서 볼 수 있는 신경세포 엉킴과 아주 비슷하다”며 “어쩌면 이 엉킴에 신경계퇴행에 관한 중대한 단서가 들어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20여 년이 지나서야 BMAA가 포함된 변이 단백질 신경섬유가 이런 엉킴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시아노박테리아가 내보내는 아미노산 BMAA가 변이 단백질을 만들어 여러 신경퇴행성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밝혀지면서 BMAA를 많이 함유한 식재료를 찾는 연구가 진행됐 상어지느러미에 BMAA 농도가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샥스핀 스프. - 위키피디아 제공
시아노박테리아가 내보내는 아미노산 BMAA가 변이 단백질을 만들어 여러 신경퇴행성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밝혀지면서 BMAA를 많이 함유한 식재료를 찾는 연구가 진행됐 상어지느러미에 BMAA 농도가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샥스핀 스프. - 위키피디아 제공

시아노박테리아는 곳곳에 존재하고 따라서 이들이 내놓는 BMAA가 농축된 식재료를 찾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이런 식재료를 피해야 신경퇴행성질환에 걸릴 위험성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BMAA가 고농도로 존재한다는 식재료로 밝혀진 게 상어지느러미, 즉 샥스핀이다. 중국의 3대 진미라는 샥스핀이야 고급 요리에나 들어가는 것이라 서민들은 먹을 기회도 없고 상어 학살 논란도 있고 해서 먹지 않는 사람도 많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미국의 유행병학자 레너드 컬랜드는 1953년 괌 현지에서 리티코-보딕의 원인을 규명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1960년대 소철 씨 분말인 파당을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인정을 받지 못한 채 2001년 작고했다. - 메이요클리닉 제공
미국의 유행병학자 레너드 컬랜드는 1953년 괌 현지에서 리티코-보딕의 원인을 규명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1960년대 소철 씨 분말인 파당을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인정을 받지 못한 채 2001년 작고했다. - 메이요클리닉 제공

2006년 ‘사이언스’ 기사에는 박쥐 가설을 내놓은 폴 콕스가 50년 가까이 리티코-보틱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헌신했던 레너드 컬렌드를 만났을 때 들은 말을 회상하는 부분이 있다. 당시 레너드는 “누가 밝혀내든 관계없네”며 “난 그저 그때까지 살아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지만 ‘그때까지 살아있지 못하고’ 2001년 79세에 타계했다. 컬렌드의 연구를 바탕으로 콕스가 원인을 밝혀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6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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