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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울트라디언 리듬을 알면 삶이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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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26일 17:00 프린트하기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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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보낼 때면 우리 사회에 여전한 남녀차별의 문제가 늘 불거지곤 한다.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여성의 몫인 것도 부당한데 정작 당일 아침 차례는 시댁에서 지내는 집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추석에는 또 다른 이슈가 떠올랐다. 바로 호칭 문제다.

 

같은 형제자매인데 아내 쪽은 처형, 처제, 처남이라고 부르는 반면 남편 쪽은 손아래인 경우도 아가씨, 도련님, 서방님처럼 사극에서 종이 주인을 대하는 호칭을 쓰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런 구태의연한 유교의 잔재를 털어버릴 때도 됐다는 것이다. 

 

언어를 보면 그 사회가 뭘 중요시했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호칭이 세분되고 차별화된 건 지난 수천 년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벼농사에 맞춰 부계 대가족 구조를 만든 동아시아 사회가 ‘사람의 관계’에 큰 의미를 뒀기 때문이리라. 반면 서구는 형제자매 호칭에 위아래 구분이 없고 굳이 밝히려면 형용사(elder, younger)를 쓴다. 남편이나 아내 쪽은 뒤에 ‘법적으로(-in-law)’만 붙이면 된다.

 

그런데 ‘사물의 관계’에서는 그 반대인 것 같다. 동아시아는 대체로 두루뭉술한 반면 서구는 꽤 세분돼 있다. 그 결과 서구에서 만든 과학 용어를 일본어(한자어)나 우리말로 번역하다 보면 대응하는 마땅한 단어가 없어 곤란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ultraviolet은 자외선으로, infrared는 적외선으로 번역한다. 'ultra'와 'infra'라는 반대 의미의 접두어가 똑같이 외(外)로 바뀌었는데, 이 경우는 문제가 없다. 자외선(紫外線), 즉 가시광선 범위에서 짧은 파장의 극단인 보라색 빛보다 바깥인 빛은 그보다 파장이 더 짧아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을 의미하는 게 명쾌하기 때문이다. 보라색 빛보다 파장이 긴 파란색 빛 역시 보라색 범위 밖에 있지만 이를 자외선이라고 부를 이유는 없다. 

 

같은 논리로 적외선(赤外線), 즉 가시광선 범위에서 긴 파장의 극단인 빨간색 빛보다 바깥인 빛은 그보다 파장이 더 길어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을 뜻한다.

 

그런데 이런 번역이 곤란한 경우가 있으니 오늘의 주제인 울트라디언 리듬이다. 지구 자전을 따르는 24시간 주기의 리듬인 'circardian rhythm'은 일주기 리듬이라고 번역한다. 울트라디언(ultradian)은 울트라바이올렛(ultraviolet, 자외선)의 방식을 따르면 ‘일주기외 리듬’으로 번역할 수 있다. 

 

그런데 가시광선과는 달리 24시간은 범위가 없고 따라서 이를 벗어난 리듬은 두 방향이다. 즉 24시간보다 짧거나 길다. 그렇다면 울트라디언은 이 둘을 포괄하는 단어일까. 울트라바이올렛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24시간보다 짧은 주기만을 뜻한다. 그렇다면 24시간보다 긴 주기의 리듬을 뜻하는 용어는 혹시 ‘인프라디언 리듬(infradian rhythm)’일까. 

 

그렇다. 인프라디언리듬의 한 예가 여성의 월경이다. 그런데 적외선 식으로 하면 인프라디언 리듬도 ‘일주기외리듬’으로 번역되므로 문제가 된다. 

 

검색해보면 울트라디언 리듬을 하루이내 리듬, 초일주기 리듬 또는 풀어서 하루보다 짧은 주기라고 번역하고 있다. 아직 공식 번역어가 없는 것 같아 이 글에서는 그냥 울트라디언 리듬으로 쓰겠다.

 

 

90분 주기 보이는 잠

 

우리 몸에 24시간보다 짧은 주기의 리듬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부각된 건 65년 전인 1953년 학술지 ‘사이언스’(9월 4일자)에 두 쪽짜리 논문이 실리면서부터다. 렘(REM)수면의 존재를 처음으로 밝힌 유명한 논문으로, 미국 시카고대 생리학과의 수면연구가 나다니엘 클라이트만 교수와 대학원생 유진 아세린스키가 저자다.

 

이들은 잠이 안구가 빠르게 움직이는(Rapid Eye Movement) 렘수면과 거의 움직임이 없는 비렘(NREM)수면으로 나뉘고 대략 90분 주기를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하룻밤 자는 동안 울트라디언 리듬이 네다섯 차례 진행된다는 말이다. 이후 클라이트만은 대학원생 윌리엄 디먼트(훗날 ‘미국 수면의학의 아버지’로 불린다)와 함께 추가 연구를 통해 렘수면일 때 꿈을 꾼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1953년 잠이 렘수면과 비렘수면으로 이뤄져 있고 대략 90분 주기로 반복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잠의 구조는 울트라디언리듬의 대표적인 예다. - ‘Why We Sleep’제공
1953년 잠이 렘수면과 비렘수면으로 이뤄져 있고 대략 90분 주기로 반복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잠의 구조는 울트라디언 리듬의 대표적인 예다. - ‘Why We Sleep’제공

클라이트만은 90분 주기의 울트라디언 리듬이 깨어있을 때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잠도 리듬에 따라 깊이 잘 때와 얕게 딸 때가 있듯이 깨어있을 때도 각성도가 높을 때와 낮을 때가 리듬을 타며 반복된다는 것이다. 1960년 클라이트만은 이를 가리키는 ‘기본휴식활동주기(basic rest-activity cycle)’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1982년 국제학술지 ‘수면(Sleep)’에 발표한 ‘기본휴식활동주기-22년 후’라는 제목의 리뷰논문에서 클라이트만은 자신의 이론을 지지하는 다양한 연구사례를 소개했다. 즉 식욕과 목마름, 흡연욕구 등이 평균 96분의 주기로 오르내린다는 연구결과가 있고 복잡해 주의력이 있어야 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능력도 대략 90분 주기로 편차를 보인다. 심장박동수와 호흡수, 체온, 위의 운동성 등 다양한 생리지표도 이를 따른다.

 

클라이트만이 든 예들 가운데 특히 필자의 흥미를 끈 건 ‘잠이 드는 능력’으로 역시 90~120분 주기의 울트라디언 리듬을 탄다고 한다. 즉 무조건 깨어있는 시간에 비례해 잠이 드는 능력이 커지는, 즉 쉽게 잠드는 게 아니라 주기적인 편차가 있다는 말이다. 밤에 잠이 쏟아질 때 잠이 들지 못하면 한동안 잠이 안 오는 경험을 여러 차례 해서인지 더 와 닿았다.

 

기본휴식활동주기, 즉 울트라디언 리듬을 보이는 또 다른 생리현상으로 호르몬 분비가 있다. 특히 스트레스호르몬으로 불리는 코르티솔(cortisol)에서 뚜렷하다. 코르티솔의 분비는 기본적으로 일주리듬을 보이지만 매끄러운 사인 곡선이 아니라 다양한 짧은 주기의 날카로운 피크로 이루어진 그래프다. 즉 일주리듬과는 별개로 울트라디언 리듬도 보인다는 말이다.

 

코르티솔 분비량은 뇌의 시상하부에서 시작해 뇌하수체를 거쳐 부신피질에 이르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HPA)축’이라는 회로의 활동성에 따라 조절된다. 많은 정신질환과 대사질환에서 HPA축의 울트라디언 리듬이 깨져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시상하부에는 일주리듬을 관장하는 생체시계의 본부인 시교차상핵(SCN)이 존재한다. 따라서 코르티솔 분비의 일주리듬은 SCN의 신호를 받은 결과일 것이다. 반면 울트라디언 리듬의 발생 메커니즘은 미스터리였다.

 

건강한 여성 두 명의 코르티솔 혈중 농도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로 10분 간격으로 측정한 데이터(빨간색 점)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24시간 일주기리듬을 보이는 가운데 그보다 짧은 주기의 울트라디언리듬도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코르티솔은 HPA축에 따라 조절되므로 H(시상하부)에서 두 리듬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일주기리듬을 일으키는 시교차상핵이 시상하부에 있다. - ‘PLOS ONE’ 제공
건강한 여성 두 명의 코르티솔 혈중 농도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로 10분 간격으로 측정한 데이터(빨간색 점)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24시간 일주기리듬을 보이는 가운데 그보다 짧은 주기의 울트라디언 리듬도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코르티솔은 HPA축에 따라 조절되므로 H(시상하부)에서 두 리듬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일주기리듬을 일으키는 시교차상핵이 시상하부에 있다. - ‘PLOS ONE’ 제공

 

 

리듬 주기가 일정하지는 않아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 9월 18일자 온라인판에는 호르몬 분비를 포함한 여러 울트라디언 리듬을 일으키는 부위일 가능성이 높은 곳을 찾았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역시 시상하부에 있는 조직인 실방핵(PVN)과 하부실방구간(SPZ)에서 세포 내 칼슘 농도가 울트라디언 리듬을 보인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반면 시교차상핵(SCN)은 이런 리듬을 발생시키지 못했다.

 

중국 푸단대와 일본 홋카이도대 공동 연구자들은 생쥐의 시상하부에서 SCN과 SPZ, PVN이 포함된 절편 시료를 얻어 배양하면서 칼슘 리듬을 분석했다. 세포 내 칼슘 농도는 뉴런의 활동성을 반영하는 지표다.

 

시상하부의 세포 내 칼슘 농도 변화의 주기성을 보여주는 그래프다. 왼쪽은 하부실방구간(SPZ)과 실방핵(PVN) 영역으로 30분에서 4시간 주기의 울트라디언리듬이 강하게 나타난다. 위는 8일 동안의 데이터이고 아래는 그 가운데 24시간을 확대한 그래프다. 오른쪽은 시교차상핵(SCN)으로 24시간 주기의 일주기리듬은 뚜렷하지만 울트라디언리듬은 자세히 봐야 보인다. SPZ-PVN이 울트라디언리듬을 일으킨다는 말이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시상하부의 세포 내 칼슘 농도 변화의 주기성을 보여주는 그래프다. 왼쪽은 하부실방구간(SPZ)과 실방핵(PVN) 영역으로 30분에서 4시간 주기의 울트라디언 리듬이 강하게 나타난다. 위는 8일 동안의 데이터이고 아래는 그 가운데 24시간을 확대한 그래프다. 오른쪽은 시교차상핵(SCN)으로 24시간 주기의 일주기리듬은 뚜렷하지만 울트라디언 리듬은 자세히 봐야 보인다. SPZ-PVN이 울트라디언 리듬을 일으킨다는 말이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그 결과 SPZ-PVN는 30분에서 4시간 주기의 울트라디언 리듬이 큰 진폭으로 나타난 반면 SCN에서는 칼슘 농도가 일주리듬을 따랐고 울트라디언 리듬은 진폭이 작아 자세히 봐야 그 존재를 알 수 있었다. 톱날이 연상되는 패턴이다. 이는 SPZ-PVN에서 울트라디언 리듬이 발생했고 SCN이 신호를 받았음을 의미한다. 

 

연구자들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SCN만 배양해 칼슘 리듬을 측정했다. 예상대로 일주리듬은 그대로였지만 울트라디언 리듬은 사라졌다.

 

흥미롭게도 SPZ-PVN의 기능 가운데 하나가 SCN의 일주리듬 신호를 받아 전달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울트라디언 리듬에서는 역할이 반대다.

 

실방핵(PVN)은 여러 뉴런으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신경분비뉴런은 옥시토신, 바소프레신과 함께 부신피질자극호르몬분비호르몬(CRH)을 분비한다. CRH는 바로 밑 뇌하수체로 이동하고 이 신호를 받은 뇌하수체는 부신피질자극호르몬(ACTH)을 분비한다. 부신에 도착한 ACTH는 코르티솔 분비를 촉진한다. 따라서 실방핵의 칼슘 농도가 울트라디언 리듬을 보인다는 게 부신의 호르몬 분비가 울트라디언 리듬을 보이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울트라디언 리듬 특히 기본휴식활동주기의 개념을 일상생활에 적용하면 좀 더 건강하고 효율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90분 주기에서 활동 기간에는 열심히 일하거나 공부하다 휴식 기간으로 들어섰다는 신호가 오면(몸이 느낄 것이다) 잠깐 쉬어주는 게 시간이 아깝다며 세 시간 네 시간 계속 붙잡고 있는 것보다 몸에도 좋고 성과도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1953년 렘수면을 발표하고 1960년 기본휴식활동주기를 제안한 나다니엘 클라이트만 교수는 1999년 10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가 살아있을 때 이런 연구결과가 나왔다면 무척이나 기뻐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수면과학을 개척한 나다니엘 클라이트만 교수(1895~1999)는 본인이 직접 피험자로 나서 수많은 실험을 수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60년 그가 제안한 기본휴식활동주기 개념은 피로사회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면과학을 개척한 나다니엘 클라이트만 교수(1895~1999)는 본인이 직접 피험자로 나서 수많은 실험을 수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60년 그가 제안한 기본휴식활동주기 개념은 피로사회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6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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