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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침몰하는 뱃머리와 아파트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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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30일 11:00 프린트하기

 

 

GIB 제공
GIB 제공

침몰하지 않으리라 믿었던 배가 침몰합니다. 길이 270m, 배수량 5만t에 탑승 인원 3500여명에 달하는 당시 최대의 호화 여객선은 북대서양의 차가운 바다에 가라앉습니다. 네. 잘 알려진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입니다. 영화 <타이타닉>는 침몰 장면에는 여러 인물들의 모습이 차례로 비춰집니다. 어떤 노부부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마지막을 함께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포자기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담담하게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이도 있고, 의미심장하게 마지막 찬송가를 연주하는 이도 있습니다. 유한한 삶에 대한 인간의 다양한 반응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다로 뛰어드는 나그네쥐

 

스칸디나비아 반도에는 레밍이라는 쥐가 살고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나그네쥐입니다. 큰 무리를 지어 다니는 특징이 있는데, 강한 번식력 때문에 몇 년이 지나면 엄청난 숫자로 불어납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수가 많이 불어난 나그네쥐가 집단으로 해안 절벽에 뛰어드는 현상이 발견된 것입니다. 물론 바다에 뛰어든 쥐는 모조리 죽습니다. 


어떻게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20세기 중반 이른바 '집단 선택(group selection)'이라는 가설이 제안됩니다. 개체 수가 많이 늘어난 나그네쥐는 서식지의 먹이를 모두 먹어 치웁니다.

 

자칫하면 멸종될 수 있죠. 그래서 일부 나그네쥐가 모두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는 것입니다. 집단을 위해 희생하는 나그네쥐가 있는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유리해지겠죠. 그래서 아예 무리의 숫자가 늘어나면, 각자 알아서 자살하는 습성이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생물학자 베로 윈 에드워즈(Vero Wynne-Edwards)의 주장을 따르면, 각 개체는 전체 집단의 수준에서 최적이 되는 인구를 자체적으로 유지합니다. 집단이 커지면 알아서 새끼를 낳지 않고, 너무 커지면 자살까지도 감행한다는 것이죠. 조지 윌리엄스(George Williams) 등 대부분의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러한 집단선택설을 크게 비판했습니다. 수학적으로도 집단 선택은 현실에서 거의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라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집단의 수명이 개체의 수명보다 짧거나 집단 간의 교배가 완전 차단되는 등 비현실적인 조건이 성립해야만 집단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나그네쥐는 종종 집단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죽는데, 집단 전체를 위해 이타적 자살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환경에 대한 오인과 집단적 관성에 따른 비합리적 행동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 위키미디어 제공
나그네쥐는 종종 집단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죽는데, 집단 전체를 위해 이타적 자살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환경에 대한 오인과 집단적 관성에 따른 비합리적 행동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 위키미디어 제공

 

집단 순응의 심리

 

나그네쥐는 도대체 왜 바다에 뛰어드는 것일까요? 


몇 가지 주장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가설에 따르면 ‘뒤에서 미니까 어쩔 수 없이 빠진다’는 것입니다. 나그네쥐는 무리를 지어서 적당한 생태적 적소를 찾아다닙니다. 먹이가 떨어지면 새로운 곳으로 한꺼번에 이동합니다. 그런데 절벽 앞에 다다르면 맨 앞의 쥐는 돌아가고 싶겠지만, 뒤따르는 쥐는 절벽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므로 직진을 계속합니다. 뒤에서 밀어붙이니까 달리 갈 곳이 없어진 선두 행렬은 불가피하게 투신하는 것이죠. 우스운 설명 같지만,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는 일종의 집단적 공황인데, 무리 생활을 하는 포유류 전반에서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는 개체 간의 신호 전달 시스템을 통해서 자신의 행동을 조절합니다. 무리의 행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스스로를 조율합니다. 집단의 행동에 순응하는 심리적 경향은 오랜 세월 동안 진화했는데, 물론 생존과 번식에 상당히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야생의 환경에서 독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주 위험합니다. 무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도박입니다. 친구들과 같이 등반하다가 혼자 무리에서 떨어져 본 경험이 있는지요? 아무도 없는 산 속에 혼자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심각한 공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불안이 머리 끝까지 치솟고, 눈 앞이 캄캄해지며,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유전자에 깊이 새겨진 본성입니다. 


사실 이러한 시스템은 평상시에는 아주 잘 작동합니다. 많은 사람이 가는 대로 따라가면 크게 손해볼 일은 없습니다. 이것저것 따져 고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마음도 편안합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급변하는 환경에서는 전혀 예기치 못한 불리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타이타닉 호의 침몰

 

타이타닉이 침몰할 때, 승객과 승무원이 보인 반응은 백인백색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승무원과 승객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궁리하는 쪽을 택합니다. 배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아래 층의 사람들은 갑판으로 질주합니다. 선수가 먼저 가라앉자 이들은 이제 선미를 향합니다. 선수가 점점 더 가라앉으면서, 배는 더 기울어지고 사람들은 물에 하나 둘 빠지기 시작합니다. 배꼬리에 안전한 자리를 확보한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배가 가라앉으면서 선미는 오히려 하늘을 향해 높이 치솟습니다. 그 순간이 영원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는. 


불안감에 빠진 사람들은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지 못합니다. 사실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찬찬히 주변을 돌아보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당장 옆에서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을 보고 나면, 이리저리 한가하게 따질 마음이 들 수 없습니다. 무작정 아직 가라앉지 않은 곳으로 질주하게 됩니다. 마치 나그네쥐처럼 말이죠. 앞에 있는 사람이 ‘이제 그만! 앞은 절벽이다!’를 외쳐도 들리지 않습니다. 

 

타이타닉 호의 침몰(1912년 작). 그림과 달리 타이타닉은 선수부터 침몰을 시작했는데, 그래서 일시적으로 선미가 하늘로 솟구쳤다.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 고물로 도망쳤지만, 결국 먼저 빠진 선수의 뒤를 따라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운명이었다. - 위키피디아 제공
타이타닉호의 침몰(1912년 작). 그림과 달리 타이타닉은 선수부터 침몰을 시작했는데, 그래서 일시적으로 선미가 하늘로 솟구쳤다.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 고물로 도망쳤지만, 결국 먼저 빠진 선수의 뒤를 따라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운명이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이물과 고물 

 

배의 앞부분을 이물이라고 하고, 뒷부분을 고물이라고 합니다. 배가 어디를 향하던 이물은 늘 앞에 있습니다. 목적지에도 조금 먼저 도착합니다. 후진을 해서 항해하는 배는 없기 때문이죠. 고물이 점점 물 속으로 빠지면, 이물은 오히려 더 높이 치솟습니다(타이타닉은 반대였습니다만). 그러나 고물은 절대 혼자 침몰하지 않습니다. 하늘 높이 솟은 이물은, 곧 고물과 함께 심해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경제 현상의 상당 부분은 인간의 심리에 의해 좌우됩니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인간의 경제적 의사 결정이 합리적이라는 기존의 경제학적 전제를 무너뜨렸습니다. 카너먼은 원래 심리학자였지만, 이 연구의 성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죠.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꽤나 비합리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결정하는 경제적 활동도 합리적으로 돌아갈 리 없습니다. 


어떤 지역에 집을 살 것인지 결정할 때, 냉철하게 기대 이익과 예상 비용을 감안하여 판단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주변의 상황, 개인적인 감정과 분위기에 이끌려서 결정합니다. 물론 이런 결정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엄밀한 효용 극대화까지는 아니지만, 본인이 만족스러우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급변하는 상황, 특히 타이타닉의 침몰처럼 위기 상황에서는 이러한 경험칙 기반의 의사 결정이 큰 오류를 빚을 수 있습니다. 


서울의 집값이 계속 오를 지 묻는 것은, 침몰 중인 뱃머리가 계속 하늘을 향하고 있을지 묻는 것과 같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물에 빠졌습니다. 고물(船尾·선미)에 있는 사람 중 일부는 어떻게든 이물(船頭·선두)로 올라오려 하고 있고, 일부는 낙심하여 자포자기하고 있습니다. 안전해 보이는 뱃머리에 있다고 좋아할 것도 아닙니다. 앞서 말한 대로 모두 똑같은 운명이니 말입니다. 

 

에필로그

 

급박한 집단 공황 상태에서는 의사 소통이 왜곡되고, 침착한 판단도 되지 않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정교한 언어 체계와 고도의 판단 능력, 높은 수준의 사회적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식 시장은 자유로운 자본주의 사회의 꽃입니다. 주식을 사고파는 것은 모두 개인의 전적인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강제로 사이드카나 서킷 브레이커를 발동합니다. 


인간이 나그네쥐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흔히 공황에 빠져 자멸적 결정을 내리곤 하니, 스스로를 단속하는 예방책을 세워 두겠다’는 것이죠. 부동산 뉴스를 보면서 우울과 불안에 빠지는 분이 많습니다. 일부 지역에서 엄청난 수준으로 아파트 가격이 오르고 있으니,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입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꾸 부동산 뉴스를 뒤적이게 됩니다. 하지만 집단적인 불안 상황에서는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이 불가능합니다. 잠시 자기 스스로에게 서킷 브레이커를 발동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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