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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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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06일 11:00 프린트하기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 드라마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모든 사건들을 전부 기억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어떤 충격적인 사건도 디테일 하나하나 전혀 잊지 못하기 때문에 수십년 전 동생과 싸운 일을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해서 현재도 동생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뛰어난 기억력도 축복이지만 잊을 수 있는 능력 또한 축복일 것이다. 


삶에서 충격적인 일을 많이 겪었던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는 사람은 길가에서 사람이 달리기만 해도 예전에 길가에서 공격받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 때의 공포와 고통을 다시 생생하게 체험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학자들은 이렇게 예고 없이 갑자기 닥쳐오는 끔찍한 기억(intrusive memory)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나쁜 기억이 침습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어린 시절에 힘든 일이 많았던 사람들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기억 컨트롤을 잘 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Hulbert & Anderson, 2018). 


연구자들은 18살 이전에 각종 사고, 자연 재해, 폭력, 학대, 친밀한 사람의 죽음 등에 노출된 사람들과 비교적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기억력 테스트를 했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에게 집-바이올린, 나무-시체 등 다양한 단어의 조합을 보여주고 외우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집, 나무 등 한 단어를 보여주고 함께 외운 나머지 단어를 가급적 빨리 4초 안에 말하도록 했다. 


다만 이때 제시된 단어가 빨간색으로 칠해져있다면 연상되는 나머지 단어를 생각하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기억하면 안 되는 단어를 자동적으로 떠올리지 않고 고로 말하지 않는 능력이 누구에게서 더 뛰어난지가 연구자들의 관심사였다. 


그 결과 18세 이전에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건들을 많이 겪었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그 빠른 시간 안에도 떠올려서는 안 되는 단어들을 더 정확히 파악하고 입 밖으로 내는 일이 적은 경향을 보였다. 


특정 단어와 관련된 기억들은 떠올려서는 안 된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이후 해당 단어에 대한 기억이 실제로 약해지는 경향(suppression induced forgetting·억압에 의한 잊기)이 나타난다고 한다. 앞서 외웠던 단어들을 다시 떠올려보라고 했을 때 잊도록 했던 단어들은 그렇지 않은 단어들에 비해 이후 정말로 까먹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역시 트라우마 경험이 많았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앞서 잊으려했던 단어를 실제로 더 많이 까먹은 경향을 보였다. 


연구자들은 트라우마 경험은 흔하지만 의외로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갖게 되는 사람은 드문데, 이는 어쩌면 힘든 일이 많을수록 기억을 조절하는 능력이 강해지는 것이 도움이 되기 때문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물론 이겨내기 힘든 일들은 사람을 무너트리지만,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말처럼 힘든 일로 인해 견디는 힘이 더 좋아지는 면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힘든 일이 그 자체로 좋은 것이라는 해석은 경계해야겠다. 다만 견디는 힘이 좋아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힘든 삶에서 한 가지 위안이 될 수는 있겠다. 
 

참고

Hulbert, J. C., & Anderson, M. C. (2018).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Psychological trauma and its relationship to enhanced memory control.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 Advance online publication.

 

※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등,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 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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