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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절대 잊히지 않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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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07일 11:00 프린트하기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녀석이 나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피가 거꾸로 솟구칩니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일입니다만,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나에게 그렇게 못된 짓을 하지만 않았더라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고통스러운 기억은 마음 속에 단단히 엉겨 붙어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책을 읽을 때도 유령처럼 나타나서 마음을 괴롭힙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해결되지 않는 고통의 기억

 

앙심, 한, 트라우마, 울분으로 불립니다.  조금씩 맥락은 다르지만 모두 비슷한 정서를 말하고 있습니다. 수치와 억울이 어지럽게 섞인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나를 괴롭히던 급우일 수도 있고, 군 시절 괴팍한 고참일 수도 있습니다. 술 마시고 행패를 부리던 아버지가 될 수도 있고, 내키는 대로 손찌검을 일삼던 어머니일 수도 있습니다. 늘 성적과 외모로 비교 당하던 형제 자매이기도 합니다. 


물론 심각한 학대와 차별의 경험은 마음의 큰 상처가 되어 잘 치유되지 않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전쟁이나 강간, 학살, 큰 재난 등이 주된 원인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고통만 우리에게 심리적 고통을 안기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 친구의 갑작스러운 돌변이나 사랑하는 이의 배신 등, ‘일상’적으로 일어나지만 제법 충격이 강한 트라우마도 있습니다. 작은 무관심이나 모임에서의 망신처럼, 그냥 웃고 넘길 만한 일도 어떤 경우에는 오랜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이불킥을 일으키는 기억도, 어떤 의미에서는 작은 트라우마입니다. 


어떤 고통의 기억이 보다 트라우마가 되기 쉬운 지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은 세우기 어렵습니다. 한 참전 용사는 전쟁 중에 다리를 잃었지만, 씩씩하게 잘 이겨냈습니다. 하지만 종종 그를 괴롭히던 고통의 기억은 달리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소풍에서 노래를 부르는 벌칙을 받았는데, 급우 앞에서 한 소절도 부르지 못하고 들어왔던 것이죠. 용감한 무공 용사를 평생 괴롭힌 기억이 고작 유년기의 창피한 경험이라니,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누구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고통의 기억은 우리의 과거뿐 아니라 현재를 규정하고 재단한다. 트라우마에서 해방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마음은 고통의 기억이 보다 잘, 보다 오래도록 남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 픽사베이 제공
누구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고통의 기억은 우리의 과거뿐 아니라 현재를 규정하고 재단한다. 트라우마에서 해방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마음은 고통의 기억이 보다 잘, 보다 오래도록 남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 픽사베이 제공

 

트라우마의 진화

 

인간은 도대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 기억에 시달리는 것일까요? 지우개로 싹싹 지우고 행복하게 살면 좋을 텐데,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고통의 기억을 반추하는 것은 진화적으로 상당한 적응적 이익이 있습니다. 


편도체는 공포를 담당하는 뇌의 한 부분입니다. 작은 아몬드 크기죠. 편도체에서 처리한 공포의 정서는 강력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그런데 편도체가 손상되는 희귀한 질환이 있습니다. 편도체에 칼슘이 침착되는 병인데, 이 병에 걸리면 공포와 두려움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이 병에 걸린 여성이 있었습니다. 흔히 SM-046으로 알려진 이 여성은 두려움과 공포를 전혀 느끼지 못했고, 따라서 고통스러운 기억도 남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심한 트라우마를 입어도, 곧 명랑해졌죠.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있었던 일은 기억했지만, 그 기억과 동반된 고통스러운 정서는 느끼지 않았습니다. 


좋은 일 아닐까요? 매일매일 우리를 힘들게 하는 마음의 고통에서 해방된 것이니까요. 지난 삶 동안 누적된 고통의 기억도 사라졌으니, 이보다 좋은 일은 없습니다. 과거의 트라우마는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테죠. 고통의 정서가 탈색된 채 회색 빛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내가 사는 트라우마

 

SM-046의 삶은 그리 순탄치 않았습니다. 여자는 도시의 빈민가에 살았습니다. 밤에는 혼자 돌아다니기 어려운 우범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늦은 밤마다 공원을 산책했습니다. 결국 강도를 만나 칼에 찔렸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바로 다음 날 또 아무렇지도 않게 공원을 거닐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폭력과 총상, 강도 피해 등으로 가득했지만, 늘 침착하고 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고통을 일으키는 사건 자체는 물론 좋은 일이 아닙니다. 일부러 고통을 찾아다니라는 말은 어리석습니다. 현명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공연한 고통을 찾아 다니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신적 고통 및 고통의 기억 자체는 진화적으로 유익한 형질입니다.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개체, 고통을 기억하지 못하는 개체는 험난한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고통은 우리의 삶을 계도하는 강력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꼭 필요합니다. 떠올릴 때마다 몸서리치게 싫지만, 여전히 우리 마음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SM-046의 그림. 그녀는 양측 편도핵에 칼슘이 침착되는 희귀 질환에 걸렸다. 그녀는 두려움을 느낄 수 없었는데, 심지어는 두려워하는 표정도 그리지 못했다. 절망과 불안, 두려움에는 해방된 삶이었지만, 강도와 총상, 폭력 등 다양한 위험에 노출된 삶이었다. 한 밤중에 우범 지역 공원에서 강도의 칼에 찔렸는데도, 다음 날 다시 그 공원을 산책하기도 했다. - John Cartwright, Evolution and Human Behaviour, 2nd edition 제공
SM-046의 그림. 그녀는 양측 편도핵에 칼슘이 침착되는 희귀 질환에 걸렸다. 그녀는 두려움을 느낄 수 없었는데, 심지어는 두려워하는 표정도 그리지 못했다. 절망과 불안, 두려움에는 해방된 삶이었지만, 강도와 총상, 폭력 등 다양한 위험에 노출된 삶이었다. 한 밤중에 우범 지역 공원에서 강도의 칼에 찔렸는데도, 다음 날 다시 그 공원을 산책하기도 했다. - John Cartwright, Evolution and Human Behaviour, 2nd edition 제공

 

고통의 의미를 찾아서 

 

어린 시절 혹은 젊은 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앙심을 품고 수십년이 지난 후에도 복수하겠다고 벼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통을 이야기할 때 주변 사람이 주는 위로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저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위로인데도, 진정한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처럼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실패한 삶의 원인을 과거의 슬픈 경험에 모두 전가하기도 합니다. 술과 도박에 빠져 지내면서도 ‘그런 일을 겪었으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리면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트라우마를 가까운 사람에게 되돌려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폭력의 대물림이 일어나고, 내리갈굼이 횡행하는 이유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해 슬펐다면, 자신의 자녀에게는 보란 듯이 큰 사랑을 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종종 일은 정반대로 일어납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는, 어떤 면에서는 그러한 고통을 은연중 탐닉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고통이 기억에 잘 남는 이유는, 그러한 형질이 진화적으로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더 큰 위험을 피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이 과거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평생 괴로워합니다. 단지 살아남는 것이 삶의 목표라면 고통의 기억에 자신의 영혼을 내맡겨도 괜찮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과거에 겪은 고통과 슬픔의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에필로그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고통의 기억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요? 간단하게 몇 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게 손쉬운 문제였다면, 이토록 힘들지도 않았겠죠. 그래도 도움이 될 만한 간단한 팁을 골라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고통의 기억을 종이에 적어보는 것입니다. 담담하게 적는 행위만으로도, 적당한 거리감을 느끼면서 고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둘째 사랑하는 사람과 트라우마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따뜻한 마음이 씌워지면, 날카로운 고통의 기억이 점점 무디어집니다. 셋째 인스턴트 위안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특히 SNS을 통한 의례적인 공감은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문제 해결을 지연시킵니다. 자칫하면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만날 수 있습니다. 넷째 도저히 혼자 해결할 수 없는 큰 트라우마는 직접 전문가를 만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심리학 대중서를 먼저 펼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책이나 인터넷에서 구한 정보로는 얼굴을 맞대고 진행하는 전문적 도움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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