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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언제 멈춰서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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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4일 11:00 프린트하기

 

인간은 흔히 공간에 대한 인지적 개념을 통해 시간을 인식한다. 그러한 인식 속에서 우리는 기차가 되고, 인생은 철로가 되며, 삶의 과제는 기차역으로 은유된다. - 픽사베이 제공
인간은 흔히 공간에 대한 인지적 개념을 통해 시간을 인식한다. 그러한 인식 속에서 우리는 기차가 되고, 인생은 철로가 되며, 삶의 과제는 기차역으로 은유된다. - 픽사베이 제공

시간에 대한 개념을 가진 동물은 거의 없습니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인류의 조상도 시간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현대인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은 공간에 대한 인지적 개념을 차용하여, 시간을 다룹니다. 그래서 과거는 지나온 길, 미래는 가야할 길, 현재는 기나긴 길의 중간쯤으로 연상합니다. 이런 은유에 따르면 인생은 긴 여행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출발지와 종착지가 있는 긴 여정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인생은 기찻길?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보편적인 인식이 있습니다. 윌리엄 애덤스는 서구 사상의 바탕을 형성하는 신념 중 하나로 자연법을 들었습니다. 자연법이란 세상의 시작과 끝은 정해진 자연의 질서에 따라 일어나며, 예정된 계획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마치 철로가 깔린 길을 따라가는 기차처럼 종착역이 정해져 있다는 뜻일까요?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라는 길이지만, 동시에 누군가 이미 기찻길을 닦았다는 이율배반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일을 기억하고, 미래의 일을 예상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오직 현재에 있을 뿐입니다. 현재에 맞추어 머리 속 과거와 미래를 알맞게 재구성할 뿐이죠. 그래서 일부 정신장애에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어지럽게 뒤섞이곤 합니다. 시간이 느리게 가기도 하고, 아예 멈추기도 하죠. 미래를 기억하거나 과거가 예상하는 일도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을 혼동하는 경우는 꽤 흔합니다. 


인간은 흔히 공간에 대한 개념을 사용하여, 시간을 유추합니다. 시간은 ‘뒤로 가는’ 것이고, 내일은 ‘앞에서 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오르막과 내리막’을 만납니다. 막다른 길에 접어들기도 하고, 갈림길이 나타나기도 하죠.  삶의 끝에는 큰 강이 있다고 하는데, ‘한번 건너면 돌아올 수 없는 강’입니다. 

 

시간의 역설

 

시간의 개념이 생기면서, 문명의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농경을 시작하면서 파종과 수확의 시기가 중요해졌고, 지금이 일년 중 언제인지를 알아야 했다는 것이죠. 이는 달력을 낳고, 천문과 기상에 대한 전문가를 만들고, 점술과 종교를 만들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제법 많은 수렵 채집 사회에서도 시간과 절기라는 개념이 관찰되기 때문에, 설득력이 조금 약한 주장입니다. 물론 구석기 원시인에게 달력이나 시계는 없었겠지만 말이죠. 


아무튼 문명인의 삶은 시간이라는 팽팽한 줄로 단단히 묶여 있습니다. 수많은 세상 일은 합의된 약속에 따라 조율됩니다. 연신 달력을 확인하고, 시간을 확인합니다. 그렇게 시간과 공간이라는 씨줄과 날줄로 엮여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과 약속을 맺고 원하는 일을 도모하려면 시간을 잘 지켜야 합니다. 복잡하게 얽힌 길 위에서 서로 엇갈리지 않고 마주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런데 종종 우리는 자기 자신과도 시간 약속을 한 듯 살아갑니다. 8시에는 공부하고, 9시에는 휴식하고, 10시에는 잠에 드는 식의 방학 시간표를 작성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미래에 대해서도 이런 계획을 세웁니다. 28살에는 직장을 얻고, 30살에는 결혼을 하고 32살에는 아기를 낳고, 50살에는 10억 자산을 만들고, 60살에는 은퇴한다는 계획입니다. 한번뿐인 인생은 마치 앞으로 지나쳐야 할 기차역처럼 빈틈없이 결정되어 있습니다. 기차가 제 시간에 역에 도착하면 대성공이고, 연착하면 다소 실패입니다. 멈추기라도 하면 시쳇말로 ‘이생망’입니다. 

 

제한 자원으로서의 시간

 

그러나 생태학적 관점에서 시간은 일종의 자원입니다. 자원을 의미있게 쓰면 사실상의 시간이 늘어나고,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줄어드는 셈이죠. 생존과 번식 적합도를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쓰는’ 것입니다. 구할 수 있는 식량의 양이나 배우자의 숫자도 자원이지만, 가장 중요한 제한 자원은 시간입니다. 단 한번만 제공될 뿐 아니라, 그 양도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진화생태학 연구에서는 시간이 아주 중요한 변수로 사용되곤 합니다. 


그런데 시간은 아주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점점 줄어들기만 한다는 것이죠. 80년의 삶을 두고 보면, 10살 무렵의 1년은 70분의 1입니다. 남은 삶의 약 1.43%죠. 하지만 75세의 1년은 5분의 1이 됩니다. 남은 삶의 20%죠. 전체 인생의 1.5%정도라면, 기꺼이 투자해서 다른 자원과 맞바꿀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남은 시간의 2할을 써야한다면, 신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생은 단 한 번이니까요. 

 

작은 간이역. 급행 열차는 작은 역에 서지 않는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삶이라는 여행이 끝나는 것이라면, 서두를 이유가 없다. 작은 간이역이라도 빠짐없이 정차하여 그 순간을 누리는 것이 현명하다.
작은 간이역. 급행 열차는 작은 역에 서지 않는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삶이라는 여행이 끝나는 것이라면, 서두를 이유가 없다. 작은 간이역이라도 빠짐없이 정차하여 그 순간을 누리는 것이 현명하다.

그만 멈추어 서야 할 때

 

현대인의 삶은 멈추지 않는 기차처럼 앞으로 질주합니다. 마치 이미 정해진 종착역이 있는 것처럼 말이죠. 사람들은 가장 먼 곳에 있는 역까지 가는 경주라도 하듯, 쉴 새 없이 앞으로만 달려 갑니다. 급한 마음이 들어 작은 역은 무정차 통과합니다. 주변 경치를 바라볼 여유도 없습니다. 그렇게 브레이크 없는 기차처럼 달려가다가, 어느 순간 연료가 떨어지면 철로 중간에 딱 멈추어 서 버립니다. 그리고 끝입니다. 


진화 이론에 따르면, 생물체의 시간은 삶의 주기에 따라 적합도 상의 가치가 다릅니다. 어린 시절의 1년과 어른 시절의 1년이 다르죠. 일반적으로는 생애 초기의 시간이 보다 중요합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던 험난한 환경에 살던 우리의 선조는, 어떻게든 무조건 살아남는 편을 택했습니다. 첫 1년을 넘기지 못하면 다음 2년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가는 본성이 있습니다. 오늘 죽으면 내일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인간은 자연을 개척하고, 사회를 건설하고, 지식을 축적했습니다. 100%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는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게 되었죠. 아득바득 살지 않아도 내일 굶지 않는다는 것을, 안절부절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도적이 쳐들어 오지 않는 다는 것을, 당장의 이성에게 매달리지 않아도 더 멋진 대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최소한 머리로는 말이죠.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박적인 스케쥴이 지배하는 기차를 잠시 세우고, 역 주변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속도를 조금 늦추고, 간이역에도 느긋하게 정차해 보세요. 종착역에 도착하면 삶이라는 여행은 바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앞으로 남은 기차역이 적을수록 각각의 역은 더욱 소중해집니다. 그동안 가득 실어 나르기만 하던 화물칸을 활짝 열어 나누고, 좁은 객실에 갇혀있던 승객도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해주세요.


삶이라는 이름의 기차는 편도만 있습니다. 지금 지나는 역을 놓치면, 다시는 되돌아 오지 못합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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