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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반핵'을 주장한 노벨화학상 수상자 시모무라 오사무 교수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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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3일 19:27 프린트하기

녹색형광단백질 발견해 2008년 노벨화학상
日 출신 생화학자 시모무라 오사무 교수 타계
노벨상 공동 수상했던 美 마틴 챌피 교수
“평생동안 우직하게 한 길 걸은 과학자” 애도

 

19일 타계한 오사무 시모무라 미국 보스턴대 명예교수가 생전에 녹색형광단백질이 든 시험관과 자외선 램프를 들고 있는 모습. - 보스턴대 제공
19일 타계한 오사무 시모무라 미국 보스턴대 명예교수가 생전에 녹색형광단백질이 든 시험관과 자외선 램프를 들고 있는 모습. - 보스턴대 제공

암과 알츠하이머병 등 질병과 관련된 생체분자를 추적 관찰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녹색형광단백질(GDF)’을 발견해 2008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일본 출신의 생화학자 시모무라 오사무(下村脩) 미국 보스턴대 명예교수가 향년 90세로 타계했다.
 
시모무라 교수의 모교인 일본의 나가사키대는 22일 “시모무라 교수가 이달 19일 나가사키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최근까지 미국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왔던 시모무라 교수는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친척들이 있는 나가사키에서 생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1928년 교토 남부의 후쿠치야마시에서 태어난 시모무라 교수는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나가사키에서 자랐다. 나가사키대에서 유기화학 및 생물의 발광 연구를 시작해 일본 나고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나고야대 박사후연구원 시절 시모무라 교수는 갯반디의 발광 단백질인 ‘루시페린’을 결정화 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1960년 시모무라 교수는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대, 보스턴대, 우즈홀 해양생물학연구소 등을 거치며 해파리와 같은 발광 생물의 발광 메커니즘을 규명해나갔다. 그가 해파리의 발광 단백질인 녹색형광단백질을 발견하고 추출하는 데 성공한 것은 1961년의 일이다.
 
녹색형광단백질은 생체 연구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녹색형광단백질은 여러 효소가 필요했던 다른 생물들의 발광 단백질과 달리, 자외선 같은 형광체만 있으면 단백질 자체만으로 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조영제와 달리 세포 독성이 없어 연구자들은 녹색형광단백질을 통해 살아 있는 세포 속에서 움직이는 단백질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게 됐다. 특정 단백질에서 녹색형광단백질 유전자가 발현되도록 형질을 전환시키기만 하면 됐다.
 
덕분에 암세포의 전이 과정에서 특정 단백질의 역할을 규명하거나 바이러스의 감염 경로를 확인하는 등 연구성과가 쏟아져 나왔다.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같은 뇌질환의 발병 과정을 추적할 수 있었던 것도 녹색형광단백질 덕분이었다. 이 같은 녹색형광단백질의 발견과 응용을 이끈 공로로 시모무라 교수는 2008년 마틴 챌피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로저 첸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교수와 함께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오사무 시모무라 교수가 2008년 당시 노벨화학상 시상식에서 수상하는 모습. - 미국 보스턴대 제공
오사무 시모무라 교수가 2008년 당시 노벨화학상 시상식에서 수상하는 모습. - 미국 보스턴대 제공

22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주최한 ‘노벨상 수상자와의 대담’에 참석하기 위해 최근 한국을 찾은 챌피 교수는 “시모무라 교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며 “평생 동안 우직하게 한 길을 걸었던 동료 과학자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이어 그는 “시모무라 교수는 나와 다르게 젊은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냈던 분”이라며 “녹색형광단백질을 발견하고 노벨상 수상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탁월한 안목과 학자로서의 끈기 덕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챌피 교수는 시모무라 교수가 녹색형광단백질을 발견하게 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열흘 동안 해파리를 붙들고 씨름하던 시모무라 교수가 ‘배고프고 힘드니 집에 가서 밥이나 먹자’ 하고 개수대에 실험하던 것들을 다 버렸을 때였다”며 “실험실 불을 끄고 나가려는 찰나에 개수대가 환하게 빛나는 걸 발견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해파리가 담겨 있던 바닷물에 발광 단백질이 묻어 나와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시모무라 교수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모무라 교수는 생전에 16세에 불과했던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가사키에 떨어져 7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원자폭탄에 대한 회상을 자주했다. 평생 동안 강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당시의 공포스러웠던 경험을 소개하며 핵무기 폐기를 강력히 주장했다. 시모무라 교수는 한 강연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화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핵폭탄 때문”이라며 “그 사건을 계기로 어린 시절 가졌던 부와 명성에 대한 야망은 완전히 사라졌고, 지적 호기심만 남아 오직 연구에만 몰두하며 지냈다”고 말했다.


송경은 기자

kyunge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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