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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군중의 마음 어디로 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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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8일 10:00 프린트하기

1866년 프랑스 파리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을 마친 귀스타브 르 봉은 의사 면허를 취득합니다. 하지만 르 봉은 임상 의사의 길을 포기합니다. 몇몇 의학 논문을 쓰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작가로의 삶을 살기 원했죠. 환자 곁을 떠나 셰익스피어의 저작을 읽으며 지내던 중, 보불전쟁이 발발합니다.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전쟁이었죠. 르 봉은 군의관으로 참전합니다. 이후 르 봉의 삶은 극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보불 전쟁과 파리 코뮌

  
전쟁에서 프랑스는 참패합니다. 파리 시민은 무능한 정부에 분노합니다. 당시 황제는 나폴레옹 3세였는데, 나폴레옹 1세의 향수를 이용해서 권력을 잡은 인물이었죠. 결국 나폴레옹 3세는 물러나고, 새로 공화정이 들어섰지만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성난 파리 시민은 정부를 무력화시키고, 파리 코뮌을 결성합니다.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공산주의 자치 정부였습니다. 그들은 노동 시간을 줄이고, 최저임금제를 만들고, 여성과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보장하는 등의 혁신적 제도를 잇달아 세웁니다. 과거의 권위주의 유산을 없앤다며, 나폴레옹 시절의 건축물을 부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파리 코뮌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국민평의회에는 늘 다양한 시민의 의견이 오갔지만, 의견은 하나로 모일수 없었습니다. 끝없는 토론만 계속 되었습니다. 정부군이 쳐들어 왔는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두 달이 되지 않아 정부군은 드디어 파리 시내로 진격했고, 피의 학살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만 명이 죽었습니다. 


퀴스타브 르 봉은 이 모든 사태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군의관으로서 보불전쟁의 참패를 목격했고, 파리 시민으로서 파리 코뮌의 탄생과 내전, 학살을 바로 옆에서 목도했습니다. 파리 시민이 역사적 건축물인 튈르리 궁전과 루브르 박물관, 파리 법원을 고의로 불태우며 저항하는 광경도 보았습니다. 수만 명이 죽고, 또 수만 명이 유죄평결을 받았으며, 많은 시민이 프랑스를 탈출했습니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죠.  


의사에서 인류학자로
     
파리는 안정을 되찾았지만, 르 봉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당시에는 아직 신생 학문이었던 인류학에 푹 빠집니다. 유럽과 아시아, 북미를 다니면서, 찰스 다윈과 허버트 스펜서, 에른스트 헤켈의 책을 탐독합니다. 의사 르 봉은, 이제 인류학자이자 탐험가로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두개골의 크기와 지능의 관계에 대한 논문을 써서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의 상을 받기도 하죠. 휴대용 두개골 측정기도 고안합니다. 탐험 중에 만나는 원주민의 두개골을 정확하게 재는 도구였죠.
     

귀스타브 르 봉은 의사이자 인류학자였고, 생리학자이면서 고고학, 사회학, 심리학을 연구한 르네상스형 인간이었다. 그는 대표작 <군중 심리>를 통해서, 똑똑한 개인이 집단 수준에서는 어떤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는지 밝혔다. - 위키미디어
귀스타브 르 봉은 의사이자 인류학자였고, 생리학자이면서 고고학, 사회학, 심리학을 연구한 르네상스형 인간이었다. 그는 대표작 <군중 심리>를 통해서, 똑똑한 개인이 집단 수준에서는 어떤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는지 밝혔다. - 위키미디어

르 봉의 천재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랍과 인도, 네팔의 문명에 대한 저작을 잇달아 펴냈고, 원주민에게 소위 서구 문화를 전달하려는 식민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연설도 합니다. 원주민이 그들의 전통과 관습을 그대로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쉰 살이 넘은 르 봉은 그동안 연구해 온 인간의 몸, 마음, 그리고 인류 사회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모아서 아주 의미 있는 책을 펴냅니다. 바로 1895년에 발간된 ‘군중 심리(Psychologie des Foules)’입니다. 인간 개인의 마음이 아니라, 집단의 마음에 대해 다룬 책이었습니다. 의학을 전공했고, 전쟁에 참전했으며, 시민의 혁명과 몰락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전 세계를 다니며 다양한 풍습과 문화를 경험한 인류학자 르 봉의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 든 책이었습니다.      


군중 심리
     
그는 개인으로서의 인간과 군중 속의 인간은 아주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군중은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집단의 일원으로 움직인다고 봤습니다. 개인적인 자아는 군중이라는 집단 속에 스르르 녹아 듭니다. 각자는 서로 전염되어 마치 떼를 짓듯 움직이게 됩니다. 이때 선동가가 나타나면, 간단한 말 몇 마디로 군중 전체에 암시를 걸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군중 심리가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회와 폭동, 시위, 전쟁, 응원 등 다양한 현상에 대한 경험적 증거에 따르면, 개인의 층위를 넘어서는 군중 심리는 분명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개성이 사라지고, 집단으로 행동하며, 평소에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거리낌없이 행하고, 이러한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며, 충동과 감정에 휩쓸리고, 몇 마디 자극적인 선동과 명확하지 않은 ‘분위기’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군중 심리는 마냥 어리석기만 한 집단 행동처럼 들립니다. 사실 르 봉은 보불 전쟁과 파리 코뮌 무렵 프랑스의 참상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군중 심리를 좋게 이야기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군중 심리는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역사를 바꾼 혁명의 상당수도 사실 집단의 힘으로 이뤄진 사례가 많습니다. 군중 심리 자체는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뭉친 군중이 어디로 달려가냐는 것이죠. 절벽으로도 갈 수 있고, 정상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1936년 집회에서 나치식 경례를 하는 군중들. 군중 모두가 경례를 하고 있는데, 단 한 사람만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어서 화제가 된 사진이다(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세요). - 위키미디어
1936년 집회에서 나치식 경례를 하는 군중들. 군중 모두가 경례를 하고 있는데, 단 한 사람만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어서 화제가 된 사진이다(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세요). - 위키미디어

건강한 군중 심리를 위해서 
     
물론 군중은 아주 쉽게 무질서 해집니다. 이끄는 사람도 없고, 억누르는 사람도 없으니, 한번 요동치면 어디로든 그 거대한 힘이 몰리게 됩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팬은 주로 대학생 혹은 직장인이죠. 대부분은 배울 만큼 배운 ‘이성적’인 사람입니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한번 군중 심리에 휩쓸리면, 훌리건이 되어 폭동을 일으키곤 합니다. 고작 공놀이를 응원하러 왔다가, 난투극이 벌어지고 방화와 폭행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심지어 죽는 일도 있습니다. 단순한 개인의 합이 군중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군국주의와 파시즘도 모두 군중 심리의 덕을 본 어두운 과거입니다. 성난 축구팬과 이들의 차이가 있다면, 뒤에서 이러한 군중 심리를 조장하고 은밀하게 이끌어간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죠. 군중 심리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힘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역사의 혼란기마다 등장하는 웅변가이자 선동가입니다. 대중 전체를 상대로 하는 협잡꾼이죠. 


귀스타브 르 봉은 서구 사회에서 쏟아져 나오는 여러 이데올로기에 대부분 비판적인 입장이었습니다. 공산주의나 전체주의, 군국주의는 물론이고, 심지어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보불전쟁과 파리 코뮌, 1차 대전 등 수많은 참극을 직접 목격했고,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이념이 결국 어떤 비극적 결과를 낳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의사이자 생리학자였고, 작가이면서 인류학자였습니다. 대중 심리를 연구한 심리학자이자 사회학자였죠. 정말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한 르네상스형 인간이었지만, 절대 관여하지 않았던 영역이 있습니다. 그는 평생 정치에 발을 담그지 않았습니다. 


르 봉이 군중 심리를 펴낸 지 백 년이 지났지만,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언론, 통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은 군중 심리의 힘을 몇 배나 키워 놓았지만, 과연 우리는 이 강력한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정답일까요? 르 봉은 서구 사회의 식민 계몽주의에 맞서서, 전통 사회의 문화와 관습, 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변했습니다. 오랜 인류의 지혜를 지키고 싶어한 르 봉의 삶이 혹시 그 해결책을 알려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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