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과학도시를 만나다]④ 혁신동력 잃은 과학도시, 그래도 네이처는 주목했다

통합검색

[과학도시를 만나다]④ 혁신동력 잃은 과학도시, 그래도 네이처는 주목했다

2018.10.31 20:31
중이온가속기(RAON) 시설 조감도. - 기초과학연구원(IBS) 제공
중이온가속기(RAON) 시설 조감도. - 기초과학연구원(IBS) 제공

지난해말 대전 유성구 도룡동 엑스포 과학공원 부지에 거대한 5층 건물이 들어섰다. 올 4월부터 정식으로 문을 열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 기초과학연구원(IBS) 본원이다. 주변에 건물이 얼마 없어 보기에는 휑하지만 일대는 이미 대전 시민 사이에선 ‘과학 신도시’로 불리고 있다. 1993년 정보통신(IT), 자동차, 환경, 우주 등 다양한 분야를 총망라한 세계 박람회 ‘대전 엑스포’가 열렸던 이곳은 이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 ‘1세대 과학도시’ 대전, 성장세 둔화…대덕 5개 연구개발특구 중 4위로 떨어져

 

대전은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비롯해 대학, 기업 연구소 등 대덕연구개발특구를 중심으로 성장해온 국내 ‘1세대 과학도시’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지난해 10월 대전을 주목해야 할 8대 세계 주요 과학도시 중 하나로 꼽았다. 전 세계 각 분야의 과학경쟁력을 분석하는 네이처 인덱스에 따르면, 대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규모는 19%로 서울(3%)보다 6배 이상 크다. 인구 1인당 연구비 역시 1만9700달러로 서울(1인당 3만900달러)의 3분의 2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대전에서는 3만4300여 명의 연구자가 활동하고 있다.

 

지난 50년간 출연연은 한국의 경제개발을 견인해왔다. 하지만 선진국 추격형 연구에 한계가 오면서 성장세는 눈에 띄게 둔화됐다. 올해 3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5개 연구개발특구 2017년도 성과평가 결과’에 따르면,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대덕특구는 지난해에 이어 전체 4위에 그쳤다. 지자체와의 협력 부족과 산학연 협력체계 부실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대덕특구의 중심축인 출연연 자체의 역할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전 유성구 도룡동 기초과학연구원(IBS) 본원 이론동. 올해 4월 IBS는 본원 개원식을 열었다. - IBS 제공
대전 유성구 도룡동 기초과학연구원(IBS) 본원 이론동. 올해 4월 IBS는 본원 개원식을 열었다. - IBS 제공

● 경제 산업 기술 산실에서 기초과학 요람으로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적인 수준의 기초연구환경을 구축해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로 국가 R&D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나아가 대전을 기술 사업화와 국제협력의 거점으로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내놨다. 이 같은 움직임은 2009년부터 추진해온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사업의 일환이다. 2021년까지 대전 도룡(26만㎡), 신동(164만3000㎡), 둔곡(180만2000㎡) 지구에 각각 기초과학연구원(IBS) 본원과 ‘한국형중이온가속기(RAON·라온)’, 국내외 우수 연구자 유치를 위한 주택 단지 및 편의시설을 조성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IBS는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회, 일본의 이화학연구소(RIKEN·리켄)와 같이 도전적인 기초과학 연구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2011년 설립됐다. 최근 서울의 과학기술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추세지만 대전의 경우 IBS 설립을 계기로 상승하고 있다. 네이처인덱스 저널 기여도(WFC)를 기준으로 서울은 2013년 1.2%에서 2016년 1%까지 떨어진 반면, 같은 기간 대전은 0.35%에서 0.4%까지 올라갔다. IBS를 제외한 다른 연구기관 전체의 WFC는 정체했거나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IBS는 본원 연구단 5개와 대전과 서울, 포항, 울산, 수원 등 전국에 캠퍼스 연구단 14개, 외부 연구단 9개를 운영 중이다. 해외 과학계는 IBS가 짧은 기간 동안 성공적으로 데뷔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IBS 나노물질 및 화학반응 연구단은 세계 최초로 3차원 그래핀을 합성했고, 양자나노과학연구단은 원자 하나로 디지털 정보를 읽고 쓸 수 있는 원자 메모리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강상관계물질연구단 역시 세계 최초로 자성 반데르발스 물질을 발견했다. 나노입자연구단은 암 치료에 쓸 수 있는 다기능성 나노입자를 개발해 해외 학계에 주목을 받았다.

 

한국과 서울, 대전의 연도별 저널기여도(WFC) 변화(왼쪽)과 대전의 기초과학연구원(IBS)과 IBS를 제외한 나머지 연구기관 전체의 WFC를 나타낸 그래프(오른쪽). - 자료: 네이처인덱스
한국과 서울, 대전의 연도별 저널기여도(WFC) 변화(왼쪽)과 대전의 기초과학연구원(IBS)과 IBS를 제외한 나머지 연구기관 전체의 WFC를 나타낸 그래프(오른쪽). - 자료: 네이처인덱스

총 2단계에 걸쳐 추진되는 IBS 건립사업 중 2062억원이 투입된 1단계 사업을 통해 대전 도룡지구에는 본관동과 실험동물자원동, 생활관, 과학문화센터, 경비동 등 총 7만2574㎡의 건물이 준공됐다. 올해부터 2021년까지는 본원 4만㎡와 KAIST, 포스텍, 광주과학기술원(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등 5개 과학기술특성화대 캠퍼스에 12만7500㎡의 건물을 추가적으로 짓는 2단계 건립사업이 추진된다. 내년도 2단계 사업비가 일부 삭감되면서 논란이 일었지만 과기정통부 측은 2단계 예산 4465억원은 변함없다고 밝히고 있다. 

 

김두철 IBS 원장은 “본원을 중심으로 향후 5년간 매년 2개씩 새로운 연구단을 차근차근 만들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 연말이면 본원 연구단이 7개로 늘어 총 30개 연구단이 된다. IBS는 전국에 뿌리내린 연구단이 주변 대학과 산업체, 병원 등과 협업하며 각 지역의 혁신주체로 기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목표다. 김 원장은 “장기적으로는 캠퍼스 연구단을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시관 등으로 구성된 IBS 과학문화센터는 시민들에게 개방되는 공간이다. 일례로 9월에는 ‘생명, 변화와 연속성’을 주제로 올해 연말까지 계속되는 과학사진전 ‘2018 아트 인 사이언스’가 개막했다. 또 본원 인근에는 연구자와 시민들을 위한 과학문화시설과 호텔, 근린생활시설 등으로 구성된 43층 규모의 사이언스콤플렉스도 새롭게 조성된다. 도심형 과학공원(사이언스 파크)이 생기는 셈이다. 이를 통해 시민들을 끌어 들여 과학문화 확산과 관심 제고에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중이온가속기(RAON) 시설 개요. - 자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이온가속기(RAON) 시설 개요. - 자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 세계 최대 규모의 선형 중이온가속기 ‘라온’

 

신동 지구에 건설 중인 중이온가속기 라온은 양성자부터 우라늄까지 다양한 중이온을 빛의 속도 가까이 가속, 충돌시키는 가속기다. 총 길이 500m로 선형 중이온가속기 중 세계 최대 규모다. 희귀 동위원소를 얻을 수 있고 펨토초(fs·1fs는 1000조분의 1초) 단위로 살아 있는 세포까지 관찰할 수 있다. 덕분에 원소의 기원 탐구, 새로운 동위원소 발견과 구조 연구, 희귀 동위원소들을 이용한 신물질 연구, 암 치료기술, 유전자 분석기술, 우주 등 극한환경 연구 등 다양한 첨단 기초과학 분야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중이온가속기 시설은 대지면적 95만2000㎡(건물면적 13만100㎡) 규모로 들어설 예정이다. 2021년까지 총 1조4298억 원이 투입된다. 특히 라온은 입자 가속에 가벼운 이온을 두꺼운 표적에 충돌시키는 ‘온라인 동위원소 분리장치(ISOL)’와 무거운 중이온을 가벼운 표적에 충돌시키는 ‘비행 파쇄장치(IF)’ 방식을 접목해 새로운 희귀 동위원소를 발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는 이와 별도로 기초과학을 응용과학으로, 나아가 기술 사업화로 연계하기 위해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 △전자부품 컴퓨터 영상 음향 및 통신장비 △금속가공제품 △의료용 물질 및 의약품 △의료 정밀 광학기기 및 시계 △전문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 △전기장비 △기타 기계 및 장비 등 8대 입주 업정을 선정해 특혜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빅사이언스(집단연구) 클러스터, 첨단산업 클러스터, ICT 클러스터, 바이오헬스케어 클러스터 등 4대 클러스터도 조성한다. 대전과 함께 세종시 시청 부지와 청주시 오송생명과학단지, 천안시 충남테크노파크 부지에도 각각 사이언스비즈(SB) 플라자가 들어서게 된다.
 
허태정 대전시장은 이달 10일부터 4일간 베트남 빈증성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혁신동력으로서의 스마트 도시’를 주제로 열린 세계과학도시연합(WTA) 총회에 의장으로 참석해 “세계과학도시연합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기술문명시대를 맞아 그간의 우호협력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도시의 미래를 고민하고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총회에는 WTA 회원과 유네스코, 지방정부, 대학 등 25개국 2000여 명이 참석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신동·둔곡 지구 개념도. - 자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신동·둔곡 지구 개념도. - 자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 과학보다 도시개발에 과도한 초점…“정치·경제적 논리 벗어나야”

 
다만 IBS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사업은 한국 과학정책의 한계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과학도시 본연의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정책적 기획보다는 시설 유치와 도시 개발, 경제적 발전에만 관심이 집중되면서 토목사업처럼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전시 차원에서의 과학도시 육성 철학이나 정책적 뒷받침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IBS 관계자는 “연구시설과 기업체 등 유치를 통해 도시를 개발하는 수준에서 접근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과학도시 혁신이 이뤄질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도 올해 2월 발표한 ‘제5차 지방과학기술진흥 종합계획 수립 연구’ 결과에서 “중앙정부 주도에서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R&D 시스템으로의 전환, 인프라보다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지자체 주도의 연구개발(R&D) 기획력이 부족하고 중앙정부 정책 의존도가 높은 만큼 R&D 사업이 과제 단위로 산발적으로 추진되고, 지역의 여건과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의 R&D 투자 역시 지역 혁신기관 운영과 클러스터 조성 등 기반 조성 사업에 국한돼 있다는 점도 한계로 작용한다.

 

과학벨트 사업은 부지 선정을 두고 정치적 논란이 계속되고, 과도한 건설 목표가 제시된 탓에 예산 집행에 차질이 빚어지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 사업 추진이 부진하면서 당초 2015년 말 완공 예정이던 IBS 본원은 2021년으로, 2017년 완공 예정이었던 중이온가속기는 2021년으로 각각 7년과 5년씩 미뤄진 바 있다. IBS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 단장 교체, 전문인력 부족도 주요 걸림돌이다.

 

IBS 예산이 당초 계획에서 큰 폭으로 삭감돼 연구단 신설·확대 등도 불확실해진 상황이다. 올해 8월 정부는 2019년도 IBS 예산을 과학벨트 사업 요구안보다 26.5%(1754억원) 삭감한 4868억 원으로 확정했다. IBS가 과도하게 R&D 예산을 독식하고 있다는 비판에서다. 이에 따라 연구단 운영은 물론이고 7개 연구단이 입주할 건물 설계비용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2021년 완공 목표인 2단계 건립사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달 16일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위원단 IBS 현장시찰에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계획이 여러 번 변경된 것도 문제지만 예산이 삭감된 것이 더욱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용기 자유한국당 의원도 “과학벨트 사업예산이 1700억 원이나 대폭 삭감돼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본래 취지에 맞게 원안대로 예산이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IBS는 이달 12일 대전 본원에서 ‘제2의 도약을 위한 미래토론회’를 열고 “연구 자율성은 독창적 지식을 창출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라며 “IBS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연구자 중심 철학이 오롯이 구현되길 희망한다”는 내용의 비전선언문을 채택했다. 박제근 IBS 강상관계물질연구단 부연구단장(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은 “연구비가 없어서 연구를 못한다는 말은 학자로서 부끄러운 말”이라면서도 “당장의 눈에 보이는 성과를 기대하고 기초과학 연구에 투자해서는 ‘퍼스트 무버’형 연구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3 + 4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