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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왜 이럴까?]종말을 외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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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03일 10:00 프린트하기

확성기를 든 남자가 빨간 색으로 쓴 ‘세상의 종말’ 피켓을 들고 다닙니다. 시간이 없으니 얼른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벌써 십년 넘게 외치고 있다니, 도대체 언제 종말이 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사람은 세계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습니다. 묵시론적 예언을 설파하고 다니는 이들은 지혜로운 현자일까요? 아니면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일까요? 

 

프레리도그

 

프레리도그는 도그(dog·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설치류(쥐)입니다. 집단을 이루고 사는 동물인데, 수백 마리가 넘는 큰 사회를 이룹니다. 큰 집단 안에는 작은 집단도 있습니다. 집단은 서로 갈등하며 텃세를 부리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예 흩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땅을 파고 굴을 만들어 사는데, 어떤 경우에는 수천, 수만 마리가 거대 도시를 이루어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경계 중인 프레리도그. 상체를 일으켜서 주변을 경계하고, 위험이 느껴지면 소리를 내서 주변에 경고하는 독특한 행동을 보인다. - 플리커 제공
경계 중인 프레리도그. 상체를 일으켜서 주변을 경계하고, 위험이 느껴지면 소리를 내서 주변에 경고하는 독특한 행동을 보인다. - 플리커 제공

그런데 재미있게도 프레리도그는 종종 소리를 내서 위험을 주변에 알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정교한 의사소통 체계를 이용해서, 울음소리로 여러 가지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포식자가 찾아오면 소리를 내서 미리 경고하는 것입니다. 어떤 포식자인지에 따라서 소리도 조금씩 다릅니다. 당연한 일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진화적으로는 참 이상한 일입니다. 

소리를 내는 녀석은 아무래도 독수리 같은 포식자의 눈에 잘 띌 것입니다. 남에게 경고를 해주다가, 자칫하면 자기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조용히 숨죽이고 땅굴로 도망치는 편이 훨씬 유리합니다. 게다가 독수리가 그냥 휙 지나가 버리기라도 하면, 다른 녀석들에게 ‘양치기 소년’이라면서 핀잔을 들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런데도 굴하지 않고 ‘독수리가 나타났다’를 외치고 다니는 것입니다. 이런 요상한 행동은 어떻게 진화한 것일까요? 


오류 관리 이론
     
작은 일에도 놀라는 사람, 늘 노심초사 걱정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밧줄을 보고 뱀이라고 놀라고, 솥뚜껑을 보고 자라라며 놀랍니다. 불안 장애는 가장 흔한 정신 장애 중 하나인데, 위험이 없는데 놀라고 걱정하거나 혹은 작은 위험에 부적절하게 불안해하는 경우에 진단을 내립니다. 특정한 대상에 대해 공포감을 보이는 경우도 있고, 그냥 전반적으로 불안과 초조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죠. 


어쩌다가 이런 환자가 있다면 마음 어디가 고장 나서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많습니다. 조사 기준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일부 연구에서는 가장 흔한 정신장애가 바로 불안장애라고 합니다(니코틴 중독이 더 많다는 연구도 있습니다만). 아무튼 이렇게 많은 사람이 불안에 시달린다면, 그냥 ‘병’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진화심리학자 마티 헤이즐턴과 데이비드 버스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른바 오류 관리 이론을 제안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불안 장애를 설명하려고 고안한 이론은 아니지만, 불안이라는 현상이야말로 이 이론으로 아주 잘 설명됩니다. 오류 관리 이론을 간단히 말하면, 특정한 형질의 상대적인 적합도에 따라서 형질이 진화적으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형질의 유무에 따라서 나타나는 이익과 손해의 총량에 따라서 해당 형질이 선택된다는 것입니다.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종말이 가까웠다’는 피켓을 들고 있는 남자. 대도시의 번화가에는 늘 세상의 멸망과 위험을 경고하는 ‘이상한’ 사람이 있지만, 오류 관리 이론에 의하면 이런 터무니없는 묵시론적 예언이 사실은 ‘적응적 행동’일 가능성이 있다. - 플리커 제공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종말이 가까웠다’는 피켓을 들고 있는 남자. 대도시의 번화가에는 늘 세상의 멸망과 위험을 경고하는 ‘이상한’ 사람이 있지만, 오류 관리 이론에 의하면 이런 터무니없는 묵시론적 예언이 사실은 ‘적응적 행동’일 가능성이 있다. - 플리커 제공

내가 사는 불안
     
밧줄을 보고 뱀이라고 놀라며 호들갑을 떠는 사람, 그리고 어지간하면 잘 놀라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볼까요? 호들갑 씨의 삶은 아주 고단합니다. 지나가다 뭔가 늘어진 줄만 봐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습니다. 빨랫줄을 보아도, 줄넘기하는 아이를 보아도 불안이 몰려옵니다. 이래서야 도무지 행복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무덤덤 씨의 삶은 평온합니다. 불안에서 해방된 안정되고 행복한 삶입니다. 


하지만 과거 선조들이 살던 세상에서는 어땠을까요? 뱀이 우글거리는 환경에서 살던 고대의 환경에서, 무덤덤 씨는 수시로 뱀에 물립니다. 그러다 독사에 물리게 되면, 짧은 인생을 끝마치게 됩니다. 물론 ‘평온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았겠습니다만. 하지만 호들갑 씨는 어떻게든 살아남습니다. 초조와 불안으로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는 일이 있더라도, 살아남기는 하는 것이죠. 


오류 관리 이론에 의하면, 밧줄을 뱀으로 보는 오류보다 뱀을 밧줄로 착각하는 오류가 훨씬 불리합니다. 따라서 인구 집단 내에는 밧줄을 뱀으로 오인하는 호들갑 유전자가 점점 많아지게 됩니다. 험난한 환경을 겨우겨우 살아남은 고대인의 후손이 바로 지금의 우리입니다. 불필요한 불안에 시달린다고 불평하겠지만, 사실은 아주 ‘필요했던’ 불안입니다. 
     
불안을 알리는 사람들
     
인류는 프레리도그보다 훨씬 정교한 언어 체계와 훨씬 복잡한 사회 구조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혼자 숨어서 불안해하는 사람보다, 자신의 불안을 주변에 신속하게 알리는 사람이 가족과 친척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무덤덤 씨도 이런 호들갑 씨의 호들갑 덕분에 위기를 넘기는 일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냥 호들갑으로 끝나는 경우가 훨씬 많았겠습니다만. 


아마 현대 사회에서는 뉴스와 언론이 이런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원래 신문은 안 좋은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종종 과장된 오보로 신문사가 망신을 당하는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보를 줄이기 위해 심사숙고를 거듭하는 신문보다는, 조금 오보가 있더라도 얼른 세상에 위험한 소식을 알리는 신문이 훨씬 유익합니다. 최소한 오류 관리 이론에 따르면 말이죠(물론 일부러 오보를 내는 경우는 제외합니다). 


오지도 않은 위기를 떠들고, 벌어지지 않은 전쟁의 위험을 알리며, 당장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떠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에 공연한 불안을 야기하고, 위기를 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볼 일이 아닙니다. 이들은 긴 인류 진화사 동안 사람들의 조롱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이 속한 집단에 곧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을 알리는 위대한 선지자의 후손입니다. 
     
에필로그 

 

불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는 불안에서 해방되고 싶어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그럴 가능성이 없습니다. 물론 병적인 불안이라면 얼른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아야 하겠습니다만, 삶에 대한 적당한 불안과 건강한 염려라면 역설적으로 우리 삶의 쓴 보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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