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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민들레 씨앗의 유체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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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07일 09:00 프린트하기

'어느새 내 마음/민들레 홀씨 되어/강바람 타고 훨훨/네 곁으로 간다.'

 

1985년 가수 박미경이 부른 ‘민들레 홀씨 되어’ 가사 일부다. 음식과 노래에 대한 취향은 다소 퇴행적인 면이 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지난 한 세대 동안 수많은 히트곡이 나왔음에도 필자가 즐겨 듣는 노래는 여전히 젊었던 시절에 나온 8090가요다. 유튜브를 이용하게 된 뒤에는 당시 동영상까지 볼 수 있는 경우도 많아 더 자주 듣는다. 

 

한 세대 전 노래들 가운데 오늘날 명곡으로 평가되는 작품들은 곡만큼이나 가사도 뛰어난 것 같다.  노래 ‘민들레 홀씨 되어’도 그런 예로,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음미하다 보면 ‘한 편의 시’라는 생각이 든다.

 

이 노래가 나오기 전까지 민들레는 많은 사람들에게 ‘들길에 홀로 핀 이름 모를 꽃’이었을 것이고 민들레 홀씨는 갖고 놀 게 없는 아이들이나 관심을 보이는 대상 아니었을까. 이 노래의 주옥같은 가사 덕분에 민들레 홀씨는 바람에 실려서라도 그리운 사람의 곁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상징하는 존재가 됐다.

 

다만 이 노래의 가사에는 ‘옥의 티’라고 하기에는 좀 더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기는 하다. 바로 ‘민들레 홀씨’라는 표현인데, 홀씨는 포자(spore)의 우리말이기 때문이다. 민들레 같은 속씨식물에서는 당연히 ‘민들레 씨앗’이라고 해야 한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민들레 열매’이지만, 과육이 없고 마른 껍질이 씨앗을 감싼 형태인 수과(瘦果)라 흔히 씨앗이라고 부른다.

 

서양민들레의 꽃(왼쪽 : 사실은 작은 꽃 100여 개로 이뤄진 두상꽃차례)과 꽃이 진 뒤 꽃자루 끝에 달린 씨앗(사실은 열매), 말단의 갓털이 공 모양을 이룬 모습(오른쪽). 이번 민들레 씨앗 실험에 쓰인 종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서양민들레의 꽃(왼쪽 : 사실은 작은 꽃 100여 개로 이뤄진 두상꽃차례)과 꽃이 진 뒤 꽃자루 끝에 달린 씨앗(사실은 열매), 말단의 갓털이 공 모양을 이룬 모습(오른쪽). 이번 민들레 씨앗 실험에 쓰인 종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아마도 당시 작사가가 민들레 꽃이 진 뒤 씨앗(열매) 100여 개가 맺혀 공 모양을 이룬 상태에서 바람이 불면 흩어지는 개별 씨앗을 떠올리며 ‘홀씨’라고 이름 붙인 것 같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어사전에서 홀씨는 포자를 가리킬 뿐 이런 뜻은 없으므로 이하 ‘민들레 씨앗’으로 쓰겠다.

 

낙하산과 기능은 같지만

 

한 세대 전 한국의 음악가들이 민들레 씨앗에 예술적 불멸성을 부여했다면 최근 영국의 과학자들은 민들레 씨앗을 연구해 물리학의 한 분야인 유체역학의 역사에 남을 발견을 했다. 영국 에딘버러대 과학자들은 민들레 씨앗이 꽃대를 떠나 ‘강바람 타고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유체역학적 메커니즘을 밝혀낸 것이다.

 

식물은 씨앗을 멀리 퍼뜨리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진화시켰다. 민들레의 경우 마치 먼지떨이처럼 생긴 구조를 만들어 중력에 대한 저항을 최대화했다. 씨앗 반대쪽의 털뭉치(갓털이라고 부른다)가 공기저항을 일으킨다. 씨앗이 사람이라면 갓털은 낙하산인 셈이다.

 

민들레 씨앗 대다수는 꽃자루를 떠나 비행을 한 뒤 2m를 채 벗어나지 못하고 땅에 떨어진다. 하지만 운이 좋은 녀석들(날이 따뜻하거나 건조하거나 바람이 불 때)은 100km가 넘게 여행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낙하산은 천(막)인 반면 갓털은 씨앗 한쪽에서 나온 털 말단에 미세한 털(filament) 100여 개가 뻗쳐있는 구조다. 필라멘트의 길이는 평균 7.4㎜이지만 지름은 평균 16.3㎛(마이크로미터. 1㎛는 1000분의 1㎜)로 머리카락 지름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위에서 갓털을 내려다보면 필라멘트에 막혀 있는 공간이 얼마 안 돼 도저히 낙하산의 공기저항 효과를 낼 수 없을 것 같다. 

 

참고로 어떤 단면에서 뚫려 있는 부분의 면적을 전체 면적으로 나눈 값을 ‘공극률(porosity)’이라고 부르는데, 위에서 본 갓털의 공극률은 평균 0.916에 이른다. 필라멘트 100여 개가 차지한 면적의 비율이 원반의 8.4%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이처럼 엉성한 구조의 민들레 씨앗이 어떻게 공기저항을 만들어 오래 비행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풍동실험을 했다. 바람이 아래에서 위로 부는 원통 안에 민들레 씨앗을 놓고 공중부양을 하게 풍속을 맞춘 상태에서 씨앗 주변의 공기 흐름을 관찰했다.

 

그 결과 갓털 위쪽에 약간 떨어져서 소용돌이 고리가 만들어져 유지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소용돌이로 갓털 축의 풍속이 10% 줄어드는 효과가 생겼고 그 결과 압력이 낮아져 양력이 생기면서 공기저항이 커졌다. 

 

풍동실험에서 얻은 평균 종단속도(저항력을 발생시키는 유체 속을 낙하하는 물체가 다다를 수 있는 최종 속도)는 초속 39.1㎝에 불과해 공기 중에 꽤 오래 머물 수 있게 된 것이다. 참고로 지름 2㎜인 빗방울의 종단속도는 초속 7m에 이른다.

 

연구자들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민들레 씨앗의 저항계수를 계산했다. 저항계수는 저항력(중력과 같은 크기로 방향은 반대)에 비례하고 물체의 종단속도의 제곱과 막혀 있는 단면적에 반비례한다. 민들레 씨앗 갓털의 경우 원반의 지름이 13.8㎜이지만 공극률이 0.916이라 막혀 있는 단면적은 12.6㎟에 불과하다. 그만큼 저항계수가 크다는 말이다.

 

위는 민들레 씨앗의 옆 모습(a)과 위쪽에서 갓털(pappus)을 내려다 본 모습(b), 가는 털(filament)의 확대 이미지(c)와 풍동실험 모식도다(d). 아래는 풍동실험 영상으로 종단속도(e)와 종단속도의 60%의 풍속일 때 갓털 위쪽에 안정한 소용돌이가 형성돼 양력이 생김을 알 수 있다. 단면이 다 막혀 있는 원반에 e와 같은 속도의 바람을 보낼 경우 난류로 소용돌이가 방출되는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g). 반면 공극률을 갓털 수준으로 만든 원반에 f와 같은 속도의 바람을 내보내면 위쪽에 안정한 소용돌이가 유지된다. - ‘네이처’ 제공
위는 민들레 씨앗의 옆 모습(a)과 위쪽에서 갓털(pappus)을 내려다 본 모습(b), 가는 털(filament)의 확대 이미지(c)와 풍동실험 모식도다(d). 아래는 풍동실험 영상으로 종단속도(e)와 종단속도의 60%의 풍속일 때 갓털 위쪽에 안정한 소용돌이가 형성돼 양력이 생김을 알 수 있다. 단면이 다 막혀 있는 원반에 e와 같은 속도의 바람을 보낼 경우 난류로 소용돌이가 방출되는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g). 반면 공극률을 갓털 수준으로 만든 원반에 f와 같은 속도의 바람을 내보내면 위쪽에 안정한 소용돌이가 유지된다. - ‘네이처’ 제공

민들레 씨앗과 같은 질량(동일한 저항력)으로 단면이 완전히 막혀 있는(공극률 0) 원반을 만들어 동일한 종단속도를 얻으려면 지름이 8.6㎜가 돼야 한다. 갓털 원반에 비해 지름이 38%나 작지만 다 막혀 있어 단면적은 74㎟에 이른다. 민들레 씨앗은 공극률이 큰 갓털 구조 덕분에 저항계수가 네 배 이상이 돼 훨씬 경제적인 구조가 됐다. 그렇다면 민들레 씨앗은 어떻게 엉성한 필라멘트 다발로 이처럼 종단속도를 느리게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늘을 나는 게 아니라 헤엄치는 것

 

유체역학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변수는 레이놀즈 수다. 레이놀즈 수(Reynolds number)는 ‘관성의 힘’과 ‘점성의 힘’의 비다. 어떤 유체에 놓인 물체의 레이놀즈 수가 작을 경우 흐름이 일정한 안정적인 상태가 되고 클 경우 난류 같은 불안정한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레이놀즈 수는 물체(또는 유체)의 이동 속도와 물체의 특성 길이(민들레 씨앗의 경우 갓털 원반 지름)에 비례하고 유체(이 경우 공기)의 밀도에 반비례한다. 종단속도에서 민들레 씨앗의 평균 레이놀즈 수는 357로, 저항력과 종단속도가 같은 막힌 원반의 레이놀즈 수 222보다 크다(특성 길이가 더 길므로). 이에 따르면 종단속도로 떨어지는 민들레 씨앗 주변의 공기는 꽤 불안정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연구자들은 그 답을 갓털 필라멘트의 레이놀즈 수에서 찾았다. 민들레 씨앗의 갓털을 하나의 원반으로 봤을 때의 레이놀즈 수도 있지만, 개별 필라멘트를 대상으로 한 레이놀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특성 길이는 필라멘트의 지름으로 평균 16.3㎛에 불과해 레이놀즈의 수가 아주 작고(1 미만) 따라서 유체(이 경우 공기)의 점성이 큰 역할을 한다.

 

이에 따라 필라멘트 주변 공기의 흐름이 느려지는 데다 필라멘트 사이의 간격이 수백㎛에 불과해 전체적으로 반투과성 막이 있는 것 같은 효과를 낸다. 그 결과 뒤쪽(갓털의 위쪽)으로 약간 거리를 두고 안정한 소용돌이 고리가 형성되면서 양력이 생긴다. 연구자들은 실리콘 원반을 가공해 공극률을 민들레 갓털 수준으로 만들어 풍동실험에서 동일한 현상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몸길이가 1㎜ 내외인 곤충은 필라멘트가 배열된 형태의 날개로도 날 수 있다. 레이놀즈 수가 아주 작아 공기의 점성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요정파리의 일종인 아레스콘(Arescon)속(屬) 곤충의 모습이다. - 제공 위키피디아
몸길이가 1㎜ 내외인 곤충은 필라멘트가 배열된 형태의 날개로도 날 수 있다. 레이놀즈 수가 아주 작아 공기의 점성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요정파리의 일종인 아레스콘(Arescon)속(屬) 곤충의 모습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민들레 갓털의 필라멘트 배열처럼 아주 가는 털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는 시스템은 레이놀즈 수가 아주 작아 공기처럼 점성이 약한 유체조차도 점성의 영향력이 커진다. 따라서 이 경우 굳이 막을 만들지 않아도 막의 효과를 볼 수 있어 재료를 아낄 수 있고 조금이나마 무게를 덜 수 있다. 

 

아주 작은 곤충이 미세한 털이 배열된 날개로 날 수 있는 것도 같은 원리다. 옆의 사진은 기생벌류인 요정파리(fairyfly)의 하나인 아레스콘(Arescon)속(屬) 곤충의 모습으로 날개가 마치 빗처럼 생겼다. 이런 구조는 막으로 된 날개보다 양력이 덜 나오겠지만, 날개 재료도 덜 들어가고 날갯짓을 할 때 힘도 덜 든다.  


민들레 씨앗을 고정하고 아래에서 위로 종단속도의 바람을 보내면(자유낙하에 해당) 씨앗 갓털 위에 좀 떨어져서 소용돌이 고리가 생기고 안정되게 유지됨을 볼 수 있다. 민들레 씨앗의 평균 종단속도가 초속 39.1㎝에 불과해 공기 중에 오래 머물 수 있는 건 소용돌이 고리로 양력이 생겨 공기저항이 커진 결과로 밝혀졌다 - 네이처 제공
민들레 씨앗을 고정하고 아래에서 위로 종단속도의 바람을 보내면(자유낙하에 해당) 씨앗 갓털 위에 좀 떨어져서 소용돌이 고리가 생기고 안정되게 유지됨을 볼 수 있다. 민들레 씨앗의 평균 종단속도가 초속 39.1㎝에 불과해 공기 중에 오래 머물 수 있는 건 소용돌이 고리로 양력이 생겨 공기저항이 커진 결과로 밝혀졌다 - 네이처 제공

 

왼쪽 아래 척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몸길이가 1㎜도 안 되는 아주 작고 가벼운 곤충이기 때문에 막 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필라멘트가 배열된 게 전부인 날개로도 날 수 있다. 이들에게는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것보다 헤엄친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이다.  

 

이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은 학술지 ‘네이처’ 10월 18일자에 실렸는데, 같은 호의 사설에서도 다뤘다. 우리가 익숙한 주변에서도 때때로 놀라운 발견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멋진 사례라는 것이다. 사설은 “원자보다도 작은 세계와 은하보다도 큰 세계, 수십 억 년 규모에는 미지의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가 뻔하다고 생각하는 대상에도 여전히 비밀이 숨어있다”며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한 소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했다.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Heaven in a wild flower) - ‘순수의 전조(Auguries of Innocence)’에서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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