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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진심이라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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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1일 10:00 프린트하기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을 일컬어 진심이라고 합니다. 맥락에 따라 진정성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성실성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정성, 충정, 속마음도 비슷한 뜻입니다. 거짓과 협잡, 과장, 모략이 판치는 세상에서 ‘진심’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반가운 기분이 듭니다. 진심입니다. 하지만 과연 진심이란 무엇일까요? 그냥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있는 대로 꺼내면 진심 어린 마음일까요? 

 

진심과 공감의 역설

 

강아지의 재롱을 보면 아주 기분이 좋아집니다. 주인을 보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강아지의 본심을 오해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 어딘가에는 주인이 싫으면서도 가식적으로 꼬리를 흔드는 개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주 솔직합니다. 좋으면 좋아라 하고 싫으면 싫어라 합니다. 
어린아이도 그렇습니다. 3세 이전의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못합니다. 연구에 따라 다르지만 3세가 넘어야 드디어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빈 컵을 들고 물을 마시는 놀이를 하는 것도 거짓이라고 하면, 2세부터도 원초적 거짓말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상대를 속이려는 의미의 거짓말은 좀 더 나이가 들어야 할 수 있게 됩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 되면, 제법 거짓말이 능숙해 집니다. 일부러 상대가 속지 않는 거짓말을 하면서 장난을 치기도 하고, 가끔은 악의적인 거짓말을 하기도 하죠. 부모와 자식의 두뇌 싸움이 시작됩니다. ‘이제 착하던 우리 아이가 순수함을 잃었어’라는 한탄이 들려오는 시기입니다. 

 

일반적으로 2-3세 이전의 유아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거짓말은 타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공감 모듈이 발달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거짓말은 옳지 않은 일이지만, 동시에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진화적 적응의 결과다. - 플리커 제공
일반적으로 2-3세 이전의 유아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거짓말은 타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공감 모듈이 발달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거짓말은 옳지 않은 일이지만, 동시에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진화적 적응의 결과다. 플리커 제공

내가 사는 거짓말

 

거짓말은 옳지 않은 행동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거짓말은 아주 중요한 발달적 과제이자 인지적 능력입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아이는 거짓말을 잘하지 못합니다. 착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일견 순수해 보입니다. 말 그대로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는 아이입니다.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도 높은 수준의 마음 읽기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언어와 예술, 문학, 협력 등 인간만의 다양한 문화를 일구어냈습니다. 이러한 능력의 기저에 바로 ‘거짓말 모듈’이 있습니다. 

 

거짓말을 하려면, 일단 자신과 상대가 서로 다른 진실을 마음속에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자폐 환자에게 부족한 능력이죠. 동시에 내 마음속에, 상대의 생각이 흘러가는 과정을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컴퓨터로 치면 일종의 멀티 부팅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상대의 의도 파악을 위한 영역이, 자신의 본래 인지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게다가 상대도 동시에 나와 똑같은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해해야 합니다. 대단히 어려운 인지 과정입니다.  

 

1959년 한 식료품 광고. 프랑스식 양파 수프를 좋아하는 남자의 마음을 읽으라는 광고. 남편의 귀가 시간을 당기는 방법이 바로 통조림을 사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아마 이런 광고를 낸 광고주의 의도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양파 수프를 좋아하는 남편의 마음을, 읽고 있는 남편의 이른 귀가를 바라는 주부의 마음을, 읽고 있는 광고주의 통조림을 더 팔고 싶은 마음을, 간파한 본 칼럼 독자의 마음을, 지금 읽고 있는 것이다. - 플리커 제공
1959년 한 식료품 광고. 프랑스식 양파 수프를 좋아하는 남자의 마음을 읽으라는 광고. 남편의 귀가 시간을 당기는 방법이 바로 통조림을 사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아마 이런 광고를 낸 광고주의 의도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양파 수프를 좋아하는 남편의 마음을, 읽고 있는 남편의 이른 귀가를 바라는 주부의 마음을, 읽고 있는 광고주의 통조림을 더 팔고 싶은 마음을, 간파한 본 칼럼 독자의 마음을, 지금 읽고 있는 것이다. 플리커 제공

거짓은 유일한 진실

 

아무렇지도 않게 진심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쟁이입니다. 그 누구의 속마음도 완전히 하나로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경험적으로도 알고 있고,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보아도 역시 그렇습니다. 신경심리학의 연구도 일관된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최소 2세 이후에는, 마음속에 다양한 가식과 이심, 역심을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진정성을 믿어달라고 하고, 타인은 거짓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타시아의 삼국으로 이루어진 미래 세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오세아니아에 살고 있죠. 오세아니아 몇몇 나라에는 진실부(Ministry of Truth)라는 정부 부처가 있습니다. 네. 진실을 다루는 부처입니다. 

 

오세아니아를 지배하는 당의 강령은 ‘전쟁은 평화, 자유는 복종, 무지는 힘’입니다. 서로 병립할 수 없는 명제를 함께 받아들이라고 강요합니다. 바로 우리 뇌가 끊임없이 하는 일입니다. 

 

주변과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키면서도, 자신은 늘 조용하고 고즈넉한 삶을 꿈꾼다고 합니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면서, 몇 년간 고시원에서 자신을 속박하고 이내 속박받는 직업의 대명사인 공무원이 됩니다. 책 한 권 제대로 읽은 적이 없으나, 마음 속에서는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듯 느낍니다. 조지 오웰은 이를 ‘이중사고(doublethink)’고 하였습니다. 마치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 지금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진심을 향해서

 

조지 오웰의 소설은 흔히 암울한 전체주의 국가에 대한 SF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오세아니아의 국민은 이중사고를 통해서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아니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고 살아갑니다. 물자 부족에 허덕이며 배를 곯지만, 동시에 가장 풍족한 환경에서 살아간다고 믿습니다. 외국과의 전쟁은 패배 없이 늘 승리하지만, 동시에 수십 년 동안 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거짓이 진실이고, 진실은 또한 거짓인 세상입니다. 

 

“이것은 한 사람이 두 가지 상반된 신념을 동시에 가지며, 그 두 가지 신념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당의 지식층은 자신들의 기억을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할지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현실을 농락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이중 사고'의 훈련에 의해서 현실은 침해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만족해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의식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확하게 수행될 수 없다. 그런데 또한 이런 과정은 무의식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날조를 한다는 느낌이 들게 되고, 그로 인해 죄의식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당의 본질적인 행위는 완전히 정직하게 수행된다는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의식적인 기만을 감수하며 행해져야 한다.” – ‘1984년(민음사 판)’에서

 

우리 인간의 뇌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중사고’의 과정은, 그러나 우리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고 삶의 진정한 목적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사실 마음 읽기 모듈은 공감이나 협력에 도움을 주는 유용한 모듈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모듈보다 ‘우월한’ 심리 모듈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교류해야 하는 복잡한 중층 사회에서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진화한 것입니다. 그뿐 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진심’은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늘 자기 내면에서 들려오는 내면의 목소리, 즉 다이몬의 경고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플라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 목소리는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일러주지는 못하지만, 가지 않아야 할 방향은 경고해준다고 하였죠. 다시 말해서 자기 부정을 통한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거짓된 사람입니다. 그렇게 진화했고, 그래서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진심이란 자신이 100% 옳고 바른 생각과 행동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다양한 거짓과 복잡한 협잡이 교차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마 그런 사실을 인정하면, 타인의 거짓과 협잡도 조금은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거짓된 본성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본성의 거짓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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