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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면역학자 찰스 서 교수의 죽음 뒤 일어난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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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1일 11:00 프린트하기

 

세계적인 면역학자 찰스 서 교수는 2012년 귀국해 IBS 면역 미생물 공생 연구단을 이끌었지만, 지난해 10월 6일 56세의 아까운 나이에 지병으로 타계했다. ‘면역’ 제공
세계적인 면역학자 찰스 서 교수는 2012년 귀국해 IBS 면역 미생물 공생 연구단을 이끌었지만, 지난해 10월 6일 56세의 아까운 나이에 지병으로 타계했다. ‘면역’ 제공

“한국의 면역학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싶습니다.” -찰스 서, 2012년 IBS 면역 미생물공생연구단장으로 부임하면서 한 인터뷰에서.

 

요즘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이 인기다. 이야기는 부부와 딸 둘로 이뤄진 한 가정이 갑작스러운 가장의 죽음으로 풍비박산 나는 걸로 시작한다. 남편이 죽자 소양자(임예진)는 첫째 도란(유이)이 친딸이 아니라 밖에서 데려왔다며 매정하게 내쫓지만 본인도 사기를 당해 집을 빼앗기고 빚까지 진 채 둘째 미란(나혜미)과 한강 다리 밑에서 노숙하는 신세가 된다. 드라마는 자매가 좋은 남자들(각각 기업가 3세와 치과의사)을 만나 팔자가 피는 이야기로 전개될 것 같다.

 

물론 식상한 설정이지만 실제 우리 주변을 보면 유복하게 살다가 사업실패나 보증, 사기피해, 엄청난 치료비로 가산을 탕진하고 때로는 빚더미에 올라앉아 고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이 드라마처럼 가장이 세상을 떠날 경우 남은 가족들은 험한 꼴을 당하기 십상이다.

 

지난해 10월 6일 56세에 타계

 

그런데 최근 이와 비슷한 일이 과학계에서도 일어나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면역 미생물 공생 연구단은 워낙 유명한 단장 덕분에 한때 IBS의 얼굴마담이라고 할 정도로 잘 나갔지만, 지난해 10월 6일 찰스 서 단장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하루아침에 찬밥 신세가 됐다. 급기야 지난 10월 15일 연구단 폐쇄가 결정됐다. 리더를 잃은 연구단 소속 과학자들로서는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한 번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고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7년 동안 무수히 밤을 새우고 주말을 반납해가며 구축해놓은 실험설비(연구 인프라와 기자재)를 더 이상 쓸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마치 법원 직원이 채무자의 집에 들이닥쳐 빨간딱지를 붙인 뒤 물건들을 가져가 경매에 넘기듯 연구단의 실험설비도 회수해 간다는 것이다(다만 하던 연구를 마무리할 수 있게 1년의 유예기간을 주기로 했다). 잇따른 충격에 연구단 과학자들은 절망감에 망연자실하고 있다.

 

찰스 서 교수를 대신할 후임 단장을 구하지 못해 매년 50억 원이 투입되는 연구단을 계속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해 폐쇄를 결정한 것은 그렇다고 쳐도 실험설비까지 회수하는 건 지나친 조치 아닐까.

 

포항공대에 자리한 면역 미생물 공생 연구단은 무균/무항원 생쥐 사육 설비(사진)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인프라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단 폐쇄가 결정되면서 실험설비도 내년 이맘때 해체될 예정이다.
포스텍에 자리한 면역 미생물 공생 연구단은 무균/무항원 생쥐 사육 설비(사진)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인프라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단 폐쇄가 결정되면서 실험설비도 내년 이맘때 해체될 예정이다.

과학연구라는 게 개별 프로젝트도 수년에 걸쳐 이뤄지는 것이고 따라서 현재 연구단에서는 여러 프로젝트가 다양한 단계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가운데는 이미 논문을 제출한 뒤 학술지 측에서 제시한 추가 실험만을 남겨놓은 연구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실험설비가 사라진다는 건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사형선고다.

 

무균·무항원 설비 등 국내에는 유일하고 세계적으로도 몇 군데 없는 설비로 실험을 하기 때문에 이게 해체되면 더 이상 일을 진행할 수 없다. 연구단의 과제를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삼아 수년 동안 실험하고 있던 대학원생들은 지금 심정이 어떨까. 이곳에서 연구결과가 향후 자리를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박사후연구원들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은 행정의 문제

 

이런저런 이유로 연구단이 기간을 못 채우고 해체되는 경우는 몇 번 봤지만, 실험설비까지 회수한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예를 들어 9년짜리 사업을 3년마다 평가하는 경우 6년까지 하다가 두 번째 평가에서 탈락해도 남은 3년의 연구비를 못 받는 것이지 그동안 만들어놓은 실험설비까지 빼앗기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유독 IBS 연구단 폐쇄만 이런 혹독한 조치가 따르는 걸까. 바로 자산의 소유권 때문이다. 연구비로 구축한 실험설비는 연구자가 아니라 소속 기관이 소유권을 갖는다. 교수가 프로젝트를 따와 구축한 실험설비는 대학이 소유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프로젝트가 끝나거나 중단돼도 연구자들은 실험설비를 계속 쓸 수 있다.

 

그런데 면역 미생물 공생 연구단의 경우 실험설비는 포스텍에 만들어 놨지만 IBS 연구단의 연구비를 쓴 것이므로 소유권은 포스텍이 아니라 IBS가 갖는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문제가 될 게 없지만 이번처럼 단장이 세상을 떠나거나 연구성과가 미비해 연구단이 해체될 경우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진다.

 

게다가 IBS 연구단의 규모가 크다는 게 상황을 더 심각하게 만든다. 면역 미생물 공생 연구단의 경우 인원이 48명이나 되는데 갑작스럽게 문을 닫고 실험장비까지 없어지면 소속 과학자 수십 명이 치명상을 입을 수 밖에 없다. 마치 신라나 가야의 순장(殉葬)처럼 리더가 죽자 함께 묻히는 셈이다.

 

그렇다면 IBS가 회수해 갈 실험설비는 어떻게 될까. 아마도 다른 연구단들에 목록을 돌려 필요로 하는 것들을 나눠줄 것이다. 이렇게 실험설비를 회수하면 장부상으로 얼마나 손실(연구단 폐쇄를 실패라고 보는 입장에서)을 만회할 수 있을까.

 

생전의 찰스 서 연구단장(앞줄 가운데)과 연구단 과학자들. 이때만 해도 수년 뒤 엄청난 비극이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 단장과 IBS를 믿고 안정적인 교수 자리도 마다하고 한국에 온 외국 과학자들은 뛰어난 성과를 내고도 쫓겨나는 황당한 상황을 겪고 있다. IBS 면역 미생물 공생 연구단 제공
생전의 찰스 서 연구단장(앞줄 가운데)과 연구단 과학자들. 이때만 해도 수년 뒤 엄청난 비극이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 단장과 IBS를 믿고 안정적인 교수 자리도 마다하고 한국에 온 외국 과학자들은 뛰어난 성과를 내고도 쫓겨나는 황당한 상황을 겪고 있다. IBS 면역 미생물 공생 연구단 제공

지금까지 연구단이 실험장비를 구축하는데 투입한 연구비는 65억 원에 이른다. 그 사이 수년의 시간이 흘러 감가상각(고정 자산 가치의 소모를 각 회계 연도에 할당하여 그 자산의 가격을 줄여 가는 방식)이 많이 이뤄져 현재 자산은 15억 원 정도로 잡힌다. 1년의 유예조치가 있으므로 실제 실험설비를 회수할 시점에서는 10억 원이 조금 넘는 수준일 것이다.

 

대신 지금처럼 최적의 조합으로 효용이 극대화된 상태에서 계속 쓰인다면 앞으로 100억 원 어쩌면 1조 원의 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다. 터무니없는 과장처럼 들리겠지만 면역학이나 장내미생물은 기초과학이면서 동시에 조금만 응용하면 의약품 개발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 가운데 한 명인 그레고리 윈터 박사는 바이러스(박테리오파지)에서 항체를 만드는 방법을 고안해 연 매출이 수조 원에 이르는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아달리무맙을 개발했다. 어쩌면 연구단의 실험장비로 훗날 노벨과학상으로 이어질 발견을 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젊은 연구자들이 절망하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IBS 체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27개에 이르는 연구단 가운데 비슷한 사태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고 지금대로라면 그럴 때마다 뛰어난 과학자 수십 명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게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 성과 잇달아 발표

 

그런데 연구단이 해체된 마당에 실험설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자동차가 멀쩡해도 기름이 없으면 소용이 없듯이 연구비가 없는데 어떻게 실험실을 운영한다는 말인가. 고물 자동차처럼 해체해 고철값이라도 받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나 앞으로 IBS 연구비를 받지 못하게 되더라도 연구가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추진력은 꽤 떨어지겠지만 다른 연구비로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면역학과 장내미생물은 요즘 워낙 뜨는 분야이고 세계적인 실험설비와 인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기업체에서 새로운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연구단의 과학자들이 실험설비만은 회수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는 이유다.

 

물론 IBS 쪽도 이런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법이 회수하게 돼 있으니 따라야 한다는 입장일 것이다. 과학자들의 편의를 봐줬다가 무슨 불똥이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대안을 적극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포스텍이 IBS에 감가상각된 자산 가치로 실험설비를 구매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당장 부담스러우면 수년간 임대를 하고 자산 가치가 더 떨어졌을 때 사는 방안도 있다. 불과 10억여 원의 자산 가치 때문에 어렵게 구축해놓은 실험설비를 해체하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지난 수년 사이 연구단의 실험설비가 자리를 잡고 여러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최근 본격적으로 성과가 나오고 있다. 지난 달과 이번 달 연구단은 유수한 학술지에 논문을 잇달아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면역학’ 10월호에 발표한 “장내미생물이 면역세포의 분화 및 분별 교육을 담당한다”는 논문은 같은 호에 해설까지 실렸고, ‘네이처 면역학 리뷰’ 11월호에도 ‘화제의 연구’로 소개됐다.

 

최근 면역 미생물 공생 연구단은 중요한 연구 성과를 잇달아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11월 9일자에 실은 논문에서 연구단은 Id2 유전자의 발현이 자가면역질환과 암에서 반대로 작용함을 밝혀 면역 치료제 개발에 새로운 통찰을 제시했다. IBS 면역 미생물 공생 연구단 제공
최근 면역 미생물 공생 연구단은 중요한 연구 성과를 잇달아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11월 9일자에 실은 논문에서 연구단은 Id2 유전자의 발현이 자가면역질환과 암에서 반대로 작용함을 밝혀 면역 치료제 개발에 새로운 통찰을 제시했다. IBS 면역 미생물 공생 연구단 제공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10월 26일자와 11월 9일자에 잇달아 발표한 논문에서 연구단은 면역조절 T세포의 활성과 생성에 관여하는 새로운 인자들을 규명했다. 이 결과는 면역의 관점에서 암과 자가면역질환이 서로 시소 관계에 있다는 통찰을 실험으로 증명해 관심을 끌었다. 이 결과는 면역세포 치료제 개발에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달에는 권위 있는 학술지인 ‘면역(Immunity)’에 또 한편의 논문이 실릴 예정이다.

 

 

서 교수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은

 

지난해 10월 서 교수가 타계한 뒤 ‘면역’, ‘네이처 면역학’ 등 면역학 분야의 주요 학술지는 그를 기리는 부고를 실었다. 찰스 서의 삶과 업적을 되돌아보며 다들 하나같이 끝에서는 그가 조국으로 돌아간 뒤 했던 일을 소개하고 있다.

 

1961년 생으로 11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간 찰스 서는 미국 스크립스연구소에서 23년 간 연구하면서 면역관용과 T세포 항상성 분야를 개척해 세계적인 면역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2012년 40년의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해 포스텍에 자리를 잡고 IBS 연구단을 이끈 서 교수는 “한국의 면역학을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로 연구에 매진했다.

 

그러나 2015년 대장암 판정을 받았고 암투병을 하면서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결국 현재 연구단의 실험설비는 그가 남긴 유산인 셈이다. IBS가 서 교수에 필적할 만한 후임을 찾지 못해 연구단을 폐쇄하게 됐다는 말은 그를 그만큼 높이 평가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서 교수와 동료 과학자들이 고생고생해 ‘한 단계 끌어올린 한국의 면역학’을 불과 십억여 원의 가치를 회수하겠다고 ‘다시 한 단계 끌어내려’ 원상태로 돌려놓겠다는 건 서 교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게 아닐까.

 

지난해 찰스 서 교수가 타계하자 면역학 분야의 여러 학술지에 그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부고가 실렸다. 강석기 제공
지난해 찰스 서 교수가 타계하자 면역학 분야의 여러 학술지에 그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부고가 실렸다. 강석기 제공

지난해 가을 미국의 자택에서 가족과 생의 마지막 나날을 보내던 서 교수가 자신의 사후 연구단에서 일어날 일을 예상했다면(미국에서 오래 산 그가 그랬을 것 같지는 않지만) 세상을 떠나는 순간 눈을 감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래는 지난해 12월 국제학술지 ‘면역’에 실린 부고의 한 부분이다.

 

“찰리(찰스의 애칭) 경력의 마지막 장은 아마도 가장 창조적이었을 것이다. 2012년 그는 포스텍에서 IBS 면역 미생물 공생 연구단장이 됐다. 이곳에서 그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세계의 많은 실험실이 무균 설비를 갖고 있지만, 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에서 유일한 무항원 생쥐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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