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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분노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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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4일 11:40 프린트하기

최근 분노의 ′순기능′에 주목한 학자들이 있다 -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최근 분노의 '순기능'에 주목한 학자들이 있다 -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흔히 ‘분노’라고 하면 화합을 깨트리고 갈등을 만들어내는 파괴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분노는 우선 수그러트리는 것이 좋다는 조언들이 많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어떤 감정도 본질적으로 좋거나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감정들은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상황과 표출하는 방법에 따라 좋은 영향력을 미치기도 나쁜 영향력을 미치기도 한다.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문제라는 것이다.

최근 공격성이나 판단력 상실 같은 분노의 부작용 말고 ‘순기능’에 주목한 학자들이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심리학자 빅토리아 스프링 교수는 분노가 사람들로 하여금 ‘문제’의 존재에 집중하게 해주고 약자들로 하여금 집단적인 행동을 하도록 돕는 촉진제가 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Spring et al., 2018).

일례로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등에는 항상 다양한 이슈가 이야기 된다. 그 중에는 특정 사건이나 이슈에 대해 화를 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늘 많은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따라서 SNS가 사람들을 지나치게 쉽게 분노하게 몰아간다던가 갈등을 조장한다는 시각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스프링 교수는 그것은 분노의 단면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예컨데 '미투(Me too)' 운동처럼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특정 이슈에 대해 서로의 경험을 털어놓고 함께 분노하는 과정에서 집단적인 분노는 제 3자에게도 지금 무엇이 이슈인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무엇이 잘못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준다. 이전에는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숨어있던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다수의 분노는 비슷한 불합리한 일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자신만 분노했던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본인이 예민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일이 정말 잘못된 일이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함께 기뻐하면서 친해지는 것 못지 않게 함께 뭔가를 욕하면서 친해지는 것처럼 서로의 분노를 확인하는 과정은 사람들에게 깊은 유대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또 이런 분노가 잠재적 가해자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누군가 앞으로 이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면 많은 이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보낸다. 다수의 분노는 권력자에게도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서 앞으로는 함부로 그와 같은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제어 장치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어떤 행동이 용인되고 어떤 행동이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규범’이 형성되기도 한다. 집단적으로 공유된 분노는 사회를 바꾸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어떤 사안에 대해서 분노할 때, 앞으로 잘 될 거라는 ‘희망’ 같이 유순한 감정을 가졌을 때보다 더 ‘정책 입안’ 같은 실질적인 행동에 나설 의향을 보였다는 연구가 있었다(Tagar et al., 2011). 필자도 여성이나 이민자 같은 특정 집단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에 대해 분노했을 때 비로소 평소 같으면 바빠서, 또는 귀찮아서 등 여러가지 이유로 하지 않았을 봉사활동이나 기부 활동을 시작한 경험이 있다.

다른 연구에서는 여성의 경우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분노한 만큼 이후 동일노동 동일임금 운동에의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크게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분노를 낮추는 시도들, 예컨데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겠지’ 같은 긍정적인 해석은 되려 실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집단 대응에의 참여 의사를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Becker & Wright, 2011).

이렇게 분노가 때론 사회를 뒤집는 등 큰 파장을 가지고 오므로 분노를 경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사회적 약자의 분노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의 분노보다 더 많은 검열을 받는 것이 한 예다. 높은 사람은 아랫 사람의 작은 실수에 고래고래 화를 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아랫 사람이 윗 사람의 잘못에 웃어넘기지 않고 살짝 찌푸리기라도 하면 ‘별 것 아닌 일로 화를 내는 사회성 없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들이 겪은 불합리한 일에 대해서는 ‘원래 그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해도 싼 사람일 것’이라는 가정을 더 쉽게 하는 경향을 보인다 (Mallett et al., 2011). 따라서 불합리한 일에 대해 화를 내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화를 낼 때 보다 약자가 화를 낼 때 ‘뭐 잘 한 게 있다고 화를 내지?’같은 태도를 더 쉽게 보인다.

똑같이 화를 내도 남성이 화를 내면 뭔가 화가 날만 한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여성이 화를 내면 예민하게 군다거나 감정적이어서 믿을 수 없다는 정 반대의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Brescoll & Uhlmann, 2008).

약자의 분노는 ‘감정적’인 반응이며 정당한 분노가 아니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사실상 특정 계층의 사람에게만 분노가 허용되는 셈이다. 한가지 슬픈 사실은 분노를 억압당하는 사람들 스스로도 화가 날 때면 이게 정말 화가 날 만한 상황인지 아니면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은 아닌지 자기 검열을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온 사람들의 분노에 우리는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Becker, J. C., & Wright, S. C. (2011). Yet another dark side of chivalry: Benevolent sexism undermines and hostile sexism motivates collective action for social chang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1, 62–77.

Brescoll, V. L., & Uhlmann, E. L. (2008). Can an angry woman get ahead? Status conferral, gender, and expression of emotion in the workplace. Psychological Science, 19, 268–275.

Mallett, R. K., Huntsinger, J. R., & Swim, J. K. (2011). The role of system-justification motivation, group status and system threat in directing support for hate crimes legislation.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7, 384-390.

Spring, V. L., Cameron, C. D., & Cikara, M. (2018). The upside of outrage. Trends in Cognitive Sciences22, 1067-1069.

Tagar, M. R., Federico, C. M., & Halperin, E. (2011). The positive effect of negative emotions in protracted conflict: The case of anger.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47, 157-164.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을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 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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