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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아빠 없는 하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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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아빠 없는 하늘 아래

2018.12.16 10:00

아빠는 왜? 

작자 미상(초등학교 2학년 학생)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왜 있을까? 

 

2010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빠는 왜?’라는 초등학생의 시가 소개됐습니다. 재미있는 동시지만, 적지 않은 아빠의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 동시를 주제로 가정에서의 아버지 역할에 대한 제법 진지한 토론이 있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혹은 남편의 역할에 대한 가장 고전적인 인류학적 설명은 바로 ‘보호’와 ‘사냥’입니다. 즉 강력한 신체적 능력을 바탕으로 가족을 외적으로부터 보호하고, 먹잇감을 사냥하여 양질의 식량을 집으로 가져온다는 것이죠. 현생 수렵채집인의 식량 공급 패턴을 보면 제법 그럴 듯한 주장입니다. 동물성 단백질의 대부분과 벌꿀의 거의 전부를 남성이 획득합니다. 모두 양질의 음식이지만 구하기 어려운 것이죠.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마트에 가면 쉽게 고기를 구할 수 있고, 달콤한 벌꿀은 너무 많아서 곤란한 세상입니다. 물론 아버지가 대신 돈을 벌어오지 않느냐고 항변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어나면서 이런 주장도 설득력을 잃고 있습니다. 외적을 막아준다는 말도 별로 공감을 얻지 못합니다. 저만 해도 아빠가 된지 10년이 넘었지만, 집안에 쳐들어온 ‘도둑’을 잡아본 경험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설사 그런 일이 생겨도 직접 몽둥이를 들고 싸우기보다는 얼른 112를 찾을 것입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초등학교 2학년의 동시. 과연 아빠는 왜 있는 것일까? 플리커 제공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초등학교 2학년의 동시. 과연 아빠는 왜 있는 것일까? 플리커 제공

 

 

아버지가 없다면 

 

만약 정말 아버지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도 정이 들었으니 아빠를 가족에 끼워주기는 하지만, 설령 없다고 해도 뭐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지 않을까요?  물론 가족의 의미를 단지 기능성으로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유용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족은 있을 필요도 없단 말이냐’라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네. 그래서 과거의 아버지가 담당하던 역할을 잃어버린 지금의 ‘무익한’ 아버지도 어떻게든 ‘버림받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죠. 영 체면은 말이 아닙니다만.

 

하지만 고개 숙인 아버지의 눈이 번쩍 뜨일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딸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이 생긴다는 연구가 발표된 것입니다. 80년 대 이후 진행된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아버지가 없는 딸에게 비만, 심혈관 질환, 약물 남용, 비행, 우울장애, 불안장애 등이 늘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게다가 성관계도 보다 일찍 시작하고 성적 학대를 받는 경우도 많아집니다. 아버지가 있어야 할, 최소한 딸에게는, 의학적 이유가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16번 염색체 장완(6q16.3-q21)에 위치하는 LIN28B유전자가 아버지 부재 효과를 중개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16번 염색체 장완(6q16.3-q21)에 위치하는 LIN28B유전자가 아버지 부재 효과를 중개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아버지 부재와 딸의 건강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자란 딸이 보다 이른 사춘기를 경험한다는 사실은 수십 년 전부터 알려졌습니다. 초기 유년기에 아버지의 존재 여부가, 여성의 생식 시점을 결정하는 중요한 발달적 신호로 작동한다는 가설이 수립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가 없으면 딸은 보다 이른 시점에 여성 호르몬 분비가 시작되고, 이는 다양한 생식 관련 질환의 위험성을 높이고 정신성적 행동 변화를 유발하게 된다는 것이죠.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자란 딸이 보다 이른 사춘기를 경험한다는 사실은 수십 년 전부터 알려졌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자란 딸이 보다 이른 사춘기를 경험한다는 사실은 수십 년 전부터 알려졌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진화인류학자 페트리샤 드라퍼와 헨리 하펜딩 등에 의하면, 생애 최초의 5-7년 동안 영유아는 세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이에 걸맞는 발달 전략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진화적 적응 환경에서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보다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미래’를 보장하는 강력한 신호였다는 것이죠. 하지만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보다 위험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를 상정하여 이에 걸맞는 생애사적 전략을 취하게 됩니다.

 

후자의 전략을 흔히 빠른 생애사 전략이라고 합니다. 위험하고 험난한 환경이라면, 보다 이른 초경과 사춘기, 임신, 출산을 시도하는 편이 유리합니다. 앞으로 안정적인 20-30년의 삶을 기약하기 어렵다면 일단 얼른 자식을 낳는 쪽이 진화적으로 유리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른 사춘기, 이른 임신은 다양한 문제를 낳습니다. 일단 과도한 에스트로겐 노출에 의해서 여성암의 발병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유방암, 난소암 등입니다. 또한 빠른 생애사적 행동 전략은 불안과 우울, 자해, 알코올이나 약물 남용 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를 이른바 아버지 부재 가설(father absence hypothesis)라고 합니다. 또한 아버지 부재에 의해서 정신사회적 발달이 보다 촉진되는 현상을 따로 정신성적 가속화 이론(psychosocial acceleration theory)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보다 이른 임신과 출산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행동 양상이 변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부재 가설에 대한 비판

 

하지만 아버지 부재 가설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상황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 부분 부모의 갈등에서 비롯합니다. 즉 잦은 부부싸움 혹은 혼외 관계 등으로 인해서 결과적으로 아버지가 없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아버지 부재에 의한 빠른 생애사적 전략도, 사실은 아버지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부모의 그런 행동 경향을 닮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버지 부재에 의한 행동 전략의 변화는 아들보다 딸에게 보다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러한 반론은 조금 설득력이 약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동일한 유전적 원인에 의해서, 부모의 갈등과 딸의 빠른 생애사 전략이라는 두 가지 결과가 같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단지 아버지가 없기 때문에, 딸이 이른 성적 성숙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의 지위가 다시 위태로워졌습니다.

 

 

아버지 부재와 유전자 LIN28B

 

2017년 뉴욕 주립대 가브리엘 쉬롬머와 조현진 선생님은 초경 연령에 미치는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 작용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LIN28B 유전자는 6번 염색체의 긴 팔에 존재하는 유전자입니다. 다양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소녀의 발달 시점 조절 기능입니다. LIN28B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은 이른바 let-7 microRNA의 형성을 억제하는데, 이 let-7 microRNA는 발달 시점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LIN28B 단백질이 과다 발현되면 성장이 지연되고 이차 성징도 늦게 일어납니다. 즉 느린 생애사적 전략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죠.

 

연구자들은 여러 인종의 데이터를 모았습니다. 초경 연령(AAM, age at menarche)와 아버지 부재 여부(father absence), LIN28B 유전자를 분석해서 비교했습니다. rs364663와 rs314273라는 두 개의 SNP을 이용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해당 유전자와 관련된 염기 배열 중에서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오는 두 부분을 따로 골라 분석을 한 것입니다. 각각 AA, AT, TT 및 GG, GT, TT 등 세 가지 유전형이 존재합니다.

 

연구 결과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약간 초경이 당겨지는 현상은 전반적으로 관찰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크지 않거나 통계적으로 차이가 없었습니다. 몇가지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렇습니다. 아버지 부재에 의해서 초경 연령이 당겨지는 현상은 앞서 말한 두 SNP 중 적어도 하나에서 T/T 유전형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만 분명하게 관찰된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아버지 부재에 의해서 이른 성적 성숙을 보이는 현상은 특정한 유전형을 가진 소녀에게만 관찰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이른 성적 성숙 경향과 관련된 유전형을 가진 소녀도 아버지가 있으면, 성적 성숙이 지연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환경과 유전형이 모두 관여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있어도 혹은 없어도 괜찮아

 

불가피한 사정으로 아버지가 없는 가정이 있습니다. 아버지 부재 가설을 들으면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딸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생깁니다. 육아에 크게 신경 쓰지 못한 아버지의 죄책감은 상당합니다. 해외 파병이나 유학, 외국 지사 근무, 장기간의 출장 등으로 딸에게 아버지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속상해하는 아버지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전자 연구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소녀는 아버지가 없어도 큰 문제없이 잘 성장합니다. 80% 이상의 소녀는 아버지가 없어도 초경 연령이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버지 부재에 취약한 일부 소녀도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앞서 말한 유전자형이 T/T에 해당하는 경우(각각 18%, 11.7%)입니다. 하지만 이들도 아버지가 있다면 초경 연령의 별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즉 타고난 유전형이 이른 성숙에 치우쳐진 면이 있다고 해도, 안정적인 환경에서 성장한다면 느린 생애사적 전략을 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분명 필요합니다. 최소한 냉장고보다는 ‘훨씬 더’ 말이죠. 하지만 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아버지가 없는 경우에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통해서 타고난 유전자의 발현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습니다. 환경과 유전은 아주 복잡하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입니다.

 

 

※참고문헌: 

Schlomer, Gabriel L., and Hyun Jin Cho. 2017. “Genetic and Environmental Contributions to Age at Menarche: Interactive Effects of Father Absence and LIN28B.” Evolution and Human Behavior 38 (6).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때문이야》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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