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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2000년 전 가야시대에 정말 차나무가 들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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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1일 09:00 프린트하기

 

전남 보성의 차밭에 있는 차나무는 중국종으로 크기가 작고 잎도 작다. 곡우 전에 따는 어린 잎으로 만든 우전(雨前)과 그 직후 딴 잎으로 만든 세작(細雀)은 고급 잎차다. 위키피디아 제공
전남 보성의 차밭에 있는 차나무는 중국종으로 크기가 작고 잎도 작다. 곡우 전에 따는 어린 잎으로 만든 우전(雨前)과 그 직후 딴 잎으로 만든 세작(細雀)은 고급 잎차다. 위키피디아 제공

'김해의 백월산에는 죽로차가 있다. 세상에서는 수로왕후인 허씨가 인도에서 가져온 차씨라고 전한다(金海白月山有竹露茶 世傳首露王妃許氏 自印度持來之茶種).' -이능화,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에서

 

단골집 근처에 내 취향에 더 맞는 새 가게가 문을 열면 갈등이 생긴다. 미안한 마음에 한동안 양다리를 걸치다 결국은 새 가게로 옮기기 마련이다.

 

필자에겐 차와 커피가 이런 대상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곡우(穀雨. 4월 20일 무렵)가 지나면 잊지 않고 우전(雨前. 곡우 전에 딴 어린 잎으로 만든 녹차)을 주문하곤 했는데, 드립 커피에 맛을 들이면서 어느새 파나마 게이샤 같은 스페셜티 원두를 찾고 있다.

 

우리나라 식물로 만든 전통 음료인 차를 외면하고 이국(異國)의 음료인 커피에 푹 빠진 게 좀 쑥스럽지만 취향이라는 게 한번 바뀌면 이렇게 되나 보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커피나 커피나무를 소재로는 에세이도 여러 편 썼지만 차나 차나무를 다룬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 ‘면역의 배신’이라는 책을 읽다가 차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예방의학자인 저자 수잔 블룸은 자가면역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배신한 면역계(자기 신체조직을 공격하므로)를 다시 내 편으로 만들려면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다며 명상과 숙면을 실천하라고 당부한다.

 

그러면서 수면장애가 있을 경우 보충제를 먹는 게 도움이 될 거라며 몇 가지를 추천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테아닌(theanine)이다. 블룸은 “이는 녹차에서 추출한 굉장히 안전한 화합물”이라며 “약간의 불안감이나 평온하지 않은 심리상태가 수면을 방해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좋다”고 설명했다.

 

수년 사이 수면의 질이 꽤 떨어진 필자는 우리나이로 50이 된 올해 들어서는 아침 점심 두 잔 마시던 커피를 아침 한 잔으로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커피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카페인이 들어있는 녹차에 거꾸로 수면을 돕는 성분이 있다니 뜻밖이었다. 그렇다면 녹차는 카페인의 각성효과와 카테킨의 항산화력에 테아닌의 진정효과까지 지닌 ‘일석삼조(一石三鳥)’의 음료란 말인가.

 

두 변종 게놈 잇달아 해독

 

문득 지난봄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에 실린 차나무 게놈 해독 논문이 떠올랐다. 당시 읽어볼까 하다가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용이 궁금해졌다. 학술지 사이트에서 논문을 다운받아(게놈 해독 논문은 다들 공개한다) 좀 읽어보니 지난해 이미 차나무 게놈 해독 논문이 다른 학술지(‘분자 식물’)에 발표됐다. 둘 다 중국 연구자들이 주도했다.

 

물론 재탕은 아니고 서로 다른 두 계열의 차나무다. 커피나무가 아라비카와 로부스타 두 종으로 나뉘듯이, 차나무는 한 종이지만(Camellia sinensis) 중국종(var. sinensis)과 아삼종(var. assamica) 두 변종이 있어 각각 올해와 지난해에 게놈이 해독된 것이다. 

 

중국종은 나무가 작고 잎도 작은 대신 상대적으로 추위에 강하다. 향과 맛이 섬세하고 카페인 함량이 낮은 중국종은 녹차와 홍차 등 다양한 차로 만든다. 참고로 보성이나 하동에서 재배하는 차나무가 중국종이다. 

 

인도 북동부와 중국 남서부 등지에서 재배하는 아삼종은 나무가 크고 잎도 크지만 추위에 약하다. 그 자체로는 중국종에 비해 품질이 좀 떨어지지만 카페인 함량이 높고 홍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향미가 살아나므로 대부분 홍차용으로 쓰인다. 중국종이 아라비카라면 아삼종은 로부스타인 셈이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중국종이 더 관심이 가므로 2018년 논문을 먼저 읽었는데 서론에서 차 생산량을 보고 좀 놀랐다. 필자는 커피가 훨씬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간 생산량이 커피원두는 920만 톤이고 찻잎은 530만 톤으로 지구촌 사람들은 차를 더 많이 마시고 있었다. 커피 한 잔에는 원두가 10g 정도 들어가고 차 한잔에는 말린 찻잎이 2~3g 들어가므로 잔수로 따지면 차가 2배 이상이다.

 

최소한 1200년에 이르는 차 전통을 지닌 우리나라는 1인당 연간 차 소비량이 불과 0.16kg으로 세계 평균 0.74kg에 한참 못 미친다. 반면 커피는 3.9kg으로 세계 평균 1.3kg의 세 배에 이른다. 차 한잔 마실 때 커피 여섯 잔꼴로 우리나라가 ‘커피공화국’이란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폴리페놀 카테킨 생합성에 관여하는 SCPL 유전자 22가지의 조직별 발현량을 보여주는 데이터다. 대체로 잎싹(AB)와 어린 잎(YL)에서 발현량이 높음(빨간색)을 알 수 있다. ML은 성숙한 잎, OL은 늙은 잎, ST는 어린 가지, RT는 잔뿌리, FL은 꽃, FR은 어린 열매다. ‘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폴리페놀 카테킨 생합성에 관여하는 SCPL 유전자 22가지의 조직별 발현량을 보여주는 데이터다. 대체로 잎싹(AB)와 어린 잎(YL)에서 발현량이 높음(빨간색)을 알 수 있다. ML은 성숙한 잎, OL은 늙은 잎, ST는 어린 가지, RT는 잔뿌리, FL은 꽃, FR은 어린 열매다. ‘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차나무 게놈 얘기로 돌아와서 먼저 게놈 크기는 중국종이 31억4000만 염기이고 아삼종이 30억2000만 염기로 사람 게놈과 거의 같다. 차나무는 게놈에서부터 사람과 인연이 있는 걸까.

 

하지만 유전자 개수는 크게 차이가 나서 2만여 개인 사람보다 훨씬 많은 3만3932개(중국종)와 3만6951개(아삼종)으로 추정된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은 다양한 화합물을 만들어 대응하므로 어는 정도 예상한 결과다. 

 

한편 두 변종의 게놈을 비교한 결과 둘은 약 100만 년(38만~154만 년) 전 갈라진 것으로 드러났다. 그 뒤 중국종은 중국의 여러 지역에 퍼졌고 아삼종은 인도 북동부와 중국 남서부에 자생했다. 

 

이차대사물질 생합성 관련 유전자 많아

 

게놈의 구조를 분석한 결과 차나무 조상이 포도나무 조상과 갈라진 1억4000만 년 전 이후 9000만~1억 년 전과 3000만~4000만 년 전 두 차례에 걸쳐 전체게놈복제가 일어났다. 전체게놈복제(whole-genome duplication)란 게놈이 통째로 두 배가 되는 현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면 두 배가 된 유전자 대다수가 소실되지만 개중에는 남아 새로운 기능을 갖게 진화하기도 한다. 

 

차나무에서는 이차대사물질의 생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이 네 배로 뻥튀기된 뒤 많이 살아남았다. 이차대사물질(secondary metabolite)은 광합성이나 성장 등 기본 기능 외에 식물이 방어 등의 목적으로 생산하는 물질이다. 차의 유효성분 3인방인 카테킨과 테아닌, 카페인이 바로 이차대사물질이다.

 

카페인 생합성에 관여하는 NMT 유전자군들의 계통도로 녹차(녹색)와 커피(고동색), 카카오(갈색)이 따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오른쪽 빈 녹색은 녹차 이외의 동백나무속(Camelia) 식물의 NMT 유전자다.  ‘분자 식물’ 제공
카페인 생합성에 관여하는 NMT 유전자군들의 계통도로 녹차(녹색)와 커피(고동색), 카카오(갈색)이 따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오른쪽 빈 녹색은 녹차 이외의 동백나무속(Camelia) 식물의 NMT 유전자다. ‘분자 식물’ 제공

연구자들은 카테킨과 테아닌, 카페인의 생합성 경로에 관여하는 유전자 네트워크를 규명하는 데 노력을 집중했다. 참고로 이 세 성분은 차의 맛에도 큰 기여를 한다. 카테킨은 떫은맛을, 테아닌은 감칠맛을, 카페인은 쓴맛을 낸다. 사실상 쓴맛이 전부인 커피에 비해 차의 맛이 복잡미묘한 이유다(대신 커피는 화려한 향을 자랑한다).

 

차나무에는 폴리페놀인 카테킨의 생합성에 관여하는 SCPL 계열의 유전자가 22개나 있어 11개인 포도의 두 배에 이르렀다. 카테킨으로 불리는 화합물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차에는 ECG와 EGCG가 80%에 이른다. 그런데 이들 분자를 만드는데 관여하는 유전자들은 잎싹과 어린잎에서 많이 발현됐고 그 결과 이 물질들도 이런 조직에 고농도로 존재했다. 어린 찻잎으로 만든 녹차일수록 고급으로 치는 게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차나무가 카테킨을 많이 만드는 이유는 해충을 쫓고 미생물에 저항하기 위해서다.

 

한편 테아닌은 아미노산으로 글루탐산과 에틸아민이 결합해 만들어진다. 단백질을 이루는 20가지 아미노산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녹차의 감칠맛을 부여하고(글루탐산나트륨(MSG)과 구조를 공유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람에게는 진정효과와 신경보호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나무는 몸 안에 질소를 저장하기 위해 테아닌을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한 분자에 질소원자 두 개를 지니고 있다).

 

다즐링이 아삼보다 카페인 적어

 

알칼로이드인 카페인을 만드는 유전자는 커피나무와 카카오나무(역시 상당량의 카페인을 만든다)의 유전자와 비교한 내용이 흥미롭다. 세 식물이 각자 독립적으로 카페인 생합성 유전자 네트워크를 진화시켰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식물의 방어를 위한 수렴진화인 셈이다. 참고로 커피 게놈은 2014년, 카카오 게놈은 2011년 해독됐다. 

 

음료에 들어있는 카페인 함량을 나타내는 자료를 보면 커피가 차보다 두 배 이상 많고 코코아는 미미하다(대신 다크초콜릿에는 꽤 들어있다). 커피도 종(種)이나 추출방식에 따라 카페인 함량이 다르듯이(로부스타가 아라비카의 두 배이고 드립이 에스프레소보다 1.5배 정도다), 차도 변종과 추출조건에 따라 다르다.

 

아삼종 찻잎으로 만든 아삼 홍차는 카페인 함량이 다소 높지만 진하고 깊은 맛을 내 밀크티를 만들기에 좋다. 위키피디아 제공
아삼종 찻잎으로 만든 아삼 홍차는 카페인 함량이 다소 높지만 진하고 깊은 맛을 내 밀크티를 만들기에 좋다. 위키피디아 제공

아삼종이 중국종보다 카페인 함량이 높고 추출할 때 물의 온도가 90도 이상인 홍차에서 80도 내외인 녹차보다 카페인이 더 많이 우려진다. 아삼 홍차는 우전 녹차에 비해 카페인 함량이 서너 배로 커피에 육박한다. 홍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카페인이 걱정된다면 오후에는 중국종으로 만든 다즐링(Darjeeling)을 추천한다.

 

경남 남부지역 자생하는 차나무의 정체는?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녹차 항목을 읽다가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했다. 우리나라에 차나무가 들어온 게 가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다.  가야국 시조인 수로왕의 왕비인 허왕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시집올 때 차나무 씨앗을 가져와 심었다는 것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때가 서기 48년이므로 우리나라 차나무의 역사가 2000년 가까이 되는 셈이다.

 

반면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흥덕왕 3년(서기 828) 당나라에서 차나무가 들어왔다. 우리나라 차의 역사는 1200년에 조금 못 미치는 셈이다. 실제 하동과 보성, 제주 등 주산지에서 재배된 차나무 가운데 다수가 이 지역에 자생하던 야생 차나무에서 선발한 품종이고 이들 모두는 중국종이다.

 

게다가 ‘삼국유사’에 실렸다는 허왕후 차나무 씨앗 이야기를 확인하기 위해 ‘삼국유사’를 읽어보니 그런 내용이 없다.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보면 허황옥이 시집올 때 “가지고 온 금수능라(錦繡綾羅. 비단류)와 의상필단(衣裳疋緞), 금은주옥(金銀珠玉)과 구슬로 만든 패물들은 이루 기록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는 문구만 있다.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의 무덤으로 보이는 고구려 각저총(角抵塚)에 그려져 있는 벽화로 귀족으로 보이는 남녀 세 사람이 차를 마시고 있다. 다기(茶器)가 잘 갖춰져 있는 것으로 봐서 이 무렵 우리나라에 차문화가 정착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의 무덤으로 보이는 고구려 각저총(角抵塚)에 그려져 있는 벽화로 귀족으로 보이는 남녀 세 사람이 차를 마시고 있다. 다기(茶器)가 잘 갖춰져 있는 것으로 봐서 이 무렵 우리나라에 차문화가 정착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아마도 경남 일대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구한말의 국학자 이능화가 ‘조선불교통사’에 적었는데, 이게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와전된듯하다. 

 

다만 ‘삼국유사’를 보면 가야국이 멸망한 뒤 신라 제30대 법민왕이 서기 661년 내린 조서에서 “수로왕은 어린 나에게 15대조가 된다”며 제사를 지내라고 명해 “해마다 명절이면 술과 단술을 마련하고 떡과 밥, 차, 과실 등 여러 가지를 갖추고”라는 문구가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차(茶)가 찻잎으로 만든 차라면 적어도 ‘삼국사기’의 기록보다는 한참 앞서 들어왔다는 말이다.

 

흥미롭게도 허건량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현 농촌진흥청 차장)이 2016년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가락국 허황(왕)후는 천축 아유타국에서 올 때 차 종자를 가져와 지금의 창원시 백월산에 심었고, 신라 선덕여왕과 흥덕왕 때는 중국에서 차를 들여와 지리산에 심었다”며 “경남 남부지역에는 인도지역이 원산인 잎이 넓은 차나무가 자라고 있어 이 기록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썼다.

 

허황옥이 가져온 차나무는 아삼종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경남 남부지역에 자생하고 있는 차나무의 유전자 몇 개를 분석해 작년과 올해 해독된 차나무 두 변종의 게놈과 비교해본다면 정말 아삼종인지 바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런 것으로 나온다면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이 차나무 씨앗을 가져와 심었다는 전설은 역사가 되지 않을까.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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