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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고생은 과연 인간을 성장시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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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5일 10:00 프린트하기

페루 마추픽추에 간 적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었던 곳이어서 제대로 체험하겠다며 수일에 걸쳐 산을 타고 올라가는 코스를 선택했다. 산은 커녕 걷는 것도 귀찮아 하던 나에게는 매우 험난한 길이었고 감히 산을 얕잡아 본 나의 오만함을 크게 반성한 계기가 되었다. 정상에 올라 마추픽추를 보았을 때에는 이미 땀 범벅에 너절한 상태여서 황홀한 심경 못지 않게 여기서 두어시간 보내려고 이 고생을 했나하는 착잡함이 컸다. 

 

왜 우리는 아픔을 알면서도 고생을 권장하고 고생의 총량을 늘리려고 하는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 걸까? 게티이미지뱅크
왜 우리는 아픔을 알면서도 고생을 권장하고 고생의 총량을 늘리려고 하는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 걸까? 게티이미지뱅크

그렇게 넋을 놓고 있던 때 버스로 산을 올라 뽀송뽀송하고 깨끗한 모습을 하고 있는 다른 관광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솔직히 조금 부러움과 동시에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었다. '마추픽추를 버스로 올라오다니 저들은 이곳을 제대로 체험하고 있는 게 아니야. 버스로 올라오는 마추픽추가 마추픽추냐 뒷동산이지'라며 꼰대 같은 말을 속으로 잔뜩 내뱉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순전히 내가 원해서 한 고생을 왜 억울해 하고 애꿎은 ‘남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던 건지 알 수가 없다. 한편으론 자신이 ‘원해서’ 한 고생에도 너무 억울하고 그렇기에 더 제대로 해냈다는 ‘인정’과 ‘대접’을 받고 싶은 욕구, 또 혼자는 억울하니까 남들을 나처럼 비슷하게 고생시키고 싶다는 욕구가 끓어오르는데 원치 않아서 한 고생은 얼마나 더 사람을 꼬이게 만들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실제로 원치 않아서 한 고생들, 특히 불의에 의한 ‘억울함’을 겪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이후 비슷한 고생을 한 사람들을 눈여겨보고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지만 되려 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었다. 예컨데 코넬 대 에밀리 지텍(Emily Zitek) 교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당한 억울한 일을 떠올려보게 하면 세상에서 나만 제일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이라는 피해의식이 커지고 그 결과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더 이상 희생할 수 없다고 하는 등 이기심이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고했다(Zitek et al., 2010).

 

또 다른 연구에서는 겪어 본 사람이 아예 그런 일을 겪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똑같은 일로 힘들어 하는 사람을 더 경멸하는 태도를 보인다고 밝히기도 했다. 예컨데 구직에 실패한 사람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 물었을 때, 구직의 어려움을 최근에 겪었거나 겪지 않은 사람에 비해 예전에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이 가장 그 사람이 나약하고 한심해 보인다고 이야기하는 경향을 보였다(Ruttan et al., 2015).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더더욱 "나는 너무 힘들었지만 너는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같은 건설적인 태도를 보이면 좋겠지만, 반대로 ‘나 때는 더 힘들었어 너가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 정도로 쓰러지다니 나약해 빠져가지고"라고 하기 더 쉽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왜 우리는 아픔을 알면서도 고생을 권장하고 고생의 총량을 늘리려고 하는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 걸까?

 

빅터 프랭클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유태인 수용소에서 해방된 이후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은 이 고생만 끝나면 아주 행복해질 거라고 ‘큰 보상’을 기대한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신이 받은 고통에 큰 관심이 없었고 크게 치하해주거나 번듯한 보상을 주지도 않았으며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바빴다. 수용소만 나가면 삶이 급 아름다워질거라는 기대가 실현되지 않자 이들은 분노에 휩싸여 사람들을 원망하며 살아갔다고 한다.

 

따라서 저자는 삶의 의미는 기다렸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추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때그때 힘든 과정 속에서도 추수할 수 있는 무엇이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무지막지한 고생을 끝냈다고 해서 반드시 그만한 고생을 보상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생 끝 행복 시작 같은 동화 같은 스토리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바라기 때문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이후 실망과 분노까지 겪게 된다는 것이다.

 

삶의 의미는 기다렸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추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때그때 힘든 과정 속에서도 추수할 수 있는 무엇이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삶의 의미는 기다렸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추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때그때 힘든 과정 속에서도 추수할 수 있는 무엇이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따라서 고생 후 엄청난 보상이 있을 거라는 환상을 심는 사람이나, 예를 들면 청춘을 바쳐 대학에만 가면 이후 모든 것이 아름다울 거라는 이야기들 같은, 환상일 수 있는 보상 하나에 삶을 전부 바치는 행위 모두 경계하는 게 좋겠다. 

 

이후를 바라보기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또 ‘지금’ 그나마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적극적으로 찾아 순간순간을 최대한 나중에 생각했을 때 억울하지 않게끔 잘 보내는 것이 훨씬 건강한 삶의 방법일 것이다. 프랭클 또한 수용소에서 풀 한 포기를 바라보거나 하늘을 바라보는 작은 일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고 한다. 보상을 나중으로 미루지 않고 매 순간 작은 의미를 찾아낸 것이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삶 또 그 이후의 그의 삶을 지탱해 준 원동력이었다고 한다. 

 

고생에서 큰 의미를 찾지 말라는 것이 내가 겪은 힘든 일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고 생각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 의미를 나중으로 미루지 말라는 것, 또한 타인에게 인정을 갈구하거나 혼자 당할 수 없다며 비슷한 고생을 늘리려는 이상한 방법으로 충족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 등 뭐라도 얻은 것이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으면 된다. 어떤 일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었는데 굳이 타인의 인정을 바라게 된다면, 그건 역설적으로 그만큼 많은 것을 얻지 못했다는 반증이 되는 게 아닐까? 정말 좋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면 되는 일이다. 내가 정말 마추픽추를 제대로 체험했다고 느낀다면 버스를 타고온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너희들도 걸어서 올라오라고 강요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안타깝지만 내가 어떤 일을 통해 많이 얻었다고 ‘느끼는’ 것과 정말로 그랬는지는 별개이다. 예컨데 연인과의 이별을 겪은 사람들은 이 일을 통해 자신들이 관계적으로 더 많이 성숙해졌다고 느끼는 경향을 보이지만, 이별을 겪은 사람과 겪지 않은 사람의 관계적 특성들을 살펴보면 이별을 겪은 사람들이 딱히 이전에 비해 더 나아졌다고 볼만한 근거는 없었다는 연구가 있다(Owenz & Fowers, 2018). 따라서 ‘네 성장을 위해서’라며 고생을 미화하거나 권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고통이 그 자체로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냐는 어려운 문제지만, 적어도 내가 겪은 고통을 타인을 향해 휘두르는 무기로 쓰는지 아니면 삶의 의미를 추수하는 여러 날 중 하나로 잘 보내는지에 따라 성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나뉠 거 같긴 하다. 고생을 통해 꼬인 사람이 되지는 말자. 또 뭐뭐만 하면 인생 필 꺼니까 그때까지 꾹 참으라는 이야기는 함부로 하지도 말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조심하도록 하자. 지나간 고통을 완벽히 보상해줄만한 무엇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참고 및 출처

Owenz, M., & Fowers, B. J. (2018). Perceived post-traumatic growth may not reflect actual positive change: A short-term prospective study of relationship dissolution. Journal of Social and Personal Relationships, 0265407518811662.
Ruttan, R. L., McDonnell, M. H., & Nordgren, L. F. (2015). Having “been there” doesn’t mean I care: When prior experience reduces compassion for emotional distres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8, 610-622.
Zitek, E. M., Jordan, A. H., Monin, B., & Leach, F. R. (2010). Victim entitlement to behave selfishl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8, 245-255.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을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 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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