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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황금돼지해에 생각해보는 과학자의 인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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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 08일 09:00 프린트하기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실력과 노력만큼이나 복, 즉 운도 중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적어도 과학의 영역에서는, 재능과 노력이 성공의 필요조건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2019년 기해년(己亥年) 황금돼지해를 맞아 복이 찾아들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실력과 노력만큼이나 복과 운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는데 인복(人福)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전에 신입사원의 30%가 1년 안에 퇴직하고 퇴직 사유의 절반이 인간관계 때문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한마디로 상사 잘 못 만나 회사를 그만둔다는 말이다. 이 기사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는데, 필자 역시 예전 직장생활을 할 때 이런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나쁜 상사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먼저 부하직원을 괴롭히는 경우로 이런 사람에게 걸리면 뭘 해도 욕을 먹으니 죽을 맛이다. 이런 상사는 대체로 다른 직원들도 다 싫어하기 때문에 그나마 위안이 된다(같이 욕하면서).

 

그런데 이런 무식한 상사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유형이 있다. 바로 아래 직원의 공을 가로채는 상사다. 큰 성과를 내서 진급도 되고 연봉도 꽤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알아보니 상사가 자기 성과로 둔갑시켜 보고한 것이다. 유능한 사람일수록 이런 일을 당할 가능성이 더 크다.

 

스승을 고소해야만 했던 제자

 

과학자로서 삶을 살아가는데도 인복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공부나 연구를 포기하려던 순간 구원의 손길을 뻗쳐 다시 기운을 차리게 하고 학위를 마친 뒤에는 직장까지 알아봐 주는 지도교수를 만날 수도 있지만, 학생이 엄청난 발견을 했음에도 애써 평가절하하며 그 공을 독차지하려는 교수도 있다. 심지어 교묘하게 학생의 앞길을 막는 경우도 있다. 물론 한 사람이 두 얼굴을 지니기도 한다.

 

러거스트대의 저명한 미생물학자 셀먼 왁스먼 교수(왼쪽)와 제자 보이드 우드러프(오른쪽)가 실험실에서 포즈를 잡았다. 1940년 사진으로 왁스만 교수의 인자한 미소와 우드러프의 겸손한 자세가 인상적이다. 러거스트대 제공
러거스트대의 저명한 미생물학자 셀먼 왁스먼 교수(왼쪽)와 제자 보이드 우드러프(오른쪽)가 실험실에서 포즈를 잡았다. 1940년 사진으로 왁스만 교수의 인자한 미소와 우드러프의 겸손한 자세가 인상적이다. 러거스트대 제공

저명한 미생물학자 셀먼 왁스먼(Selman Waksman)이 이런 사람 아닐까. 미국 러트거스대 교수인 왁스먼은 수업을 가르치던 학생 가운데 보이드 우드러프(Boyd Woodruff)를 좋게 봤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캠퍼스 기숙사 옆 공터에서 닭 100여 마리를 치며 달걀을 팔아 학비를 벌며 열심히 공부하는 우드러프가 기특했던 것이다.

 

왁스먼은 졸업 뒤 바로 취직할 생각이었던 우드러프를 불러 장학금을 줄 테니 대학원에 진학하라고 제안했고 우드러프는 왁스먼 밑에서 무난히 박사학위를 받고 선망하던 거대 제약회사 머크에 입사해 열심히 일한 결과 오늘날 ‘산업미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우드러프는 2017년 100세에 타계했다.

 

반면 우드러프가 박사학위를 받을 무렵인 1942년 왁스먼의 실험실에 들어온 알베르트 샤츠(Albert Schatz)의 인생은 달랐다. 당시는 페니실린 발견으로 미생물에서 항생제를 발굴하는 연구가 붐이었고 최대 관심사는 페니실린도 듣지 않는 결핵균을 제압할 수 있는 항생제를 찾는 것이었다. 그런데 샤츠가 그 일을 해냈다. 몇 달 일하다 징집된 샤츠는 디스크로 일찍 전역한 뒤 1943년 실험실에 복귀해 석 달 반 만에 그 유명한 스트렙토마이신(streptomycin)을 발견한 것이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23세였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하면 이 업적으로 왁스먼은 1952년 단독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세 명까지 받을 수 있으므로 여분의 자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정작 스트렙토마이신을 발견한 샤츠는 왜 수상자가 되지 못했을까. 샤츠는 논문의 제1 저자였고 특허도 왁스먼과 샤츠가 공동 출연자였다.

 

1944년 메이요클리닉에서 진행된 임상 결과 스트렙토마이신이 정말 결핵환자에게 효과가 크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기자들이 러트거스대로 몰려들면서 왁스먼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스트렙토마이신 발견 과정을 설명하면서 언제부터인가 샤츠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렸다.

 

하루는 샤츠를 불러 특허권을 대학에 양보한다는 서명을 받아냈다.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었던 샤츠는 로열티를 받지 않으면 약값이 조금이라도 싸져 가난한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꺼이 사인했다. 샤츠는 박사학위를 받고 1946년 대학을 떠났다.

 

그런데 1949년 대학뿐 아니라 왁스먼도 막대한 특허 로열티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학에 특허권을 양도하면서 왁스먼은 로열티의 20%를 받기로 했고 이 해에만 35만 달러(지금 가치로 360만 달러, 40억원)를 챙겼다. 분을 참지 못한 샤츠는 왁스먼과 러거스트대를 고소했고 한때 제자와 스승 사이였던 두 사람은 법정에서 마주섰다.

 

로베르트 샤츠(왼쪽)과 지도교수 왁스먼이 실험실에서 포즈를 잡았다. 진지함 속에서도 어딘지 사무적인 냉랭함이 느껴진다. 러거스트대 제공
로베르트 샤츠(왼쪽)과 지도교수 왁스먼이 실험실에서 포즈를 잡았다. 진지함 속에서도 어딘지 사무적인 냉랭함이 느껴진다. 러거스트대 제공

1년에 걸친 법정공방 도중에 왁스먼과 러거스트대는 한발 물러서 샤츠의 기여를 인정해 로열티의 3%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재미있는 건 우드러프가 구축한 방법론을 써서 스트렙토마이신을 발견했기 때문에 우드러프의 지분도 인정된 것이다. 이게 샤츠의 주장인지 아니면 “너(샤츠)가 받으면 (내 애제자인) 우드러프도 받아야 한다”며 왁스먼이 제안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우드러프도 상당한 돈을 받았는데, 자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어려운 학생들에게 써달라며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괴씸한 녀석. 죄로 노벨상에서도 제외돼

 

그러나 이 사건은 샤츠의 경력에 치명상을 입혔다. 그 뒤 샤츠는 주류 학계에서 철저하게 배제됐고 1952년 노벨상 위원회는 왁스먼 단독 수상을 발표했다. 이에 샤츠가 크게 반발하자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일축했다. 노벨상 시상 연설문에서도 “왁스먼 박사가 이 모든 연구를 총괄하였으며 젊은 조수들이 세부적인 연구를 맡아 진행했다”며 “이 가운데 알베르트 샤츠라는 연구원도 있었다”는 식으로 평가절하했다. 샤츠가 운 좋게 그 일을 맡은 것일뿐이라는 말이다.

 

일의 전개 과정을 잘 알고 있던 러트거스대 교수들은 이런 결정이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누구 하나 감히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1973년 왁스먼이 85세에 타계한 뒤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1994년 스트렙토마이신 임상 50주년을 맞아 러트거스대는 샤츠에게 대학 최고의 영예인 ‘러트거스대 메달’을 수여해 억울함을 위로해줬다.

 

2010년 러거스트대의 자료실에서 샤츠의 연구노트가 나왔다. 여기에는 스트렙토마이신을 발견한 과정이 소상히 적혀 있었다. 샤츠가 실험실 옆에 있는 러거스트대 농장의 부식토에서 스트렙토마이신을 만드는 미생물 균주를 분리한 것이다. 그가 없었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연구원이 발견했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 여러 실험실에서 눈에 불을 켜고 결핵균을 죽이는 항생제를 만드는 미생물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그사이 발견의 영광은 다른 연구팀에 돌아갔을 수도 있다.  

 

제자 앞길 터주는 교수도 있어

 

반면 ‘원시지구실험’으로 유명한 스탠리 밀러(Stanley Miller)는 지도교수를 잘 만나 인생이 풀린 대표적인 과학자다. 1930년생인 밀러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화학을 공부하고 1951년 시카고대의 저명한 화학자 해럴드 유리(Harold Urey) 교수 실험실에 들어갔다.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유리 교수가 강의에서 “생명체를 이루는 분자가 만들어지려면 지구가 환원성(산소가 없는) 대기였을 것”이라며 “누군가가 이를 입증하는 실험을 해보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구의 원시 대기를 재현한 실험장치 앞에서 포즈를 취한 스탠리 밀러. 당시 23세의 대학원생 신분으로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시카고대 제공
지구의 원시 대기를 재현한 실험장치 앞에서 포즈를 취한 스탠리 밀러. 당시 23세의 대학원생 신분으로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시카고대 제공

밀러는 자신이 그 실험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고 유리 교수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며 말렸지만 밀러가 고집을 부리자 “6개월에서 1년 정도 해보고 안 되면 접자(학위를 받을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하므로)”고 합의를 봤다. 그러나 밀러는 유리기구를 교묘하게 배치해 원시지구의 대기를 재현했고 전기스파크로 번개를 치는 상황을 만들었다.

 

플라스크 안의 물이 하루 만에 핑크색으로 바뀌었고 일주일 뒤에는 짙은 붉은색의 탁한 용액이 됐다. 용액을 분석하자 단백질의 구성성분인 아미노산이 여럿 발견됐다. 이 실험은 수십억 년 전 지구에서 생명이 어떻게 등장했는가에 대한 영감을 주는 최초의 실험으로 과학사를 장식하고 있다.

 

유리 교수는 밀러에게 데이터를 정리해 논문을 쓰라고 재촉했고 밀러는 두 쪽 분량의 논문을 완성해 학술지 ‘사이언스’에 제출했다. 놀랍게도 논문의 저자는 밀러 한 사람뿐이었다. 자신은 아이디어만 줬을뿐 실험을 기획하고 수행한 건 제자 밀러이기 때문에 비록 지도교수이지만 자신의 이름을 넣을 수 없다는 것이다.

 

1953년 논문이 발표되자 “생명 탄생의 비밀을 밝혔다”며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한 방송사가 실험실로 밀러를 찾아가 실험복 차림으로 장치를 설명하는 밀러의 영상을 담기도 했다. 여기에서도 유리 교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유리 교수가 이처럼 공명심에 초연할 수 있었던 건 수소의 동위원소인 중수소를 발견해 1934년 노벨화학상을 받으며 최고의 순간을 경험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22세 대학원생이 ‘2018년 화제의 인물’로 뽑혀

 

학술지 ‘네이처’는 한 해의 마지막호에 ‘화제의 인물 10’을 선정해 발표하는데, 2018년 10명 가운데 첫 번째 인물은 놀랍게도 불과 22세의 대학원생이었다. 1900년대 초반 양자물리학 태동기의 몇 명을 빼면 20대 초반 연구자가 뜨는 건 밀러가 마지막이었던 같은데(같은 해 25세의 제임스 왓슨이 DNA이중나선을 규명했다) 65년이나 지나 이런 일이 생겼으니 놀라울 뿐이다.

 

미국 MIT 물리학과의 대학원생 차오위안이 그 주인공으로, 연구 내용은 이미 언론에서 소개했으므로 생략한다(자세한 내용은 동아사이언스 2018년 12월 19일자 ‘2018년 네이처 선정 10대 인물에 그래핀 초전도체 개발한 22세 청년’ 참조).

 

학술지 ‘네이처’가 선정한 ‘2018 화제의 인물 10’에서 가장 먼저 소개된 차오위안. 22세의 대학원생이 간판으로 뽑힌 건 이례적인 일이다. 코린나 컨/네이처 제공
학술지 ‘네이처’가 선정한 ‘2018 화제의 인물 10’에서 가장 먼저 소개된 차오위안. 22세의 대학원생이 간판으로 뽑힌 건 이례적인 일이다. 코린나 컨/네이처 제공

이 소식을 접하며 밀러와 유리 교수가 떠올랐다. 차오위안도 대단한 친구지만 그의 지도교수도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연구의 성격으로 보면 밀러/유리보다는 샤츠/왁스먼에 더 가깝다. 그래핀의 특성을 규명하는 연구 프로젝트에 투입돼 그래핀 두 층을 엇갈리게 배치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을 규명하는 과제를 맡았고 이를 성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로로 ‘네이처’가 차오를 ‘2018년 화제의 인물 10’의 대표주자로 선정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도교수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제안에 ‘내가 서야 할 자리인데 무슨 소리냐?’라며 펄쩍 뛰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유리 교수처럼 이미 노벨상을 받아 사소한 명예라고 무시할 처지도 아닌 데 이 사람은 정말 ‘생불(生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첫 ‘네이처’(1월 3일자)에는 필자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는 심층기사(Feature)가 실렸다. 그래핀 초전도체 발견이 물리학계에 미친 파괴력을 취재한 내용으로 연구의 책임자들만 언급되는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기사에서 차오위안은 보이지 않고 지도교수인 파블로 자릴로-헤레로(Pablo Jarillo-Herrero)가 등장한다.

 

차오위안의 지도교수인 MIT 물리학과 파블로 자릴로-헤레로 교수(맨 왼쪽)와 동료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차오위안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핀 초전도체 발견이 상온 초전도체 개발로 이어질 경우 자릴로-헤레로와 차오위안이 노벨상을 받지 않을까. Juliette Halsey/네이처 제공
차오위안의 지도교수인 MIT 물리학과 파블로 자릴로-헤레로 교수(맨 왼쪽)와 동료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차오위안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핀 초전도체 발견이 상온 초전도체 개발로 이어질 경우 자릴로-헤레로와 차오위안이 노벨상을 받지 않을까. Juliette Halsey/네이처 제공

실험실에서 찍은 사진도 있는데 필자의 예상과는 달리 꽤 젊어 보인다. 얼굴 생김새로 그 사람의 인격을 판단하는 건 ‘비과학적’인 일이겠지만 왠지 부질없는 명성에는 초연할 것 같은 인상을 풍긴다.

 

그래핀 초전도체에 고체물리학계가 흥분하는 건 이 현상이 고온초전도체를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데 ‘로제타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온초전도체가 발견되고 시간이 꽤 지났지만 아직 이 현상을 설명하는 제대로 된 이론이 나오지 못한 건 물질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래핀 초전도 현상이 고온초전도체가 보이는 현상과 꽤 비슷하다(전자밀도를 높여주자 부도체가 초전도체로 바뀌었다).

 

알다시피 그래핀은 탄소원자로만 이뤄진 2차원 물질이다. 따라서 이론을 만들기가 훨씬 쉽다. 이미 그래핀 초전도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을 담은 논문이 100여 편이나 올라와 있다고 한다. 

만일 그래핀 초전도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나온다면 고온초전도 현상도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이를 토대로 진정한 고온초전도체, 상온에서도 초전도성이 나오는 물질을 만들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세상은 완전히 바뀔 것이다.

 

앞으로 일이 이렇게 진행된다면 그래핀 초전도 현상의 발견자가 노벨상을 받는 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이 경우 ‘2018년 화제의 인물’이 된 22세 대학원생 차오위안이 수상자 명단에서 빠질 일은 없을 것이다.

 

좌절을 딛고 일어선 청년

 

앞에서 차오위안이 밀러보다는 샤츠에 가깝다고 얘기했지만 그의 업적이 덜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래핀 두 장을 정확한 각도로 엇갈리게 배치하는 건 고난이도의 작업으로 몇몇 실험실에서 경쟁적으로 진행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 가운데는 하버드대 김필립 교수팀도 있다. 그런데 2017년 박사과정 4년차 대학원생이 일을 해낸 것이다.

 

문득 흑연에서 그래핀을 얻은 연구를 경쟁적으로 진행하다 2004년 영국 맨체스터대 안드레 가임 교수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박사가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떼는 방법으로 성공한 일이 떠오른다. 이 업적으로 두 사람은 201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두 발견엔 큰 차이가 있다. 스카치테이프로 그래핀을 얻는 방법은 발표 직후 많은 실험실에서 쉽게 재현할 수 있었던 반면 차오위안이 발견한 그래핀 초전도체 현상은 그렇지 않았다. 기사를 보면 2018년 3월 5일 ‘네이처’ 홈페이지에 공개된 논문을 보고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의 안드레아 영 교수가 이를 재현하는 실험을 했지만 기술적 난관에 부딪혀 실패했고 결국 친구인 컬럼비아대의 물리학자 코리 딘 교수와 협력한 뒤에야 간신히 성공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차오위안이 더 대단한 건 큰 좌절을 극복하고 이런 대발견을 해냈기 때문이다. 과학영재인 차오는 불과 18살에 허페이 중국과기대를 졸업하고 명문 MIT로 유학을 왔다. 그런데 하필 이 해에 물리학과에 대학원생 정원이 다 차 받아줄 수 없었고 결국 연구는 물리학과 자릴로-헤레로 교수의 실험실에서 연구는 하되 소속은 전기공학과에 두게 됐다. 논문에는 물리학과 소속으로 나와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틀린 것이다(아니면 그 뒤 적을 옮겼거나).

 

인생 최초의 좌절에 실망이 컸지만 차오는 좌절하지 않고 실험에 집중했고 6개월이 지나자 연구에 재미를 붙여 놀라운 성과를 거둔 것이다. 자릴로-헤레로 교수는 “처음에 차오위안은 울적했다”며 “하지만 곧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재능과 노력이 성공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운이 중요하더라도, 적어도 과학의 영역에서는, 재능과 노력이 성공의 필요조건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없는 게 아닐까.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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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 08일 09:00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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