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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년전 한반도 호랑이의 첫 조상이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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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 12일 11:00 프린트하기

2018년 5월 2일 서울대공원에서 한국 호랑이 4마리가 태어났다. 정면을 보는 호랑이가 엄마 호랑이 ‘팬자’다. 새끼 호랑이 4마리에는 각각 ‘백두’ ‘한라’ ‘태백’ ‘금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남윤중
2018년 5월 2일 서울대공원에서 한국 호랑이 4마리가 태어났다. 정면을 보는 호랑이가 엄마 호랑이 ‘팬자’다. 새끼 호랑이 4마리에는 각각 ‘백두’ ‘한라’ ‘태백’ ‘금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진 남윤중

지난해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고 며칠 뒤인 5월 2일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에서는 한국 호랑이라 불리는 아무르(시베리아) 호랑이 4마리가 태어났다. 예부터 중국은 한국을 가리켜 ‘호담지국(虎談之國‧호랑이 이야기의 나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별칭이 무색하게도 한국 땅에서 야생 호랑이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최근 한국 호랑이 표준 게놈 지도를 기반으로 한 전 세계 호랑이의 계통도가 나왔다. 과학을 발판으로, 우리는 호랑이를 되찾을 수 있을까.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 때 태어나 아기 호랑이에겐 ‘백두’ ‘한라’ ‘태백’ ‘금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매우 한반도스러운 이름이지만, 아기 호랑이의 가족은 사실 국제적이다. 엄마 호랑이 ‘팬자’는 러시아에서, 아빠 호랑이 ‘조셉’은 체코에서 왔다.

 

팬자와 조셉이 사랑에 빠지기까지는 사육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단독 생활을 하는 호랑이는 짝짓기를 할 때도 바로 합사하지 않고 얼굴 마주보기부터 시작한다. 서로를 상대에게 자연스럽게 노출시키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조셉이 겉돌았다. 한껏 달뜬 팬자의 대시를 외면하고 도망 다니기 바빴다.

 

백두산 호랑이 4마리가 태어나기까지

 

오현택 서울대공원 맹수 사육사는 조셉이 ‘수컷 구실’을 못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안 되겠다 싶어 양옆에 울타리를 붙이고 다른 수컷 호랑이를 넣어 경쟁 심리를 부추긴 뒤에야 짝짓기에 성공했죠.” 오 사육사는 “동물도 보는 눈이 있다”며 “(팬자가) 사랑을 쟁취하도록 도와줬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11월에 찾아간 방사장에 조셉은 보이지 않았다. 오 사육사는 “수컷과 암컷은 교미 시기에만 만난 뒤 헤어져 단독 생활을 한다”며 “새끼 호랑이도 수컷은 1~2년, 암컷은 3~4년 뒤 엄마 곁을 떠나 홀로 생활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출산 과정도 독립적이다. 아기 호랑이가 태어난 과정을 설명해달라고 하자 오 사육사는 “점심 먹고 올라와 보니 태어나 있더라”며 “딱히 에피소드가 없다”고 말했다. 호랑이의 임신이 확인되면 사육사는 주변 환경을 친숙하게 만들고 특식을 제공하는 등 최소한의 간섭만 하고 홀로 둔다. 야생 동물에게는 이것이 최선이다. 

 

오 사육사는 “사자처럼 무리생활을 하는 고양잇과 동물도 출산할 때가 되면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새끼를 낳고 돌아온다”며 “새끼의 피 냄새를 맡고 다른 수컷이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새로 태어난 새끼 호랑이는 모두 순종 아무르 호랑이다. 시베리아 호랑이, 한국 호랑이, 백두산 호랑이 등으로도 불린다. 아무르 호랑이는 호랑이 아종(subspecies) 중에서 덩치가 가장 크다. 수컷의 경우 몸길이는 평균 190~230cm, 몸무게는 230kg 정도다. 더운 지역에 사는 벵골 호랑이와 달리 추위에 강하고 더위에 약하다. 한겨울에도 얼음을 깨고 계곡물에 뛰어드는 녀석들이다. 이 고고하고 기품 있는 짐승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췄다.

 

오 사육사는 “동물원이 멸종위기 동물들의 ‘노아의 방주’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는 전 세계 동물원이 보유한 멸종 위기 동물들의 족보를 관리해 근친교배를 막고 종을 보존하고 있다. 조셉과 팬자의 짝짓기도 협회의 까다로운 절차를 밟은 뒤에야 이뤄졌다.

 

하지만 족보 관리보다 더 확실히 혈통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호랑이 게놈 지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韓 호랑이 게놈 지도 토대로 9종 뿌리 찾아

 

2013년 국내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호랑이의 전체 게놈 지도를 완성했다. 테라젠이텍스와 서울대, 에버랜드, 게놈연구재단 등 공동 연구팀이 에버랜드의 수컷 아무르 호랑이 ‘태극’의 혈액을 추출해 분석한 결과다. 덕분에 호랑이 게놈 지도의 표본이 한국 호랑이가 됐다. doi:10.1038/ncomms3433

 

전 세계 호랑이 계보 추적 | 호랑이 아종 9종 중 6종은 멸종위기이고, 3종은 완전히 멸종했다. 이들 호랑이 9종은 모두 11만 년 전 한 종류의 공통조상 호랑이로부터 분화됐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아담과 이브’에 해당하는 고대 호랑이가 있었던 셈이다. 화산폭발, 빙하기 등 기후가 혹독해지면 동물은 자신에게 편안한 환경에 고립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고기후 연구는 호랑이 계보 추적에 중요하다. 자료 : Current Biology, 일러스트 동아사이언스
전 세계 호랑이 계보 추적 | 호랑이 아종 9종 중 6종은 멸종위기이고, 3종은 완전히 멸종했다. 이들 호랑이 9종은 모두 11만 년 전 한 종류의 공통조상 호랑이로부터 분화됐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아담과 이브’에 해당하는 고대 호랑이가 있었던 셈이다. 화산폭발, 빙하기 등 기후가 혹독해지면 동물은 자신에게 편안한 환경에 고립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고기후 연구는 호랑이 계보 추적에 중요하다. 자료 : Current Biology, 일러스트 동아사이언스
 

최근에는 국내 연구진이 만든 호랑이 게놈 지도를 토대로 전 세계 호랑이의 기원과 진화 경로를 밝힌 연구가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2018년 12월 3일자에 발표됐다. doi:10.1016/j.cub.2018.09.019 이 연구에는 미국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암연구소 게놈다양성연구소장을 지낸 스티븐 오브라이언 박사가 참여했다. 그는 전 세계 고양잇과 연구의 아버지로 불린다.

 

2013년 호랑이 게놈 지도 연구에 참여한 조윤성 클리노믹스 게놈연구소 소장은 “2013년 연구가 호랑이 게놈 지도 완성이 핵심이었다면, 이번 논문은 진화적으로 호랑이가 전 세계에 어떻게 뻗어 갔는지 밝혔다”며 “게놈뿐만 아니라 고생물학, 고기후학 등을 포괄적으로 분석해 호랑이의 계보를 그렸다”고 설명했다.

 

설표범 유전자에서 저산소증 실마리 찾아

 

그렇다면 호랑이 게놈 지도를 완성하고 진화사를 추적해 공통조상을 찾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뭘까. 조 소장은 “우선 해당 동물을 이해하고 종을 보존하는 데 의의가 있다”며 “인간이 가진 유전병의 원인을 밝히고 치료책을 찾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고양잇과 동물의 독특한 점은 1100만 년 동안 37종으로 빠르게 종분화가 이뤄졌다는 점이다(같은 기간 오랑우탄과 인간은 영장류 네다섯 종을 사이에 두고 분화했다). 또 고양잇과 동물은 서로 게놈 서열이 비슷하고 염색체 개수가 같아 교배도 가능하다. 

 

자료 : Current Biology /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위키피디아
공통조상에서 분화된 호랑이 | 스티븐 오브라이언 전(前) 미국 국립암연구소 게놈다양성연구소장이 이끄는 연구팀은 설표범과 호랑이 아종 6종의 상염색체를 분석해 계보를 그렸다. 오늘날 전 세계 호랑이 6종은 하나의 공통조상 호랑이에서 분화됐다. 자료 : Current Biology /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위키피디아

국내 연구진이 호랑이 게놈 지도를 이용해 백호랑이, 사자, 설표범의 게놈 지도를 ‘리시퀀싱’ 할 수 있었던 이유다. 리시퀀싱이란 한 종의 게놈 지도를 기준으로 유전적으로 가까운 다른 종의 게놈 지도를 간접적으로 알아내는 것이다. 

 

조 소장은 “모든 동물은 태어날 때부터 특정한 환경에 놓인다”며 “하나의 공통조상에서 분화돼 다양한 곳에 적응한 고양잇과 동물의 유전자를 분석해 비교하면 실험을 하지 않고도 특정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적인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저산소증은 흔히 암을 유발한다고 알려졌지만 설표범은 산소가 적은 고산지대에 완벽히 적응한 개체다. 따라서 다른 고양잇과 동물과는 달리 설표범만이 지닌 유전자가 무엇인지 밝히면 저산소증과 질병의 상관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조 소장은 “해독된 게놈 지도와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하면 이미 멸종된 종을 살릴 수도 있다”며 “조지 처치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팀은 매머드 게놈을 해독하고 코끼리와 비교해 매머드를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전자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생물종의 게놈 지도가 경쟁적으로 해독됐고, 이에 따라 자국에만 서식하는 생물의 유전자가 귀중한 자원으로 인식되는 추세다. 생물의 유전 정보가 앞으로 어떻게 활용될지,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항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남한은 인구밀도가 너무 높아 더 이상 호랑이가 살 수 없지만, 북한의 백두산과 개마고원 일대는 가능성이 있다”며 “호랑이를 일부러 풀어놓을 것도 없이,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호랑이가 내려올 수 있는 길을 조성해주면 백두산에 호랑이가 되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호랑이는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의 혼으로 여겨졌다”며 “한국 호랑이의 종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 과학동아 2019년 1월호 [이달의 PICK] 한반도에서 자취 감춘 호랑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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