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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 조직에 너무 간섭하는 조직은 '불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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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 조직에 너무 간섭하는 조직은 '불안정'

2013.10.13 18:00

 

‘삐-, 삐비비비-,띠딕 띠딕--’


  지금부터 약 15년 전, 필자는 PC통신에 빠져 있었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기도 하고, 동갑 친구들이 모이는 동호회에 가입하면서 방과 후 시간을 보내곤 했다. 전화비가 10만원이 훌쩍 넘게 나와 부모님께 혼나기도 수차례였다.

 

  그래서일까. 학교에서 ‘정보사회와 컴퓨터’라는 수업을 꽤 열심히 들었고, 정보처리기능사 같은 자격증도 따보려고 학원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컴퓨터 수업을 들을 때마다 첫 단원에 등장하는 단어는 ‘애니악’. 교과서는 애니악이 미국 펜실베니아대에서 1946년 만든 세계 최초의 컴퓨터로, 1만 8000개의 진공관과 130km 길이의 전선으로 이루어진 30톤짜리 거대한 전자식 계산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추상적 사유의 위대한 힘’에서는 최초의 컴퓨터는 존 모클리·존 에커트가 만든 애니악이 아니라 맥스 뉴먼과 토미 플라워스가 만든 ‘콜로서스’라고 주장한다. 콜로서스는 독일의 암호문을 해독하기 위해 앨런 튜링이 만든 ‘튜링이스무스’를 사용해 만든 전자식 계산기. 콜로서스가 1943년부터 1945년까지 10대나 만들어졌으니 시기가 애니악보다 앞섰고, 여기에 튜링의 아이디어가 기여했다는 것이다.

 

● 최초의 컴퓨터는 콜로서스…튜링의 아이디어로부터 출발

  저자는 컴퓨터가 튜링의 ‘추상성’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추상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성질. 튜링 추상성의 주인공은 바로 ‘튜링기계’와 ‘보편튜링기계’. 우선 저자는 튜링기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튜링은 사람이 계산하는 과정을 기계에서 구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린다. 첫째, 계산할 때 사람이 주목하는 기호. 이것은 기계의 입장에서 보면 기계가 읽은 기호이다. 둘째, 계산을 실행하는 사람의 마음 상태. 이것은 기계의 입장에서 보면 기계 내부의 상태(프로그램의 한 절차)이다. 셋째, 계산을 하면서 결과들을 적는 종이와 같은 매체. 이것은 기계의 입장에서 보면, 무한한 길이의 테이프이다.”

 

  요컨대 튜링기계란 ‘무한한 길이’의 테이프에 계산에 필요한 기호, 마음 상태를 적어 가는 추상적 기계를 의미한다. 사람이 무한한 길이를 가늠할 수 없으니 이는 추상성을 띤다. (x, y, z, w, u) 순서쌍이 무한한 테이프에 있을 경우, x상태의 튜링 기계는 y를 읽는다. 그리고 z라는 연산을 하고, w방향(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u상태로 기계의 상태를 바꾼다. 무한한 테이프에 5개의 순서쌍인 ‘5순서열’을 입력해 어떤 기능을 하는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다.

 

● 하나의 기능 가진 튜링기계, 여러 튜링기계를 따라하는 보편튜링기계

  하지만 튜링기계는 단순하다. 한 프로그램에서 하나의 기능밖에 할 수 없기 때문. 때문에  저자는 오히려 튜링기계 중 아주 특별한 형태인 보편튜링기계가 현대 컴퓨터의 생겨난 최초의 아이디어라고 설명한다. 보편튜링기계란 튜링기계가 하는 모든 일을 따라할 수 있는 기계다. 흉내쟁이처럼 하나의 연산을 하는 튜링기계를 여러 개 따라할 수 있는 또 다른 추상적 기계를 말한다.

 

  “예를 들어 10개의 기계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그 기계는 기능이 모두 다 다르다. 그런데 하나의 기계가 10가지의 기능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면 이는 분명히 강력한 기계임에 틀림없다.”

 

  보편튜링기계는 튜링기계라는 추상적 기계 여러 개를 묶어 만든 상위의 추상적 기계다. 우리가 사람, 새, 말, 개, 고양이, 기린 같은 구체적인 대상을 보고 ‘동물’이라는 단어로 묶는 것을 추상화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계층구조가 있을 수 있기 때문. 사람 역시 뇌, 간, 심장, 피부 같은 기관의 집합으로 추상화된 것이므로 동물은 사람보다 상위의 추상성을 가진다.

 

  따라서 보편튜링기계는 튜링기계가 어떤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필요는 없다. 자기 할 일을 잘 하고 있는 튜링기계를 적절한 시점에 테이프에서 불러 주기만 하면 되는 것. 입력값을 받는 듯 약간의 작업은 있긴 하지만 말이다. 


  튜링은 튜링기계와 보편튜링기계로 하나의 상하관계를 보여줬지만,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 컴퓨터를 보면 단 하나의 상하관계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여러 기능이 서로 얽히고 설킨채 여러 단계의 계층구조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튜링기계를 포함하는 하나의 보편튜링기계가 탄생하고, 이런 보편튜링기계는 새로운 튜링기계로서 또 다른 상위 보편튜링기계를 가질 수 있다. 보편튜링기계끼리도 계층구조가 성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튜링기계-보편튜링기계와 마찬가지로 상위 보편튜링기계는 하위 보편튜링기계가 어떤 일을 하는 지 구체적으로 알 필요는 없다. 적절한 시점에 부르는 역할이 중요하다.

 

● 상위 보편튜링기계는 튜링기계를 부르는 기능만… 조직에서의 인사권

  여기 사람이라는 보편튜링기계가 있다. 이 기계의 테이프에는 말을 하고, 자료를 조사하고, 인터뷰를 하고, 문서를 작성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튜링기계가 올라와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묶어 조직이라는 상위 보편튜링기계가 된다. 마찬가지로 각 단위의 장은 각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필요는 없다. 각각의 특징을 알고 적절한 시점에 불러주는 상위 보편튜링기계의 역할을 하면 된다. 인사가 중요한 이유다.

 

  우리 사회에서 수직적이고 계층구조를 갖는 조직은 아주 많다. 학교에서는 총장, 부총장, 단과대학장, 학과장… 으로 이어지는, 회사에서는 대표, 전무, 상무, 부장… 으로 이어지는, 정부에서는 대통령, 국무총리, 장차관… 으로 이어지는 계층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조직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인사 문제는 항상 불거져 나온다. 앞서 살펴본 관점에서라면 추상성의 계층구조에 문제가 생긴 거다. 보편튜링기계는 하위의 보편튜링기계나 튜링기계를 적절한 시점에 부르는 기능을 한다. 이는 어찌 보면 보편튜링기계가 하는 일의 전부다. 상위 직급이 하위 직급을 적절하게 배치하지 못하거나(보편튜링기계의 경우 튜링기계를 적절한 시점에 부르지 못하거나) 직무를 지나치게 다 제어하려고 하는 경우(튜링기계가 하는 일을 지나치게 알려고 하는 경우)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것.


  따라서 조직의 안정성을 유지하려면 해당 추상성의 레벨에 걸맞은 사람이 앉아 있어야 한다. 상위 보편튜링기계의 자리에는 하위 보편튜링기계를, 하위 보편튜링기계의 자리에는 튜링기계를 잘 배치해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컴퓨터가 문제없이 돌아가듯 조직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여러 단계의 추상성 레벨을 갖는 큰 조직일수록 안정성을 유지하려면 인사가 더 중요할 것이다. 이런 큰 조직의 수장이라면, 기본인 인사에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이 인지상정. 만약 인사를 잘 못하고 있다면, 안타깝지만 직급에 비해 추상성 레벨이 아직 낮은 거다. 그렇다면 인사에 앞서 조금 더 조직을 잘 이해하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서로 도우며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기계와 사람의 차이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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