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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내가 나의 지옥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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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 19일 10:00 프린트하기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중요한 이유는 내가 바로 나의 지옥이면 이 세상 어디서 무엇을 하든 늘 지옥이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중요한 이유는 내가 바로 나의 지옥이면 이 세상 어디서 무엇을 하든 늘 지옥이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하루에 네 시간만 자면서 운동도 하고 일도 하고 가정도 돌보고 학위도 따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쓰레기야”라고 말해버릇 하는 친구가 있다. 그렇게 해내는 사람들이 대단한거고 잘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그 일이 절대적으로 쉬운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잘 알고 있음에도 이런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나 역시 혹시 내가 쓰레기인 것은 아닌지, 나도 지금보다 훨씬 더 열심히 살아야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이 올라오곤 한다.

 

한정된 인지적 자원과 배터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동물로서 어떤 일이든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은 힘든 일이요 가급적 일하지 않으며 에너지를 보존하거나 최소한 적절한 페이스로 일하며 에너지를 한번에 다 태워버리지 않는 것이 어쩌면 더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삶의 방식일 것이다. 그걸 알고있으면서도 누군가 저런 비인간적인 기준을 꺼내면 아 저렇게 살아야하나 보다고 금새 귀가 팔랑거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가혹하고 자기 비난을 서슴지 않는 행위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나아가 사회 전체에 비인간적인 기준(‘인간이지만 하루 네 시간만 자고도 완벽하게 기능하렴’)을 퍼트리는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 윤리적으로도 타인을 착취하는 것보다 자신을 착취하는 것에 제동이 덜 걸리므로 어쩌면 타인에 대한 비난보다 “뫄뫄도 못하다니 나는 쓰레기야!” 같은 자기비난이 더 저항 없이 주변 사람들의 마음 속을 침투, 가혹한 삶의 기준을 퍼트리는 데 한 몫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이렇게 스스로에게 가혹한 태도로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온 경우, 그 채찍을 자연스럽게 타인을 향해 휘두르기도 한다. 나 때는 네 시간 밖에 안 자면서 뫄뫄를 전부 다 했네, 너도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 하며 너가 힘든 건 힘든 것도 아니네 등 어렵게 않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자신에게 가혹했던 사람들이 타인에게도 스스로에게 가혹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회가, 내가 지금 나에게 요구하는 일들이 매우 비인간적이며 실패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기보다 다 내 노력이 부족해서, 내가 못나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다보면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타인에게도 네 노력이 부족한 거라고 네가 못나서 힘든 거라고 비난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자신에게 가혹한 사람들은 타인에게도 스스로에게 가혹할 것을 요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게티이미지뱅크
실제로 자신에게 가혹한 사람들은 타인에게도 스스로에게 가혹할 것을 요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애슐리 배츠 앨런 교수에 따르면 실제로 자신에게 가혹한 사람들은 타인에게도 스스로에게 가혹할 것을 요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약 200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친구,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이 중요한 약속에 늦는 상황을 상상하게 했다(Allen et al., 2015).

 

그리고 나서 그 사람에게 어떤 반응을 보고 싶은지에 대해 물었다. “모든 사람들은 다 이따금씩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사과를 받으면 충분하다”와 “늦어서 너무 너무 미안하다고 했으면 좋겠다. 자신이 저지른 일은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며 자신이 저지른 잘못은 변명의 여지가 없음을 알았으면 좋겠다”의 선택지를 주고 각각에 얼마나 동의하는지를 물었다.

 

그 결과 스스로에게 너그럽지 않은 사람들은 너그러운 사람에 비해 두 번째 선택지에 더 크게 동의하며 자신의 친구나 연인, 가족이 더 크게 자책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신에게 너그럽지 않은 사람들은 상대가 크게 자책하고 있을 때, 그렇지 않을 때에 비해 더 용서할 의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에게 너그러운 사람들은 상대가 스스로를 크게 자책하든 자책하지 않든 비슷하게 용서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완벽주의적이고 비판적인 양육자가 완벽주의적이고 비판적인 자녀를 만든다는 연구들이 있었다(Amitay et al., 2008). 곁에서 보고 배우게 되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어쩌면 부모가 자녀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독하고 가혹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심하게 자책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제대로 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주기 때문에 그것만이 올바른 삶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중요한 이유는 내가 바로 나의 지옥이면 이 세상 어디서 무엇을 하든 늘 지옥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에게 있어 지옥인 내가 타인에게도 얼마든지 지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족함 투성이인 인간으로 태어나서 나의 부족한 점과 타인의 부족한 점만 보며 비난하며 살기에는 삶이 너무 짧다. 내가 나를 포함한 누군가의 지옥이기보다 휴식처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자료

Allen, A. B., Barton, J., & Stevenson, O. (2015). Presenting a self-compassionate image after an interpersonal transgression. Self and Identity, 14, 33-50.
Amitay, O. A., Mongrain, M., & Fazaa, N. (2008). Love and control: Self-criticism in parents and daughters and perceptions of relationship partners.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44, 75-85.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 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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