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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5를 기억하라'…인간마저 위협하는 플라스틱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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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 09일 14:00 프린트하기

사진 작가 크리스 조던이 태평양에 있는 ‘미드웨이섬’에서 찍은 사진.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새의 시체를 촬영했다. 뼈와 함께 남은 플라스틱의 모습이 새가 받았던 고통을 전해주는 듯하다. Chris Jordan
사진 작가 크리스 조던이 태평양에 있는 ‘미드웨이섬’에서 찍은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알바트로스 모습.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새의 시체를 촬영했다. 뼈와 함께 남은 플라스틱의 모습이 새가 받았던 고통을 전해주는 듯하다. Chris Jordan

벨기에 화학자 레오 베이클라이트가 1907년에 플라스틱을 발명한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플라스틱의 대량생산이 시작됐습니다. 이후 어마어마한 양의 플라스틱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매년 12월 영국의 왕립통계학회에서는 ‘올해의 통계’라는 제목으로 한 해 동안 가장 이슈가 되었던 숫자들을 뽑아 발표합니다. 2018년 올해의 통계 우승자는 ‘90.5’가 선정됐답니다. 

 

5만 개의 플라스틱 봉투로 만든 고래 그림. 이는 바다 2.6km²에 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수와 같다. Chris Jordan
5만 개의 플라스틱 봉투로 만든 고래 그림. 이는 바다 2.6km²에 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수와 같다. Chris Jordan

이 숫자는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날드 기어 교수팀이 2017년에 발표한 ‘모든 플라스틱의 생산과 사용, 운명’이라는 논문에 등장합니다. 여기에서 90.5는 ‘1950년부터 2015년까지 만들어진 모든 플라스틱 쓰레기 중 재활용되지 않은 플라스틱의 비율’을 나타냅니다. 65년간 만들어진 플라스틱의 90.5%가 사용된 후 곧바로 쓰레기로 변한 겁니다.

 

연구팀은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등 세계 각국의 플라스틱 사용 보고서에 나온 통계자료를 정리해 플라스틱의 생산과 이용량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65년간 총 83억t(톤)의 플라스틱이 생산됐고, 그중 63억t이 쓰레기가 되었다고 추정했습니다. 플라스틱 쓰레기 중에선 9.5%에 해당하는 6억t만이 재활용되었고, 재활용되지 않은 90.5%의 쓰레기는 소각되거나(12.7%) 지구 어딘가에 그대로 방치(77.8%)되어 있습니다.

 

플라스틱의 생애 | 1950년부터 2015년까지 만들어진 플라스틱의 양과 사용된 플라스틱이 어떻게 되는지 나타낸 그림이다. 자료 출처 : Production, use, and fate of all plastics ever made, 2017, Roland Geyer
플라스틱의 생애 | 1950년부터 2015년까지 만들어진 플라스틱의 양과 사용된 플라스틱이 어떻게 되는지 나타낸 그림이다. 자료 출처 : Production, use, and fate of all plastics ever made, 2017, Roland Geyer

이렇게 방치된 플라스틱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5㎜ 미만의 작은 조각으로 쪼개져 결국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갑니다. 이것이 ‘미세 플라스틱’입니다.

 

최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정진영 선임연구원 ‘미세 플라스틱이 체내에 흡수되면 세포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연구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이 실험 물고기로 흔히 쓰이는 제브라피쉬에게 수십nm(나노미터. 1nm은 십억 분의 1m)의 미세 플라스틱을 투여한 결과, 배아의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가 손상된 것으로 나타난 겁니다. 연구팀은 “미세 플라스틱은 자체로도 미토콘드리아를 손상시키지만, 다른 독성 물질과 결합해 독성을 증폭시키기도 한다”며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미세 플라스틱에 노출되지 않은 미토콘드리아(왼쪽)와 노출돼 손상된 미토콘드리아(오른쪽)의 모습.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미세 플라스틱에 노출되지 않은 미토콘드리아(왼쪽)와 노출돼 손상된 미토콘드리아(오른쪽)의 모습.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플라스틱 쓰레기의 피해자

 

작년 11월 19일 인도네시아에 있는 와카토비섬 해변에서 향유고래의 사체가 발견됐습니다. 그런데 이 사체를 조사하던 중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향유고래 뱃속에 들어 있었던 겁니다.

 

약 9.5m에 달하는 향유고래의 사체에서는 플라스틱 컵 115개, 플라스틱 병 4개, 비닐봉지 25개, 실 뭉치, 슬리퍼 2개 등 총 6kg에 가까운 쓰레기들이 나왔습니다. 세계자연기금(WWF)의 해양생물보존 담당자인 드위 수프라피는 “사체가 심하게 부패되어 향유고래가 왜 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마주한 쓰레기들은 정말 끔찍했다”고 밝혔습니다.

 

1 그물이 몸에 걸려 힘들게 헤엄치고 있는 바다거북. Francis Perez 2 와카토비섬에서 발견된 향유고래의 사체. 뱃속에서 6kg에 달하는 쓰레기가 나왔다. WWF Indonesia / Kartika Sumolang 3 그물이 목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물범의 모습. Paul Macro
1 그물이 몸에 걸려 힘들게 헤엄치고 있는 바다거북. Francis Perez 2 와카토비섬에서 발견된 향유고래의 사체. 뱃속에서 6kg에 달하는 쓰레기가 나왔다. WWF Indonesia / Kartika Sumolang 3 그물이 목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물범의 모습. Paul Macro

지난 1월에는 사진작가 폴 마크로가 파란색 플라스틱 그물이 목에 감긴 암컷 물범 사진을 찍어 화제가 됐습니다. 그물은 강하게 물범의 목을 휘감고 있었고, 이로 인해 물범은 질식사할 위기에 놓여 있었죠. 폴 마크로는 보호단체에 구조를 요청했지만 결국 구조에는 실패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고통을 받는 물개가 2018년에 영국의 노퍽 지역에서만 여섯 마리나 발견됐습니다.

 

지구 곳곳에서 플라스틱으로 고통 받고 있는 동물들은 점점 늘고 있습니다. 사람과 달리, 동물은 플라스틱과 음식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훨씬 더 위험합니다.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하고 먹은 동물들은 배부름을 느끼고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않아 영양실조로 죽습니다. 헤엄을 치다가 그물이나 플라스틱 고리에 몸이 끼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죽기도 합니다. 하지만 플라스틱에 의해 고통 받는 동물들이 어디에 얼마나 분포하고 있는지 등의 피해 상황은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답니다.

 

플라스틱의 숙제 풀어야

 

플라스틱으로 고통 받는 동물들의 모습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플라스틱 쓰레기 줄이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19일 EU는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시키는 법안에 합의했습니다. 금지시킬 품목은 면봉, 일회용 수저, 접시, 빨대, 폴리스티렌 포장용기 등으로, 2021년부터 이 법안을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1 5만 개의 라이터로 만든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2 24만 개의 플라스틱 봉투로 만든 공룡 그림. 이는 전 세계에서 10초마다 사용되는 플라스틱 봉투의 양과 같다. Chris Jordan
1 5만 개의 라이터로 만든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2 24만 개의 플라스틱 봉투로 만든 공룡 그림. 이는 전 세계에서 10초마다 사용되는 플라스틱 봉투의 양과 같다. Chris Jordan

국내에서도 플라스틱 줄이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갑작스럽게 비닐류가 재활용 쓰레기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문제 의식이 높아졌습니다. 환경부는 2030년까지 플라스틱 쓰레기를 절반으로 줄이고 재활용률을 70%까지 끌어올리는 내용의 종합대책을 제안했습니다.

 

일부 홈쇼핑 업체는 식품을 배달할 때엔 스티로폼 대신 재사용이 가능한 아이스팩을 사용하고, 비닐 테이프 대신 종이 테이프를 사용하는 등의 시도를 시작했습니다.  마트에서는 일회용 비닐봉지 대신 재사용이 가능한 장바구니를 대여하는 서비스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 “고통 받는 새 모습 통해 인간의 마음 움직이고 싶어” 사진작가 크리스 조던 인터뷰

 

크리스 조던(사진 작가)
크리스 조던(사진 작가)

사진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크리스 조던’은 최근 알바트로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공개했습니다. 알바트로스의 아름다운 모습과 플라스틱으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이 대비되면서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알바트로스의 매력에 푹 빠지신 것 같습니다.

 

"알바트로스는 정말 거대하고 멋진 새입니다. 날개를 펼치면 길이가 2m가 넘습니다.  알바트로스를 만나기 위해 갔던 태평양 한가운데의 ‘미드웨이섬’에 갔더니, 이곳의 알바트로스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새가 수천 마리씩 모여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환상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미드웨이섬을 8번이나 오가며 알바트로스의 생태를 가까이서 만나다보니 알바트로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생겼습니다."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알바트로스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어땠습니까.

 

"미드웨이섬으로 가기 전부터 배에 플라스틱이 가득 찬 새의 모습을 보게 될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생물학자 친구가 사진으로 보여 줬거든요. 그런데도 이걸 실제로 본 순간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미드웨이섬에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새들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습니까. 

 

"사람들이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습니다. 제가 찍은 새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슬픔을 느끼듯,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감정을 이끌어냈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리적으로 판단하는 건 사회운동가들이 하는 일이지만, 그 문제에 대해 감정을 느끼게 하는 건 예술가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감정을 느끼는 순간 마음 속에선 사랑이 싹트고,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관련기사 : 어린이과학동아 3호(2019. 2. 1 발행) Intro.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한 필수품, 플라스틱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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