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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우리 괴물 ‘강철’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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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 05일 10:00 프린트하기

곽재식 작가가 펴낸 ′한국 괴물 백과′ 속 괴물의 하나인 강철. 가장 인상적인 한국 괴물을 묻는 질문에 강철을 꼽았다. 조선 후반기만 해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괴물이었고, 1950년대 신문기사에까지도 등장하지만 수십 년만에 대중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곽 작가는 ″대중문화가 얼마나 다루는지에 따라 하나의 문화가 얼마나 금세 잊힐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예″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워크룸프레스
곽재식 작가가 펴낸 '한국 괴물 백과' 속 괴물의 하나인 강철. 가장 인상적인 한국 괴물을 묻는 질문에 곽 작가는 강철을 꼽았다. 조선 후반기만 해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괴물이었고, 1950년대 신문기사에까지도 등장하지만 수십 년만에 대중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곽 작가는 "대중문화가 얼마나 다루는지에 따라 하나의 문화가 얼마나 금세 잊힐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예"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워크룸프레스

익숙하면서 낯설다. 무서우면서도 우습다. 곽재식 SF 작가가 11년 동안 모아 정리해 지난 1월 펴낸 책 《한국괴물백과》 속 괴물 이야기다.  이 책에는 친숙한 도깨비부터 낯설기 그지 없는 무생물 괴물까지 현대를 사는 우리가 직접 만난 적이 없는 이상한 존재 282종이 빼곡히 정리돼 있다. 대단히 독특한 책이라 도통 대중성이 없어 보였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 등에서 꽤 컬트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출간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2쇄를 찍었다.


설날이라고 온가족이 모처럼 모여도 ‘전통’이라고 하는 말은 입에도 잘 올리지 않는 요즘 분위기에서, 한국 전통의 괴물을 모아 책을 냈다니 특이했다. 책을 펴낸 곽 작가를 서울 강남구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SF 작가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괴물이라는 환상 속 주제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궁금했다. 더구나, 그는 몇 개의 화학 회사에 15년째 몸담고 있는 회사원이기도 하다. 세 개 이상의 일을, 모두 평균을 훌쩍 넘는 수준의 완성도로 해내는 사람의 비결도 슬쩍 탐구해 보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책은 핑계였다. 다행히 그가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 근처에서 잠시 시간을 냈다.

 

곽재식 작가. -윤신영 기자
곽재식 작가. -윤신영 기자

●정체성 1 : 한국괴물백과 펴낸 괴물 전문가

 

그는 책이 반응이 좋다는 말에 “그래도 명색이 소설가인데, 소설은 그럭저럭 나가고 다른 책들이 더 잘 나가는 게 의아하면서도 멋쩍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펴낸 글쓰기 책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는 ‘한국괴물대백과’보다 더 빨리 2쇄를 찍었다”며 웃었다.


‘한국괴물백과’는 작가가 11년 전부터 인터넷에 모으던 괴물 관련 정보를 묶어 낸 책이다. 맨처음 ‘어우야담’을 읽고 그 속에 등장하는 괴물을 정리했고, ‘용재총화’ 속 괴물을 정리했다. 이 내용을 올리자 반응이 좋았다. 본격적으로 고전 속 한국 괴물을 정리했다. 그는 “처음에는 내가 작품의 소재로 쓰고 싶어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 속 인물이 ‘한국괴물백과’에 보인다. 사람과 용의 자손으로 몸 어딘가에 비늘이 있다는 ‘용손’이라는 괴물은, 그가 2017년 4월 ‘과학동아’에 발표했던 단편 ‘이상한 용손 이야기’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곽 작가는 괴물 자료를 모으고 사전을 펴낸 유일한 사람은 아니다. 이전에도 일부 백과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한국괴물백과’는 유일한 특성이 있다. 모든 항목에 ‘출전’이 붙는다는 사실이다. 과학 논문을 쓸 때 참고문헌을 다는 전통과 닮아 있다. 곽 작가도 “괴물에 대한 개인적 감상이나 해설을 쓴 자료는 기존에도 종종 보였지만, 엄밀한 출전을 표기한 ‘자료’는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자료’지만, 읽는 재미가 있다. ‘공주산’이라는 괴물에 대한 설명이 그렇다. 

 

“걸어 다니는 산으로 밤에 사람이 보지 않을 때만 움직여 사람이 알아채면 그대로 주저앉아 굳어서 평범한 산이 된다. 군산 사람들이 공주산에 관한 이야기로 믿은 일이 ‘동국여지승람’에 나온다.”(62~63쪽)


오늘날의 과학 지식으로 이런 괴물의 존재 확률은 거의 확실히 0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서술은 남 또는 문헌으로부터 전해 듣는 ‘전언’의 형식을 갖춰야 한다. 과거 불교경전에 자주 보이던 ‘나는 이렇게 들었다(여시아문)’나, 성인의 언행을 기록한 유학 경전의 ‘~는 이렇게 말했다(자왈)’는 이런 전언의 한 가지였다. 기이한 존재를 기록한 중국의 ‘산해경’의 어투도 이와 비슷하다. 이 예스런 말투를 곽 작가는 “재미를 위해” 따라한다. 덕분에 읽는 맛이 있다.
 

그는 가장 인상적인 한국 괴물을 묻는 질문에 '강철(맨 위 그림)'을 꼽았다. 사자의 특징과 소의 특징을 한 데 지니고 있는 독특한 존재다. 보르헤스가 정의한, "여러 다른 개체의 특징을 조합한' 전형적인 괴물이다. 흥미로운 건 그 흥망성쇠다. 조선 후반기만 해도 속담에 나올 정도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괴물이었고, 1950년대 후반까지도 이 괴물을 봤다는 소식이 신문기사에 등장한다. 하지만 이후 수십 년만에 대중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곽 작가는 "대중문화가 얼마나 다루는지에 따라 하나의 문화가 얼마나 금세 잊힐 수 있는지 알려주는 예"라고 말했다.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아는 한국 괴물의 모습은 거의 다 텔레비전이 보여준 몇 가지로 획일화돼 있다(소복 귀신, 저승사자, 도깨비 등). 왜곡된 것도 많다.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명예교수가 '앙띠오이디푸스의 신화학'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원래 동양의 인어 괴물은 남성형이었는데, 우리는 안데르센 동화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인어를 여성형으로 기억한다. 기록으로나마 한국의 과거 괴물을 꼼꼼히 소환해 낸 이 책이 다시 한번 중요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한국 괴물 백과′. -윤신영 기자
'한국 괴물 백과'. -윤신영 기자

자료를 혼자 보지 않고 인터넷에 다 공개한 것도 흥미롭다. 마치 요즘 게놈 학자 등이 주장하는 데이터 공유 운동을 11년 전부터 해온 것 같다. 또는 요즘 모든 사람이 학술 정보에 무료로 접근할 수 있게 하자는 ‘오픈 액세스’ 개념에 가깝다. 


꼭 공유라는 형식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곽 작가의 글에는 어쩔 수 없이 과학자의 흔적이 묻어난다. KAIST에서 원자력 및 양자공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이론화학을 공부했다. 이후 줄곧 화학회사에서 오래 근무해 오고 있다. 그 자신이 “소설가로 산 기간보다 회사원으로 산 기간이 더 길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정량적인 글쓰기나 발표가 몸에 익었다. 그는 “인문학자들 앞에서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괴물에 대해 발표할 기회가 있었는데, 괴물을 시대별로 분류해 발표하자 많이들 신기해 했다”며 “회사에서 표 넣어 보고서 만들던 습관이 드러난 게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정체성 2 : 다음 이야기가 늘 궁금해지는 SF 작가

 

그는 한국괴물대백과로 이름을 조금 알린 ‘괴물 전문가’가 됐지만, 사실 그는 이미 많이 알려진 SF 작가다. 장르소설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를 모르기가 쉽지 않다. 한국에서 가장 넘치는 에너지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는 SF 작가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니 벌써 13년째다.


작품을 발표하는 속도가 빠른 편이고, 작품의 수준도 고른 편이라 팬들이 ‘믿고 읽는 작가’로 꼽는다. 그의 빠르고 일정한 작업속도가 과학의 상수와 비슷하다고 해서 ‘곽재식 속도’라는 표현도 생겼다. 지난해 3월, SF 작가 듀나가 트위터에서 “상반기에 써야 할 단편이 최소 네 편인데, 이건 곽재식 씨의 (작업) 속도”라고 한 데에서 유래했다. 반 년에 네 편의 단편도 작가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빠른 편으로 받아들여지는데, 또다른 SF 작가인 이산화 작가에 따르면, 실제 곽 작가의 속도는 ‘2 곽재식 속도’란다. 그만큼 생산성이 높다.


이 이야기에 곽 작가는 민망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냥 평균 이상 수준이에요. 웹툰이나 웹소설 작가의 작업량을 보시면 그렇게 말씀 못하십니다.” 소위 ‘주류’ 문단에서는 듣지 못할 답이었다. ‘문단’ 외에는 작품으로 잘 인정치 않는 분위기가 거기에는 있다. SF도, 추리소설도 그 좁은 기준에서는 문학에 속하지 못한다. 하지만 곽 작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 그의 작품은 기존 소설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이 많다. 곽 작가의 작품은 밝고 유머러스한 편이다. 그는 “기존 소설을 봤는데, 좋긴 한데 너무 어두운 내용이 많았다. 주인공은 늘 고통당하다가 죽었고, 자살도 많았다”며 “그렇지 않은 쾌활한 소설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물론 이미 잘 쓰는 작가가 많은 상황에서 뭔가 다른 작품을 쓰겠다는 계산도 없지는 않았단다.

 

그의 최근 단편집 ′토끼의 아리아′. - 윤신영 기자
그의 최근 단편집 '토끼의 아리아'. - 윤신영 기자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어딘가 모자란 듯 하면서도 꾸역꾸역 뭔가를 해내는 사람이 많이 등장한다. 어투도 입말을 그대로 잘 쓴다. 그가 작품에서, 인터뷰에서 잘 쓰는 말 중 하나가 ‘망한다’였다. 망하는 건 현실에서는 큰 일이지만, 구어에서는 자조든 아니든 웃음과 함께 많이 쓰이는 말이다. 그의 작품도, 망하고 고꾸라지는 사람이 나와 망했다고 말하는데, 그게 걸핏하면 웃긴다.

 

하지만 날이 없지 않다. 어딘가 떫거나 아린 맛이 있는 웃음이다. 많은 작품이 너무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등장인물의 삶은 대개 지금과 아주 비슷하다. 거기에 아주 약간의 부조리한 상황이 더해진다. 요즘처럼 ‘X차 산업혁명’이 유행하자 기업이나 정부에서 우스꽝스러운 연구 과제를 공모하고, 그 허점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황당한 과제를 지원하고, 그게 선정되면서 시끌벅적한 한바탕 소동을 벌이는 단편 ‘박흥보 특급’이 대표적이다. 그냥 현실의 일부를 확대해 들려주는데 그게 그렇게 부조리하고 웃기다. 골계미다.


그에게 앞으로 쓰고 싶은 작품을 물었다. “육아”라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이상하게 드라마고 소설이고 영화고 육아가 소재가 된 작품이 없어요. 우리 삶과 감정을 크게 흔드는 경험아잖아요. 그런데 작품이 없습니다. 미국은 1950년대 시트콤을 봐도 육아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가족 시트콤에도 육아는 사라지고 없어요. 저출산 등으로 끊임업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과 비교하면 정말 이상하죠.”


그는 5년 정도 전부터 이 주제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육아 소재의 작품은 2~3편에 불과하다. 이 수를 늘리는 게 당분간 목표다.

 

곽재식 작가. 말할 때는 안 그런데 사진을 찍자니 ′부장님′ 표정이 나온다. -윤신영 기자
곽재식 작가. 말할 때는 안 그런데 사진을 찍자니 '부장님' 표정이 나온다. -윤신영 기자

●정체성 3 : 회사원 곽 부장


알려진 소설가이자 10권 이상의 책을 펴낸 다작 작가에게 물었다. “회사원 생활을 만약 그만 두면 어떨 것 같으세요?” 예의 “망하죠”라는 답이 바로 돌아왔다. “먹고 살려면 회사 생활 해야 합니다.” 작가에게 가혹한 현재의 출판 시장은 어떤 걸까. “글쎄요. 문제가 뭔지도 모르겠습니다. 쏠림이 심해서 특정 책 특정 작가에게만 독자가 몰려요. 하나 짐작하는 건, 좋은 비평 문화가 없다는 점이 아닐까요. 좋은 작품을 읽고 나름의 방식으로 소개하는 일이 한국에서는 잘 없고, 그러니 독자는 유명한 작가, 유명한 책에 몰립니다. 그런데, 저도 책을 잘 팔아본 적이 별로 없어서 믿을 만한 이야기인지…”


그는 ‘곽 부장’으로 불린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차장이었는데 승진했다. 덕분에 지금은 관리직 생활을 하고 있단다. “2004년 처음 회사 생활을 할 때에는 화학 관련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 등을 했는데, 지금은 빼도 박도 못하고 그냥 회사원이에요.” 최근 한국 사회,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는 ‘부장’은 공공의 적 같은 느낌의 단어다. 과거 질서, 억압, 꼰대 이런 단어와 엮인다. 작품만 보면 철없고 젊을 것만 같은 그지만, 일찍 회사 생활을 시작한 덕에 젊은 부장에 이르렀다. 뜻하지 않게 한국 사회 속 ‘부장’의 모습과 동일시될 걱정은 하지 않는지 물었다. “행동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작가로서도 그래요. 후배를 더 두려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늘 혹시라도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인, 소위 ‘예술가스러운 삶’에 대한 동경 같은 것도 없다.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요.”


오후 1시가 넘어가자 그게 눈에 띄게 초조해 하는 모습이 보였다. ‘부장님’에게도 신입사원에게도 공평한 게 점심시간이다. 거리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헤어졌다. “사무실은 5분 거리입니다.” 그가 재킷의 지퍼를 목까지 끌어올리고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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