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정보저장소자 핵심 현상 규명
특혜 논란 임미영 연구원 비롯 DGIST·UNIST팀 공동연구
한국과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 연구자들이 참여한 공동 연구팀이 차세대 정보처리 소자인 ‘3차원 위상 스핀 구조체’에 필요한 핵심 구조를 실제 물질에서 관측하고 움직이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초고속 반도체 소자 개발의 길을 열었다는 평가다. 특히, 지난해 말 신성철 KAIST 총장 사태로 큰 주목을 받았던 LBNL의 실험장비 X선 현미경 ‘XM-1’을 활용해 얻은 성과로, “이용 실적이 미미한 장비를 부당하게 큰 돈을 주고 이용했다”는 일각에 비판을 부정하는 증거가 하나 더 쌓이게 됐다.
임미영 LBNL 연구원과 한희성 울산과학기술원(UNIST) 신소재공학부 연구원, 이기석 교수, 홍정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교수팀은 자성체 내에서 전자의 양자역학적 성질 가운데 하나인 ‘스핀'이 정확히 0이 되는 특이점인 ‘블로흐 점’을 안정적으로 형성하고, 그 움직임을 관측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해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5일자에 발표했다.
정보는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될 수 있다. 자기장을 이용하는 경우 N극 또는 S극을 이용해 0 또는 1의 디지털 정보를 기록한다. 위상 스핀 구조체에서는 스핀의 구조가 정보를 저장하는 단위가 된다. 특히 3차원 위상 스핀 구조체에서는 블로흐 점이 정보 단위 역할을 한다.
블로흐 점은 물질 내에 존재하는 일종의 ‘블랙홀’로, 이 점에서는 스핀이 사라지고, 주변의 스핀이 마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물질의 소용돌이처럼 일정한 방향으로 회전한다. 이 소용돌이의 회전 방향이나 위치 등을 이용해 각기 다른 정보를 기록하는 게 3차원 위상 스핀 구조체다.
연구팀은 블랙홀이 주변 시공간에 큰 영향을 미치듯, 블로흐 점의 존재도 자성체 내의 스핀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만약 블로흐 점을 통제할 수 있으면, 정보를 자유자재로 기록하고 지우는 차세대 소자를 만들 수 있다. 그 동안 블로흐 점을 관측하거나 통제하려는 시도가 많았지만, 수 나노초(1나노초는 10억 분의 1초)의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만 존재할 수 있어 사실상 관측이 불가능했다.

연구팀은 아주 짧은 시간의 미세한 스핀 구조를 관측할 수 있는 LBNL의 X선 현미경(XM-1)을 이용해, 두께 100nm(나노미터. 1nm는 10억 분의 1m)의 니켈-철 합금 원반 조각을 관찰했다. 그 결과 니켈-철 합금 원반 조각 내에서 시계 방향 또는 반시계 방향, 위 또는 아래의 네 가지 서로 다른 구조로 회전하는 블로흐 점을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또 이 원반에 3나노초 동안 약한 자기장을 걸면 블로흐 점이 파괴되지 않고 이동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연구팀은 “블로흐 점이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과, 자기장을 통해 블로흐 점의 위치를 조절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며 “실리콘 기반 반도체를 대체할 수 있는 초고속 스핀 소자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에 참여한 LBNL과 장비 XM-1은 지난해 말 신성철 KAIST 총장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에 있었던 곳이라 눈길을 끈다.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신 총장이 DGIST 총장 재직 시절 LBNL과 DGIST 사이의 공동연구계약을 맺으며 무상으로 이용이 가능한 XM-1을 부당하게 비싼 돈을 내고 썼으며, 그 돈으로 LBNL에 근무하는 제자를 편법 지원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신 총장을 고발했다. 제자의 국내 대학 겸직교수 채용에도 관여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이에 신 총장 측은 “XM-1 빔 이용시간을 대량 (연중 50%) 확보하기 위해 한 적법한 계약이었으며, 겸직교수 채용에도 관여한 적 없다”고 맞섰다. LBNL도 “적법한 계약이었다”고 반발했다. 과기정통부는 다시 “(비싼 비용을 들인 데에 비해) 이용 실적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본보 분석 결과 국내 연구팀이 1년에 수십 시간 이상 이용한 실적이 확인됐다. 이번 연구도 수 년에 걸쳐 여러 차례 XM-1 장비를 이용한 끝에 얻은 연구 결과다. 논문 제출일은 지난해 5월로 논란 이전이며, 이후 심사 과정에서 연구팀은 서로 연구에 대한 논의를 지속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