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내 마음은 왜 이럴까?]마음의 우생학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9년 02월 17일 10:00 프린트하기

1920년대 미국 캔자스주에서 우생학적으로 완벽한 가족을 찾는 행사. 우생학하면 나치를 떠올리지만 여러 국가에서 널리 실행되고 있었다. wikipedia(자료: American Eugenics Society)
1920년대 미국 캔자스주에서 우생학적으로 완벽한 가족을 찾는 행사. 우생학하면 나치를 떠올리지만 여러 국가에서 널리 실행되고 있었다. wikipedia(자료: American Eugenics Society)

우생학이란 종의 형질을 인위적으로 육종하여 우수한 종을 만들려는 학문을 말합니다. 우생학은 유전자의 ‘질’을 개량하여 인간을 보다 나은 존재로 만들려는 것이죠. 교육과 제도가 아니라 보다 직접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세상을 좋게 만들겠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과학적 근거가 없는 데다가 윤리적으로도 옳지 못해서 지금은 우생학을 주장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과연 세상에 우생학은 정말 사라져버린 것일까요?

 

보다 나은 인간을 위해서

 

우생학이라고 하면 흔히 나치 독일을 떠올립니다. 아무래도 제 3 제국 치하의 독일에서 일어난 유대인, 장애인, 집시 등의 학살이 유명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생학은 영국이나 독일, 미국 등 당시 여러 국가에서 널리 연구되고 실행되고 있었습니다. 사실 독일의 우생학자 중 일부는 미국에서 우생학을 공부한 학자이기도 했죠.

 

미국은 어떤 의미에서 우생학을 독일보다 더 먼저 적용했는데, 정신장애인에 대한 대대적인 임신 중절 사업을 벌였습니다. 소위 단종 수술을 받아야 정부 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로 적용하기도 했고, 심지어 결핵균이 든 우유를 주어 직접 제거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여성주의 단체에서도 피임 도구를 무료로 배부하고 임신 중절 수술을 장려했는데, 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빈민이나 교육 수준이 낮은 여성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우수한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심지어 인종 차별을 겪던 흑인지도자도 우생학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는 했습니다. 흑인이 낮은 대우를 받는 것은 흑인의 유전자가 열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더욱 적극적으로 흑인 스스로 개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흑인이 백인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 열등한 흑인의 비율이 열등한 백인의 비율보다 더 높다는 것입니다. 우수한 흑인은 적극적으로 ‘번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생학이 중단된 것은 나치 독일의 패망에 의한 면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우생학이 옳지 않은 학문이었기 때문이죠. 윤리적으로도 그렇지만, 과학적으로 잘못된 학문이었습니다.

 

우월한 유전자, 열등한 유전자

 

우생학은 인간을 보다 나은 존재로 만들려는 순수한 시도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비극으로 끝났다. 그런데 과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생학의 비극이 완전히 끝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위키피디아
우생학은 인간을 보다 나은 존재로 만들려는 순수한 시도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비극으로 끝났다. 그런데 과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생학의 비극이 완전히 끝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위키피디아

사실 우생학이 처음 태동하던 때에는 유전자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점점 유전자의 정체가 분명해지면서 인간의 신체와 정신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이 득세하기 시작했죠. 형질을 결정하는 것이 유전자이니, 좋은 형질은 좋은 유전자가 결정하고 나쁜 형질은 나쁜 유전자가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언뜻 들으면 당연한 이야기 같습니다.

 

지난 수십 년 간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들여서 인간의 유전자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습니다. 인간의 몸 안에는 유전자가 2만5000개 정도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각 유전자에 라벨을 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유전자, 그저 그런 유전자, 나쁜 유전자… 이런 식이죠. 요즘은 유전자를 마음대로 갖다가 자르고 붙이는 세상이니 이제 좋은 유전자만으로 구성된 맞춤형 인간을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일단 어떤 유전자가 좋은 유전자인지 나쁜 유전자인지 결정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불안과 관련된 ‘나쁜’ 유전자가 있다고 합시다. 불안 유전자를 제거하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불안감이 없는 사람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 리 만무합니다. 시험 전날도 쿨쿨 잠이나 자고 강도가 칼을 들이대도 태평합니다. 사실 ‘나쁜’ 유전자를 규정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유전자만 강화하는 것은 어떨까요? 예를 들어 비타민 D를 합성하는 유전자를 강화하는 것은 어떨까요. 하지만 비타민 D 합성과 관련된 일부 유전자는 알츠하이머씨 병의 발병과 관련됩니다. 유전자는 이른바 다면 발현이라는 현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기능을 합니다. ‘좋은’ 유전자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거 쉽지 않네요. 그러면 차라리 무조건 나쁜 유전자라도 몇 개 추려볼까요.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라면 분명 나쁜 것이니 일단 그것이라도 제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알고 보니 그동안 알지 못하는 다른 이점이 제공한다는 사실이 계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유전자 중에 ‘인류의 몸에서 반드시 제거해야 할 유전자 목록’ 같은 것은 없습니다.

 

만약 유전자의 상대적인 이득과 손해를 정교하게 계산하여 그 비율을 정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러나 형질은 다양한 생태적 환경에 의해 좌우됩니다. 또한, 집단 내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서도 이득과 손해가 결정됩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우월하거나 절대적으로 열등한 유전자를 규정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밈 이론

 

인간의 유전자는 아주 비슷하다. 하지만 아주 약간의 변이가 만든 차이가 차별과 배제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인간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생각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사실 아주 엇비슷하다. 그러나 약간 다른 생각이 갈등과 차별, 공격과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위키피디아
인간의 유전자는 아주 비슷하다. 하지만 아주 약간의 변이가 만든 차이가 차별과 배제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인간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생각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사실 아주 엇비슷하다. 그러나 약간 다른 생각이 갈등과 차별, 공격과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위키피디아

리처드 도킨스는 밈 이론이라는 아주 기발한 주장을 발표했습니다. 도킨스가 워낙 유명한 과학자이니 그의 밈 이론도 큰 관심을 받았죠. 밈 이론의 기본 구조는 간단합니다. 유전자(진) 대신 밈을 넣은 것입니다. 즉 유전자라는 복제자를 담고 있는 운반자가 개체라는 주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생각(idea)이라는 복제자를 담고 있는 운반자가 인간이라는 것이죠.

 

우리는 모두 다양한 생각과 주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윗세대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주장을 배웁니다. 그런 주장을 읽고 쓸 수 있는 글을 배우고, 그것을 머리에 담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합니다. 생존에 유리한 생각을 하는 사람의 생각은 더 잘 퍼지고, 그렇지 않은 생각은 도태됩니다. 이러한 생각이나 주장, 사상, 행동 양식 등을 밈(Meme)이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실 밈 이론은 허점이 많습니다. 일단 밈은 유전자와 달리 실체가 없고 밈이 퍼지는 과정도 유전자와는 다릅니다. 밈끼리 서로 분명하게 구분되지도 않습니다. 인지와 행동은 유전자에 의해 상당히 결정되는데, 밈과 유전자가 어떤 관계를 맺는지도 불명확합니다. 그런데도 직관적으로 잘 이해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밈 이론을 받아들였습니다. 다양한 논문과 책에서 밈 이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도 밈 이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밈 이론 자체가 경쟁력 있는 밈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음의 우생학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생각과 다른 가치관을 따르고 있습니다. 일부는 타고난 성격에 의한 것이고 일부는 자라온 환경에 의한 것이고 일부는 공부나 교류를 통해서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다른 신체적 혹은 정신적 형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른 얼굴과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혹시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생각과 주장을 선별하고, 그중 일부는 선택하고 일부는 장려하려고 한다면 어떨까요? 사실 주변을 둘러보면 ‘훌륭한 생각’도 있는 것 같고, ‘허튼 생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허튼 생각’을 제거하고, ‘훌륭한 생각’만 남기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사람을 피부색이나 성별, 인종, 교육 수준 등으로 차별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당연한 일 같지만 사실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사람을 타고난 신분이나 계급, 성별로 차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죠. 그런데 생각에 대해서는 아직 차별이 공고한 것 같습니다. 최소한 ‘피부색’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이야기를 듣기 딱 좋습니다. 하지만 ‘생각’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는 너무 비일비재합니다. 당장 SNS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어떤 ‘생각’이나 ‘주장’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를 욕하고 비난합니다. 그러면서 피부색이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지만, ‘생각’은 바꾸면 될 것이 아니냐고 몰아세웁니다. 너의 ‘허튼 생각’을 버리고 ‘훌륭한 생각’을 따르라고 합니다. 제가 만든 말이지만, 이는 어떤 의미에서 마음의 우생학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피부색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피부색이나 장애를 가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흑인은 흑인대로, 백인은 백인대로 타고난 피부를 가지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생각이나 주장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분명 어떤 사람은 독특한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에 대다수가 동의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특한 생각을 가졌다고 해서 차별하고, 생각을 바꾸라고 강요한다면 곤란합니다.

 

‘옳은’ 유전자만 가득한 세상을 만들려는 시도는 처참한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옳은’ 생각만 가득한 세상을 만들려는 시도도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로 끝맺을 것입니다.

 

에필로그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다른 이의 생각이 정말 터무니없거나 괴팍하거나 그릇될 수 있습니다. 최소한 우리 자신에게는 말입니다. 아마 루터의 생각을 들은 주교의 마음이 그랬을 것이고, 한글을 만들자는 세종의 생각을 들은 집현전 관리의 마음도 그랬을 것입니다. 노예를 해방하자는 생각도, 겉옷을 달라면 속옷도 주라는 생각도 한때는 정말 터무니없는 주장이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생각이었죠.

 

자신의 좁은 주장과 식견을 내세워서 다른 사람의 주장이나 생각을 공박하는 일을 흔히 봅니다.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누구나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다른 이의 주장이 납득하기 어렵다고 해서, ‘그 생각을 가진 사람’까지 욕하고 비난하고 차별해서는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볼 때 ‘옳은 생각’이라고 해서, ‘그 생각을 가진 사람’까지 우대하고 편애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때문이야》등을 썼다.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9년 02월 17일 10:00 프린트하기

 

혼자보기 아까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해 보세요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4 + 9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