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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인류 과거를 밝히는 탐정 '고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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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인류 과거를 밝히는 탐정 '고고학자'

2019.02.24 11:00

고은별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고은별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고고학자는 공룡 뼈를 발굴하나요?”

저를 고고학자라고 소개하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아쉽지만, 저는 공룡 뼈를 발굴하지 않습니다. 영화 '쥬라기 월드'를 보면 고고학자가 아니라 고생물학자나 유전공학자가 나왔다는 사실이 생각날 겁니다.

 

왜냐하면, 고고학은 ‘인간의 과거’를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인류는 지금으로부터 약 500만 년 전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공룡은 2억 3000만 년 전쯤 지구에 나타나 6500만 년 전에 사라졌습니다. 인류와 공룡이 함께 산 적이 없으니, 공룡은 고고학자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없는 겁니다.

 

고고학자가 흔히 듣는 또 다른 질문이 여기 있습니다. “인디아나 존스처럼 보물을 찾으러 세계를 돌아다니시겠군요”라는. 안타깝게도 영화에 나오는 흥미진진한 모험과 번쩍이는 보물은 실제 고고학자들의 삶과는 거리가 멉니다. 물론 운이 좋은 사람은 대단한 발견을 하기도 합니다. 이집트 투탕카멘왕의 보물이나 경주의 황남대총, 페루의 마추픽추와 같은 유적 말입니다.

 

고고학자는 물질적인 증거를 찾아 인간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지 연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고고학자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의 집, 그들이 버린 쓰레기, 그들이 묻힌 무덤 등 평범한 흔적을 발굴합니다. 여기서 나온 증거를 가지고 사람들이 언제부터 도구를 사용했는지,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한 때는 언제인지, 사람이 죽으면 어디에 묻었고 어떤 부장품을 넣었는지 알아봅니다. 고고학자는 우리의 삶과 사회가 어떻게 현재의 모습으로 변해왔는지 추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평범한 삶의 흔적도 유물과 유적이 될 수 있어서, 사실 여러분이 사는 동네에도 고고학 유적이 있을지 모릅니다. 마을이나 도시는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곳에 발달하기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사람이 정착한 곳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영화 <300>에서 재현한 테르모필레의 과거 모습(왼쪽)과 사진으로 찍은 현재 모습(오른쪽). 해안선이 후퇴하여 마른 땅이 드러났고, 그 위를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Warner Bros. Pictures/유튜브 캡쳐. Fkerasar(W)
영화 <300>에서 재현한 테르모필레의 과거 모습(왼쪽)과 사진으로 찍은 현재 모습(오른쪽). 해안선이 후퇴하여 마른 땅이 드러났고, 그 위를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Warner Bros. Pictures/유튜브 캡쳐. Fkerasar(W)

고고학자는 역사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흔적까지 찾습니다. 역사는 누군가 글로 남긴 기록이라서, 쓴 사람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거나 감추고 싶은 일은 빠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과거에 인간이 살았던 흔적은 땅속에 고스란히 묻혀있습니다.

 

탐정이 범죄 현장에 남은 증거를 가지고 범인을 찾아내는 것처럼, 고고학자들은 과거의 흔적을 찾아 오래전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사회를 복원합니다. 이런 면에서 고고학자의 연구 과정은 탐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고학자는 이 증거를 찾기 위해 여러 분야를 알아야 합니다. 땅을 파고 들어가야 하니 지질학이 필요하고, 찾은 유물의 연대를 측정하려면 화학도 알아야 합니다. 뼈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면 생물학 지식도 있어야 합니다. 고고학은 융합 학문인 셈입니다.

 

2007년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300'은 기원전 480년 스파르타에서 온 300명의 전사가 10배가 넘는 페르시아 군대와 싸워 이긴 ‘테르모필레 전투’를 다루고 있습니다. 스파르타군은 절벽과 바다가 만나는 좁은 통로에서 싸워 페르시아군을 이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곳은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당시 테르모필레 전투가 어디서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을까요. 고대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는 이 전투가 그리스의 칼리드로몬산의 절벽과 바다가 만나는 좁은 통로에서 벌어졌다고 썼습니다. 이런 지형적인 이점을 최대한 활용했기 때문에 턱없이 적은 수의 그리스 군대가 기적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막상 고고학자들이 찾아가 보니 그곳에는 바다가 없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바다도 5km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산과 바다 사이가 이렇게 멀다면 스파르타 전사 300명이 절대 막을 수 없었을 겁니다. 헤로도토스가 거짓말을 했던 것일까요. 

 

고고학자들은 사라진 바다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이곳의 땅을 팠습니다. 시추공을 뚫어 흙의 조성을 분석했습니다. 그랬더니 흙 대부분이 이곳을 지나는 스페르키오스강에서 떠내려온 퇴적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테르모필레 전투 이후 2500년이 흐르면서 엄청난 양의 흙이 쌓인 것입니다. 또 고고학자들은 과거의 기후를 분석해보니 이 지역의 해수면이 낮아졌다는 점도 발견했습니다. 그 결과 해안선이 2500년 전보다 5km나 뒤로 후퇴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변하게 된 겁니다. 헤르도토스의 기록은 사실이었던 겁니다.

 

고고학자들은 이렇게 증거를 찾아서 과거를 복원합니다. 과거를 밝혀내는 탐정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닙니다. 

 

스페인에서 이루어지는 고고학자들의 실제 발굴 현장. Mario Modesto Mata(W)
스페인에서 이루어지는 고고학자들의 실제 발굴 현장. Mario Modesto Mata(W)

 

※ 테르모필레 전투.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제국의 왕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을 정복하기 위해 엄청난 수의 군대를 이끌고 진군을 시작했다. 그리스 도시 국가 연합군은 대책 회의를 벌였고, 테르모필레 고개에서 페르시아 군대를 막기로 했다. 테르모필레 고개는 험한 산의 절벽과 바다가 만나는 매우 좁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이 이끄는 300명의 전사는 이곳에서 10만 명이 넘는 페르시아 군대를 무려 사흘 동안 막아냈다.

 

결국, 전투에 참가한 스파르타 군대는 모두 전쟁터에서 숨을 거두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이 장면을 기록하면서 테르모필레 전투는 후세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006년 이들의 활약을 담은 '300'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필자소개
고은별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고고학을 공부했다. 시흥 오이도 유적, 구리 아차산 4보루 유적, 연천 무등리 유적 등 중부 지역의 고고학 유적 발굴에 참여했다. 

 

관련기사 : 어린이과학동아 4호 (2019. 2. 15 발행) [GO! GO! 고고학자] 테르모필레 전투의 비밀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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