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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읽고, 깨어나시오" 암울한 시대를 비춘 과학의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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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읽고, 깨어나시오" 암울한 시대를 비춘 과학의 등불

2019.02.28 06:00

“과학은 힘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인들에게 과학은 말 그대로 ‘로망’이었다. 과학은 서구 문명 발전을 이끈 힘으로 인식됐으며,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과학으로 대중을 계몽하고자 노력했다. 표본을 모아 전시회를 개최하고, 강연회를 열어 사람들에게 과학의 중요성을 알렸다. 하지만 강연회나 전시회는 단발성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과학 단체들이 저마다 과학 잡지를 발행했다. 잡지를 통해 사람들에게 과학을 알리고 한민족이 과학적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잡지는 과학으로 암울한 시대적 상황을 타개하고자 했던 노력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 조선인 학생과 교수가 만든 학술지, '과학' 

 

레디오란이러한것(라디오란 이러한 것)

학술지 ‘과학’은 1929년 6월 발간된 학술지로 연희전문학교 수물과 학생과 교수들로 이뤄진 연희수리연구회가 만들었다. 연희수리연구회는 과학을 연구하고 과학 사상을 일반에게 보급하기 위해 1926년 조직됐다. 


안타깝게도 현재 이 학술지는 창간호 이후 몇 호까지 발행됐는지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서적은 연세대 국학도서관에 남아있는 창간호뿐이다. 다만 1931년 1월 발간된 연희전문학교 학생회 기관지인 ‘연희’ 7호에 학술지 ‘과학’에 대한 광고가 실려 있는 것을 보면 몇 차례 더 발간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근배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는 “당시 ‘과학’은 학생 사회 내에서 돌려 읽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확장성에 있어 한계점이 분명했다”면서도 “조선인 학생들이 학술지를 만들고 과학을 대중화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경성고등공업학교에서 만들었던 ‘공우(工友)’와 함께 과학 대중화를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어풀이 Ι 라디오란 이러한 것 (원제: 레디오란이러한것)

라디오 방송과 그 전송 원리에 대해 다루고 있다. 당시 라디오에는 AM(진폭 변조) 방식이 쓰였다. AM은 전송하고자 하는 신호를 진폭의 변화로 바꿔 전파로 전송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주파수를 변조한 신호를 전송하는 FM 방식을 주로 쓰지만, 1929년에는 FM 방식이 개발되기 전이었다. 국내에서는 1927년 2월 16일 경성방송국에서 최초로 라디오 방송을 실시했다. 잡지가 발행될 당시 라디오 방송은 개국한 지 2년밖에 안 된 신문물이었다. 국내 FM 방송은 1965년 6월 26일 서울 FM 방송국이 개국하면서 본격적으로 실시됐다.
 

● 일제강점기의 과학잡지 '과학조선'

‘과학조선’은 발명학회가 1933년 6월 창간한 국내 최초의 종합과학잡지다. 과학조선은 발명학회의 기관지였지만, 내용 자체는 당시 과학기술을 총망라하는 종합지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총 몇 권이 발행됐는지에 대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과학조선 기자로 활동했던 심승택이 보관했던 11권을 이용해 1986년 영인본을 제작했다는 점을 미뤄볼 때 최소 11권 이상은 발간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명학회는 1924년 10월 김용관을 필두로 설립됐지만,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8년 뒤인 1932년이었다. 과학조선 발간 이후 발명학회는 세를 확장해 과학지식보급회로 이름을 바꿨으며, 이후 1934년에는 전국적인 과학 행사인 ‘과학데이’를 처음으로 진행하는 등 조선의 과학 보급과 계몽에 크게 이바지했다. 


김 교수는 “많은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국내 최초의 종합과학잡지라고 할 수 있다”며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조선에 과학의 중요성을 전파했다는 점에서 특히 큰 의미가 있는 잡지”라고 설명했다. 또 김 교수는 “이 정도로 오랜 기간 발간한 잡지는 과학계뿐만 아니라 당시 잡지계 전체를 두고도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제 1회 ′과학데이′ 안내포스터와 과학조선의 제2호(7,8월) 표지. 과학조선은 일제강점기 과학잡지 중 가장 많은 호수를 발행했으며, 가장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과학의 중요성을 전달했다. 한국외대 글로벌캠퍼스 도서관
제 1회 '과학데이' 안내포스터와 과학조선의 제2호(7,8월) 표지. 과학조선은 일제강점기 과학잡지 중 가장 많은 호수를 발행했으며, 가장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과학의 중요성을 전달했다. 한국외대 글로벌캠퍼스 도서관

현대어설명 Ι 해왕성 발견 내력 (원제: 海王星發見來歷) 

천동설부터 해왕성의 발견까지, 태양계에 대한 인류의 인식 변화를 다루고 있다. 천동설이 어떻게 지동설로 뒤집혔는지에 대한 내용과 1781년 윌리엄 허셜의 천왕성 발견, 그 이후 해왕성의 존재를 예측하고 발견하는 과정을 함께 담고 있다.
기사 말미를 보면 ‘플루토(Pluto)’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플루토는 오늘날의 명왕성으로, 저승의 신(명왕)을 뜻하는 라틴어다. 명왕성은 1930년 클라이드 톰보가 처음 발견했다. 과학조선이 발간될 당시에는 명왕성의 발견이 몇 년 지나지 않은 매우 최신 소식이었다. 
명왕성은 발견 이후 태양계의 9번째 행성으로 인정됐지만, 2006년 8월 24일 국제천문연맹(IAU) 총회에서 행성 지위를 박탈당했고, 현재는 왜소행성으로 분류된다.

 

● 청소년에게 과학으로 희망을…'백두산'

 

 

‘백두산’은 1930년 10월 창간한 청소년 과학잡지로 통권 8호까지 발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창간호는 국회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백두산을 만든 백두산이학회는 청소년들에게 과학을 보급하기 위한 학회로, 강연회와 전람회, 과학영화 상영회, 실험회를 개최하고 관찰, 견학, 강습 프로그램 등을 기획했다. 


백두산 또한 백두산이학회 사업의 일환으로 청소년들에게 과학적인 정보를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어린 독자들을 위한 잡지의 특성상 어려운 한자보다는 한글로 본문을 작성했고, 활자도 다른 잡지에 비해 덜 빽빽한 편이다. 또 한 면을 모두 사진과 삽화로 채우는 등 시각적인 요소를 중시하는 구성을 선보이기도 했다.


김 교수는 “앞선 두 잡지에 비해 백두산과 백두산이학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며 “사람들에게 백두산이라는 잡지가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백두산 창간호에 실린 화보. 토성의 모습을 담은 삽화(위)와 임몰을 촬영한 사진(아래) 등이 담겨있다. 국회도서관 제공
백두산 창간호에 실린 화보. 토성의 모습을 담은 삽화(위)와 임몰을 촬영한 사진(아래) 등이 담겨있다. 국회도서관 제공

 

현대어설명. 달나라를 찾아서 (원제: 달나라를 차저서)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달의 크기와 거리, 달 표면의 환경 등 청소년에게 달을 소개하고 있다. 첫 쪽의 절반을 달 표면 사진으로 채워 청소년의 호기심을 돋웠다. 인간이 달에 간 경우를 가정해 달의 중력이 지구의 6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과, 달에 왜 생물이 살지 못하는지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백두산이 창간될 당시에는 인류가 아직 달 탐사선을 쏘아 올리기 전이었다. 이후 1969년 닐 암스트롱 등을 태운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면서 인류는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디는 데 성공했다.  2018년 9월 17일에는 민간우주회사 스페이스X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달에 민간인 관광객을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행운의 첫 번째 관광객은 일본의 마에자와 유사쿠 조조그룹 대표로 정해졌다.
 

관련기사 : 과학동아 3월호 [3·1운동 100주년] 읽고, 깨어나시오···시대를 비춘 과학의 등불

http://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1903N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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