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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연구과제''포항제철' 산파 윤여경 전 KIST 부소장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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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연구과제''포항제철' 산파 윤여경 전 KIST 부소장 타계

2019.03.10 16:59
2015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인터뷰 당시 윤여경 전 KIST 부소장의 모습. KIST 제공.
2015년 인터뷰 당시 윤여경 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부소장의 모습. KIST 제공.

포항제철(현 포스코)의 경제적 타당성 분석을 이끌며 투자를 끌어내 한국 공업화의 산파 역할을 한 윤여경 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부소장(전 피앤아이 회장·전 KIST 동문회장)이 9일 오전 3시 33분 별세했다. 향년 84세.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미국 유타주립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퍼듀대 산업경제학 석사를 거쳐 미국 노던 일리노이 가스컴퍼니에서 경제분석직으로 일했다. 1968년 KIST의 재외 과학기술자 유치계획의 1차 유치과학자 18명 중의 한 사람으로 귀국해 경제분석실장을 맡았다. KIST 소속된 1세대 연구원 중 유일한 경제 분야 전문가로 연구성과를 산업화할 수 있는지 타당성을 검토하는 일이 임무였다.

 

당시 KIST의 연봉은 미국 회사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높은 연봉에 미래가 보장된 미국 회사와 과학 불모지에서의 새로운 개척 중 그는 후자를 택했다. 그는 2015년 당시 KIST 스토리 인터뷰에서 “나는 이왕 직장을 옮길 것이라면 한국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었다”며 “KIST를 선택한 데는 최형섭 KIST 초대소장의 철학과 소신에 반했던 영향도 컸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윤 전 부소장은 1961년부터 정부가 계획해 온 종합제철소 계획을 현실로 만드는 데 공헌을 했다. 1969년 KIST에는 표류하던 한국 최초의 종합제철소 계획을 살리라는 특명이 떨어져 있었다. 당시 한국은 미국 코퍼스 사가 주축이 돼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5개국 8개사로 구성된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와 연간 60만 톤 규모의 종합제철소 건설을 추진해 왔으나, KISA가 작성한 타당성 보고서가 세계은행(IBRD)과 대한국제경제협의체(IECOK)로부터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해 투자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세계은행은 “한국의 종합제철소 건설은 시기상조이며 타당성이 없다”며 한국의 제철소 건설 계획을 평가절하하고 있었다.

 

윤 전 부소장은 경제적 접근 방식을 동원해 합리성을 증명했다. 거시적 분석으로 인당 GNP, 인당 철강재 소비량 등 여러 지표를 일본 과거 자료와 비교 검토해 한국의 상황이 일본에 20~25년 뒤진 것으로 판단했다. 이를 토대로 국내 철강재 수요를 작성했더니 1970년 말에는 수요가 100만t 이 넘는 것으로 분석됐다. 당시 국제적으로 인정되던 종합제철소의 최소 단위인 조강 기준 100만t의 제철소를 지어도 한국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제철 전문가였던 김재관 박사와 함께 계획안 수립을 주도했다. 김 박사의 전문적인 식견을 윤 전 부소장이 재무제표로 완성하는 식이었다. 외자 1억 2370만 달러, 내자 633억 원이 드는 103만t 규모의 종합제철소 사업계획서를 완성했다. 이 계획안을 들고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대일청구권자금을 받아와 종합제철소를 착공할 수 있었다.

 

KIST는 1966년 설립과 동시에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던 한국인 과학자 18명(사진)을 유치했다. KIST 1세대 연구원 중 유일한 경제 분야 출신이었던 윤여경 경제분석실장(왼쪽 동그라미)은 종합제철 건설추진 전담반에서 김재관 박사(오른쪽 동그라미)와 함께 각각 경제적, 기술적 타당성 분석 업무를 담당하며 밤낮 없이 매달린 끝에 ‘포항제철소 종합건설 계획안’을 완성했다고 회고했다. KIST 제공
KIST는 1966년 설립과 동시에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던 한국인 과학자 18명(사진)을 유치했다. KIST 1세대 연구원 중 유일한 경제 분야 출신이었던 윤여경 경제분석실장(왼쪽 동그라미)은 종합제철 건설추진 전담반에서 김재관 박사(오른쪽 동그라미)와 함께 각각 경제적, 기술적 타당성 분석 업무를 담당하며 밤낮 없이 매달린 끝에 ‘포항제철소 종합건설 계획안’을 완성했다고 회고했다. KIST 제공

이후 한국의 모든 산업육성정책수립에 KIST 경제분석실장 자격으로 참석한 윤 전 부소장은 기계공업의 근대화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조선소건립 필요성을 강조해 현대조선(현 현대중공업)의 출범을 이끌기도 했다. 윤 전 부소장은 모두가 가능하냐고 물었던 김훈철 박사의 20만t 생산 규모 조선소건립 제안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대통령과 경제부처장관, 업계 대표들에게 설명했다. 이에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아파트 건설과 선박 제조가 별반 다를 것 없다”며 즉홍적으로 해보겠다고 나섰고 이는 현대조선의 출발로 이어졌다.

 

한국 벤처캐피탈 회사의 효시가 된 한국기술진흥주식회사(K-TAC)의 설립을 주도하고 대표이사를 맡기도 했다. KIST 이사회를 거듭 설득해 2억의 자본금 계획이 2000만원으로 축소된 채 설립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이후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당시 냉매제로 쓰이던 프레온가스는 전량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었는데 KIST의 프레온12 제조기술을 울산화학에 이전시켜 연간 매출액 254억 원의 공장을 세우게 된다. 이후 농약 살충제 기술 등 다양한 KIST의 기술이 기업들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국책연구과제라는 용어의 시초를 만든 것도 윤 전 부소장이다. KIST는 설립 당시 국가와 산업계가 요구하는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있었다. 설립 10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미래 기술을 연구하는 기술자립을 준비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1978년 연구비는 7억 수준이었으나 KIST는 최소 35억은 돼야 한다는 내부 결론에 부딪혀 있었다.

 

윤 전 부소장은 당시 과학기술처 장관이 된 최형섭 초대 소장과 경제기획원 예산국을 설득해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 윤 전 부소장은 KIST에서 30개의 연구개발과제와 각 과제 당 5개에서 8개의 세부과제를 도출했다. 규소화학공정 개발, 태양열이용 연구, 폐자원 이용연구 등 연구자들이 하고 싶은 연구들로 과제가 채워졌다. 총 5개년 600억 원 예산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KIST는 이 과제를 국책적 연구과제라고 불렀는데, 이 용어가 현재 쓰이는 국책연구과제의 시초다.

 

당시의 시도는 KIST를 비롯한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자들이 미래지향적인 연구를 할 수 있게 한 시발점이었다. 윤 전 부소장은 2015년 인터뷰에서 “최형섭 소장님이 KIST가 국가와 산업계가 요구하는 기술개발을 하는 것은 과학자로서 큰 희생임은 틀림없으나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하면 후배들은 자기가 원하는 기술을 개발해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할 것이고 거기서 우리가 보람을 찾을 것이라 했다”며 “최 소장님이 꿈꾸던 KIST의 모습으로 변해온 것 같아 마음이 뭉클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연구자가 자신이 원하는 미래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일조했던 고인의 빈소는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3층 9호에 차려졌다. 발인은 11일 오전 7시 30분 용인-천안공원이다. 031-787-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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