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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 청소년 자해, 스스로를 벌주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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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 청소년 자해, 스스로를 벌주는 아이들

2019.03.23 06:00

아이들이 날카로운 도구로 자신을 찌른다. 긁고 때리고 기어이 피를 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소위 ‘자해러’의 사진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유튜브에는 ‘OOO 박고 자살하자’는 노래가 유행가처럼 올라온다. 전문가들은 자해로 감정을 표현하는 이유가 말로 하기 어렵거나 소용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어릴 땐 원래 그래’ ‘쇼 하지 마라’ ‘다 그러고 큰다’ 같은 어른의 말은 궁지에 몰린 아이를 한 번 더 낭떠러지로 밀어 넣는 폭력이나 마찬가지다.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최근 청소년 자해가 늘어났다는 점에 대부분 공감한다. 실제로 2018년 교육부가 전국 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 설문조사 결과, ‘자해를 한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 전체 중학생 51만4710명 중 4만505명(7.9%)이 ‘자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중학생 100명 중 8명꼴로 자해를 하고 있는 셈이다. 고등학생은 45만2107명 중 2만9026명(6.4%)으로, 중학생보다는 비율이 낮았다. 

 

 

자살 시도와는 다른 ‘비자살성 자해’


홍현주 한림대 자살과학생정신건강연구소장(평촌성심병원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2018년에 자해 청소년이 유난히 많았다”며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청소년 자해는 증가 추세”라고 지적했다. 2013년 미국정신의학회는 ‘정신질환진단 및 통계편람 제5판(DSM-5)’에서 ‘비자살성 자해’를 새롭게 규정하기도 했다. 그만큼 국내외적으로 자해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다는 뜻이다.
자살과 자해는 다르다. 흔히 사람들은 자해하는 모든 이가 자살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지만, ‘비자살성 자해’는 심리적 고통에서 일시적으로 도피하기 위한 의도로 이뤄진다. 반면 자살은 참을 수 없는 심리적 고통을 영구적으로 끊어내려는 시도다. 


자해와 가장 많이 동반되는 질환은 우울증이지만, 자해를 하는 청소년이 모두 우울한 것은 아니다. 2012년 캐나다 연구에 따르면 자해를 하는 사람 중 31%가 우울증을, 28%는 약물 남용이나 의존을, 27%가 불안장애를 보였다.doi: 10.1016/j.psychres.2011.12.011 

 

SNS를 통해 퍼지는 소위 ‘자해러’의 사진이 청소년 자해를 부추기지는 않을까. 홍 소장은 “자해는 (그것이 왜곡됐을지라도) 청소년이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라며 “예전보다 우울이나 자해를 좀 더 자유롭게 내보이는 문화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홍 소장은 “미디어 자체가 자해를 유발하는 근본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자해 외에 감정을 해소할 길이 없는 아이들

 

온라인상 자해를 표현한 콘텐츠가 많아지고 있다. 사진은 자해, 우울증 경험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업로드하는 유투브 ′이모르 emor′의 영상캡쳐.
온라인상 자해를 표현한 콘텐츠가 많아지고 있다. 사진은 자해, 우울증 경험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업로드하는 유투브 '이모르 emor'의 영상캡쳐.

혹시 자해에 좀 더 취약하게 만드는 유전적, 생리학적 특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를 알면 자해하는 청소년을 돕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오윤혜 국립정신건강센터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는 “뚜렷하게 밝혀진 신경생리학적 요인은 없지만, 다수의 동물 연구에서 자해를 하는 집단은 대조군에 비해 스트레스에 대한 신체의 생리 반응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연구에 따르면 자해를 하는 집단은 대조군에 비해 평상시에도 긴장하는 정도가 높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더 많이 긴장하며, 긴장이 해소되는 데 걸리는 시간도 길다(doi: 10.1016/B978-0-12-386491-8.00008-6).


오 전문의는 “자해를 반복하는 것을 일종의 ‘행위중독’으로 설명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게임, 쇼핑, 운동은 물론 드라마를 끊임없이 보는 ‘빈지뷰잉(binge viewing)’ 등이 행위중독의 좋은 예다. 모든 중독이 그렇듯 자해 행위중독도 갈수록 더 깊고 넓은 상처를 만든다.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건강한 정서조절 방법을 가진 사람은 쉽게 이 감정을 소화시키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정서조절에 실패하고 다른 방식으로 정서조절을 할 수밖에 없다. 오 전문의는 “자해 경험자들은 대부분 수치심, 자기혐오, 절망 등 부정적 감정이 생길 때 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방식으로 자해를 한다”고 말했다.


배승민 가천대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해는 연구 대상의 수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못하다 보니 연구가 어렵다”면서도 “상당수가 전전두엽이 관장하는 감정 조절 기능에 어려움이 있는 게 아닐까 추정된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또 “심리적으로 감정 조절이 어려울 때 외부에서 일시적인 통증을 주면 마치 진정제를 먹은 것 같은 효과를 주는데, 자해 청소년은 이런 극단적인 방법 외에 감정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 같다”고 추정했다.


이런 현상이 사회적 제도나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술이나 운동 등 선택의 폭이 더 넓은 어른과 달리 학업과 같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 청소년은 격동하는 감정을 잠재울 방법을 찾기가 더 어렵다.


배 교수는 “경각심을 가지고 아이들이 학습적인 인지 발달뿐 아니라 정서적인 감정 조절을 잘 하고 있는지 봐야한다”며 “그 과정에서 어른들이 스스로의 감정 조절을 돌이켜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자해를 하고 안하고는 동전의 양면, 관심과 공감 필요해 

 

청소년 자해를 다루는 데 약물 치료는 크게 효과가 없다. 애초에 자해를 하는 이유가 발달, 양육, 학업, 친구 문제 등 매우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배 교수는 “약물은 아이들에게 공황이나 불면증 등의 증상이 있을 때 이를 막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라고 말했다. 


2018년 청소년 자살예방사업에 참여해 자해 아동 상담을 전담했던 김지혜 경북 봉화군 정신건강복지센터 간호사는 병리적인 이유보다는 문제 해결의 방식으로 자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스스로 벌을 주기 위해 자해하는 청소년도 있다. 그는 “자해하는 아이들은 손을 그어서 피가 뚝뚝 떨어지면 시원하다고 말한다”며 “신체적인 통증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청소년 자해가 늘어난 이유는 뭘까. 김 간호사는 과거보다 청소년기가 훨씬 길어졌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아이들은 자신이 다 컸다고 생각한다”며 “청소년기는 감정의 격동기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감정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너무 적다”고 말했다. 


김 간호사에 따르면 자해 청소년은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는 경우도 많다. 이 때 주변에서 꾸준히 지지와 공감을 표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고 아이의 고통을 지겨워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면 아이들은 힘들다는 표현을 자해로 나타낸다. 


김 간호사는 “자해를 하고 안 하고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말했다. 자해를 하는 이유를 알면, 자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 치료의 핵심은 생각을 전환할 수 있도록 중독을 다른 일로 집중시키는 것이다. 자해도 마찬가지다. 청소년이 자해를 어떨 때, 왜 하는지 그 이유를 찾았다면 자해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하나씩 제거하고, 산책이나 게임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다른 행동을 찾게 해야 한다. 
김 간호사는 “꾸준한 상담, 약물치료와 함께 부모와 학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여러 사회적 지지체계를 마련하면 더 효과적으로 청소년 자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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